전 영돈녕부사 이경석이 조목별 건의 사항을 아뢰다
전 영돈녕부사 이경석(李景奭)이 하교에 응하여 상차하기를,
"하늘이 진노하시어 큰 이변이 빈발하고 한발이 더욱 참혹하게 들어 들판이 황량합니다. 어인 일로 쇠퇴의 징조가 정신을 가다듬어 다스리는 시대에 모여든단 말입니까. 연이어 내린 애통해 하시는 하교를 보니 걱정하고 애쓰시는 뜻이 더욱 간절합니다. 어공(御供)은 이미 감하였고 방물(方物)도 정지하였으니, 본말을 모두 갖추었으며 성의와 문채도 겸비하였습니다. 크게 덕음(德音)을 발하여 장기수를 모두 석방하시니 어두운 가운데 귀신의 감응이 메아리처럼 빨라 단비가 내렸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고 만민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성상의 이 마음은 요(堯) 순(舜)이 될 수 있고, 성상의 이 조처는 당우(唐虞)의 시대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성역(聖域)의 좋은 시대를 한 걸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이 마음을 확충하고 이 조처를 계속해서 힘쓰신다면 전하의 출중하신 어짐과 지혜로써 어찌 덕(德)이 지극하지 않고 정치가 옛날과 같지 못할까 걱정할 게 있겠습니까. 하늘이 인자하여 아끼기 때문에 경계를 보이는 것이고 많은 걱정을 하면 슬기가 열린다는 고인의 말이 진실로 빈말이 아닙니다.
신은 아직도 기축년018) 겨울에 탑전에서 아뢰었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데, 장법(贓法)과 군율이 엄하지 않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 곧 신의 말이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장기수를 다 감옥에서 내보낸 것을 기쁘게 여기는 것은 신의 기쁨이 아니라 바로 온 백성의 기쁨을 기쁨으로 삼은 것입니다. 대저 온 백성이 모두 어찌 몇 사람에게 개인적인 애정을 가져서 그러하겠습니까. 인정은 대개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성상의 마음은 지극히 어질고 지극히 공정한데 처음에는 어렵게 여기시다가 나중에는 석방하신 것은 실로 상천(上天)의 노여움을 공경하고 만민의 목숨을 구제하려는 데서 나온 것으로 한 때의 사의를 헤아려 대사면의 은전을 베푼 것입니다. 우리 성상께서 하늘을 섬기기를 마치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 삼가고 두려워하며 부드러운 말소리와 온화한 얼굴빛으로 여러모로 정성을 다 쓰는 것처럼 하시므로 하늘의 감응 역시 마치 지성으로 하는 자식에게 노여움을 푸는 것과 같이 하였습니다. 그 일관된 이치가 이처럼 명백하니 어찌 더욱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의 쇠약한 기운이 갑자기 솟아올라 곧 교지에 응하고자 하였습니다만 연달아 상(喪)을 만나 노환이 더욱 악화되었는데 치통이 더욱 괴롭습니다. 볼 안팎에서부터 턱밑까지 크게 부어서 밤낮으로 신음하며 식음을 폐하다시피 한 지 여러 날입니다. 이제 겨우 조금 나았습니다만 아직 완치되지는 않았습니다. 때문에 품은 생각을 쓰려다 도로 그만두어 지연됨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또 성상께서 조처하신 일이 이미 잘 되었다 하고, 두세 통의 차자를 보니 역시 모두 상세한데 신이 무슨 말을 할 것이 있겠습니까만 구구한 생각을 아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활한 말이라서 반드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니 성명께서 헤아려 택하소서.
아, 전하의 마음은 곧 요순의 마음이니, 요순의 정치를 행하시면 이 또한 요순의 정치가 되는 것입니다. 요순의 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효도와 공손일 뿐이며, 요순의 정치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인의(仁義)일 뿐입니다. 효도하고 공손한 행실을 미루어 만민을 가르쳐서 효도와 공손함을 일으키고, 인의의 정치를 닦아서 만민을 인솔하여 인의를 일으키면, 백성이 된 자는 평상시에는 안도하여 베개를 높이 벨 수 있고 난리를 당해서는 윗사람을 어버이처럼 여기고 상사(上司)를 위해 죽을 수 있을 것인데, 어찌 이치를 어기고 윤리를 어지럽히는 일이나 윗사람을 원망하며 질시하는 백성이 있겠습니까. 인의(仁義)의 말이 세상에 행해지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인의를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듣는 사람이 반드시 오활하다고 여기니 누가 이를 따라 행하겠습니까. 그러나 제 환공(齊桓公)과 진 문공(晋文公)은 이를 빌려서 제후 중에 패자가 되었고, 당 태종(唐太宗)은 이를 힘써서 태평성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만 임금이 행하지 않는 것이 걱정이지 행하기만 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만, 하고 안하고는 오직 전하께 달려 있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눈 앞에 보이는 이익만 탐내시거나 일정한 법규에만 구애받지 마시고, 큰일을 해야겠다는 뜻을 분발해 계속 쉬지 않고 해나가되 요순의 마음을 본받고 요순의 정치를 행하시며, 강론한 《시전(詩傳)》·《서전(書傳)》의 가장 긴요한 곳으로서 성스런 황제와 지혜로운 임금이 현인에게 위임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한 까닭을 체득하여 반드시 몸소 힘써 실천하고, 쇠퇴하고 어지러운 시대에 화를 불러 망하게 된 까닭을 체득하여 반드시 애써 징계하여 고치소서. 그리고 진대(珍臺)·한관(閒館)에서나 혼자 있어 흩으러지기 쉬운 곳에서도 항상 잊지 않고, 계속 힘쓰고 힘써서 반드시 당우(唐虞)와 삼대(三代)의 정치처럼 해야겠다고 다짐하소서.
