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에서 조선으로 나오는 역관에게 칙서를 부쳐 보내다
청나라에서, 조선에 나오는 역관(譯官)에게 칙서(勅書)를 부쳐 보냈는데, 그 칙서에 이르기를,
"4월 13일에 명(明)나라 총병관(總兵官) 오삼계(吳三桂)가 부장(副將) 양신(楊新), 유격(遊擊) 가우륭(柯遇隆)을 우리 군문에 보내와서 항복하기를 청했는데, 그들의 말에 ‘유적이 이미 북경을 함락시킴으로써, 숭정 황제(崇禎皇帝) 및 후비가 모두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그런데 적의 추장 이자성(李自成)은 3월 23일에 즉위하여 황제라 자칭하고, 국호를 대순(大順), 연호를 영창(永昌)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주 사람을 보내어 오 총병을 불렀으나, 오 총병은 그의 말에 따르지 않고, 가속 및 영원위(寧遠衛)의 군졸과 백성들을 거느리고 굳게 산해관을 지키면서 청나라에 귀순하여 옛 임금[故主]047) 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하였다.
그러자 구왕(九王)이 거기서 온 관원에게 답서를 보내어, 그에게 땅을 떼어주어 왕으로 봉해줄 것을 허락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이틀에 갈 길을 하루로 단축해서 급히 전진하여, 21 일에 산해관을 당도하니, 적의 추장 이자성이 기병(騎兵)과 보병(步兵) 모두 20만의 군대를 거느렸는데, 숭정 황제의 태자 주자조(朱慈照)와 제이자(第二子), 제사자(第四子) 및 태원부 진왕(太原府晋王), 노안부 심왕(潞安府瀋王), 서안부 진왕(西安府秦王), 평량부 한왕(平涼府韓王)을 잡아 두고, 또 서덕왕(西德王)·양릉왕(襄陵王)·산음왕(山陰王) 및 오삼계의 아버지 오양(吳襄)을 진영 앞에 인질로 잡아 두고서 오삼계를 항복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삼계가 항복하지 않자, 적은 오삼계가 우리 나라에 망명해올까 염려하여, 위총병관(僞摠兵官) 당통(唐通)을 시켜 군졸 수백 명을 거느리고 일편석(一片石)048) 을 경유해 나가서 그 길을 차단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날 저물녘에 우리의 선봉군을 만나 1백여 명이 죽고, 당통은 밤중에 도망쳐 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오삼계가 관문을 열고 나와 항복하므로, 우리 군대가 관으로 들어가 적병과 마주하여 관문 앞에 진을 쳤는데, 범위가 북으로는 산에 이르고, 남으로는 바다에 이르렀다. 때마침 큰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자욱하게 날므로,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해도 서로 알아볼 수 없었다. 이때 적병은 바다 가까운 곳에 많이 있었으므로, 구왕은 바다를 향해 적을 맞아 싸웠고, 오 총병은 우측에 진을 치고서 군대를 내보냈는데, 큰 바람이 곧 그침으로써 불시에 적의 진영을 곧바로 돌격하여 적군을 패배시키고, 도망가는 적을 40여 리나 뒤쫓아가 격살하니, 쓰러진 시체가 들판에 그득하였다. 이때 명나라 진왕(晋王)이 우리에게 사로잡혔다. 지금은 신위 대장군 포병(神威大將軍砲兵) 및 오 총병의 기병과 보병을 거느린 대군(大軍)이 북경으로 전진하고 있기 때문에 유시한다."
하였다. 이때에 우리 나라는 명나라와 전혀 서로 통하지 못하던 터였으므로, 이 소식을 듣게 되자, 하천배들까지도 모두가 놀라며 눈물을 흘렸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184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淸國付勑書于譯官之出來者, 有曰:
四月十三日, 有明總兵官吳三桂, 差副將楊新、遊擊柯遇隆, 至軍請降言: "流賊已尅北京, 崇禎皇帝及后俱自縊。 賊酋(李志誠)〔李自成〕 , 三月二十三日卽位稱帝, 國號大順, 建元永昌。 屢差人招吳揔兵, 吳揔兵不從, 率家屬及寧遠兵民, 堅守山海關, 欲附淸國, 以報故主之仇。" 云。 九王答書付來官, 許以裂土封王, 遂兼程前進, 二十一日至山海, 賊酋(李志誠)〔李自成〕 , 領馬、步兵二十餘萬, 執崇禎太子朱慈照、竝其第二、第四子及太原府 晋王、潞安府 瀋王, 西安府 秦王、平凉府 韓王, 又有西德王、襄陵王、山陰王及吳三桂之父吳襄於陣前, 欲降三桂。 三桂不降, 賊恐奔投我國, 差僞摠兵官唐通, 率兵數百, 從一片石出, 要截其路。 是晩遇我前鋒, 殺死百餘, 唐通夜遁入關。 次日吳三桂開關出降, 我兵入關, 正値賊兵陣於關前, 北至山南至海。 時値大風, 塵土飛揚, 對面不相識。 而賊兵多近海, 九王向海迎敵, 吳揔兵隨右側布陣進兵, 大風卽止, 不意直抵賊營, 敗其兵, 追殺四十餘里, 橫屍遍野, 晋王被我所獲。 今大兵帶神威大將軍砲兵及吳揔兵馬、步兵前驅北京, 故諭。
是時, 我國與大明絶, 不得相通, 及聞此報, 雖輿臺下賤, 莫不驚駭隕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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