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윤과 박장원의 석방을 청하는 영안위 홍주원의 상소문
"임금은 하늘과 더불어 도(道)를 행하여 그 도가 다름이 없으니 가을에 죽이고 봄에 살리는 것이 각각 그 때가 있습니다. 지금 자라나는 시절을 맞아 무더기로 생장하는 초목들도 또한 스스로 즐기며 모두 전하의 덕화에 감싸여 있는데, 유독 일을 말한 신하에게만 영해(嶺海)의 바닷가에서 고립됨을 면치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 성조(聖朝)의 잘못이 됨이 돌아보건대 어떻겠습니까. 요사이 여러 신하들이 간혹 조석윤(趙錫胤)과 박장원(朴長遠)의 일로써 진달한 바가 있었는데도 아직까지 뇌우(雷雨)의 덕택을 입지 못하고 있으니, 신은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대체 두 신하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신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신이 만리로부터 돌아오다가 도중에서 저보(邸報)를 보고 속으로 뇌까리기를 ‘어찌 성명이 위에 계시는데 도리어 이와 같이 중도에 지나친 일이 있단 말인가. 아니면 두 신하가 혹시라도 잘못한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인가.’ 하였습니다. 이어 생각하건대 석윤은 선대왕께서 총애하신 중신으로서 전후에 걸쳐 경악(經幄)에 입시한 지가 장차 30년에 이르게 되니, 전하께서 총애하여 발탁한 것과 동료들의 기뻐함이 어찌 보통 사람에게 비할 바이겠습니까. 성명의 세상에 이런 만남이 있으면서도 3년 동안에 세 번씩이나 축출당하는 탄식이 있음을 면치 못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신은 그윽이 개탄스럽게 여깁니다.
신이 요사이 북쪽에서 온 사람을 통하여 석윤이 임소에 있으면서 시(詩)를 지었다고 들었는데, 그 내용에
변방에서 도깨비와 한동아리 되고 보니
꿈속에서 때때로 대궐에 근접했네
세간의 위험한 길 모두 다 겪더라도
마음이야 끝끝내 우리 임금 안 버리리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가 임금을 사랑하는 무한한 뜻이 시를 읊는 사이에 발로되기까지 하였는데, 전하께서는 여기에서 홀로 측연한 마음이 없으십니까. 옛날에 송 신종(宋神宗)이 말 때문에 소식(蘇軾)을 귀양보냈다가, 수조가(水調歌)의 글귀가 있음을 듣고는 바로 돌아오도록 하는 윤음을 내렸습니다. 비록 석윤의 범한 바가 소식과 더불어 경중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전하의 넓고 큰 도량으로써 어찌 송나라 시대의 중등가는 임금보다야 못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장원의 경우 이미 그에게 말하게 하고는 또 그에게 죄를 내려, 백발 노모(老母)가 영원히 결별하고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처지입니다. 근래에는 자식을 염려한 나머지 더욱 고질병이 되어 이미 치료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오직 죽기 전에 서로 만나 볼 수 있기만을 기원하고 있다 합니다. 전하께서는 여기에 또 어찌 측연한 마음이 없으시겠습니까. 옛날에 당 헌종(唐憲宗)이 일로 인하여 유우석(劉禹錫)을 축출하였는데, 우석에게는 노모가 집에 있었습니다. 그때에 헌종이 배도(裴度)의 진언으로 인하여 모자(母子)가 차마 서로 이별하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겨 바로 가까운 지역의 자사로 바꾸어 임명하는 은혜를 내렸습니다. 신이 아뢴 바가 진실로 감히 옛사람에게는 비견할 수 없지마는, 전하 같이 효도로 다스리는 훌륭한 마음을 가지고 또 어찌 당나라 시대의 중등가는 임금보다야 못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전하에게 깊이 바라는 바입니다. 장원의 어미 병환이 위독한 것은 조정이 다 알고 있으니, 전하께서 만일 신료들에게 물어보시면 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다시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하니, 상이 하교하기를,
"본조(本朝)의 제도에 의빈(儀賓)과 종척(宗戚)은 국정에 간여할 수 없으니 대체로 심원한 뜻이다. 그런데 이때에 홍주원이 국법을 무시하고 명관(名官)과 서로 결탁하고 당론(黨論)을 세워 임금을 풍자하면서 거만스럽게 석윤과 장원 등을 석방해 줄 것을 청하였으니, 명예를 추구하여 아부한 그의 마음이 참으로 매우 놀랍다. 국가의 법을 범한 것에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우선 파직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66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역사-고사(故事) / 어문학-문학(文學) / 왕실-비빈(妃嬪)
王者與天爲道, 其道無二, 秋殺春生, 各有其時。 今當長養之節, 草木群生之物, 亦有以自樂, 咸囿於殿下之德化, 而獨使言事之臣, 未免向隅於嶺海之濱, 則其爲聖朝之闕失, 顧何如哉? 近者諸臣或以趙錫胤、朴長遠之事, 有所陳達, 而尙未蒙雷雨之澤, 臣竊爲殿下惜之。 夫兩臣之有罪無罪, 臣何以知之也? 臣歸自萬里, 路中見邸報, 心語口曰: "豈聖明在上, 而乃有如此過中之擧耶? 抑兩臣或有所失而然耶?" 仍念, 錫胤先大王寵重臣也。 前後之侍經幄, 將至三十年所矣。 殿下之寵擢, 同朝之喜幸, 豈比尋常人哉? 不料聖明之世, 有此際遇, 而未免有三年三黜之歎也, 臣竊慨然。 臣近因北來之人, 得聞錫胤在任所作詩有 "窮荒魑魅與爲群, 魂夢時時近五雲。 歷盡世間危險路, 寸心終不負吾君。" 之語, 其愛君無限之意, 至發於吟詠之間, 殿下於此, 獨無惻然之心乎? 昔宋 神宗以言貶蘇軾, 而聞有水調之句, 旋降賜環之音。 雖未知錫胤之所犯, 與蘇軾輕重如何, 而以殿下恢弘之大度, 豈讓於宋代之中主乎? 至於長遠則旣使之言, 又加其罪, 白首老母, 永訣待盡。 近以念子之故, 轉成痼疾, 已到難醫之地, 惟願未死之前, 得以相見云。 殿下於此, 又豈無惻然之心乎? 昔唐 憲宗因事黜劉禹錫, 而禹錫有老母在堂。 其時憲宗因裵度之進言, 憐母子之不忍相離, 卽有改刺之恩。 臣之所達, 固不敢竊比於古人, 而以殿下孝理之盛心, 又豈讓於唐代之中主乎? 此臣之所以深有望於殿下者也。 長遠母病之危篤, 擧朝皆知, 殿下若俯詢於臣僚, 則可知臣言之不誣也。 伏願殿下, 更加憐悶焉。
上下敎曰: "本朝之制, 儀賓、宗戚不得干預國政, 蓋長遠之慮也。 玆者洪柱元蔑視國法, 交結名官, 扶植黨論, 譏刺君上, 偃然請釋錫胤、長遠等, 其沽名阿附之心, 誠極驚駭。 冒犯邦憲, 莫此爲甚, 姑先罷職。"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66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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