이른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하나의 정성일 뿐입니다. 이른바 정치라는 것 역시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마음에 뿌리를 둔 정성이 일에 나타나 정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정성으로 이런 정치를 한다면, 정치가 어찌 바로서지 않겠으며, 다스림이 어찌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창졸간에 모두 말하기 어렵고 또한 한두 가지로 세기도 어려운 것입니다만 시험삼아 그 대략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서경》 전모(典謨)와 《시경》의 아송(雅頌)에서 일컬은 것은 이런 마음과 이런 정치가 아닌 것이 없으나 어진이에게 위임하며 백성을 편안히 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현인에게 성의로써 위임하지 않으면 현인을 쓸 수 없고, 현인을 전일하게 쓰지 않으면 백성이 편안할 수 없으며, 백성이 편안하지 않으면 나라가 편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인을 의심하지 않고 위임하며 백성을 편안히 하면 바로 이게 인애(仁愛)이므로 정치가 이로 인해 거행되어 나라의 근본이 견고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오늘날에 찾아볼 때 과연 모두 다 발탁되어 재야에 버려진 현인은 없으며 과연 어루만지고 보호하여 그 혜택이 아래에까지 미쳤습니까.
아, 임금을 만나 도를 행하는 것은 군자의 소원입니다. 초야와 산림에서 늙어 죽는 것이 어찌 어진이의 뜻이겠습니까. 다만 당시의 임금이 성의를 다하지 않고 그의 말을 쓰지 않으면 겉치레로는 붙들어둘 수 없으니, 이것이 흰말을 잡아 매어 두기 어려운 까닭입니다.019)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욱 편리하지 못한 형편이 있고 또 몹시 추운 때나 매우 더운 때에 예복을 갖춰 입고 분주히 돌아다니는 것은 한가로이 지내던 자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옛날에는 현인을 존중하여 그를 위해 특별히 집을 지은 자도 있었습니다. 지금 비록 특별히 새로 짓지는 못하더라도 창경궁 궐문 밖의 이조의 직방(直房) 중 빈 곳을 수리하고 청소한 다음 춘하 추동 중 매우 춥거나 덥지 않은 때에 부름을 받고 와서 여기에 거처를 정하게 하고 창름의 고기를 공급해 줍니다. 그리고는 공사의 모임에는 출입하지 않게 하고 경연이나 서연에서 시강하게 하거나 혹 여러 선비들과 반궁(泮宮)에서 토론하게 합니다. 그리고 더욱 널리 초청하여 무리지어 올라 오게 하여 올바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다시금 불편한 형세가 없을 것이며 나라에 현인을 쓴 실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 백성이 편안하면 나라도 편안하고, 백성이 불안하면 나라도 불안한 법이니, 백성은 실로 불쌍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지금 백성의 힘이 쇠진하였으므로 조금 쉬게 해주어야 할 것이니 무릇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서둘러서 해주어야지 미루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제 만수전(萬壽殿)이 이미 완공되어 정성스런 효심을 폈으니 이제부터는 토목 공사를 일체 중지하십시오. 백성을 부역시키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군사를 모집하는 것은 재물을 축내는 것이 아닙니까. 재물을 축내고 백성을 해쳐서 지나치게 사치하는 것은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군과 읍의 병기는 거의 모두 정예로우니 수리하는 일과 월과(月果)에 대비하는 일과 세초(歲抄)하는 일은 잠시 기한을 정해 정지해야겠습니다. 염초를 굽는 일이 크게 민력을 허비한다는 것에 대해 전일 신의 견해를 대략 말씀드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그대로 하고 있습니까? 만일 지금까지 계속한다면 감당할 만한 큰 읍은 그래도 괜찮겠지만 쇠진한 작은 읍은 매우 큰 곤욕이 될 것이니, 다만 편의에 따라 준비하게 해야지 강제로 굽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폐지할 수 없는 것은 농한기를 이용한 군사훈련입니다만, 훈련을 하지 않는 기간에 영장(營將)이 어디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인가는 살펴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이 일찍이 영의정으로 있을 때, 받을 길도 없는데 백성의 원망만 쌓이게 하는 적곡(糴穀)을 탕감해 주자고 청해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들으니 각 읍의 관리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받았다고 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실지 혜택을 입지 못했다고 하니 진실로 통탄할 일입니다. 이런 유들을 상세히 조사하여 탕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독신으로서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을 여러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자는 역시 감사로 하여금 일일이 조사하여 모두 세금을 받지 않게 하면 이것도 삼대의 어진 정치 중의 하나입니다. 또 나라의 경비가 넉넉치 못하므로 전지의 세금을 감해 주는 것을 비록 옛날과 같이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태창(太倉)020) 에 남은 콩이 있다고 하니 영남과 호남에 해마다 흉년이 든 이 때를 당하여 받아들일 콩을 경감시켜 조그만 혜택을 베푸는 것이 기근을 구제하는 정책에 합당한 듯합니다만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수사 노비도 하늘이 낸 백성인데,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유독 학대를 받고 있으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서로(西路)와 청남(淸南)의 신공(身貢)은 일 년에 명주 한 필을 바치는 것인데, 한 필의 값 대신 반드시 대여섯 냥의 백금을 준비하여 내사(內司)에 바쳐야만 무사하고 명주로는 바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북도(北道)에서 징수하는 공물 역시 점점 많아진다고 말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러한 폐단은 통렬히 혁파할 수는 없습니까.
지난해 사신의 행차가 끊이질 않아 접대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는 모두가 백성의 고혈입니다. 그러니 불쌍한 우리 삼로(三路)의 피폐한 백성은 다른 도보다도 더욱 심하여 배고파도 먹지 못하고 목이 타도 마시지 못하고 피곤해도 쉬지 못하면서 역에서 대기하고 도로에서 분주하여 잠잘 겨를도 없었는데 더구나 씨뿌려 밭갈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가슴을 치며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을 듣기만 하여도 불쌍하여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릅니다. 이 연로(沿路)는 병화(兵火)를 겪은 것이나 다를 게 없으니 사리상 넉넉히 은혜를 베풀어 국가가 불쌍히 여기고 있음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관서의 수비군은 강가의 분둔(分屯)을 해체한 뒤로 병영(兵營)에다 예속시켜 베포를 거두는 군졸로 삼았는데 병조에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신이 심양을 왕래할 적에 이 일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괴이하게 여겨 돌아와 선조(先朝)에 아뢰었는데 그 후에야 비로소 병조의 관할이 되어 수비군에게 거둔 베는 받아서 그 곳에 두었다가 안팎의 수요에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군인 또한 대부분 유약자로 채워져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어린아이에게 베를 독촉하고 있으니 원망이 어떠하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 군인 중 유약자는 사실대로 조사하여 기록해 일정 기간 징세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감영 소속의 요수군포(遼水軍布)도 헤아려 감해주시고, 새로 추쇄하여 얻은 노비의 공물도 다른 도와 같게 하지 말고 특별히 감해 주소서. 또한 양서(兩西)는 균등하게 해야 하는데 해서(海西)에는 쌀 다섯 말을 받는 것이 있으니 이것도 일정 기간 동안 그 중 두세 말을 감해 주십시오. 또 관향(管餉)의 곡식으로 양서의 역참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가 가을에 풍년이 들면 그 반만 받고 풍년이 들지 않으면 받지 마소서.
