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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50권, 인조 27년 2월 14일 계묘 3번째기사 1649년 청 순치(順治) 6년

김홍욱·조복양·이천기·홍처윤·김식 등이 시폐를 상차하다

홍문관 부응교 김홍욱(金弘郁), 교리 조복양(趙復陽)·이천기(李天基), 수찬 홍처윤(洪處尹)·김식(金鉽) 등이 상차하기를,

"국가가 변란을 겪은 뒤로 기근과 염병이 없는 해가 없고 객사(客使)의 행차가 잇달았습니다. 더구나 비상한 재변이 한꺼번에 일어나 양남(兩南)에서는 풍수(風水)의 재해가 을해년017) 보다 심하였고,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보이는 일이 한 해가 다 가도 그치지 않으며, 산정(山頂)이 무너지고 지축(地軸)이 흔들리며, 겨울에 천둥이 자주 나고 화성(火星)이 도수(度數)를 잃었습니다. 접때 백홍(白虹)이 달을 꿰는 이변이 한 해의 첫달에 일어났고 순천(順天)의 큰 내가 단류(斷流)된 것도 매우 괴이한 일입니다. 신들은 홍문관에 있으면서 위망의 조짐을 눈으로 보았으므로 근심되고 두려운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감히 어리석은 말씀을 올립니다.

지금 말씀드릴 일을 이루 손꼽을 수 없으나 우선 매우 비근한 것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언로(言路)가 통하고 막히는 것은 국가가 흥하고 망하는 데에 관계되는데, 위에는 간언을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이 없고 아래에는 감히 간언하는 풍습이 없이 외모를 꾸미고 뜻만 받드니, 아첨하고 속이는 버릇은 날로 자라고 성실하고 정직한 도리는 날로 없어집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숨김없이 말하는 문을 크게 열고 애통히 여기시는 분부를 빨리 내려 널리 직언을 구하여 아랫사람의 뜻이 다 통달되게 하소서. 이것이 곧 재변을 당하여 덕을 닦고 허물을 살피는 데 있어 가장 먼저 할 일입니다.

근래 사람을 쓰는 것이 매우 도리에 어긋납니다. 무르고 어리석어 남을 따라 하자는 대로 하는 자는 근신하고 돈후하다 하여 위에 등용되고, 강개하여 일을 논할 때에 조금이라도 모난 자는 교만하고 과격하다 하여 아래에 침체됩니다. 한 가지 일이 우연히 성의(聖意)에 맞으면 차서를 뛰어넘어 오르고, 한 가지 일이 우연히 성의를 거스르면 종신토록 배척됩니다. 그러므로 인사 행정이 시행될 즈음에 사람들이 다 누가 되고 안 될 것을 지목하여 먼저 말합니다. 관직에 있는 자는 건의하는 풍습이 없고 일을 맡은 자는 범상한 규례를 지킵니다. 모든 관사(官司)의 공사(公事)는 반드시 상께 미루어 마침내 ‘상께서 재결하시기 바랍니다.’ 합니다. 심한 경우는 회계하는 내용도 모호하게 양편이 다 괜찮다는 말을 완곡하게 하므로, 위에서 회계대로 시행하게 하면 승지가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몰라 승전을 잘못 받드는 경우까지 있으니, 만기(萬機)가 번거로워지는 것은 참으로 이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정원에 하교하여 각사(各司)를 엄히 경계하여 미루는 짓을 하지 말게 하고 결단하기 어려운 큰일만을 여쭈어 정하게 하소서. 그러면 힘쓰는 것은 간단하고 일은 잘 거행될 것입니다.

