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사 나업을 통해 청이 사돈 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허락하다
당초 중사(中使) 나업(羅嶪)이 다른 일로 사은사와 함께 북경에 갔었는데, 이때에 파흘내 등과 함께 왔으나 그들이 주관하는 일이 누설될까 염려하여 먼저 보내지 않다가 서울에 가까이 온 뒤에야 비로소 나업을 돌아가도록 허락하였다. 나업이 상을 배알한 뒤에, 상이 대신과 이조 판서 이시백을 인견하였다. 상이 나업으로 하여금 그가 들은 바를 말하도록 하니, 나업이 아뢰기를,
"저들이 말하기를 ‘혼인에 관한 일을 그대가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이제야 분명히 말하니, 그대는 돌아가 국왕에게 고하고, 또 국왕의 뜻을 홍제원(弘濟院)으로 와서 알려라. 구왕(九王)이 부지(夫之)를 【부지는 바로 고국씨(古國氏)의 칭호이다.】 갓 잃어 국왕과 혼인을 맺고자 한다. 국왕의 딸이 몇이며 몇 살인지 우리들이 모두 안다. 만일 혼인이 성사되면 여러 신하가 감히 무시하지 못할 것이며, 대국에서도 전적으로 믿게 될 것이다. 다만 국왕이 필시 독단하지 못하고 신하들에게 물을텐데, 신하들은 반드시 「그들과 어떻게 혼인을 맺을 수 있겠습니까.」 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먼저 알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들으니 그대 나라의 신하들은 각기 당이 갈려서 선왕(先王)이 승하한 지 얼마 안 되어 구신(舊臣)을 내쫓았다 한다. 이는 필시 주장한 자가 있을 것이니 이번에 조사해야겠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영의정 이경석이 삼사의 장관을 부르기를 청하니, 상이 허락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저들이 전 경상 감사가 상국(上國)을 겁주어 동요케 하였다고 한다는데, 그 뜻이 상당히 흉악하다 한다. 국가에서도 의당 주선하겠지만 경들도 말을 잘 하도록 하라."
하니, 모두 아뢰기를,
"성상께서 아랫사람의 심정을 깊이 알아주시는 인덕(仁德)이 지극하십니다."
하였다. 상이 또 이르기를,
"저들이 또 조경이 예조 판서 때 한 일을 가지고 말한다 하니 참으로 염려스럽다."
하니, 나업이 아뢰기를,
"방물(方物)에 관한 일도 예조 판서가 주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혼인에 관해서는 신이 응답하기를 ‘현재 있는 공주는 2살이다.’고 하니, ‘공주의 나이가 어리면 종실(宗室) 가운데 적합한 자로 선택하여도 무방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인하여 신하들과 그에 대한 가부를 의논하자, 모두 아뢰기를,
"허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의 제왕들도 행한 경우가 있습니다. 제일 가까운 종실을 불러서 딸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밖에 여러 일도 잘 강구하여야 한다."
하였다. 경석이 아뢰기를,
"발론(發論)한 대간을 처음에는 많은 관원으로 대답하여 허물을 분산시키려고 하였는데, 지금 의논하는 자는 ‘만일 많은 관원으로 말하면 연루되는 자가 필시 많게 될 것이다.’고 합니다."
하니, 부제학 조석윤(趙錫胤)이 아뢰기를,
"대간이 자점(自點)을 논핵한 것은 바로 온 나라의 공론인데 어떻게 누구누구라고 지적하여 말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들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는가? 나는 잠시도 잊어 본 적이 없다. 일에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만일 부득이한 상황에서 저들이 매번 군상(君上)을 위협하고 대국(大國)을 협박하였다고 하면, 이러한 때에 한두 사람 엄호하려다 결국 어떻게 될지를 모르겠다. 나는 불행하게도 위난한 때에 임금이 되었다. 위로 종사(宗祀)를 받들고 있는데, 이제 이런 변을 만났으니 앞으로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고, 인하여 오래도록 서글픈 모습을 하였다. 상이 또 이르기를,
"이른바 ‘귀모(歸賵)’에 관한 말은 전에 들은 것과 다르다."