개성부(開城府)는 재물은 이미 고갈되고 힘은 이미 다했으므로 돕지 않으면 지탱하지 못할 것이니 해서의 관향곡과 관서의 군포를 넉넉히 주어서 재화의 밑천으로 삼게 해주어야겠습니다. 경기에서 가을에 받아들일 것은 적절한 수량으로 감해 주면 역시 곤궁한 자를 돌봐주는 유지(遺志)입니다. 또 생각건대 새로 추쇄할 일은 그만둘 수는 없으나 허실과 시비 간에 놀라지 않는 백성이 하나도 없고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원근이 매우 소란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건대 많지만 도망가는 것보다는 감해주어 있게 하는 것이 더 낫고, 그 수효만 얻는 것보다는 그 마음을 얻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지금 들으니 10명이 사는 집은 2명의 세금을 감해준다고 하는데, 10명이 사는 집은 많지 않지만 6, 7명이나 7, 8명이 사는 집은 필시 많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쳐야 할 군포는 적어도 십여 필이 될 것인데 뼈만 남은 파리한 백성들이 밤낮으로 쉴 사이 없이 마련할 즈음에 그 고생하고 괴로워하는 실상을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6, 8명이 사는 집은 2명분을 감해주고 9, 10명이 사는 집은 3명분을 감해 준다면 받아들이는 것은 비록 줄어들지만 백성이 지탱할 수 있어서 오래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수효만을 가지고 많이 거두려고 힘쓴다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도망자가 속출하여 친족과 이웃의 폐해가 전보다 몇 갑절이나 될까 신은 두렵습니다. 혹은 《대전(大典)》에 일정한 법이 있다고 합니다만,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저 헌장은 가벼이 고쳐서는 안 되지만 백성을 구휼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때로 경장(更張)하더라도 무슨 불가함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어렵고 위태로운 때는 태평한 시대와는 크게 다르며, 극빈한 백성은 삶을 즐기는 백성과는 현격히 다른 것이니, 백성을 위해서 폐단을 제거하는 데 비록 《대전》의 규정보다 지나치게 한다 하더라도 불가한 점이 뭐가 있겠습니까.
또 국가가 국가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기강이 있기 때문이며,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강상(綱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인(良人)이 변하여 천인이 된 자도 있고, 노비가 그 주인을 배반한 자도 있고, 사천(私賤)이 공천(公賤)이 된 자도 있고, 혹은 반은 양민의 부역을 하고 반은 공천에 속한 자도 있고, 혹은 소송에서 요행히 이겨 한 집안을 죽인 자도 있습니다. 연줄을 타 청탁하거나 간사한 아전들에게 아부하는 자는 이기고, 한적한 시골의 고독하고 힘없는 자는 집니다. 도감이 기일(期日)을 정해 알리면 먼 곳의 우매한 자는 여기저기 달려다닙니다마는 본관이 심리하지 않고, 어사가 자세히 살피지 않고, 송관(訟官)이 공명하지 않으니 억울함을 당하여 원한을 품은 자가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라에서 몰랐다면 그만이지만, 만일 알았다면 어찌 기일이 지났다고 핑계대고 심리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왕도 정치는 옥송(獄訟)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기강이 이로 말미암아 무너지고 강상이 이로 말미암아 땅을 쓴듯이 없어진다면, 이미 끝났다고 하여 다시 분별해 바로잡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태조조에 노비 변정 도감(奴婢辨定都監)을 설치한 뜻이 어찌 우연한 것이었겠습니까. 잘못되었으면 고쳐야 하는 것이니 인장을 새기고 없애고 열 번 바꾼들 무슨 지장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것은 관계된 바가 매우 크므로 왜곡된 것을 펴주고 원한을 씻어주고 기강을 세우고 강상을 부식하여 한 번 어지러운 백성을 바로잡아서 크게 인심을 위로하는 것은 결단코 그만둘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아뢰게 한다면 이는 백성들을 분분히 거둥길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유사를 앞세운 뜻도 아니니, 송사의 법이 어디에 있다고 하겠습니까.
아, 당우(唐虞) 시대는 오교(五敎)를 공경히 펴고,021) 주(周)나라 때는 삼물(三物)로 가르쳐 현인을 빈례(賓禮)로 천거하니022) 백성은 순박하고 풍속이 후하였으나 오히려 교도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였는데 더구나 이런 말세에 몇 차례 변란을 겪고도 교도하고 통솔하는 방안을 전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백성이 박절하지 않고 풍속이 구차스럽지 않기를 바라기란 역시 어렵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안에는 교수관을 두고 밖에는 교양관을 두었으니, 그 뜻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교수관의 일은 번갈아 돌아다니는 것에 불과하고 제술(製述)하는 것도 드무니 자주 시험을 보게 하더라도 이것은 이른바 매일 경쟁하게만 하는 일입니다. 교양관의 임무는 여러 읍을 때때로 순력하면서 잠깐 강의만 하고 잠깐 제술만 하고서 그치는 데 불과하니 역시 근본적인 것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물뿌리고 쓸고 대답하는 절목 역시 망연히 알지 못하고 있는데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신이 일찍이 의정부에 있을 때 그 조목과 법규를 간략히 하고 대략 향약을 모방하여, 서울에서는 예조와 한성부가 관장하고 지방은 감사와 수령이 관장하게 하여 오부(五部)와 여러 읍으로 하여금 다달이 신칙하게 하고, 또 각동과 각면으로 하여금 그 풍속을 바로잡게 하라고 공문을 보내 권유한 적이 두서너 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속된 관리들이 소홀히 여기는 것은 옛날부터 통탄해 온 일이라 받들어 이행하는 자가 많다고는 못 들었습니다. 그러나 신이 서쪽으로 나갔을 때 전하는 말을 들으니 조정에서 교유한 뒤로 어린이와 시골 사람 중에 깨닫고 착해진 사람이 왕왕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오래 지속해 지켜서 행한다면 어찌 그 효과가 없겠습니까. 또 신이 근래 관동에 갔었는데 지나는 군과 길가의 마을에 혹 새로 지은 서재가 버려져 잡초가 우거진 것이 있기에 물어보았더니, 조정에서 법을 만든 후에 서재를 만들어 어린이를 가르쳤으나 신이 퇴임한 후로 이 일도 결국 폐지되었다고 하므로 신은 삼가 몹시 애석하게 여겼습니다.
