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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17권, 효종 7년 9월 15일 경신 2번째기사 1656년 청 순치(順治) 13년

영돈녕부사 김육이 재해에 대처하여 시행할 일에 대해 차자를 올리다

영돈녕부사 김육(金堉)이 상차하기를,

"이번의 변고는 막중한 재해로 역사서에도 나타난 기록이 없고 듣지도 못한 것입니다. 동래(東萊)에서 시작하여 진도(珍島)에서 끝을 내고, 의주(義州)에서 발생하여 영변(寧邊)에서 극도에 달했는데 온 나라가 함께 우려하는 바이며 두 곳의 변방에서는 더욱 두렵게 여기는 바입니다. 이것은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에 사무친 데 말미암아 천심이 그 급박함을 경고한 것입니다. 기필코 크게 경계하고 동요하며 크게 진작시킨 연후라야 조금이나마 그 화란을 구제할 수 있을 터인데 조정에서는 편안하게 여기며 평상시와 다른 거사가 없으니 신은 참으로 놀랍고 두려우며 또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전하께서 재해를 만나시면 수양하고 반성하는 도리에 있어서 하늘의 경계에 잘 근신하시어 구언(求言)과 피전(避殿)을 해마다 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천 명이 물에 빠져 죽고 오성(五聖)의 위판(位版)이 무너진 집더미에 깔린 데 대해서는 보기를 등한(等閑)히 하시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면서 으레 휼전을 베풀고 유시를 선포하여 책임만을 모면하시고 도리어 변방의 책임자인 무부(武夫)에게 죄를 돌리려고 하십니다. 아, 이 변고가 정말 하늘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단군(檀君)은 동방에서 맨 먼저 출현했던 임금입니다. 세상에 전해지기로는 갑진년에 중국의 요(堯)임금과 함께 왕위에 올라 태백산(太白山)으로 내려와 철옹(鐵甕)에 도읍을 정했다가 패수(浿水) 가로 옮겨 아사달(阿斯達)로 들어갔었는데 인문(人文)을 밝게 편 기초가 여기에서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상한 변고가 다른 지역이 아니고 바로 이곳에서 일어났으니 식견이 있는 이들이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체로 음기가 성하여 양기가 사그라지며 무가 강해지고 문이 위축되어서입니다. 어떻게 허탄하고 망령된 것으로 여겨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 나무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고 창자가 상하면 사람이 죽습니다. 이변이 일어나는 데는 틀림없이 그 연유가 있게 마련이니, 이를 그치게 하는 계책은 불에 타는 사람을 구원하듯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듯 급하게 해야 합니다. 신이 감히 성상의 마음을 거스르는 혐의나 죽임을 당하는 형벌을 피하지 아니하고 만번 죽기를 무릅써가며 한마디 아룁니다. 천변이 닥친 것은 실로 인심을 상실한 데서 연유하였으며 인심을 상실한 것은 모두 신하들이 잘못한 데서 나왔습니다. 성상의 의도에 대해서는 오직 받들지 못할까 염려하고 백성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직 성상께서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합니다. 어떻게 백성이 이미 흩어졌는데 국가가 편안할 수 있겠으며 국가가 이미 기울어졌는데 신하가 사랑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그 폐단을 진달하여 그 화를 구제하고자 합니다.

