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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44권, 인조 21년 9월 26일 정사 1번째기사 1643년 명 숭정(崇禎) 16년

폐모론에 관한 대사간 유백증의 상소문

대사간 유백증(兪伯曾)이 소명(召命)에 응하지 않고 상소하기를,

"신은 다행히 좋은 시기를 만났으나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 임금을 만났으나 말세의 어지러움에 이르렀는데, 이미 목을 찌른 옹문(雍門)의 일054) 을 결행하지 못하고 강물에 투신한 굴원(屈原)의 일055) 도 본받지 못한 채 이제까지 구차하게 살고 있으니, 항상 스스로 격분하고 있습니다. 멸망의 재난이 조석에 임박하였고 전고에 없던 치욕은 만년을 두고도 씻어버리기 어려우니, 전하께서 설사 아들이 아버지를 직접 이은 임금으로써 이와 같은 꼴이 되었더라도 오히려 분하고 슬퍼 죽고 싶으실 터인데, 하물며 광해의 죄를 성토하고 들어와 대통을 이었음에도 그 치욕의 정도는 광해보다 백배나 되는 경우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는 혹 힘이 약하다는 것으로 돌릴 수 있으나 거의(擧義)는 본디 천륜을 바루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폐모론(廢母論)에 참여한 사람을 높여 쓰는 것은 그 누가 위협하고 압력을 가하여 그렇습니까. 이른바 힘이 약하다는 것은 토지가 작고 인민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그러나 수천리의 강토이므로 반드시 더 넓혀야 할 것은 없고 백여 만의 인민이므로 반드시 더 불릴 것은 없는데 이러고서도 시종 힘이 약한 것은 누구의 잘못입니까. 힘이 약하다고 말한 것으로 어찌 천하 후세의 책망을 면하겠습니까. 신은 천성이 본디 오활하고 어리석은데다 박력이 없으나 오직 나라를 걱정하고 세상을 분개하는 마음만은 깊이 뼈속에 박혀 아교와 옻칠처럼 떨어지지 않으니, 공사간에 슬픔과 분노가 쌓이고 쌓여 창자가 답답하고 쓸개가 꼬여져서 늙은이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노한 머리털이 꼿꼿이 섭니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해묵은 병이 어찌 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항상 생각하기를 ‘전하의 거의(擧義)는 하늘과 사람의 뜻에 순응하여 탕임금보다 빛이 있다. 마땅히 거의의 정기(正氣)가 우주에 충만하고 거의의 정론(正論)이 만년까지도 소멸되지 않은 뒤라야 나라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의리가 막히고 이륜(彝倫)056) 이 두절되어 난신 적자(亂臣賊子)가 장차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하였습니다. 거의한 초기에는 폐모론에 참여한 사람은 삼사(三司)의 청현직에 앉지 못하였습니다. 갑자년057) 에 지신사(知申事)가 된 자가 있었는데 그때 신이 간원의 관원으로 있으면서 여러 사람의 좌중에서 발론만하고 동료의 간청으로 인하여 논핵하지는 않았으나 그 사람은 나왔다가 도로 들어갔으며, 그 이후로 그 직임에 제수되었더라도 나오지 못하는 자가 속출하였습니다. 그뒤에 권세와 지위가 있는 자가 극력 그들을 감싸므로 마치 한 손으로 바닷물을 막는 것처럼 신의 힘으로는 막지 못하여 제방이 한번 터지자 다시는 막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폐모론을 예사롭게 보기 때문입니다.

아, 거의는 이 어떠한 일인데 폐모론을 이와 같이 예사로 본단 말입니까. 뭇 신하들은 혹시 예사로 보더라도 전하로서야 또한 어찌 예사로 보십니까. 이 때문에 사유(四維)가 펴지지 않고 삼강(三綱)이 서지 않아서 사람들이 다 임금을 버리고 의리를 뒤로 돌려 재리를 숭상하고 명절(名節)을 버렸으며 끝내는 만고에 없던 변을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하면, 폐모론에 참여한 사람도 또한 삼사(三司)와 태부(台府)058) 에 들어왔으니, 거의의 정기가 이미 다 없어지고 거의의 정론도 사라진 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전하께서 전일에 이 정기와 정론을 견지하셨으므로 조종의 자리에 앉게 되신 것인데 이제는 이 두 가지를 잃었으니 종사와 신민에 무슨 면목이 있겠습니까.

