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사의 서장관 조수익이 북경에서 보고 들은 일을 서계하다
주청사의 서장관 조수익(趙壽益)이 북경에서 보고 들은 일을 서계하기를,
"홍광 황제(弘光皇帝)는 바닷가로 도망하였다가 청나라 사람에게 붙잡혀서 어느 한 곳에 갇혀 있고, 제왕(諸王) 및 총병(摠兵) 이하의 대소 장관 가운데 항복한 자만도 1백여 명이나 되며, 한인(漢人)들이 말하기를 ‘홍광 황제가 즉위한 뒤로 음란하기가 날로 더 심하여져 15 세 이상의 양가집 딸을 모두 궁중으로 선발하여 들이므로 사람들이 모두 분개하였고, 홍광의 아우는 나이가 20세 남짓인데 남변(南邊)에서 황제라 일컫고 있으며, 장현충(張顯忠)과 이자성(李子成)은 섬서(陝西)·사천(四川) 등지를 점거하고 있는데, 현충의 병세(兵勢)가 자성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하고, 또,
"지난해 홍광제가 진홍범(陳弘範)과 좌모제(左毛弟)를 청나라에 보내어 화친을 청하였으나 청나라가 허락하지 않아서 홍범은 돌아오고 좌모제는 억류되었는데, 남경(南京)이 함락되자 청나라 사람이 좌모제에게 말하기를 ‘지금 남경이 항복하여 천하가 통일되었는데, 너만이 굴복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니, 좌모제가 답하기를 ‘내가 대명의 신하로서 어떻게 원수를 임금으로 섬길 수 있겠는가. 부디 나를 속히 죽여 달라.’ 하고 욕설을 퍼부었는데, 청나라 사람이 이해(利害)로 달래어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자, 한인들 중에 슬퍼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며, 종자(從者) 네 사람 역시 굴복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하고, 또,
"지난 가을에 청나라 사람이 황성(皇城)에서 과거를 보여 1백여 명에게 급제(及第)를 주었는데, 원근에서 응시한 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99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254면
- 【분류】외교-야(野)
○辛丑/奏請使書狀官趙壽益以北京聞見, 書啓曰:
弘光皇帝奔於海上, 爲淸人所執, 幽之一處, 諸王及摠兵以下不小將官, 降者亦百餘人。 漢人言: "弘光卽位之後, 荒淫日甚, 良家女十五歲以上, 皆選入宮中, 人莫不憤慨。 弘光之弟年二十餘, 稱帝於南邊, 張顯忠、子誠方據陝西、四川等地, 顯忠兵勢勝於子誠。
又曰:
前年弘光帝遣陳弘範及左毛弟, 請和於淸國, 不許。 弘範還, 左毛弟被拘, 及南京陷, 淸人謂左毛弟曰: "今則南京已降, 天下一統, 汝獨不屈何爲?" 左毛弟曰: "我以大明之臣, 豈有臣事讐賊之理乎? 須速殺我。" 罵不絶口。 淸人諭以利害, 終不屈。 漢人無不悲之, 從者四人, 亦不屈而死。
又曰:
去秋淸人設科於皇城, 賜第百餘人, 遠近赴擧者甚多云。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99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25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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