속오군(束伍軍)에 대한 보(保)와 안흥(安興)에 진(鎭)을 쌓는데 대해서는 신이 늘 그 잘못을 말하였으며 성명께서도 이미 환하게 알고 계시니 빨리 혁파함이 적당하겠습니다만, 이미 쌓은 진은 변장(邊將)에게 영을 내려 지키게만 하시고 더 쌓지 말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장(營將)을 설치한 것은 중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고 조종조(祖宗朝)의 고사(故事)가 아닙니다. 어떻게 중간에 폐지하였다가 다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기예가 이미 익숙해졌고 기계가 이미 정밀해졌으니, 예전의 봄 여름에는 농사일에 힘쓰고 가을 겨울에 무예를 익히던 법에 의거하여 잘하는 자는 승진시켜 곤수(閫帥)와 수령(守令)으로 삼고 잘 못하는 자는 내쫓아 보임하지 말도록 하시되 진관 병사(鎭管兵使)로 하여금 주관하게 한다면, 이 폐단은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추쇄(推刷)하는 법은, 폐지되고 실추된 것을 가다듬고 일으킨 것이지만 사목(事目)이 너무 엄격하고 기한이 너무 급박하여, 국가가 원망을 거둬들였고 내외가 소란스러웠습니다. 지금은 이미 정돈이 되어 그 수효가 몇 갑절이 되었으며 신공(身貢)을 거두어들이는 것도 조금 너그럽게 되었고 독촉하는 것도 조금 느슨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도감(都監)으로 하여금 거듭 분간하게 하시어, 이미 면천(免賤)되어 양역(良役)을 삼대(三代)나 한 자들을 비록 공문(公文)이 없다 하더라도 모두 청리(聽理)하도록 허락하였으니, 노비도 백성이 되었는데 백성이 또 노비가 되므로 추쇄하는 데 대한 원망이 깊어질 것입니다.

초군(哨軍)에 대한 복호(復戶)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50부(負)를 감해주는 것은, 그 자신에게는 별로 보탬이 없는데 농민에게는 큰 손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복호된 자가 모두 몇 사람입니까. 충신, 효자, 열녀, 환신(宦臣)과 열읍(列邑)의 아전, 수호군(守護軍), 진부(津夫), 역졸(驛卒), 조군(漕軍), 포수(砲手), 어영군(御營軍)의 무리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또 초군을 복호한다면 약간의 농민으로 어떻게 혼자서 그 역(役)을 감당하겠습니까. 결단코 할 수 없으니 빨리 정지하심이 적당하겠습니다.

아, 변고는 한갓 발생으로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 감응하는 바가 있습니다. 신이 두렵게 여기는 것은 이미 나타난 변고 뿐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닥칠 감응이 더욱 염려가 됩니다. 몇 가지 일 밖에도 당연히 고쳐야 할 것이 있으면 상세히 논의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조처해야 합니다.

호남의 전선(戰船)이 패몰된 것이 13척에 이르며, 그 나머지 병선(兵船)과 협선(挾船)도 파손된 것이 그 숫자가 얼마인지 모릅니다. 만약 명년 봄바람이 따뜻하게 불기 전에 다시 갖추게 한다면 해변 백성의 힘이 고갈될 것입니다. 1년에 1결(結)의 역포(役布)가 무려 50, 60필(匹)이나 되는데 거기에다 이 역을 더한다면 백성들이 장차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의당 크게 변통(變通)하여 구제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본도의 사민(士民)들이 연속으로 상소를 올려 호서와 같이 해주기를 청원하였지만 끝내 청원을 얻지 못하자, 호남의 주민들이 크게 근심하면서 ‘어찌 유독 호서만 아끼면서 우리들은 가엾이 여기지 않는가.’라고 하였으니, 그들의 말과 뜻이 가련하며 서글픕니다. 만약 1결에 쌀 10말만 거두고 다른 역은 모두 면제한다면, 전선은 회복시킬 수 있으며 상공(上供)도 부족하지 않아 주민들이 모두 기뻐 날뛰며 그 근심을 잊을 것입니다. 신이 일찍이 호서에 실시한 대동법(大同法)으로 구설수에 올라 곤욕을 치루고, 감히 어탑(御榻) 앞에서 진달하기를 ‘이 뒤로 다른 도(道)에 대해서는 결코 시행하자고 말하지 않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만 지금은 백성들의 바람이 지성(至誠)에서 나왔고 배가 패몰된 데 따른 역(役)이 이런 즈음에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감히 땅거미가 지는 무렵의 사냥022) 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만약 그 호서의 성과를 인해서 성충(聖衷)으로 결단을 내려 백성들의 마음을 따라 시행할 뜻을 결정하신다면, 굶주리는 자에게는 쉽게 먹일 수 있으며 목마른 자에게는 쉽게 마시도록 할 수 있어, 거침없이 시행되어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날 것입니다. 신처럼 옹졸하고 졸렬한 자질로도 오히려 그것을 한 도(道)에 시험하였는데 더구나 지금 묘당의 여러 신하들은 신보다 백배 나은 자들인데이겠습니까.