인심은 점점 악해지고 풍속은 점점 무너져서 강상의 변고가 역사에 끊이지 않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관서의 변방 읍은 오랑캐 땅과 가까워 다른 풍속에 젖어 있어서 본래 걱정이 많았습니다만 근래 역모하는 적들이 도내에서 나오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풍속을 바꾸는 일이 비록 쉽지는 않다고 하나 가르치고 바로잡는 법을 진실로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사신의 행차가 계속 끊이지 않고 있는데 어느 겨를에 하겠느냐고 한다면 그 점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진실로 성심이 있다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이는 해조에서 전날의 문서를 찾아내어 전국에 일제히 밝히고, 조정은 감사를 신칙하고 감사는 수령을 신칙하여 오래도록 태만하지 않게 하여 반드시 하도록 시키는 데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착실히 해 오랜 세월 동안 연마한다면 어찌 산란하게 내버려 두어 날로 버릇이 없어져 구제하지 못하게 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아, 한 사람이라도 무고한 자를 죽이는 것을 왕도를 행하는 자는 하지 않으며, 사형수를 삼복(三覆)하는 법은 지극히 엄중합니다. 그리고 태장(笞杖)과 형신에 이르기까지 경중에 따른 격식이 법전에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관리들은 죄의 대소와 일의 공사(公私)를 불문하고 오직 혹독한 형벌과 준엄한 법만 숭상하여 도리어 정치를 돕는 도구를 분풀이 하는 밑천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칠고 포악한 진장(鎭將)의 무리들이 잘못 죽이는 것을 경계하지 않고 많이 죽이는 것으로 위엄을 삼아 풀을 베고 짐승을 잡듯이 하여 혹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살육당하는 경우도 있으나 조정에서는 알지 못하고 먼 지방 사람은 호소할 곳이 없으니, 원통한 일 중에 무엇이 이보다 더 심하겠습니까. 이런 일을 통렬히 금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아, 옛날에 형벌에 대해서 반드시 조심하라, 불쌍히 여기라, 공경하라, 공명(公明)하게 하라고 하였으니, 신중히 하면서 측은해 하고 불쌍히 여기는 그 뜻을 천년 후에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 차라리 잘못하여 죄인을 놓칠지라도 의심스러운 죄는 경감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천리와 인정이 병행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이 민심에 흠뻑 젖어 그 넓고 큰 것을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삼가 듣건대 지난번에 죄인의 심리를 마치자 비가 내렸는데 또 다시 심리하게 하셨다니 이 역시 성상의 마음이 요순의 마음과 꼭 부합하는 것입니다. 몸가짐을 삼가며 정치를 닦는 것이 주 선왕(周宣王)보다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죄명이 심히 무거우면 비록 실정은 가볍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 내막을 알 수 있겠으며, 신분이 미천하면 비록 죄가 의심스럽더라도 어떻게 밝힐 수 있겠습니까. 죄는 같은데 혹은 용서받기도 하고 혹은 용서받지 못하기도 하며, 실정은 가벼운데 혹은 죄명을 벗기도 하고 혹은 벗지 못하기도 하는 것에 있어서는 유사의 잘못이지만 성스런 세상에 억울한 기운이 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집집마다 사람 하나씩 두어 분변하지 않는다면 살펴 제재하기란 역시 어렵습니다.
그러니 풀어주는 은택을 사방에 베풀고자 한다면 오직 늙고 오래된 자에게 해야 합니다. 고례에 ‘가련한 자와 혼몽한 자에게는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023) 하였는데 대개 어린이와 늙은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춘추》의 전(傳)에 말하기를 ‘천도(天道)는 10년이면 크게 변하고 인도(人道)는 10년이면 미움을 버린다.’고 하였는데, 정축년024) 부터 오늘까지 10년이 두 번 지나고도 1년이 되었으며, 기축년025) 부터 지금까지는 10년에서 겨우 1년이 모자랍니다. 세월이 이미 오래된 데다가 죽을 날도 멀지 않았는데 고향을 떠나 백발이 되도록 슬피 울부짖고 있으므로 보는 이나 듣는 이가 불쌍히 여기고 있으니, 이것도 음양의 화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미 형륙을 가하지 못할 자인데다가 또 역모죄에 관련된 것도 아니라면 모두 탕척하는 가운데에 넣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한(漢)나라의 하후승(夏侯勝)은 무제(武帝)의 사당에 쓸 풍악에 대한 논의를 반박한 것 때문에 하옥되어026) 두 해 겨울을 지냈으나 선제(宣帝)가 재이를 당하자 하후승을 사면해 간대부(諫大夫)로 삼았고, 함께 하옥되었던 황패(黃霸)도 자사(刺史)로 삼았는데, 사가(史家)가 이를 책에 기록하여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었고, 후세에도 비평한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혹 견책을 받은 지 이미 오래되었거나 여러 번 사면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조정의 사적에 끼이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왜 그렇게도 법망이 지나치게 엄밀하단 말입니까.
