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들과 이징·이숙 등을 서울로 올라오게 하는 것의 가부를 의논하다
상이 대신 및 육경(六卿)을 인견하였다. 상이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부덕한 내가 왕위에 오른 이래로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거듭 발생하고 지금 한재(旱災)가 이 지경에 이르러 추수할 가망이 없으니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도는 마땅히 다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왕(帝王)이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미치고 가정으로부터 나라에 미치는 것인데, 일찍이 이전의 심리(審理)에 있어 다만 소원(疏遠)한 사람들에게만 미쳤고 골육 지친에게는 미치지 않았으니,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이징(李澂)·이숙(李潚)및 소현 세자의 셋째 아이가 오랫동안 바다 섬에 있으니 내가 일찍이 가엾게 여겨왔다. 비록 재변이 없었더라도 진실로 보전할 방도를 생각했어야 할 것이고, 숙은 아직 관례도 치루지 못하고 결혼할 시기가 지났으니 일념으로 염려되어 잊지 못하겠다. 김세룡(金世龍) 아내의 경우 죄가 종사(宗社)에 관련되었으니 감히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겠으나, 징·숙과 셋째 아이의 경우는 지난날의 일에 있어서 어린아이였으니 어떻게 알았겠는가. 나는 서울로 돌아오게 하여 편리한 대로 거주토록 하고자 하는데, 경들의 뜻에는 어떠한가?"
하니, 원임 대신(原任大臣) 이경석(李景奭)·이경여(李敬輿)·김육(金堉) 등이 답하기를,
"상의 하교가 이에 이르렀으니, 이는 바로 하늘의 노여움을 돌이킬 만한 제일의 일입니다. 세룡의 아내는 징·숙과는 차이가 있고 또 세도(世道)가 점점 어려워져 인심이 좋지 못하니, 방환(放還)한 뒤에도 마땅히 잘 처우할 방도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연양 부원군(延陽府院君) 이시백(李時白)과 좌의정 심지원(沈之源)이 아뢰기를,
"지금 성상의 하교를 받고 누군들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방환한 뒤에 또한 함께 거처하게 할 것입니까, 각각 거처하게 할 것입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형제로 하여금 함께 살도록 하고 나도 가르치고 타일러, 보전하는 방도를 다하고자 한다."
하였다. 여러 신하 모두가 따르려고 하는데, 완남군(完南君) 이후원(李厚源)이 아뢰기를,
"방환한 뒤에 마땅히 한 곳에 별도로 두어 외인(外人)으로 하여금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하니, 공조 판서 이완(李浣)이 아뢰기를,
"그대로 섬에 두고 그거처를 넓혀주어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으나, 상이 즉시 방환하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5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사법-행형(行刑)
○辛酉/上引見大臣及六卿。 上謂諸臣曰: "自寡昧忝位以來, 天災時變, 疊見層出, 而目今旱災至此, 西成無望, 消弭之道, 宜無所不用其極。 帝王爲國之道, 自近而遠, 由家而國, 而曾前審理, 只及於疎遠, 不及於骨肉至親, 寧有是理哉? 澂、潚及三兒, 久處海島, 予嘗矜愍。 雖無災異, 固當思保全之道, 且潚尙未冠, 昏娶過時, 一念耿耿, 不能忘于懷。 世龍妻則罪關宗社, 不敢自斷, 而至於澂ㆍ潚及三兒往時之事, 童子何知。 予欲放還輦轂之下, 任便居住, 於諸卿意如何? 原任大臣李景奭、李敬輿、金堉等對曰: "上敎至此, 此正回天怒第一事也。 世龍妻則與澂ㆍ潚有間, 且世道漸艱, 人心不淑, 放還之後, 宜思善處之道也。" 延陽府院君 李時白、左議政沈之源曰: "今承聖敎, 孰不感激? 放還之後, 抑使之同處乎, 各居乎?" 上曰: "使其兄弟同居, 而予亦欲敎誨, 以盡保全之道也。" 諸臣皆將順之, 完南君 李厚源以爲: "放還之後, 宜別置一處, 使外人不相通。" 工曹判書李浣以爲: "不如仍留島中, 而廣闊其居處, 以安其心。" 上卽命放還。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5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