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시의 함사에 따라 원숙·이시매·신상을 추고케 하다. 함사의 내용
헌부가, 이응시(李應蓍)가 붉은 말총갓[朱鬃笠]을 요구하고 석유황(石硫黃)을 방납(防納)하려 한 일에 대하여 추고하는 일로 서면을 보내 물으니, 이응시가 함사(緘辭)로 답하기를,
"지난달 29일에 경상 병사(慶尙兵使) 원숙(元䎘)의 영문(營門) 사람이 와서 서찰을 전하였는데 뜯어 본 자취가 뚜렷이 있으므로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 영문 사람이 ‘26 일에 참판 이시매(李時楳)의 집에 전하고 29일에 가서 답서를 요구하였더니 그 서찰을 도로 주었다.’ 하였습니다. 신상(申恦)이 이시매를 찾아간 것이 나흘 뒤라면 그 서찰을 얻어 보았다고 한 것은 말이 안 됩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젊어서 원숙과 서로 친숙하였는데, 지난 가을에 원숙의 조카 원상(元相)이 찾아왔기에 ‘집에 말총갓의 재료가 있으나 가난하여 만들지 못하는데 우병영(右兵營)에 혹 장수(粧手)가 있으면 꾸며서 보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더니, 원상이 그러마고 가져갔습니다. 신상이 말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석유황의 일로 말하면, 처음에는 원숙의 서찰을 보고 마음에 매우 의아하여 그 까닭을 몰랐으나 그 글 가운데에 ‘상주노(尙州奴)의 유황’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는 과연 가노(家奴)로서 상주에 사는 자입니다. 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을 때에 스스로 말하기를 ‘진주(晋州) 땅에 가려고 하는데 병영에서 양식을 얻고자 한다.’ 하므로 경솔히 편지를 보냈는데, 이 종이 혹 자기 마음대로 요청한 것이 있는 듯합니다.
서찰이라는 것은 한 글자를 더하거나 줄여도 말의 뜻이 아주 달라지는 것입니다. 원숙의 서찰이 지금까지 남아 있고 이를 본 사대부가 한둘이 아닌데, 어찌 감히 위로 성명(聖明)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 글에 ‘전에 말씀한 홍립(紅笠)은 성의껏 만들어 보내나 말총의 짜임새가 촘촘하지 않아서 보기에 이러하니, 이곳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한탄스러워 못 견디겠다. 상주노의 유황은 그대로 시행할 것이므로 이 뜻도 아울러 알린다.’ 하였는데, ‘이곳의 잘못은 아닐지라도’라는 한 조항의 말 가운데 ‘다만 만들어 보낸다.’는 뜻이 자연히 나타납니다. 유황에 대해서는 이미 ‘상주노의 유황은 그대로 시행할 것이다.’ 하였고 또 ‘이 뜻도 아울러 알린다.’ 하였으니, 원숙의 뜻은 종이 청한 대로 시행하여 생색내려는 데에 있거나 종의 말을 의아하게 여겨서 알리려는 생각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신이 요청한 것이라면 원숙의 답서 가운데에 반드시 ‘말씀한’이라 하지 하필 ‘상주노의 유황’이라 하겠습니까. 이제 원숙을 조사해 물어보면 실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당초에 원숙에게 보낸 서찰도 반드시 원숙한테 있을 것이니, 가져와서 참고하면 당장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대간이 말총갓의 일에 대해서는 ‘만들어 보낸다.’는 말만을 거론하고 ‘이곳의 잘못은 아닐지라도’라는 말을 빼고, 유황의 일에 대해서는 ‘시행하겠다.’는 말만을 거론하고 ‘상주노’라는 말과 ‘이 뜻도 아울러 알린다.’는 말들을 빼어 알기 쉬운 일을 밝히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또 ‘그 서찰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하였으나 이것은 반드시 성명께서 통촉하실 것이니, 어찌 감히 여러 말로 변명하겠습니까. 이것이 작은 일이기는 하나 이미 서찰을 보낸 잘못이 있고, 이것이 자기 물건이기는 하나 또한 꾸며 온 죄가 있으며, 또 원숙이 갓을 보낼 때에 종이 묶음과 가죽신도 아울러 보냈으니, 이것으로 죄받는 것은 실로 달게 여기겠습니다마는 ‘방납했다.’거나 ‘요구했다.’고 말하면 전혀 실상이 아닙니다."