죄는 자식에게 미치지 않고, 상은 대대로 뻗치게 하는 것은 요순의 법이고 부자와 형제간에 서로 죄를 입히지 않는 것이 옛날의 법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벌이 혹 후손에게까지 미치고, 죄가 혹 친족에게까지 가해집니다. 자식이 아비를 위해 송사를 제기하는 것은 인정과 의리로 보아 용서할 만한 일이니 들어주지 않는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거기다 더욱 엄중히 다스리고 있으니 관대한 기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옛날 선정신 김굉필(金宏弼)이 죄를 지어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그 노모가 상소하자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자손이 선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너그러운 조종조의 은전은 오늘날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닙니까. 어질고 안 어질고를 막론하고 집에 노모가 있는데 자식이 먼 곳으로 유배가게 되면 그 절박한 정이 어찌 한 사람의 슬픔만 되겠습니까. 죄입은 이런 사람만 유독 큰 천지에 용납될 수 없단 말입니까. 후손에게 미친 형벌을 거두어 주어 덕을 넓히고, 후세에 뻗친 상을 미루어 선행을 권하소서. 그리하여 버려졌거나 폐고된 자들이 성세(聖世)에서 함께 은혜를 입게 하며, 전쟁에서 죽은 자의 자손이나 청백리의 후예에게 모두 벼슬을 주신다면 어찌 치세의 성대한 은전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 지난 해에 본도에서 취재(取才)한 육진(六鎭)의 무사를 병조에서 이관(移關)하여 초치해 처음에는 친히 만나보시고 쓸 것 같이 하였다가 끝내는 다시 시험을 보여 헛걸음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얼음과 눈이 쌓인 여러 관문과 중첩한 고갯길을 밟고 와서 결국은 쓸쓸하게 돌아가고 말았으니 이는 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이 7, 8명의 마음을 잃은 것은 한 도 천만 명의 마음을 잃은 것입니다. 신은 이를 우려하여 올라와 면대하였을 때 감히 그 진상을 아뢰었더니, 재주에 따라 쓰라는 어명이 계셨는데 그 뒤에 등용된 자가 몇 명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직까지 등용하지 않았으면 등급에 따라 추천하소서. 그러면 먼 곳 사람들의 바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서북의 용감한 사람 중에 제일인자를 선발한다면 필시 장수의 재목에 합당한 자가 있을 것입니다. 해조가 힘써 찾아본다면 어찌 적임자가 없겠습니까. 이것도 조정이 깊이 생각해야지 무심히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아울러 삼가 생각건대, 성상께서 이러한 큰 재이를 만나 크게 놀라 깨우친 마음이 있어서 대사면의 은택을 특별히 베푸시니 이는 천 년에 한 번 있는 일입니다. 이에 백성과 더불어 다시 일을 시작해 함께 쉬겠다는 뜻을 교유하여 일세를 감동시켜 고무시키소서. 또 글 잘 쓰는 신하에게 명하여 옛글을 모방하여 널리 알리되, 재물을 탐하는 것을 경계하는 글을 짓게 하여 탐내는 자로 하여금 큰 요행이 두 번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경계함이 있어서 날로 허물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그리고 포악함을 경계하는 글을 짓게 하여 잔혹한 자로 하여금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거울삼는 바가 있어서 악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또 게으름을 경계하는 글을 짓게 하여 교화를 소홀히 한 관리로 하여금 법을 농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경계하는 바가 있어 어명을 신중히 봉행하게 하십시오. 또 그로 하여금 각각 한 통씩을 더 쓰게 하여 내외와 대소의 공관 벽에 걸어 놓고 항상 보면서 후세에 전하도록 하소서.
또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잠깐 사이에도 능히 생각해 상제를 대하듯이 하여 날로 새롭고 또 새롭게 하여 점점 새로워지는 교화를 성취하여 나라의 운명이 새로워지게 하소서. 그러면 요임금이나 순임금처럼 되어 억만 년의 무궁한 아름다움이 오늘로부터 시작될 것이니 종사의 그지없는 다행이며 신민의 큰 다행일 것입니다. 신은 이제 늙고 병들어서 혼몽함이 이미 심해져 말이 졸렬합니다만, 오직 충성코자 하는 어리석음을 진실로 억누를 수 없는 바가 있어 감히 성상을 번거롭게 하였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께서는 살펴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은 나라의 원로로서 상하가 모두 걱정하는 이 때를 당하여 감히 모른다고 하겠는가. 간절한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니 공경하고 탄복해 마지않는다. 내가 비록 불민하나 유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목별로 아뢴 일은 당연히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케 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92면