아, 수리(修理)하는 역사가 비록 만부득이한 데서 나왔다 하더라도 당연히 간략함을 따르고 일꾼을 어루만지며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밤낮으로 독촉하기를 마치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듯이 하시니, 코피가 나고 어깨는 벌겋게 되어 사람들이 못견딜 지경이며, 재목과 돌을 운반하는 소들도 모두 죽어 넘어지는 실정입니다. 보상해주는 면포가 비록 많다 하더라도 모두들 도망하여 흩어질 생각을 하며, 지방의 승군(僧軍)들도 죽거나 다친 자가 있다고 합니다. 일을 주간하는 신하가 아마도 성상의 서서히 하라는 뜻을 체득하지 못한 듯합니다. 만약 추위가 오기 전에 형세로 보아 완전히 마치기 어려울 것 같으면 이와 같이 서두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다친 자는 치료해야 하고 죽은 자에게는 진휼해야 합니다. 겨울철에는 추운 날이 많고 따뜻한 날이 적으므로 얼었던 나무도 다 마르지 않고 흙으로 바른 벽도 여전히 습기가 남아있을 것이니, 어찌 자성(慈聖)께서 곧바로 거처하실 수 있겠습니까.

신이 국가의 후한 은혜를 받았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찌 감히 일신의 죽음을 두렵게 여겨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바로 인심이 이반되느냐 합치되느냐 하는 기회이며, 국가가 흥성하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시기로 신이 죽고 사는 게 관계된 것만이 아닙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의 내용을 살펴보니 내 마음에 더욱 두렵게 여겨진다. 만약 경(卿)처럼 국가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이가 아니면 어떻게 여기에 이르겠는가. 재삼 공경하며 탄복하고 잇따라 한스럽게 여긴다. 내가 아무리 불민하다 하더라도 경계하고 신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자 가운데서 논한 몇 가지 일은 혼자서 결단하기 어려울 듯하니 묘당과 의논하여 조처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4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사상-불교(佛敎) / 건설-건축(建築) / 재정-공물(貢物)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군사-군역(軍役) / 군사-관방(關防) / 호구-호구(戶口) / 신분-천인(賤人) / 군사-군기(軍器) / 군사-군정(軍政)

  • [註 022]
    땅거미가 지는 무렵의 사냥 : 정호(程顥)가 16, 17세 때 사냥을 좋아했는데, 억제하여 그 생각이 완전히 없어진 줄 알았다. 12년 후 우연히 땅거미가 질 무렵 사냥꾼을 만나자 자신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심경(心經)》 권1. 여기서는 김육이 대동법을 실시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앴는데, 호남의 어려운 상황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다시 실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뜻이다.

○領敦寧府事金堉上箚曰:

