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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 6권, 효종 2년 2월 18일 을축 2번째기사 1651년 청 순치(順治) 8년

전 영의정 이경석이 서울로 돌아와 상소하니 건강에 유의할 것을 이르다

전 영의정 이경석(李景奭)백마 산성(白馬山城)에서 돌아와025) 상소하기를,

"어리석은 신이 스스로 함정에 빠져 거듭 대단한 질책을 받았는데, 하늘 같으신 성은(聖恩)이 도마 위에 놓인 듯한 이 몸을 곡진하게 구제하시어 함양(涵養) 하시는 속으로 받아들이시니, 이는 참으로 천년에 한 번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게다가 전후에 걸쳐 거듭된 위문과 빈번한 하사품 같은 것도 너무나 파격적인 것이니 그 은혜를 보답하려 해도 방도가 없어 죽어서 결초보은(結草報恩)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제 다행히 험난한 지역을 떠나 서울로 돌아왔는데, 종남(終南)026) 은 가깝지만 북궐(北闕)이 막혀 충정 어린 붉은 마음을 지니고만 있을 뿐 토로하지 못하니, 하늘을 우러러보며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지난날 국운이 위태로워 일이 장차 어찌될지 헤아리지 못하게 되어 밤낮으로 애를 태우며 묵묵히 하늘에 빌었더니, 다행히 굽어살피시는 선왕의 음덕을 입어 오늘이 있게 되었다. 과인의 기쁨은 물론 한량이 없고 국가의 복도 어찌 이루 형언할 수 있겠는가. 경은 잘 조섭하고 요양하여 내 마음을 위로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469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註 025]
    이경석(李景奭)이 백마 산성(白馬山城)에서 돌아와 : 효종 원년(1650) 3월에 김자점(金自點)의 밀고로 효종의 북벌 계획이 탄로나자, 당시 영의정으로 있던 이경석과 예조 판서 조경이 사문 사신(査問使臣)으로 나온 파흘내(巴訖乃)·보대평고(甫大平古)·정명수(鄭命壽) 등의 압력을 받아 의주(義州)의 백마 산성으로 귀양갔다가 이때에 청나라의 허락을 받고 석방되어 돌아왔다. 《효종실록(孝宗實錄)》 권3 원년 3월 신유·임술·병인조.
  • [註 026]
    종남(終南) : 목멱산(木覓山).

○前領議政李景奭白馬山城還, 上疏曰:

無狀愚臣, 自陷坎窞, 重罹大何, 聖恩如天, 曲爲之地, 脫之刀机之上, 納之涵育之中, 此實千載一遇也。 至如前後賜問之荐仍、寵錫之便蕃, 又出於尋常萬萬, 圖報無階, 殞結而已。 今幸得離鬼關, 生還日下, 終南雖近, 北闕猶阻。 丹衷耿耿, 有懷莫吐, 瞻望雲宵, 但有涕淚。

答曰: "曩者邦運艱危, 事將不測, 日夜焦慮, 默禱于天, 幸賴先王垂祐之靈, 得有今日。 寡昧之喜幸, 固已難量, 而其爲國家之福, 可勝言哉? 卿宜攝養, 以慰予懷。"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469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