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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 14권, 효종 6년 4월 17일 신미 2번째기사 1655년 청 순치(順治) 12년

대신과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고 동래에 성 쌓는 일에 관해 의논하다

상이 대신과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임의백(任義伯)이 면대하여 아뢴 일을 비국은 어찌하여 품처(稟處)하지 않는가?"

하니, 영의정 이시백(李時白)이 아뢰기를,

"동래(東萊)에서 성을 쌓는 것은 급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고, 이조 판서 정유성(鄭維城)이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동래 고을 뒤 언덕을 보니, 지금 고을이 있는 곳보다 나은 듯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기유년025) 에 약조한 뒤로 곧 수축했어야 할 것인데, 전란의 상처가 겨우 안정되었으므로 겨를이 없어서 그러한 것인가."

하였다. 우의정 심지원(沈之源)이 아뢰기를,

"장성(長城)을 승호(陞號)하는 일은 어떻게 처치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부사(府使)로 높이도록 하라."

하였다. 호조 판서 이시방이 아뢰기를,

"현감 이성징(李星徵)이 고을 일에 마음을 다하므로 장성의 일은 이 사람에게 맡겨야 마땅하겠습니다마는, 이 사람은 음관(蔭官)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재기(才器)가 걸맞다면 어찌 문관·음관을 논하겠는가."

하였다. 대사헌 이시해(李時楷)가 아뢰기를,

"입암 산성(笠巖山城)은 본디 호남(湖南)의 형승(形勝)이라 일컬으나 넓어서 지키기 어렵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관방(關防) / 외교-왜(倭)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관리(管理)

  • [註 025]
    기유년 : 1609 광해군 원년.

○上引見大臣及備局諸臣。 上曰: "任義伯面陳之事, 備局何不稟處乎?" 領議政李時白曰: "東萊築城, 宜非急務。" 吏曹判書鄭維城曰: "臣曾見邑後岡, 似勝於卽今邑居矣。" 上曰: "己酉約條後, 便合修築, 而瘡痍甫定, 故未遑而然歟?" 右議政沈之源曰: "長城陞號, 何以處之乎。" 上曰: "陞爲府使可矣。" 戶曹判書李時昉曰: "縣監李星徵盡心官事, 長城之事, 合委此人, 而第是蔭官耳。" 上曰: "才器相稱, 則何論文蔭乎? 大司憲李時楷曰: "笠巖山城, 素稱湖南形勝, 而然闊大難守矣。"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관방(關防) / 외교-왜(倭)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