"사신이 북경에 있을 적에 저들이 조제(吊祭)에 대해 각기 사은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힐책하였는데, 서장관이 ‘귀모’의 구절을 가지고 사은하는 뜻이라고 지적하여 말하자, 저들이 서장관에게 ‘모(賵)’자의 뜻을 써서 바치라고 하여 비로소 이 힐문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일 나업을 시켜 회보(回報)할 적에 혼인에 관하여 뭐라고 답해야 하겠는가?"
하니, 경석 등이 모두 아뢰기를,
"허락한다는 뜻으로 가서 대답하게 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하자, 상이 그렇겠다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416면
- 【분류】외교-야(野)
○初, 中使羅嶪因他事, 偕謝恩使赴北京, 至是巴訖乃等與之俱來, 而恐洩其所幹事, 不肯先送, 旣近京城, 始許嶪還。 嶪旣謁上, 上引見大臣及吏曹判書李時白。 上使嶪言其所聞, 嶪曰: "彼云: ‘婚媾事, 汝未及詳知, 故今始明言之。 汝歸告國王, 又以國王之意, 來報於弘濟院。 九王新喪夫之, 【夫之卽古國氏之稱。】 故欲與國王結婚。 國王之女子幾人, 年歲幾何, 俺等皆已知之矣。 若婚媾旣成, 則群臣不敢欺侮, 而大國亦當專信。 但國王必不能獨斷, 將問於群臣, 群臣必曰: 「豈可與此輩結婚?」 云爾, 故不欲使之先知耳。 且聞, 爾國群臣, 各自分黨, 先王升遐未久, 放逐舊臣。 此必有主論者, 今當査覈。’ 云。" 領議政李景奭請召三司長官, 上許之。 上曰: "彼以前慶尙監司, 驚動上國爲言, 而意頗凶慘云。 自國家雖當周旋, 而諸卿亦善爲辭焉。" 皆曰: "聖上體下之仁至矣。" 上又曰: "彼亦以趙絅禮判時事爲言云, 誠可慮也。" 嶪曰: "方物事亦以爲, 禮判之所主矣。 婚媾事則臣應之曰: ‘公主之時存者, 年方二歲。’ 彼曰: ‘公主年幼則雖擇於宗室中可合者, 亦無妨。’ 云。" 上仍與諸臣, 議其可否, 皆曰: "不可不許。 古之帝王, 亦有行之者。 召强近宗室, 問其女子有無可也。" 上曰: "此外諸事, 亦宜熟講。" 景奭曰: "臺諫發論之人, 初欲以多官爲答, 以分其過, 今之議者, 或曰: ‘如以多官言之, 則連累者必多。’ 云矣。" 副提學趙錫胤曰: "臺諫之論劾自點, 乃一國公論, 安可指摘某某而爲言乎?" 上曰: "諸卿或不深慮耶? 予未嘗頃刻忘于懷也。 事有不可知者, 如其至於不得已之地, 而彼每曰威制君上, 脅迫大國云, 則當此之時, 欲掩護一二人, 不知終至於何地也。 予不幸爲君於危難之際, 宗社在上, 而今遇此變, 將如之何?" 仍愴然久之。 上又曰: "所謂歸賵之說, 異乎前所聞矣。" 使嶪言之, 嶪曰: "使臣之在北京也, 彼以弔祭之不各謝詰之, 書狀官以歸賵之句, 指謂謝意, 彼使書狀官書呈賵字之義, 乃有此詰問矣。" 上曰: "明日使嶪回報時, 婚媾事將何以答之?" 景奭等皆曰: "以許之之意, 往應之宜矣。" 上曰: "然。"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4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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