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군 김육이 지은 소현 세자의 애책문의 내용
소현 세자의 애책문(哀冊文)에 이르기를,
"순치(順治)105) 2년, 세차(歲次) 을유년 4 월 26일(무인)에 소현 세자가 창경궁(昌慶宮)의 환경전(歡慶殿)에서 졸하였으므로, 6월 19일(경오)에 장차 고양(高陽) 효릉(孝陵)의 뒷등성이에 장사하려는 것은 예이다.
동룡문(銅龍門)106) 이 새벽에 열리니, 철봉(鐵鳳)107) 이 고개를 높이 들었다. 수레를 진열하고 말멍에 정돈하니, 관(棺) 곁의 운삽(雲翣)·불삽(黻翣)이 앞에서 펄럭인다. 깊고 적적한 묘혈(墓穴)을 쫓아가느라, 환히 밝은 세자의 서연(書筵)을 하직하였다. 도성 백성들은 눈물을 뿌리며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모든 신료들은 슬피 울며 하늘에 부르짖는다. 우리 성상께서는 인자하신 정으로 한량 없는 슬픔을 안고서, 아침에 나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음을 슬퍼하고 야대(夜臺)108) 로 들어간 아들과 영원히 멀어진 것을 비통해 하신다. 날마다 세 번씩 부왕께 문안드리던 시절이 어느 때던고. 꿈에서도 구령(九齡)을 얻기가 어려웠도다109) 이리하여 금마문(金馬門)110) 에 윤음(綸音)을 내려서 보책(寶冊)에 세자의 미덕을 전하도록 하시었다. 그 사(詞)는 다음과 같다.
아, 성인의 조정이여, 누대(累代) 동안 어진 임금이 계속되었고, 종손과 지손이 백세를 내려오면서 성왕의 후손 계속 번창하였다. 생각건대 우리 동궁께서는 자품이 순수하고 강직하시어, 일찍이 위호(位號)가 정해져서 원량(元良)으로 높이 칭송되었다. 물결은 소해(少海)111) 에서 맑고 광채는 전성(前星)112) 에서 더하였으며, 마음은 항상 학문을 전념하는 데 있었고, 뜻은 경서를 탐구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불행한 시기를 만나 뜻밖의 액운을 당해서, 나라를 혼란시킨 환란이 도성 근교에까지 미쳤다. 그러자 부왕(父王)과 헤어져 민간(民間)으로 나가 피난할 제, 세자와 빈궁(嬪宮) 두 분의 태도로 인해 어질다는 명성이 백성들에게 깊이 칭송되었고, 가는 곳마다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혔으므로 부로(父老)들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나와 목을 길게 빼고서 눈을 닦고 자세히 우러러 보았다.
도성으로 돌아와서는 난리가 조금 멈추었는데, 어찌하여 참혹한 화란이 10년만에 다시 일어나, 국운이 매우 위태해져서 온 나라가 산성(山城) 하나로 줄어드니 매달린 깃발보다 더 위태로웠다. 나라 사정이 너무도 급해지자, 자진해서 나와 인질로 가기를 청하고, 장막 뒤에서 눈물을 뿌리며 이르기를 ‘만일 내 한 몸으로 국난을 완화시킬 수만 있다면 다른 문제를 돌볼 겨를이 어디 있는가.’ 하고는, 전거(氈車)113) 에 몸을 싣고 길을 떠나니, 만리 먼 길에 사나운 바람으로 모래가 마구 날렸다.
애틋한 은혜와 사랑을 억지로 끊고서, 콧마루가 시큰거리고 근골이 부들부들 떨린 채로 달리고 또 달리는데, 시일이 오래지 않아 용하(龍河)에는 얼음이 굳게 얼고 낭산(狼山)에는 눈이 그득 쌓이었으므로, 험난한 강산(江山) 넘고 건너느라 온갖 고생 두루 겪었다. 심양(瀋陽)의 동관(東館)114) 에 억류됨에 미쳐서는 곤박하기가 한단(邯鄲)보다 심하였는데,115) 말 머리에는 뿔이 나지 않고116) 닭울음 소리는 함곡관(函谷關) 문을 열어주지 못하였다.117) 부모를 그리워하여 소리 없이 눈물 흘리며 뼈에 사무치는 정이 마음속에 얽히었는데, 진인(秦人)이 진나라 음악 좋아하고 월인(越人)이 월나라 음악 좋아하듯이 우리 동방의 음악 좋아했으니, 어찌 다만 고향을 생각할 뿐이었겠는가. 그곳에서 짐승 사냥하는 데나 종사하고 군인들의 행렬 속에 드나들었으니, 혹독한 더위와 모진 추위에 어찌 몸을 상하지 않았겠는가. 이제 막 돌아와 회합하여 거듭 환희에 젖었는지라 거의 만 년이나 화락하리라 여겼더니, 갑자기 하루아침에 뜻밖의 재액을 만나 급작스레 세자의 몸이 꽃다운 나이로 서거하였다. 아, 슬프다.