- 【분류】신분-천인(賤人) / 물가-물가(物價) / 호구-호구(戶口) / 윤리-강상(綱常)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구휼(救恤)
- [註 018]기축년 : 1649 효종 즉위년.
- [註 019]
흰말을 잡아 매어 두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 어진 사람이 가려고 하자 붙들기 어려우므로 그 타고온 말이 곡식을 먹었다고 핑계를 대고 말을 잡아 매어 놓고 하루를 더 놀다 가게 하였다는 시에서 나온 말로 어진이를 붙들어놓기 어려움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백구(白駒).- [註 020]
태창(太倉) : 광흥창(廣興倉)의 별칭으로 관원의 녹봉을 관장하던 관아.- [註 021]
당우(唐虞) 시대는 오교(五敎)를 공경히 펴고, : 순임금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설(契)에게 백성이 서로 친하지 않고 오품이 서로 순응하지 않으니 오교를 공경히 펴되 너그럽게 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오품은 부자·군신·부부·장유·붕우를 말하며 오교는 오륜을 말함. 《서경(書經)》 순전(舜典).- [註 022]
주(周)나라 때는 삼물(三物)로 가르쳐 현인을 빈례(賓禮)로 천거하니 : 주나라의 교육제도는 삼물(三物), 즉 6덕(六德:지인성의충화(知仁聖義忠和))과 6행(六行:효우목인임휼(孝友睦婣任恤))과 6예(六藝: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로 가르쳤고 이들 중에 어질고 능력있는 자를 마을에서 임금에게 천거하여 쓰게 하였음. 《주례(周禮)》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 [註 023]
고례에 ‘가련한 자와 혼몽한 자에게는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 가련한 자는 7세 어린이를 말하는 데 아직 어려서 알지 못하고, 혼몽한 자는 팔구십 노인을 말하는데 정신이 흐릿하여 판단이 바르지 못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죄가 있어도 고의성이 없으므로 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 [註 024]
정축년 : 1637 인조 15년.- [註 025]
기축년 : 1649 인조 27년.- [註 026]
무제(武帝)의 사당에 쓸 풍악에 대한 논의를 반박한 것 때문에 하옥되어 : 한나라 선제(宣帝)가 무제(武帝)의 업적을 기려 종묘에서 쓰는 묘악(廟樂)을 높이려고 하자 다른 신하들은 모두 찬성하였으나, 하후승은 무제가 오랑캐를 물리치고 국토를 개척한 공은 있으나 많은 백성을 죽게 하고 재물을 탕진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는 혜택이 없었으므로 묘악을 높일 수 없다고 하면서 반대하였다. 이로 인해 그를 추종한 황패와 함께 2년간 하옥되었으나, 그뒤 지진이 일어나 산이 무너지고 집이 무너져 6천여 명이 죽자, 선제는 대사면을 내리고 이들도 다시 등용하였다. 《한서(漢書)》 권75.○前領敦寧府事李景奭應旨上箚曰:
皇天僤怒, 大異頻仍, 魃虐又慘, 田野索然。 是何衰亂之徵, 乃萃於勵精之代也。 及覩哀痛之敎, 繼下憂勤之意益切, 御供旣減, 方物亦停, 本末俱修, 誠文兼備。 誕發德音, 盡放久囚, 冥應響捷, 甘澍霈然, 輿情咸悅, 萬民其蘇, 聖上此心, 可以爲堯、舜, 聖上此擧, 可以回唐、虞。 非謂聖域熙辰, 一蹴可到, 果能自今, 擴此心而充之, 繼此擧而勉之, 則以 殿下之特達仁明, 何憂乎德不至, 而治不古也? 仁愛示警, 殷憂啓聖, 古人之言, 信非虛語也。 臣尙記己丑冬間榻前啓達之辭。 贓法軍律不嚴, 則無以爲國, 卽臣之言也。 到今以久囚盡出, 牢狴爲喜者, 非臣之喜, 乃以國人之喜爲喜也。 夫國人於數人, 豈皆有私愛而然哉? 可見人情之所大同也。 況聖上之心, 至仁至公, 始難而終放之者, 實出於敬上天之怒, 救萬民之命, 權一時之宜, 而施曠蕩之典。 我聖上之事天也, 正如孝子之事親, 夔夔慄慄, 柔聲和色, 靡極不用, 惟天之應之也, 亦如回怒於至誠之子。 其一理之昭昭如此, 豈不益可畏也哉? 臣衰懦之氣, 倐覺躍如, 卽欲應旨, 而連遭喪患, 老病轉劇, 齒痛尤苦, 牙頰內外, 連及頷下, 浮大突起, 日夜呻痛, 飮啖殆廢者累日, 今僅少歇, 尙未全愈。 用是含意連辭。 將就還止, 未免淹延。 且聖上之所以處之者, 已云盡矣, 得見數三進箚之辭, 亦皆詳矣, 臣何言哉? 第區區之懷, 不可不達, 迃拙之言, 未必適用, 惟聖明財擇焉。 嗚呼! 