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객 임광이 북경으로 가는 세자 일행의 주변 상황을 치계하다
빈객 임광(任絖)이 세자를 모시고 심양을 출발하여 북경으로 가던 도중, 8월 23일 요하(遼河)에 당도하여 치계하기를,
"서쪽079) 으로 가는 황제의 행차가 이미 20일에 출발하였습니다. 양궁(兩宮)080) 및 봉림 대군(鳳林大君)과 제손(諸孫)들도 일시에 출발하였는데, 관중(館中)의 짐보따리를 한꺼번에 다 수송할 수 없기 때문에 익찬(翊贊) 김시성(金是聲), 내관(內官) 조방벽(趙邦璧)이 우선 그곳에 머물러 있기로 하였습니다. 21일에는 요하에서 자고, 22일에는 요하를 건너 연대(煙臺)에서 머물러 잤는데, 황제의 행차가 앞서가고, 제왕(諸王)과 팔고산(八高山)081) 및 그 가족들의 짐보따리가 그 뒤를 이어 도로에 가득 찼으며, 양궁의 행차는 가장 뒤에 따르면서 조금씩조금씩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는 것으로 헤아려보면, 1천 6백여 리나 되는 노정이라 1개월 이내에는 도달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비바람을 맞아가며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면서 위아래가 모두 고생하는 정상을 다 진술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임광이 또 아뢰기를,
"세자가 심양을 출발하면서 제왕·대군과 함께 전한(前汗)082) 의 능소(陵所)에 배사(拜辭)하였습니다. 요즘에 북경 소식을 들으니, 모두 말하기를 ‘쌀값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봉황성(鳳凰城) 서쪽 각진(各鎭)에 저축되어 있는 쌀을 다 꺼내어 삼차하(三叉河)로 운반해 관내(關內)로 옮겨 수송할 계획인데, 이는 장구한 방도가 아니다.’고 합니다. 이경여(李敬輿)·김상헌(金尙憲)·최명길(崔鳴吉) 등은 아문의 분부로 인하여 그대로 관소(館所)에 유치되었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48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194면
- 【분류】외교-야(野) / 왕실-종친(宗親)
- [註 079]서쪽 : 북경을 말함.
- [註 080]
양궁(兩宮) : 세자 내외를 말함.- [註 081]
팔고산(八高山) : 고산은 고산(固山)이라고도 한다. 몽고어의 기(旗)라는 뜻이다. 팔기(八旗)는 청 태조(淸太祖)가 제정한 병제(兵制)의 일대 조직(一大組織)으로서 총군(總軍)을 기의 빛깔에 따라 편제(編制)한 여덟 부대이다. 그 빛깔은 정황(正黃)·정백(正白)·정홍(正紅)·정람(正藍)·양황(鑲黃)·양백(鑲白)·양홍(鑲紅)·양람(鑲藍)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만주인(滿洲人)으로 편제한 부대를 만인 팔기(滿人八旗), 한인(漢人)으로 편제한 부대를 한인 팔기, 몽고인으로 편제한 부대를 몽고 팔기라 칭하였다.- [註 082]
전한(前汗) : 죽은 청 태종을 가리킴.○賓客任絖陪世子, 發瀋陽向北京。 八月二十三日到遼河馳啓曰: "皇帝西行, 已發於二十日。 兩宮及鳳林、諸孫, 一時作行, 而館中輜重, 不得盡輸, 故翊贊金是聲、內官趙邦璧, 姑留于其處, 而二十一日宿遼河, 二十二日渡遼河, 止宿烟臺。 帝行在前, 諸王、八高山及其家屬輜重繼之, 彌滿道路, 兩宮之行, 最在於後, 寸寸前進。 以此計之, 則前路一千六百餘里, 一朔之內, 似難得達。 暴露跋涉, 上下艱苦之狀, 有難盡陳云。" 任絖又啓曰: "世子臨行, 與諸王、大君, 拜辭于前汗陵所。 比聞北京消息, 則皆言: ‘米價極貴, 以此, 罄出鳳城以西各鎭所儲米, 運下三叉河, 以爲轉輸關內之計, 而此非長久之道。’ 云。 李敬輿、金尙憲、崔鳴吉等, 因衙門分付, 仍置館所矣。"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48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194면
- 【분류】외교-야(野) / 왕실-종친(宗親)
- [註 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