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이상진이 세자의 스승인 윤순지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다
사서 이상진(李尙眞)이 상소하기를,
"원자(元子)가 입학하는 것은 큰 예이며, 박사(博士)가 강설하는 것은 사도(師道)입니다. 큰 예를 행하여 사도를 엄하게 하고 부군(副君)의 존귀함을 굽혀 속수(束脩)의 예의를 펴는 것은 학기(學記)에 이른바 ‘그 신하를 신하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사의 직책이 가벼운 것이 아니라 막중한 것이 분명하니, 그 직책에 맞는 사람을 신중하게 뽑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대제학 윤순지(尹順之)는 사람됨이 본래 취할 것이 없고 일 처리도 대부분 제대로 못하므로 사론(士論)이 그를 오래 전부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전에 역녀(逆女) 앙진(仰眞)은 본래 역적 조(趙)068) 의 심복이었는데, 옛날 종의 아내라 하여 그의 집에 있게 하고서 피차간에 왕래하는 것을 혐의하지 않았으니, 이는 사대부로서 할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앙진 등 두세 사람을 모두 그의 집으로 잡아와서 형벌을 가한 경우이겠습니까. 심지어 그가 지은 역적을 토벌하고 북(北)에 보고한다는 글에 ‘당시를 위하여 논척한다.’ 했고, 또 ‘2, 3재신을 제거하여 방축(放逐)한 원한을 풀겠다.’고 하였으니, 아, 김자점(金自點)의 흉악한 역적 모의가 2, 3재신을 제거하려는 데만 그쳤을 뿐이었습니까.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며, 또한 무슨 뜻입니까. 물정이 모두 놀라고 여론이 들끊는데도 일찍이 인혐하고 들어가지 않고 버젓이 공무를 행하였으니, 이것만 보더라도 그가 염치가 없는 자라는 것을 더욱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재신의 반열에 있는 것도 이미 진신(搢紳)의 수치인데, 지금 또 사유(師儒)의 장(長)으로 버젓이 박사(博士)의 일을 맡게 하여 우리 조선의 태학(太學)의 예를 욕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예로부터 원자(元子)를 가르쳐 인도하는 방법은 반드시 전후 좌우에다 정직한 사람을 두게 하였는데, 이는 원자로 하여금 올바른 일을 보게 하고 올바른 도리를 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원자가 입학하는 날을 당하여 이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의 자리를 더럽히게 한다면 올바른 일을 보고 올바른 도리를 행하게 하는 의의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날 조정에 비록 인재가 모자란다고는 하나 어찌 이러한 사람을 기어이 채용하여 스승으로 모셔놓고 도(道)를 묻는 성대한 예를 그르치려 하신단 말입니까. 삼가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속히 명하시어 하자가 전혀 없는 자를 가려 뽑아서 박사의 직책을 중히 하시고 입학하는 예를 분명하게 하소서.
신이 비록 보잘것은 없으나 이미 사서(司書)의 관직을 맡고 있으므로 세자궁에 관계되는 모든 일을 직책상 마땅히 담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세자가 제자의 예를 갖추고서 이 사람에게 절하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 신도 사실 부끄러운 일인데, 더구나 세자는 얼마나 모욕적이겠습니까. 신이 분개한 마음을 가진 지가 이미 오래지만 대례(大禮)가 앞에 닥쳐 관계되는 바가 더욱 막중하므로, 삼사(三司)에서 마땅히 논핵하여야 할 일이므로 시강원 관원들은 먼저 진달할필요가 없다고 여기고서 발설하려다 그만 두었던 것입니다. 그후 12일 동안이나 기다렸는데도 서로 말만 할 뿐 한 마디도 아뢰는 자가 없어서 결국은 조용하게 습의(習儀)를 마쳤습니다. 시비의 판가름은 오늘날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부군(副君)을 높이는 도에 있어서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어리석은 충성심에 북받쳐 주책없이 아뢰는 것이니 성상께서는 살펴 주소서."
하였는데, 상소를 들이자 상이 물리쳤다. 이어 정원에 하교하기를,
"이와 같이 치우치고 바르지 못한 상소를 어떤 승지가 입계하였는가. 일이 매우 놀랍다."
하였다. 윤순지가 갑자기 문형(文衡)을 주관하여 당시의 기대를 크게 무너뜨렸다. 게다가 세자가 입학하는 큰 예를 당하여 오히려 사피하지 않자 물의가 더욱 놀라워하였다. 이상진(李尙眞)이 분개하여 상소를 올렸는데, 도리어 바르지 못하다는 조목으로 상에게 배척을 받으니, 사론(士論)이 애석하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4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 왕실-종친(宗親)
- [註 068]조(趙) : 인조(仁祖)의 후궁 조씨.
○司書李尙眞上疏曰:
元子入學, 大禮也, 博士講說, 師道也。 行大禮而嚴師道, 屈副君之尊, 而申束脩之儀, 則此實《學記》所謂所不臣於其臣者也。 博士之職, 不輕而重明矣, 可不愼其人哉? 大提學尹順之, 爲人本無可取, 處事亦多昏謬, 士論之不許久矣。 頃者逆女仰眞, 本逆趙腹心, 而謂以舊時奴妻, 容置其家, 往來彼此, 不以爲嫌, 已非士夫之所爲。 況仰眞等二三人, 俱皆拿來於其家, 而伏天誅者哉? 至於其所製討逆報北之文, 乃曰爲時論斥, 又曰欲除二三宰臣, 以洩放逐之怨。 嗚呼! 自點之兇逆, 其止於欲除二三宰臣而已乎? 是何言也, 亦何意也? 物情懼駭, 輿論譁然, 而曾不引入, 晏然行公, 此尤可見其無廉恥也。 迹其所爲, 齒在淸班, 已是搢紳之羞, 今又可以師儒之長, 偃然當博士之事, 貽辱我東朝太學之禮哉? 自古敎導元子之道, 必要左右前後皆正人者, 使元子見正事, 行正道也。 今當入學之日, 使此人汚了師席, 則安在其見正事、行正道也? 今日朝廷雖乏人, 豈可必用此人, 以誤承師問道之盛禮哉? 伏願聖明, 亟命擇拜全無疵累者, 以重博士之職, 以明入學之禮。 臣雖無狀, 旣忝儲寀, 凡係儲宮之事, 職所當爲, 而將見我世子, 執弟子禮, 拜於此人, 則臣實恥之, 況於世子, 其爲辱, 又如何哉? 臣之憤慨者已久, 而大禮當前, 所關尤重, 竊以爲三司所當論劾, 爲宮官者, 不必先陳, 欲發而止, 等待浹辰, 徒相口語, 無一言者, 終至寂然, 已過習儀。 是非之公, 雖不見於今世, 其於尊副君之道何哉? 愚忠所激, 妄有煩瀆, 唯聖上恕察焉。
疏入, 上却之, 下敎于政院曰: "如此傾軋不正之疏, 何承旨入啓乎? 事甚駭異矣。" 順之遽主文衡, 大乖時望, 況當世子入學之大禮, 猶不辭避, 物議愈駭。 李尙眞憤慨投章, 而反以傾軋之目, 見斥於君上, 士論惜之。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4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