殿下之心, 卽堯、舜之心, 行堯、舜之政, 則是亦爲堯、舜。 堯、舜之道無他, 孝悌而已, 堯、舜之政無他, 仁義而已, 推孝悌之行, 敎萬民而興於孝悌, 修仁義之政, 率萬民而興於仁義, 則爲民者平居, 可以按堵而奠枕, 臨亂可以親上而死長, 夫豈有逆理亂常之事, 愁怨疾視之民哉。 仁義之說, 不行於世久矣。 人有談仁義者, 則聽之者必以爲迃焉, 孰能從而行之。 然桓、文假之而伯諸侯, 唐 太宗勉之而致太平。 特患人君者不行耳, 行之則必有其効, 爲之與不爲之是在殿下。 伏願殿下, 勿規規於近利, 勿拘拘於常規, 奮發大有爲之志, 繼之以無倦, 心堯、舜之心, 政堯、舜之政, 就所講之《詩》、《書》, 體認其最緊切處, 聖帝明王之所以任賢安民, 必務躬行, 衰世亂代之所以基禍致亡, 必務懲改。 至於珍臺閒館之中, 幽獨得肆之地, 念念常存, 勉勉不已, 必以唐、虞三代之治爲期焉。 所謂心者, 只是一箇誠而已, 所謂政者, 亦豈有他, 誠之根於心者, 發於事而爲政, 以是誠行是政, 政豈有不立? 治豈有不成? 此誠難悉於造次之間, 亦難以一二遽數, 而試言其槪, 則典謨雅頌之所稱, 罔非是心是政, 而任賢安民最其大要也。 任賢不以誠, 則賢不可以用, 用賢不能專, 則民不可以安, 民不安, 則邦無以寧矣。 是以任賢勿貳, 安民則惠, 政以之擧, 而邦本固矣。 以此求諸今日, 果能明揚, 而野無遺賢耶? 果能懷保, 而惠澤下究耶? 噫! 得君行道, 君子所願, 枯槁於草野山林, 豈賢者之志哉? 但時君不盡其誠, 不用其言, 則不可以虛禮拘之, 此白駒之所以難縶也。 今之時, 則又有難便之勢, 且祈寒盛熱, 束帶奔走, 非習於閑靜者之所可堪也。 古者尊賢, 爲之別設堂宇者有之。 今縱不能別創, 有若昌慶闕門外, 吏曹直房空廨之處, 修掃潔凈, 許以春夏秋冬未甚寒熱之時, 承召而至, 舍館於斯, 繼之以廩肉。 不與公會出入, 侍講於經幄書筵間, 或與多士, 討論於泮宮。 廣加旁招, 拔茅連茹, 大開衆正之門, 則無復難便之勢, 而國有用賢之實矣。 噫! 民安則國安, 民不安則國不安, 民實可哀, 亦可畏也。 今民之力盡矣, 汔可少愒, 凡所以安之者, 宜汲汲然不可緩也。 玆者萬壽之殿已成, 誠孝之志伸矣, 自今土事木功, 一切停罷。 毋曰不役民。 募軍獨不爲傷財乎? 傷財害民, 涉於侈大者, 恒以爲戒。 郡邑之軍器, 殆盡精利, 修補之事, 月課之備, 歲抄之擧, 姑宜限年停止。 煮焇之役, 大費民力, 前日略陳淺見, 而未蒙省納, 未知今尙爾耶? 如或踵而爲之, 則大邑可辦之處, 猶之哿矣, 殘少之邑, 適爲重困, 只使隨便備辦, 不宜勒令煮取。 所不可廢者, 農隙之鍊習, 而第停鍊之時, 營將當住何處, 此不可不審處也。 臣曾忝首揆時, 以無路可捧, 徒積民怨之糴穀, 請皆蕩滌啓達蒙允, 而厥後聞之, 各邑官吏, 以未捧爲已捧, 故民未蒙實惠, 良可痛心, 如此之類, 詳査蕩滌, 所不可已。 鰥寡孤獨, 衆所共知, 無所依賴者, 亦令監司, 一一査出, 竝皆勿徵, 則此亦三代仁政之一端也。 且國用未裕, 賜田租, 雖不得如古之爲, 曾聞太倉之豆, 猶有餘儲, 當此嶺湖二南連年失稔之時, 量減其所捧之豆, 以施一分之惠, 似合於荒政, 而未知此事可行乎哉? 內需奴婢, 亦天氓耳, 人無陳達者, 獨被侵虐可乎? 竊聞西路淸南之貢, 歲納紬一匹, 而一匹之價, 必備五六兩白金, 納諸內司, 然後得以無事, 本紬則不得納云, 信斯言也, 其弊不貲。
北道徵貢, 亦漸有加, 言之久矣, 此等弊端, 不可以痛革乎? 客行去年, 馬尾相銜, 多少酬應, 皆是生民之膏血。 而哀我三路之罷氓, 尤甚於諸道, 飢不得食, 渴不得飮, 勞不得息, 等待於站上, 奔走於道中, 不遑寢處, 況望耕種。 搥胸仰天之狀, 聞亦慘然, 不覺涕零, 惟玆沿路, 何異兵火之經, 理宜優恤, 以示國家哀憐。 關西防戍之軍, 自罷沿江之分屯, 屬諸兵營, 爲收布之卒, 兵曹未之知也。 臣往來於瀋中也, 得聞此事, 心甚怪訝, 歸告先朝, 然後始爲兵曹之所管, 防軍收布, 捧置其處, 以資內外之需用矣。 似聞此軍, 亦多以兒弱充之, 督徵於黃口, 爲怨復如何哉? 臣之愚意, 此軍兒弱, 從實査錄, 限年勿徵。 監營所屬遼水軍布, 亦令量減, 新推刷所得奴婢之貢, 毋同他道, 特爲減捧。 兩西均焉, 海西則有五斗米之捧, 此亦限年減其二三斗。 且以管餉之粟, 散給兩西站民, 秋熟則捧其半, 不熟則不捧。 開城一府, 財已竭矣, 力已窮矣, 不爲之地, 則無以支矣。 宜以海西餉穀及關西軍布, 優與之, 以爲貨本, 京畿秋捧, 量宜減數, 則亦子惠困窮之遺意也。 且念新刷之擧, 非可得已, 而虛實是非之間, 無一不動之民, 無一不怨之人, 遠近騷然, 其亦甚矣。 熟思之, 則多而亡, 孰若減而存, 得其額, 孰若得其心。 今聞十口之家, 則減其二丁之捧云, 十口之家未必多, 而六七口七八口之家, 必多有之, 其所捧之布, 小不下十數匹, 肉盡骨立之民, 晝夜拮据之際, 其辛苦艱難之狀, 尙忍言哉? 臣愚竊以爲: ‘六七八口之家, 減其二焉, 九與十口之家, 減其三焉, 則所捧雖縮, 民或支存, 可以永久。 不然而徒取其數, 務在多得, 則臣恐不出數年, 逃亡相繼, 族隣之弊, 倍蓰於前日也。 或曰: ‘大典有定式云’, 此不然。 夫憲章不可輕改, 而至於寬恤民事, 有時更張, 何不可之有? 況今艱危之時, 與太平之時頓異, 赤立之民, 與樂生之民懸殊, 爲民除弊, 雖或過於大典, 有何不可? 且國之所以爲國者, 以其有紀綱也, 人之所以爲人者, 以其有綱常也。 良變爲賤者有之, 奴叛其主者有之, 私賤爲公賤者有之, 或有半爲良役半屬公賤者, 或有爭訟幸勝弑滅闔家者。 因緣請托符同奸吏者勝, 鄕曲寒蹤孤獨無勢者屈。 都監定限知委, 而遐外迷劣之人, 奔走彼此, 本官不聽理, 御史不審察訟, 官不公明, 抱枉含冤者, 不可謂之不多也。 國家不知之則已, 如其知之, 則何可諉以過限, 而不爲之伸理乎? 王者之政, 莫大於獄訟, 紀綱由此而墜壞, 綱常由此而掃地, 則其可以業已完了, 而不復辨正乎? 惟我太祖朝, 設奴婢辨定都監, 意豈偶然? 過則改之, 刻印銷印, 何傷於十易? 