하였는데, 하교하기를,
"원숙을 우선 추고한 뒤에 처치하라. 또 이시매가 잘못 전해진 것을 이미 알았다면 나흘 동안 머물려 둔 것도 매우 괴이하고, 29일에 그 서찰을 이응시의 집에 돌려보냈다면 신상이 피혐한 사연에 ‘지난달 그믐날에 우연히 사대부의 집에 들렀을 때에 외방에서 온 글 한 봉(封)이 있었다.’ 하였으니, 26일에 와서 전하고 29일에 돌려 준 서찰을 신상이 어떻게 30일에 직접 볼 수 있겠는가. 서찰의 사연 가운데에서 의도적으로 뺀 정상은 힐책할 것이 못 되더라도 그믐날에 서찰을 보았다고 한 것은 속인 것이니, 명백히 가려서 엄중하게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시매·신상을 모두 추고하고 내일 안으로 함사(緘辭)를 받아서 들여오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68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98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憲府以李應蓍求朱鬃笠、防納石硫黃, 推考發問, 則應蓍緘對曰: "前月二十九日, 慶尙兵使元䎘營人, 來傳書札, 而顯有柝見之迹。 問其由, 則營人以爲: ‘二十六日, 傳納於李參判時楳家, 二十九日, 往索答札, 則還給其書。’ 云。 申恦之往訪時楳, 在四日之後, 則得見其書云者, 未知其故也。" 且言: "少與元䎘相熟, 去秋䎘之姪元相來訪, 家有鬃笠資, 而貧不能粧造, 右兵營或有粧手, 可以粧送乎? 以此語及, 則元相唯唯而持去。 申恦所言, 卽此也。 至於石硫黃事, 則始見䎘書, 心甚怪訝, 莫知其由, 而第其書中有尙州奴硫黃之語。 此果家奴, 而居在尙州者也。 因事上京, 自言將往晋州地, 願得行糧於兵營, 故率爾抵書矣。 此奴或以自己之意, 有所干請也。 大抵書札, 一字之增減, 辭意頓異。 元䎘之書, 至今尙在, 士夫見者非一, 何敢上欺聖明乎? 其書有曰: ‘前敎紅笠, 盡情造送, 而鬃次不密, 所見如此, 雖非此處之失, 不勝恨歎。 尙州奴硫黃, 當依施, 此意亦爲幷告。’ 云。 雖非此處之失一款語中, 但爲粧送之意, 自然現著。 硫黃則旣曰尙州奴硫黃, 當依施, 又曰此意亦爲幷告云, 則元䎘之意, 在於依施奴子之請, 以爲生光之地, 或出於疑訝奴子之言, 以爲使聞之計。 果是臣所干請, 則元䎘答書中, 必曰下敎, 又何必曰尙州奴硫黃? 今若覈問於元䎘, 則可知實狀。 當初抵䎘之書, 亦必在䎘處, 取來參考, 則可以立卞。 且臺諫於鬃笠事, 則只擧造送之語, 而刪去雖非此處之失一款語, 於硫黃事, 則只擧當施之語, 而刪去尙州奴及此意幷告等語, 乃使易解之事, 歸於難卞之地, 而且曰目覩其書云, 此必聖明之所洞燭, 何敢多卞? 雖是微細之事, 旣有折簡之失, 雖是自己之物, 又有粧來之罪, 且䎘之送笠也, 兼送紙束、皮鞋, 以此獲罪, 實所甘心。 至防納、求索, 萬非實狀矣。" 下敎曰: "元䎘姑先推考後處置。 且李時楳旣知其誤傳, 則四日留置, 已極怪訝, 而二十九日還送其札於李應蓍家, 則申恦避辭以爲, 前月晦日偶過士夫家, 有一封外方書至云, 二十六日來傳, 二十九日還給之札, 申恦何從而目見於三十日乎? 書辭中用意刪去之狀, 則雖不足詰責, 而晦日見書云者, 係是誣罔, 不可不明辨痛懲。 李時楳、申恦竝惟考, 明日內, 取緘辭以入。"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68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98면
- 【분류】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