만물이 극도에 달하면 반드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비운(否運)이 다하면 형통한 운수가 돌아오는 것이다. 참으로 천도(天道)가 항상 그런 것이니, 어찌 이 이치가 혹시라도 어긋나겠는가. 그래서 생각하기를, 앞으로는 운수가 형통할 것이요 재액은 이미 다 없어졌다고 여겼는데, 그동안의 세월이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렇게 참혹한 화변을 내리었다. 아, 슬프다.
용루(龍樓)118) 에 해는 저물고 봉전(鳳殿)119) 에 바람은 슬피 불어, 부왕께 문안하는 예가 단절되었으니, 부왕의 음식은 누가 보살피랴. 다행히 원손(元孫)이 재지(才智)가 뛰어나서 종묘의 제사를 의탁할 데가 있는 것이 기쁘고, 억조 창생들의 큰 기대가 달려 있으니, 국운이 오래도록 이어질 줄을 알겠다. 그러나 파리해진 어린 아이가 부모 그리는 것이 비참하여 성상의 비통을 더하게 한다. 아, 슬프다.
서재(書齋)의 휘장은 적막하기만 하고 강석(講席)은 처량하기도 한데, 나나니벌[蜾嬴]은 창문에서 울고 제비[烏衣]는 기둥에서 지저귄다. 아첨(牙籤)120) 꽂힌 권축(卷軸)에는 먼지가 끼어 있고, 보전(寶殿)의 맑은 향기는 사라져가는데, 지난날의 늙은 환관이 남아 있어, 궁관(宮官)을 대하여 눈물을 줄줄 흘린다. 아 슬프다.
장사지낼 날짜가 기약이 있어 산소(山所) 자리를 잡으니, 산세가 마치 용(龍)이 서리고 범[虎]이 걸터 앉은 듯 웅장하여 부온(富媪)121) 이 복을 저축하였고, 모든 신령이 와서 조회하며 세 방위가 다 공손히 읍(揖)을 한다. 이곳이 교릉(喬陵)의 신수(神隨)122) 에 의지하여 또 송백(松栢)이 푸른데, 어지신 할아버지는 남쪽에 계시고 성스러운 어머니는 북쪽에 계시니, 아마도 영령(英靈)들께서 서로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이 완연히 평소와 같으리라. 아, 슬프다.
팽상(彭殤)123) 이 서로 가지런하지 않은 것은 만고가 똑같으니, 본디 정해진 운명은 고치기 어렵기에, 아무리 대덕(大德)을 지닌 성인이라도 장수를 기필할 수 없지만, 오직 노고에 지쳐 수명을 단축하여, 천지로 더불어 망극(罔極)하게 된 것이 한스러워, 남은 행적을 찬양해 기록해서 광중(壙中)에 묻어 영원히 후세에 아름다움을 전한다. 아, 슬프다."
하였다. 이것은 상호군(上護軍) 김육(金堉)이 지은 글이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22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05]순치(順治) : 청 세조(淸世祖)의 연호. 1644∼1661.
- [註 106]
동룡문(銅龍門) : 옛날 태자(太子)의 문루(門樓).- [註 107]
철봉(鐵鳳) : 궁전에 장식한 봉황.- [註 108]
야대(夜臺) : 묘혈을 말함.- [註 109]
꿈에서도 구령(九齡)을 얻기가 어려웠도다 : 장수하지 못한 것을 말함. 구령(九齡)은 즉 90세를 뜻한다. 주 문왕(周文王)이 아들인 무왕(武王)에게 이르기를 "네가 무슨 꿈을 꾸었느냐?" 하니, 무왕이 대답하기를 "꿈에 천제(天帝)께서 나에게 이빨 9개[九齡]을 주셨습니다." 하므로…… 문왕이 이르기를 "옛날에 나이를 영(齡)이라 하였는데 이빨 또한 영(齡)이다. 나는 백이고 너는 90이니, 내가 너에게 3을 주겠노라." 하였는데, 뒤에 과연 문왕은 97세에 죽고, 무왕은 93세에 죽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 [註 110]
금마문(金馬門) : 문학하는 선비가 출사하는 곳.- [註 111]
소해(少海) : 천자(天子)를 대해(大海)에 비한 데 대하여 태자(太子)를 소해에 비유한 것이다.- [註 112]
