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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46권, 인조 23년 3월 17일 경자 2번째기사 1645년 청 순치(順治) 2년

성절사 김소 등이 들어와, 그 문견 사건을 바치다

성절사 김소(金素) 등이 들어왔는데, 그 문견 사건(聞見事件)에 이르기를,

"조대수(祖大壽)의 옛집을 지나다 들러보니, 높고 큰 문려(門閭)에 ‘원융(元戎)031) ’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져 있었고, 또 ‘충정 담용(忠貞膽勇)’이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었는데, 모두가 숭정 황제(崇禎皇帝)조대수를 위해 정표(旌表)한 것입니다. 조대수는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받아 원수(元帥)가 된 몸으로 마침내 적에게 항복하여 포로가 되어서 왕호(王號)를 무릅쓰고 받았으니, 만일 조대수가 ‘충정(忠貞)’ 두 글자를 생각한다면 부끄러움이 없겠습니까."

하고, 또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복왕(福王)이자성(李自成)에게 시해되었고, 그의 아들이 남경(南京)에서 즉위하였으나 황음하여 법도가 없어서 중원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숭정 황제에게는 세 아들과 두 딸이 있었는데, 자신이 자결할 때에 세 아들에게는 모두 도망쳐서 목숨을 보전케 하고, 딸 하나는 찔러 죽였으며, 또 딸 하나는 찔렀으나 빗맞아 죽지 않았는데, 지금 구왕(九王)의 희첩(姬妾)이 되었습니다. 아들 하나는 이자성에게 포로가 되었고 두 아들은 도망갔는데, 구왕이 아들 하나를 찾아 부마(駙馬)로 삼아서 명나라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자 하여 중외(中外)에 현상금을 걸고 찾은 결과, 한 중이 만수산(萬壽山) 절에서 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이 아이가 바로 숭정 황제의 태자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나이가 17세쯤 되었는데, 명나라의 옛 신하들에게 그를 보이자, 혹자는 ‘태자가 맞다.’하고 혹자는 ‘모르겠다.’고 하므로, 구왕의 희첩에게 그를 보이니, 희첩이 그를 끌어 안아 어루만지고 통곡하면서 ‘이는 참으로 나의 오라비이다.’고 말하였습니다. 또 명나라 때의 환관들에게 그를 보이자, 두 사람은 ‘이 사람이 바로 숭정 황제의 아들이다.’고 말하였는데, 늙은 환관 노유령(盧有寧)만이 홀로 ‘나는 모르겠다. 만일 이 사람이 숭정 황제의 아들이라면 어찌 숭정 황제의 이름을 모르겠는가. 숭정 황제의 이름을 써보게 하면 참으로 아들인지 여부를 알 수 있겠다.’ 하니, 그 아이가 가슴을 치면서 말하기를 ‘네가 궁중에 있었으면서 어찌 나의 얼굴을 모른단 말이냐. 내가 비록 죽을지라도 황제의 이름은 차마 쓰지 못하겠다. 하였습니다. 또 명나라 때 내원(內院)의 표 귀비(表貴妃)에게 그를 보이니, 표 귀비가 태자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 아이도 표 귀비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표 귀비가 말하기를 ‘숭정 황제의 태자는 입에 앞니 밖으로 덧니가 있었고 이의 밑부분이 매우 검었는데, 지금 이 사람을 보니 자못 태자와 서로 다르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또 태자를 시봉했던 궁녀 진백수(秦栢壽)에게 보이니, 그 역시 알아보지 못하면서 말하기를 ‘태자는 키가 매우 크고 또 입에는 앞니 밖에 덧니가 있었으며, 발에는 검은 사마귀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다.’ 하였고, 태자의 궁료(宮僚)였던 장대기(張大紀)·이교(李喬) 등은 모두 말하기를 ‘숭정 황제의 태자는 글에 통하고 글씨에도 능하여 일찍이 부채에 시(詩)를 써서 어떤 사람에게 상도 주었는데, 지금 이 아이는 글자를 모르니 이 어찌 진짜 태자이겠는가.’ 하였습니다.

구왕은 이에 진가(眞假)를 분변하고서 태자라고 말한 자 26인을 모조리 체포하여 순성문(順城門) 밖에서 모두 참형에 처하고 성문에 방(榜)을 붙여 중외로 하여금 그가 태자란 말이 허위였음을 모두 알게 하고는 다시 현상금을 걸어 태자를 찾으라는 명령을 신칙하였습니다. 구왕은 이어서 그 아이는 가두고 그 중에게는 두 다리 사이에 곤장을 끼우는 형벌을 사용하여 국문하였는데, 그는 다리가 부러져도 끝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죽었다고 합니다.

지금 또 아문의 역관 한거원(韓巨源)의 말을 들으니 ‘그 아이의 손발이 섬세한데다 행동하는 것이 모두 궁중의 법도가 있는 것을 보니, 여염집에서 자라난 아이가 아닌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212면
  • 【분류】
    외교-야(野) / 외교-명(明)

  • [註 031]
    원융(元戎) : 원수(元帥) 와 같음.

○聖節使金素等入來, 其聞見事件曰: "行過祖大壽舊宅, 則高大門閭, 大書曰元戎, 又書曰忠貞膽勇, 皆崇禎大壽旌表也。 大壽世受國恩, 身爲元戎, 終作降俘, 冒受王號, 若使大壽, 念忠貞二字, 其無愧乎?" 又曰: "福王李自誠所害, 其子卽位于南京, 而荒淫無度, 難望其恢復云。 崇禎有三子二女, 當其自決時, 敎三子出走, 以全性命, 剌其一女而死, 又剌其一女而誤中不死, 今爲九王姬。 一子爲李自誠所虜, 二子逃去, 九王欲得其一子, 以爲駙馬, 使奉大明之祀, 購求中外, 有一僧自萬壽山寺, 率一兒來言: ‘此乃崇禎太子也。’ 年可十七歲, 使前朝舊臣見之, 或曰是, 或曰不知也。 使九王姬見之, 則抱撫痛哭曰: ‘此眞吾娚也。’ 使朝宦者輩見之, 二人曰: ‘此乃崇禎之子也。’ 老宦盧有寧獨曰: ‘吾則不知也。 若是崇禎之子, 則豈不知崇禎之名乎? 使之書, 則可知眞假也。’ 其兒搥胸曰: ‘汝在宮中, 豈不知吾面? 吾雖死, 不忍書。’ 又使前朝內院表貴妃見之, 則表貴妃不認得太子, 其兒亦不認得表貴妃貴妃云: ‘崇禎太子則口有虎牙, 牙根甚黑。 今見此人, 殊不相似。’ 又使侍奉太子者宮女秦栢壽見之, 則亦不認得曰: ‘太子身最長, 且口有虎牙, 足有疤痣, 此則不然矣。’ 太子宮僚張大紀李喬等皆言: ‘崇禎太子, 通文能書, 嘗以詩, 書諸扇面以賞人, 而今此兒不識字, 此豈眞乎?’ 九王於是, 辨其眞假, 盡收其諸言太子者二十六人, 皆斬於順城門外, 乃揭榜於城門, 使中外皆知其僞, 復申購求之令。 仍囚其兒, 用挾棍之刑, 以鞫其僧, 僧雖折脚, 終無一言而死云。 今聞衙譯韓巨源之言, 則觀其兒手足纖細, 皆用宮範, 似非長養於閭閻者也云。"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212면
  • 【분류】
    외교-야(野)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