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인조실록45권, 인조 22년 8월 4일 기미 2번째기사 1644년 명 숭정(崇禎) 17년

경상 감사 임담이 서원의 폐단을 치계하다

경상 감사 임담이 치계하기를,

"우리 나라에 서원(書院)을 세운 것이 가정(嘉靖)066) 연간에 시작되었는데, 맨 처음 창건된 것은 열 군데에 불과하고, 또 모두 조정에 보고하여 향사(享祀)의 예전(禮典)을 밝게 거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력(萬曆)067) 이후에는, 사당을 세운 것이 해마다 더욱 많이 불어나서 고을마다 즐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폐단이 널리 퍼져 심지어는 논의가 공정하지 못한 데까지 이르러, 혹 벼슬이 높은 사람이면 향사하고, 혹 세력 있는 집안 사람이면 향사하여, 서로 다투어 제사지내는 것을 일삼아 이것을 가지고 서로 자랑하며, 또 그를 인하여 사사로이 명예를 세움으로써 배척과 훼방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선비들이 옛 성현의 도를 본받지 않아서 세도(世道)가 날로 무너져감으로써, 어진 이를 높이고 덕을 숭상하는 의리가 사당(私黨)으로 바뀌는데도, 조정에서는 묻지도 않고 관리들은 금하지도 못하여, 습속이 점점 투박해지니, 진실로 한심스럽습니다.

중국에서는 유현(儒賢)이나 명신(名臣)으로 향사의 예전을 베풀기에 합당한 자에 대해서, 독학관(督學官)068) 이 자세히 조사하여 반드시 먼저 조정에 보고한 다음에야 사당을 세워서 향사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새로 사당을 창건하는 일에 대해서는 일도(一道)의 선비들이 함께 의논한 다음, 본관(本官)에 서장(書狀)을 바쳐 낱낱이 감사에게 보고하고 다시 조정에 상주하여 비준을 얻어야만 허가를 해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사적으로 서로 다투는 폐단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신이 삼가 보건대, 이런 폐단은 다른 도(道)에서도 모두 그러하니, 한번 바로잡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정으로 하여금 여기에 관한 일을 성헌(成憲)으로 만들어서, 각도 각읍이 일체 이 법을 준행하게 하도록 예조에 내리소서."

하였다. 예조 판서 이식(李植) 등이 회계하기를,

"서원을 설치하는 것은 당초에 학문을 하고 심신을 수양하는 선비들을 대우하기 위한 것이니, 사당을 세우고 높이 받들어 향사할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한 시대에 밝게 알려져서 사표(師表)가 될 만한 사람을 해당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선비라는 사람들은 학문을 일삼지 않고, 향사되는 사람은 혹 당치 않은 인물이기도 하여, 사원(祠院)은 많으나 사문(斯文)은 더욱 침체해지니, 진실로 한심스럽습니다. 지금 이 장계에서 논한 것이 실로 일리가 있으니, 지금부터 새로 창설하는 곳에 대해서는, 모두 본조(本曹)에 보고하여 조정에서 함께 의논해서 공론이 허가를 내린 다음에 창설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또 각도의 사원에 대하여 일찍이 본조에서 공문(公文)을 보내서 물어보았던 것은 향사되고 있는 선현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였는데, 시골 사람들이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서 많이 기피해 버리고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심한 자에 대해서는 자세히 조사하여 향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또한 타당합니다. 타도의 감사들에게도 일체 이런 내용을 주지시키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191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풍속-예속(禮俗)

  • [註 066]
    가정(嘉靖) : 명 세종의 연호 1522∼1566.
  • [註 067]
    만력(萬曆) : 명 신종의 연호 1573∼1620.
  • [註 068]
    독학관(督學官) : 학사(學事)를 감독하는 관리.

慶尙監司林墰馳啓曰: "我東方書院之作, 始於嘉靖年間, 厥初創建, 未過十所, 俱聞於朝, 明擧祀典。 逮至萬曆以後, 廟宇之作, 歲益浸盛, 比邑相望。 其流之弊, 至於論議不公, 或官貴則祀之, 或族大則祀之, 競事俎豆, 以相誇詡, 因之以私立名譽, 排訐隨之。 士不師古, 世道日壞, 尊賢尙德之義, 轉成私黨, 朝廷莫之問, 官吏不能禁, 習俗偸薄, 誠極寒心。 中朝則儒先、名臣合在祀典者, 督學按察, 必先報聞, 然後方許立祀。 今後係干新創祠宇, 則一道士林通議之後, 呈書本官, 枚報監司, 轉稟朝廷, 得準乃許, 俾無私自乖爭之弊。 臣竊見, 此弊他道無不皆然, 不可不一番停當。 請令朝廷, 着爲成憲, 使各道各邑, 一體遵行事。" 下禮曹, 判書李植等回啓曰: "書院之設, 初爲待學問靜修之士, 而其立祠尊祀者, 則必以一時所明知, 可爲師表者當之。 今則不然, 爲士者不事學問, 所祀者或非其人, 祠院雖多, 斯文益晦, 誠可寒心。 今此狀啓所論, 實爲有見, 自今新設處, 皆令轉報本曹, 通議朝廷, 公論準許然後, 創設爲當。 且各道祠院, 曾自本曹行移憑問, 欲知所祀先賢誰某, 而鄕人自知不足, 多諱而不報。 其中最甚者, 按考勿祀亦當。 請他道監司處, 一體行會。"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191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풍속-예속(禮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