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 신면이 쓴 인열 왕후의 시책을 오준이 고쳐 쓰다
인열 왕후(仁烈王后)의 시책(諡冊)을 고쳐 썼다. 처음에 신면(申冕)이 써서 올렸는데, 그 뒤에 신면이 흉역죄로 사형을 당하자 오준에게 명하여 다시 써서 올리도록 한 것이다.
삼가 살피건대 신면은 사람됨이 음흉한 생각을 품고서 권세를 좋아하여, 김자점(金自點)의 당으로 빌붙어 누구보다도 친하게 지내면서 조정의 논의를 마음대로 주도하는 등 일체를 자기의 생각대로 꾸며 나갔다. 상이 즉위하여 유자(儒者)를 진출시켜 등용하고 청의(淸議)를 널리 펴게 하였는데, 송준길(宋浚吉)이 집의가 되어 신면을 권간(權奸)의 당여(黨與)라고 탄핵하자, 상이 이에 신면을 축출하여 아산(牙山)에 유배하였다.
그 뒤에 용서를 받고 돌아와 다시 청요직(淸要職)을 차지하고는 거리낌없이 행동하였는데, 마음 속으로 앙앙불락하며 날이 갈수록 더욱 틈이 벌어지게끔 하였다. 당시 김자점은 적소(謫所)에 있었지만 그의 아들 김식(金鉽)과 함께 몰래 통하였는데, 늘 사람들을 대하면 말하기를 ‘낙당(洛黨)이라는 이름도 사양치 않겠다.’고 하면서 기필코 산림(山林)의 인사들을 모두 제거하려 하였다. 그리고는 은밀히 김식 및 이형장(李馨長)과 비밀리에 모의하여 오랑캐에게 유언 비어를 퍼뜨렸는데, 조정이 현재 산림의 인사들을 등용하여 화의(和議)를 배척해 끊으려 한다고 칭탁하면서 사류(士類)를 해치고 국가에 화를 끼치려 한 것이다. 이렇게 한 것은 대체로 김자점이 오랑캐에게 사사로이 뇌물을 매우 후하게 준 관계로 그의 말이라면 모두 들어 주었기 때문에 이런 간악한 모의를 이루려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경인년 봄에 청나라 사신이 와서 사문(査問)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는 일이 있게 되었는데, 먼저 공갈부터 쳐서 장차 위급한 사태가 발생하려 하였으므로 조야(朝野)가 흉흉해지며 모두들 사림을 걱정하였다. 그뒤 청나라 사신이 왔으나 끝내 힐책하는 일이 없었는데, 이는 대체로 신면 등이 모의가 누설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다시 정명수(鄭命守)에게 통지하여 도로 그만두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김자점의 옥사(獄事)가 일어나자 신면은 스스로 벗어나지 못할 줄을 알고 며칠 동안 음식을 들지 않고 술만 먹었는데, 과연 김식과 김세룡(金世龍)이 공초하며 실토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신면이 오랑캐와 내통한 실상의 전모를 파악하게 되었다. 이에 상이 대궐 뜰에서 직접 국문하였는데, 신면은 말이 꿀려 감히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장(杖)을 참고 맞다가 그냥 죽고 말았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가 음독하고 죽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38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변란-정변(政變) / 인물(人物)
○改刊仁烈王后謚冊。 初, 申冕寫進, 及冕凶死, 命吳竣改寫以進。
【謹按, 申冕爲人, 陰譎包藏, 樂勢好權, 黨附自點, 親狎特甚, 擅主朝論, 一任胸臆。 及上卽位, 進用儒者, 恢張淸議, 宋浚吉爲執義, 以冕權奸黨與, 擧劾之, 上仍黜冕, 配于牙山。 及赦還, 復居淸要, 無所顧忌, 心懷怏怏, 修郤日深。 自點雖在謫, 與鉽潛通, 每對人言, 不辭洛黨之名, 必欲盡除山林之士。 陰與鉽及馨長密謀, 飛語虜中, 託以朝廷, 方任山林之人, 斥絶和議, 欲害士類, 貽禍國家。 蓋自點與虜人有私, 賂遺甚厚, 所言輒聽, 故售此奸謀, 而庚寅春淸使之來, 聲言有査問之擧, 恐喝先至, 危機將發, 朝野洶洶, 皆爲士林憂之。 及淸使之來, 終無詰責, 蓋冕等恐謀泄, 復通鄭命守還止之故也。 至自點獄起, 冕自知不免, 飮酒不食者累日, 果爲鉽及世龍所引告, 始得其通虜不道之實狀。 上親鞫于庭, 冕辭屈不敢辨, 忍杖自斃, 或疑其飮毒而死。】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38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변란-정변(政變)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