전성(前星) : 황태자의 이칭(異稱). 심성(心星)을 천자의 상징으로 삼고 심성의 앞에 있는 별을 황태자의 상징으로 삼은 데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 오행지(五行志).- [註 113]
전거(氈車) : 모전(毛氈)으로 장식한 수레.- [註 114]
동관(東館) : 세자가 억류되어 있었던 관명.- [註 115]
곤박하기가 한단(邯鄲)보다 심하였는데, : 아무런 잘못도 없이 뜻밖의 화를 입는 데에 비유한 것으로, 《장자(莊子)》 거협(胠篋)에 "노(魯)나라 술이 맛이 없자, 조(趙)나라 한단(邯鄲:조나라 서울)이 포위를 당하고, 성인이 탄생하자 큰 도적이 일어났다.[魯洒薄而邯鄲圍, 聖人生而大盜起]" 한 데서 온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장자(莊子)》의 주석에 나타나 있다.- [註 116]
말 머리에는 뿔이 나지 않고 : 오랫동안 타국에 억류되어 있었음을 뜻함. 전국(戰國) 시대에 진왕(秦王)이 연 태자 단(燕太子丹)을 잡아 가두었는데, 연 태자 단이 본국으로 보내주기를 요구하자, 진왕이 이르기를 "까마귀 머리가 희어지고 말 머리에 뿔이 나면 보내주겠다." 하므로, 연 태자 단이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니, 그 즉시 까마귀 머리가 희어지고 말 머리에 뿔이 났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자객전(刺客傳) 찬주(贊註).- [註 117]
닭울음 소리는 함곡관(函谷關) 문을 열어주지 못하였다. : 역시 타국에 잡혀가 오래도록 갇혀 있었음을 뜻함.- [註 118]
용루(龍樓) : 태자의 궁전을 말함.- [註 119]
봉전(鳳殿) : 태자의 궁전을 말함.- [註 120]
아첨(牙籤) : 상아(象牙)로 만든 찌.- [註 121]
○昭顯世子哀冊文曰:
維順治二年歲次乙酉四月癸丑朔二十六日戊寅, 昭顯世子卒于昌慶宮之歡慶殿, 越六月壬子朔十九日庚午, 將遷于高陽 孝陵之後岡, 禮也。 銅龍曉闢, 鐵鳳高騫。 廞車整駕, 廧翣前翩。 遵幽坎之寂居, 謝明离之冑筵。 都民灑淚而頓地, 具僚泣血而呼天。 我聖上以止慈之情, 抱無涯之戚, 哀朝出而不返, 悲夜臺之永隔。 日三朝兮何時? 夢九齡之難得。 爰降綸於金門, 俾傳徽於寶冊。 其詞曰: 猗歟聖朝! 奕葉重光, 本支百世, 神孫繼昌。 惟我靑宮, 稟質純剛, 早正位號, 騰頌元良。 波澄少海, 彩增前星, 心存典學, 志在橫經。 遭時不幸, 百六斯丁, 搶攘爲患, 及於近坰。 湖海分飛, 兩宮行色, 仁聲入人, 在處涵澤, 父老扶杖, 延頸拭目。 還于大都, 亂離少息, 如何慘禍, 十年復作, 國步斯頻, 邦域一堞, 危於綴旒。 我是用急, 挺身請行, 幄後揮泣, 苟紓其難, 遑恤乎他, 氈車言邁, 萬里風沙。 割慈忍愛, 酸鼻驚骨, 載馳載驅, 不日不月, 氷塞龍河, 雪漫狼山, 逾越險阻, 備嘗艱難。 逮乎留館, 困甚邯鄲, 馬不生角, 鷄未鳴關。 陟岵呑聲, 痛切回腸, 秦聲越音, 豈獨思鄕? 從于射獵, 出入戎行, 酷暑嚴寒, 寧不致傷? 方重歡於會合, 庶萬年之和樂, 忽一朝之旡妄, 遽徂芳於嗣德。 嗚呼哀哉! 物極必反, 否終則泰。 信天道之常, 然豈斯理之或悖? 謂此後之能亨, 已盡殄於災厄。 曾日月之幾何, 降禍變之斯酷。 嗚呼哀哉! 日晏龍樓, 風悲鳳殿, 禮絶問寢, 誰爲視膳? 幸元孫之岐嶷, 欣皂鬯之有托。 繫億兆之顒望, 知國祚之綿歷。 慘欒欒之孺慕, 增至尊之悲怛。 嗚呼哀哉! 書帷寂寞, 講席淒涼, 蜾蠃鳴窓, 烏衣語楹。 塵牙籤之萬軸, 銷寶殿之淸香。 餘舊日之老璫, 對宮官而涕滂。 嗚呼哀哉! 日月有期, 佳城載卜。 龍盤虎踞, 富媪儲福。 百靈來朝, 三方拱揖。 依喬陵之神隧, 又蒼蒼兮松栢。 仁祖在南, 聖母在北。 想英靈之相望, 宛怡愉於平昔。 嗚呼哀哉! 彭殤不齊, 萬古若一。 固定數之無改, 雖大德其難必。 惟其勞勩而促筭, 恨與天地而罔極。 紀遺蹟於揄揚, 永垂休於窀穸。 嗚呼, 哀哉!
上護軍金堉之詞也。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22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