관방(官方)의 혼란이 지금보다 심한 때가 없었습니다. 복례(僕隷)·천얼(賤孼)이 자목(字牧)의 직임을 많이 차지하고, 시정(市井)·여항(閭巷)의 사람들이 반은 양반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곤수·변장도 다 권귀(權貴)의 사인(私人)으로, 날이 저물면 그 집에 가서 문안하고 자신이 벼슬아치이면서 그집 종을 맞이하여 절하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반드시 얻고야 말며, 부임한 뒤에는 백성을 침탈할 생각만 합니다. 이들은 용렬한 자인데 어찌 장수의 재질이 있겠습니까. 사조(辭朝)할 때에 혹 인대하여 방략(方略)을 물으시면 또한 그 사람됨을 대강 아실 수 있을 것이니, 만일 변변치 못한 자가 있을 경우 곧 가려내도록 명하고 천거하여 쓴 사람도 아울러 죄주시면 조금 효험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백성의 일이 참으로 애통한데 그 가운데에서도 공물(貢物)은 가장 백성을 괴롭히는 고질입니다. 당초에 분정(分定)한 것도 고르지 못하거니와 그 고장에서 흔히 나는 것도 감히 제사(諸司)에 직접 납부하지 못하고 반드시 백배의 값을 주어 사주인(私主人)에게 방납(防納)하니, 조식(曺植)이 이른바 ‘우리 나라는 서리(胥吏) 때문에 망한다.’ 한 것이 빈말이 아닙니다. 이제 이 폐단을 바로 잡으려면 따로 도감을 두고 시무(時務)를 알고 계려(計慮)가 있는 사람을 당상과 낭청으로 차출하여 반드시 폐단이 없도록 강구하고 요리하게 한 뒤에야 수세(收稅)하는 법을 의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세(稅)가 가볍고 공(貢)이 무겁다는 말을 선유(先儒)가 이미 하였습니다. 듣건대, 지부(地部)018) 의 한해 수입이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늘 부족을 걱정하고 취해 쓰기에 바쁘다고 하니, 흉년을 당하여 백성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어도 되겠습니까. 또 양계(兩界)와 해서(海西)의 전세(田稅)를 본도에 거두어 두어 군수(軍需)에 대비하는 것은 본디 변방을 굳게 지키는 방도입니다. 요즈음 듣건대, 저축이 이미 많은데 해마다 더 들여와서 땅바닥에 가까운 쪽은 태반이 썩으므로 돌려가며 곡식을 나누어 주어 번번이 묵은 곡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이에 원망이 몹시 심하여 달아나는 자까지 있는데, 함경도가 더욱 견딜 수 없다 합니다. 해조를 시켜 그 수를 상세히 살펴서 과연 풍족하면 비국에 의논하여 약간만 본도에 남겨 두고 올해부터 전세를 서울에 날라다 쓰게 하소서. 그러면 피차가 다 편리하여 경비에 크게 보탬이 될 것입니다.

제국(諸局)의 둔전(屯田)은 실로 소용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소용이 중대한 데에 관계되지 않는다면 옮겨서 조금이라도 용도에 보태어 다소 백성의 힘을 넉넉하게 하면 다행하겠습니다. 또 듣건대, 왕자(王子)의 집을 거창하게 짓는다 하니, 빨리 멈추도록 명하시어 뒷날을 기다려도 늦지 않을 듯합니다.

옥후(玉候)가 오래 조섭 중에 계시므로 경연을 열지 못하는 것은 형편상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만, 따뜻한 날이나 한가한 때에 편전에서 사대(賜對)하되 엄한 의례를 생략하고 사가(私家)의 부자(父子)가 하듯이 강론하고 수작하신다면 치도(治道)에 보탬이 없지 않고 옥체를 조섭하시는 데에도 크게 유익할 것입니다. 예전에 관중(管仲)환공(桓公)에게 고하기를 ‘임금께서는 거(莒)에 있던 때를 잊지 마소서.’ 하고, 풍이(馮異)광무제(光武帝)에게 고하기를 ‘국가를 위하여 하북(河北)에서 근심하던 때를 잊지 마소서.’ 하였습니다. 신들도 전하께서 남한(南漢)에서 위태롭던 때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상이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그대들이 나라를 근심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을 매우 아름답게 여겼다. 차자에 아뢴 말은 모두가 아름답고 지극한 말이니 내가 유념하여 채택, 시행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50권 6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34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弘文館副應敎金弘郁、校理趙復陽李天基、修撰洪處尹金鉽等上箚曰:

國家喪亂之後, 饑饉癘疫無歲無之, 客使之行, 項背相望。 況非常之變, 叢集於一時, 兩南風水之災, 甚於乙亥, 太白晝見, 經年不止。 山冢崒崩, 坤軸震動, 冬雷數出, 火星失度。 迺者白虹貫月之變, 出於歲首之月, 順天大川之斷流, 又是怪異之甚。 臣等待罪帷幄, 目擊危亡之象, 不勝憂懼之衷, 敢進狂瞽之說。 當今可言之事, 指不勝屈, 而姑以切近者言之。 言路通塞, 係國家之興喪, 而上無納諫之美, 下乏敢言之風, 修飾外貌, 承奉旨意, 依阿矯僞之習日長, 誠實質直之道日喪。 伏願殿下, 大開不諱之門, 亟下哀痛之敎, 廣求直言, 使下情畢達, 則最是遇災修省之第一務。 近來用人, 甚爲乖戾, 軟熟庸下, 隨人唯諾者, 謂之謹厚, 而登庸於上; 慷慨論事, 稍有稜角者, 謂之矯激, 而沈淪於下。 一事偶當於聖意, 則不次超陞; 一事偶拂於聖旨, 則終身斥外。 故政目注擬之間, 人皆指點而先言。 至於在官者無建白之風, 當事者守庸常之規。 諸司公事, 必推諉於上, 終之以伏惟上裁。 甚者回啓之辭, 曲爲含糊兩可之說, 自上若使依回啓施行, 則承旨莫適所從, 至有誤捧承傳者, 萬幾之煩, 實由於此。 伏願殿下, 下敎政院, 嚴飭各司, 勿爲推諉之態, 唯大事難斷者, 稟旨以定, 則務簡而事擧矣。 官方淆亂, 未有甚於此時。 僕隷、賤孽, 多據字牧之任; 市井、閭巷, 半作衣冠之里。 閫帥、邊將, 又皆權貴之私人也, 昏暮伺候於門墻, 身衣緋紫而迎拜其奴僕, 傍蹊曲徑, 必得乃已, 到任之後, 唯思剝割。 此輩旣是庸品, 何有將才? 辭朝之日, 或賜引對, 問以方略, 則亦可槪知其爲人, 如其不似, 卽命汰去, 竝罪引用之人, 則庶有小效矣。 卽今民事, 誠可哀痛, 而其中貢物, 最爲病民之膏肓。 當初分定, 旣不平均, 雖其本土至賤之産, 不敢直納于諸司, 必給百倍之價, 防納于私主人, 曺植所謂我國以胥吏亡者, 非虛語也。 今欲救此之弊, 別設都監, 以識時務有計慮之人, 差出堂上、郞廳, 講究料理, 期於革弊。 夫然後收稅之法, 方可議矣。 我國稅輕貢重, 先儒已有其說。 竊聞地部一年之入, 不能支出, 常患不足, 拮据取用, 雖遇凶年, 欲減民力, 得乎? 且兩界及海西田稅, 收置本道, 以備軍興, 此固固圉之道。 比聞所儲旣多, 年年添入, 近土一邊, 太半紅腐, 循環分糶, 每食陳蠧。 怨苦最甚, 至有流離逃散者, 咸鏡一道尤不能支堪。 請令該曹, 詳査厥數, 果爲豐足, 則議于備局, 留置幾石于本道, 自今年田稅輸用京師, 則彼此兩便, 大有補於經用矣。 諸局屯田, 實未知所用如何, 而所用若不至關重, 則移補一分之用, 而少寬民力幸甚。 且聞王子家舍工役浩大, 亟命停止, 以待後日, 恐非晩矣。 玉候久在調攝之中, 不得開筵, 勢所固然, 而溫適之日, 淸燕之間, 便殿賜對, 略去苛儀, 講論酬酢, 如家人父子之爲, 則其於治道, 不無所補, 調養玉體, 亦大有益矣。 昔者管仲告于桓公曰: "願君無忘在。" 憑異告于光武曰: "願國家毋忘河北之憂。" 臣等亦願殿下, 毋忘南漢之危也。

上答曰: "省箚, 深嘉爾等憂愛之誠。 箚陳之辭, 無非嘉言至論, 予當惕念而採施焉。"


  • 【태백산사고본】 50책 50권 6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34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