아, 전하께서 광해를 논죄한 것이 사실 한 가지 일이 아니나 그 잘못을 답습하는 것은 도리어 심함이 있고, 신하들이 간흉을 공격한 것 또한 한 가지 일이 아니나 끝없이 탐욕을 부리는 것은 거의 그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천재와 시변이 광해에 비하여 더욱 많고, 흉년이 드는 일이 광해에 비하여 더욱 심하고, 인심이 원망하고 능멸하는 일이 광해보다 더욱 깊으며, 세 차례의 병화는 광해에게는 없고 전하께서는 당하였으니, 장래의 환란이 필시 이 정도에서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다면 당초에 거의할 이유가 뭐가 있었겠습니까.

아, 지난날 삼창(三昌)이 【 광해 때 이이첨(李爾瞻)·유희분(柳希奮)·박승종(朴承宗)이 함께 권력을 잡았는데, 그들의 군호(君號)에 다 창(昌)자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삼창이라 불렀다.】 부귀로 인해 패하였으니 오늘날의 신하들이 이를 거울로 삼을 만합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경계하지 않으니, 국가가 불행해지면 제 몸도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며, 소유했던 황금과 비단을 병화에 많이 잃었으니 그 또한 많이 축적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징계할 만도 한데 뇌물을 받는 일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합니다. 신하들은 부귀를 많이 누리는데 전하만이 홀로 근심과 고통을 받고 계시니, 이는 곧 신이 가슴을 치고 병세가 더욱 심해지지 않을 수 없는 점입니다.

아, 전하의 전일로 보면 탕(湯)·무(武)059) 이시고 전하의 오늘로 보면 난(赧)·헌(獻)060) 이지만, 난(赧)·헌(獻)이 되는 소이를 버리고 탕(湯)·무(武)가 되는 소이로 나아가신다면 이 또한 ·인 것입니다. 아, 신이 비록 용렬하고 못났지만 이 세상에 뜻이 없는 것은 아니고 적막한 해변에서 말라 죽고 싶지는 않지만 질병이 이러하고 정신이 또한 이와 같이 쇠미하니, 장차 어찌 힘을 내어 반열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빈사 상태에 놓인 목숨으로 결코 소명에 응할 가망이 없으니, 체직하시어 정사의 체모를 중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허락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44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16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註 054]
    목을 찌른 옹문(雍門)의 일 : 옹문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열사인 옹문적(雍門狄)인데 월(越)나라 군사가 제나라를 침략하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니, 월나라 사람들이 그 의분에 감동하여 70리를 후퇴하였다고 한다. 《설원(說苑)》 입절(立節).
  • [註 055]
    강물에 투신한 굴원(屈原)의 일 : 전국 시대 초(楚)나라 대부(大夫) 굴원이 경양왕(頃襄王) 때 두 번째 참소를 받아 강남(江南)으로 귀양가 있다가 초나라의 정치가 극도로 부패하여 구제할 수 없음을 개탄한 나머지 5월 5일에 멱라강(汨羅江)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다 《사기(史記)》 권84 궐원전(屈原傳).
  • [註 056]
    이륜(彝倫) : 천·지·인의 상도(常道).
  • [註 057]
    갑자년 : 1624 인조 2.
  • [註 058]
    태부(台府) : 의정부.
  • [註 059]
    탕(湯)·무(武) : 폭군을 정벌하여 내쫓고 왕이 된 상 탕(商湯)과 주 무왕(周武王). 탕은 하걸(夏桀)을, 무왕은 상주(商紂)를 쳤는데, 인조가 폭군 광해를 내쫓고 왕이 되었으므로 한 말임.
  • [註 060]
    난(赧)·헌(獻) : 주(周)의 마지막 왕인 난왕과 한(漢)의 마지막 왕인 헌제. 난왕은 제후들과 연대하여 진(秦)을 공격하다가 진나라와 멸망당하였고, 헌제는 조비(曹丕)에게 쫓겨난 산양공(山陽公)이 되었음.