今玆之變, 莫重之災也, 史不見書, 前所未聞。 始於東萊, 終於珍島, 生於義州, 極於寧邊, 一國所共憂, 兩陲之尤可畏, 此由民怨之徹於天, 天心之警其急也。 必有大警動、大振作, 然後庶可以少救其禍, 而朝廷晏然, 莫有異常之擧, 臣誠驚誠懼、且痛且泣。 殿下遇災修省, 克謹天戒, 求言避殿, 無歲不爲。 而獨於千人之渰溺, 五聖之頹壓, 視之等閑, 以爲是適然, 例施恤典, 宣諭塞責, 反欲歸罪邊閫之武夫。 嗚呼! 此變, 果出於非天意乎? 檀君, 東方首出之君也。 世傳甲辰之歲, 竝堯而立, 降於太白, 都於鐵甕, 移於浿上, 入於阿斯, 人文宣朗, 肇基於此, 而非常之變, 不于他而在是, 識者之隱憂深慮。 蓋恐陰盛而陽消, 武競而文跼也, 安可付之誕妄, 而莫之恤乎。 嗚呼! 木腐而蟲生之, 臟傷而人死焉。 變異之作, 必有其由, 消弭之策, 若救其焚、拯其溺之急也。 臣不敢避觸忤之嫌、斧鉞之誅, 冒萬死, 而申一言。 天變之來, 實由於人心之失, 而人心之失, 皆出於諸臣之誤。 上意所向, 惟恐其不順焉, 民心所願, 惟恐其不肯焉。 豈有民已散, 而國能安, 國已傾, 而臣保寵者乎? 臣請陳其弊而救其禍。 束伍之保, 安興之築, 臣每言其誤, 聖明亦已洞燭, 宜亟罷之, 而旣築之鎭, 令邊將守之而已, 勿爲積蓄則善矣。 營將之設, 依倣中華, 而非祖宗故事, 何中廢而更作也? 今則技藝已熟, 器械已精, 依古者春夏務農、秋冬講武之法, 善者陞爲閫帥守令, 不善者黜而勿補, 使鎭管兵使主之, 則此弊可祛矣。 推刷之法, 修擧廢墜, 而事目太嚴, 期限太急, 爲國斂怨, 內外騷然。 今則已爲整頓, 其數倍蓰, 收貢少寬, 責督少緩, 而又令都監, 申明分釋, 已爲免賤, 良役三代者, 雖無公文, 皆許聽理, 則奴亦民也, 民亦奴也, 推刷之怨深矣。 哨軍復戶, 此何爲也。 五十負之蠲, 別無大益於其身, 而農民之受害多矣。 復戶者, 凡幾人乎? 忠臣、孝子、烈女、宦臣、列邑人吏、守護軍、津夫、驛卒、漕軍、砲手、御營軍之類, 不可勝數, 而又復哨軍之戶, 則若干農民, 何以獨當其役? 決不可爲, 宜亟罷之也。 嗚呼! 變不虛生, 必有其應。 臣之所懼, 不但已示之變, 益慮將來之應。 數件事外, 亦有當改者, 則不厭詳議而處之也。 湖南戰舡之致敗者, 至於十三艘, 其餘兵舡挾舡之破者, 不知其幾許。 若使改備於明歲風和之前, 則海邊之民力竭矣。 一年一結之役布, 幾至於五六十匹之多, 加以此役, 則民將不堪, 宜有大變通以救之也。 頃者本道士民, 連續呈疏, 願如湖西, 終不得請, 南民大戚, 以爲何獨愛湖西, 而不恤我乎? 其言可憐, 其意誠悲也。 若於一結, 收米十斗, 而盡除他役, 則戰舡可復, 上供不乏, 民皆欣躍, 而忘其憂矣。 臣曾以湖西大同, 困於唇舌, 敢陳於榻前曰: "此後則決不可更爲他道" 言。 今則民之情願, 出於至誠, 敗舡之役, 當於此際, 故不敢不思薄暮之獵。 今若因其成效, 斷自聖衷, 順民之情, 決意行之, 則如饑者易爲食, 渴者易爲飮, 沛然流行, 必速於置郵矣。 如臣庸拙, 尙能試之一道, 況今廟堂諸臣, 加於臣百倍者乎? 嗚呼! 修理之役, 雖出於萬不得已, 宜從簡約, 撫恤役丁。 而日夜督促, 如恐不及, 衄鼻頳肩, 人所不堪, 輸材運石, 牛亦盡斃。 償布雖重, 皆思逃散, 外方僧軍, 亦有死傷者云, 幹事之臣, 恐不體聖上勿亟之意也。 若於凍寒之前, 勢難完畢, 則不宜如是之急。 傷者宜救, 而死者宜䘏也。 三冬之內, 多寒少溫, 凍木未盡乾, 塗墍尙留濕, 豈合慈聖之卽御乎? 臣受國厚恩, 餘日無多, 何敢畏一身之死, 而不言乎? 此正人心離合之幾, 國家存亡之秋, 不特臣死生之所係也。"

答曰: "省覽箚辭, 予心益用恐懼。 若非卿之與國同休戚者, 何以至此? 敬嘆再三, 繼以咨嗟也。 予雖不敏, 可不警飭焉。 箚中所論等事, 似難獨斷, 當與廟堂議處焉。"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4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사상-불교(佛敎) / 건설-건축(建築) / 재정-공물(貢物)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군사-군역(軍役) / 군사-관방(關防) / 호구-호구(戶口) / 신분-천인(賤人) / 군사-군기(軍器)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