況此所係甚大, 伸其枉、雪其冤, 立紀綱、植綱常, 一正亂民, 大慰人心, 斷不可已也。 不此之爲, 而使之上言, 則是導民, 而紛紛於輦路也, 亦非所以先有司之意, 獄訟之法安在? 噫! 唐、虞之際, 惟五敎敬敷, 在周之時, 以三物賓興, 民淳俗厚, 猶有勤勤敎導之事, 況玆叔季, 歷幾變亂, 而導率之方, 寂焉無聞, 如此而望其民不薄、俗不偸, 不亦難乎? 今者內而設敎授官, 外而設敎養官, 意非不美, 而敎授之事, 不過輸回迭到, 製述亦罕, 就令頻試, 是所謂日使之爭也。 敎養之務, 不過時歷列邑, 乍講乍製而止, 亦可謂本之則無也。 況於灑掃應對之節, 亦茫然不知乎? 臣曾叨(廟廊)〔廊廟〕 也, 簡其條法, 略放鄕約, 京中則禮曹、漢城府管之, 外方則監司、守令管之, 使五部與列邑, 月月申飭, 亦令各洞及各面, 紏正其風俗, 移會勸諭者, 不趐數四, 而俗吏慢之, 古所痛歎, 能爲奉行者, 未可多聞。 然及臣西出, 竊聞傳說, 自公家訓諭之後, 童蒙村民中, 往往有開悟遷善之人云, 若持之以久, 守而行之, 則豈無其效。 且臣頃往關東, 所過之郡, 近路之村, 或有新造書齋, 而廢棄蕪沒者, 問之則朝家設法之後, 爲置書齋, 以敎童蒙, 而自臣去位, 此事遂廢云, 臣竊甚痛惜焉。 人心漸惡, 風俗漸壞, 綱常之變, 史不絶書。 關西邊邑, 隣於絶漠, 習於殊俗, 本多可虞, 而比來逆弑之賊, 出於道內, 良可寒心。 移風變俗, 雖曰未易, 訓糾之法, 誠不可忽也。 如曰客行絡繹, 奚暇爲之, 則不然。 苟有誠心, 何事不成? 此在該曹, 考出前日文書, 京外一倂申明, 朝廷勅監司, 監司勅守令, 久而無怠, 使之必行之耳。 誠能着實爲之, 磨以歲月, 則豈不愈於任其散亂, 日趨於貿貿, 而莫之救乎。 噫! 殺一不辜, 王者不爲, 死囚三覆, 其法至重, 以至笞杖刑訊, 輕重有式, 載在令甲。 而今之爲官吏者, 不問罪之大小, 事之公私, 惟酷刑峻法是尙, 反以輔治之具, 爲飾怒之資。 節鎭麤暴之輩, 不以妄殺爲戒, 乃以多殺爲威, 草薙而禽獮之, 或有駢首而就戮者, 朝廷莫之聞知, 遠人無處告訴, 事之可痛, 孰甚於此, 此而不加痛禁, 則民無所措手足矣。 噫! 古者於刑於罰, 必曰欽、必曰恤、必曰敬、必曰明, 其愼之重之, 哀矜惻怛之意, 可想於千載之下。 不又謂之寧失不經, 罪疑惟輕乎? 天理人情, 竝爲流行, 此所以好生之德, 洽于民心, 蕩蕩乎無能名矣。
伏聞向者, 旣行審理矣, 旣得雨矣, 而又使之更爲審理, 此亦聖心, 同符乎堯、舜也。 側身修政, 何讓於周 宣乎? 然罪名甚重, 則雖有情輕者, 何得以知之; 人地踈賤, 則雖有罪疑者, 何得以明之? 罪同而或免、或不免, 情輕而或脫、或不脫, 則有司之過也, 而爲聖世幽鬱之氣則多矣。 然若不戶置一喙, 則審克之亦難矣。 亦欲解澤之旁流, 則其惟老而久者乎。 在古禮, "悼與耄刑戮不加焉。" 蓋謂幼與老也。 《春秋傳》曰: "天道十年則大變, 人道十年則棄惡。" 自丁丑至今日, 過十年者再, 而餘一年矣, 自己丑至今日, 少十年者, 僅一歲耳。 歲月已久, 死亡無日, 離鄕去里, 白首悲號, 見者矜之, 聞者哀之, 此亦可以干陰陽之和矣。 旣爲刑戮之所不加, 而且非逆律之所涉, 則竝囿於蕩滌之中, 無乃可乎? 漢時夏侯勝駁武帝廟樂之議, 繫再更冬, 宣帝遇災異, 赦勝爲諫大夫, 同繫之黃覇亦爲刺史, 史氏書諸冊, 以彰其美, 後世無譏議。 今或有被譴旣久, 經赦亦屢矣, 而尙未得齒於朝籍者, 何其文罔之太密耶? 罰不及嗣, 賞延于世, 堯、舜之法也, 父子兄弟, 罪不相蒙, 古昔之典也, 而今也罰或及於嗣, 罪或加於族。 以子訟父, 情理之所可恕, 勿施猶可也, 又從而深治之, 似非寬大之氣象也。 昔者先正臣金宏弼被罪竄逐, 其老母上言, 卽蒙自遠移近。 祖宗朝錫類之寬典, 非今日之可法者乎? 亡論賢否, 堂有老母, 而子竄絶塞, 則其情之切迫, 豈但爲一夫向隅之悲哉? 此等被罪之人, 獨不得容於天地之大乎? 收及嗣之罰, 而廣其德, 推延世之賞, 而勸之善。 棄捐錮廢之蹤, 共蒙宥於聖世, 戰亡淸白之裔, 咸得列於仕籍, 則豈不爲 明時之盛典乎? 且頃年六鎭武士之取才於本道者, 自兵曹移關招致, 始若親見而調用, 卒乃更試而虛行, 跋涉乎重關複嶺之氷雪, 終未免落莫而歸, 此前所未有之事也。 失此七八人之心者, 失一道千萬人之心也。 臣以此爲慮, 登對之時, 敢陳其狀, 則有隨才調用之命, 未知其後, 見調者幾人, 猶未調用, 則隨窠銘擬, 庶可以慰遠人之望矣。 且西北赳赳之士, 拔其尤者, 則必有可合於將領之任者, 該曹力加聞見, 則豈無其人? 此亦朝廷所當深思, 毋得泛然者也。 仍伏惟念聖上逢此大災異, 乃有大警動之心, 特施曠蕩之洪澤, 此千載一時也。 於是乎與民更始, 諭之以共與休息之意, 風一世而皷動之。 且命詞臣, 放古誕告, 作戒貪文, 使饕餮者, 知大幸之不可再, 有所懲焉, 而日遠於辜。 又作戒暴文, 使殘酷者, 知人之不可獨殺, 有所鑑焉, 而毋陷於惡, 又作戒慢文, 使官吏之忽敎化者, 知法之不可玩, 有所警焉, 而謹於奉行, 又使之各書一通, 揭諸內外大小公廳之壁, 常目在之, 以垂諸後。 亦願聖上, 造次克念, 對越上帝, 日新又新, 馴致作新之化, 以臻乎邦命維新, 則爲堯爲舜, 億萬年無彊之休, 自今日始矣, 宗社不勝幸甚, 臣民不勝幸甚。 臣今老且病矣, 昏耗已甚, 辭語荒拙, 惟其願忠之愚, 誠有不能自抑者, 敢溷睿聽, 伏願聖明垂察焉。
答曰: "卿以國之元老, 當此上下憂遑之日, 其敢曰不知乎? 懃懇之言, 出於血誠, 敬歎不已。 予雖不敏, 可不體念。 條陳之事。 當令廟堂議處焉。"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92면
- 【분류】신분-천인(賤人) / 물가-물가(物價) / 호구-호구(戶口) / 윤리-강상(綱常)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구휼(救恤)
- [註 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