○丁巳/大司諫兪伯曾不赴召, 上疏曰:

臣幸叨際會, 而效蔑涓埃, 生逢, 而亂底叔季, 旣未決雍門之刎首, 又未效屈原之懷沙, 偸生至今, 常自扼惋。 滅亡之禍, 迫在朝夕, 無前之恥, 萬古難雪, 殿下設或以繼序之君, 致國事如此, 猶可憤惋欲死, 況聲罪光海, 入承大統, 而其可恥之甚, 則百倍於光海者乎? 雖然, 此則或可諉於力弱, 而擧義本爲正倫, 今之尊用廢論之人, 是誰威脅而敦迫之耶? 所謂力弱者, 以其土地之偏小, 人民之不足耶? 數千里之封疆, 不必改闢, 百餘萬之人民, 不必改聚, 如是而終始力弱者, 是誰之過耶? 力弱云者, 何以辭天下後世之責也? 臣性本迂拙, 加以弛緩, 而惟是憂國憤世之心, 銘肌刻骨, 有若膠漆而不可解。 以公以私, 悲憤積聚, 中腸鬱結, 斗膽輪囷, 老淚交頤, 怒髮衝冠。 宿恙到此, 烏得不添? 臣常以爲, 殿下之擧義, 應天順人, 于有光。 當使擧義正氣, 充塞宇宙; 擧義正論, 亘萬古而不泯, 然後可以爲國。 不然則義理晦塞, 彝倫斁絶, 亂臣賊子, 將接跡而起矣。 擧義初, 廢論之人不得爲三司淸顯。 甲子年有爲知申事者, 臣忝諫院, 發論於席上, 爲同僚所懇, 雖不論劾, 而其人旋出旋入。 自是以來, 除是職而不得出者, 相繼矣。 其後有勢位者, 極力扶護之, 臣之不得遏, 如以隻手障海, 隄防一決, 無人復障。 此, 無他, 歇看廢母之論故也。 嗚呼! 擧義爲何事, 而歇看廢論如是耶? 群臣雖或歇看, 殿下亦何以歇看耶? 以致四維不張, 三綱不立, 人皆遺君後義, 尙貨利而棄名節, 終至於値萬古所無之變。 廢論之人, 亦入於三司、台府, 擧義正氣, 掃之已盡; 擧義正論, 泯之已久矣。 殿下前日持此二者, 所以居祖宗之位也, 今則失此二者, 何面目於廟社、臣民乎? 嗚呼! 殿下之罪光海, 固非一事, 而蹈其覆轍, 則反有甚焉。 臣隣之攻奸兇, 亦非一事, 而貪饕無厭, 則殆無異焉。 是故, 天災、時變, 比光海尤多; 年歲凶歉, 比光海尤甚; 人心怨侮, 比光海尤極。 三度兵火, 光海之所無, 而殿下之所遘, 將來之患, 必不止此。 如此則初何庸擧義爲哉? 嗚呼! 曩日三昌 【光海時李爾瞻、柳希奮、朴承宗共執橫柄, 而君號皆有昌字, 故人謂之三昌。】 敗於富貴, 今日臣隣, 可以鑑之, 而尙不爲戒, 殊不知國家不幸, 則身亦難保, 所得金帛, 多失於兵火, 亦可以懲多積之無益, 而受賕黷貨, 愈往愈甚。 臣隣多享富貴, 而殿下獨受憂苦, 此, 愚臣之所以推胸, 賤疾之不能無添者也。 嗚呼! 以殿下前日觀之, 則也; 以殿下今日觀之, 則也。 去其所以爲者, 就其所以爲者, 則是亦也。 嗚呼! 臣雖庸下, 非無意於斯世, 非欲枯死於寂寞之濱, 而疾病如此, 衰敗如此, 將何以陳力就列? 濱死餘喘, 決無赴召之望, 乞賜鐫改, 以重政體。

上許之。


  • 【태백산사고본】 44책 44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16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