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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49권, 인조 26년 윤3월 5일 경오 1번째기사 1648년 청 순치(順治) 5년

전 영의정 승평 부원군 김류의 졸기

전 영의정 승평 부원군(昇平府院君) 김류가 졸했는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김류가 병을 얻어 갈수록 위독해지자 상이 잇따라 내의(內醫)를 보내어 병을 살피게 하고 자주 약물을 내렸다. 병이 위독하게 되자 김류가 차자를 올려 사례하고 인하여 아뢰기를,

"신이 곧 죽게 되어 다시 은혜에 보답할 것을 도모할 길이 없어 몸뚱이만 어루만지면서 슬피 우노라니,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신이 지금 성상께 영결(永訣)을 고하면서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면 성상을 크게 저버리는 것입니다. 신은 정신이 혼란하여 인사를 살필 수가 없습니다만, 임금을 사랑하는 구구한 정성은 죽음에 이르렀어도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하늘의 노여움을 조심하여 국운이 영원하기를 빌고, 백성의 고통을 돌아보시어 나라의 근본을 공고하게 다지시며, 사의(私意)를 억제하여 충간(忠諫)을 받아들이시고, 현재(賢才)를 진용하여 명기(名器)를 중하게 하소서. 신은 여러 달 고질병에 시달려 병석에 누워 있기 때문에 끝내 다시 전하를 우러러 뵐 수 없으니, 구원(九原)의 아래에서 반드시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찮은 신의 하나의 큰 한입니다."

하였는데, 상이 열람한 다음 안타까운 마음으로 답하기를,

"경의 차자를 살펴보고 내가 매우 놀랍고 슬펐다. 훈계한 내용은 모두가 지론이었으니, 내가 불민하지만 명심하고서 힘써 행함으로써 경의 지극한 뜻에 부합되도록 하겠다."

하였다. 또 승지를 보내어 병을 묻게 했고 세자도 궁료를 보내었으나 김류는 이미 말을 할 수 없었다. 향년은 78세였다. 장생전(長生殿)의 관판(棺板)을 하사하라고 명하였다.

김류는 근엄한 마음과 굳센 의지에 기국이 있었으므로 일찍이 공보(公輔)의 기대를 지니고 있었다. 계해년에 정사원훈(靖社元勳)에 책봉되어 일대의 종신(宗臣)이 되었다. 이조 판서로서 문형을 맡았고 도체찰사를 겸했으며 다섯 번 상부(相府)에 들어갔었다. 추숭(追崇)과 강옥(姜獄)이 있을 적에는 모두 정당함을 지켜 동요하지 않아 끝내 대계(大計)를 도와 이루고 국본(國本)을 정하였으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품이 자기의 마음대로 하기를 좋아하여 남의 선을 따르는 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병자년과 정축년의 난리 때에는 패자(敗子)에게 중임을 제수하여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였으니, 통분스러움을 금치 못하겠다.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320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庚午/前領議政昇平府院君 金瑬卒, 諡文忠得疾彌月, 上連遣內醫視疾, 數賜藥物。 及疾革, 上箚陳謝, 因曰:

朝暮入地之臣, 更無圖報之路, 撫躬悲咽, 泣涕如雨。 仍竊伏念, 臣今永訣聖明, 而終無一言, 則負聖明大矣。 臣精神昏錯, 雖不省人事, 區區愛君之誠, 抵死不泯。 惟願聖上, 敬天怒以祈永命, 恤民隱以固邦本, 抑私意以納忠諫, 進賢才以重名器而已。 臣數月沈痼, 委頓床席, 終不得更瞻天門, 九原之下, 目必不瞑, 此爲微臣之一大恨也。

上覽之悶然, 答曰: 觀卿之箚, 予甚驚悼。 訓戒之辭, 無非至論, 予雖不敏, 當書紳力行, 以副卿至意焉。" 又遣承旨, 往問其疾, 世子亦遣宮僚, 而已不能語矣。 卒年七十八。 命賜長生殿棺板。 嚴毅有器局, 早負公輔之望。 癸亥策靖社元勳, 爲一代宗臣。 判吏曹, 典文衡, 兼都體察使, 五入相府。 追崇及獄時, 皆守正不撓, 終又贊成大計, 以定國本, 可謂偉矣。 然性好自用, 短於從善。 丙、丁之難, 授敗子以重任, 終致家國之覆敗, 可勝痛哉!"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320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