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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43권, 인조 20년 6월 12일 경술 1번째기사 1642년 명 숭정(崇禎) 15년

사찰의 종을 만들어 달라는 일인의 요청에 대한 완성 부원군 최명길의 차자문

완성 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은 요즈음 남쪽의 일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신은 평소에 ‘국가의 형세가 이미 전일과 다르니 적의 사정 또한 그에 따라 변하겠지만, 앞으로 신사(信使)가 갈 때 혹시 고압적인 예로 갑자기 협박을 가한다면 그에 대한 대비를 평소에 미리 강구해 두지 않은 터라서 갑작스레 수답할 때 난처한 단서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니, 우리의 정성과 신의를 쌓아 깊이 그들의 환심을 얻음으로써 행여나 부지불각 중에 재앙이 소멸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가강(家康)이 전쟁을 중지한 공덕을 양국(兩國)이 다 입었다는 것은 본디 그들이 항상 말하고 있는 일이며, 불법(佛法)을 존신(尊信)하는 것은 곧 그들의 국속(國俗)이니, 사찰의 종을 만들어 보내달라는 요청을 들어주어 사리를 아는 승려를 차견하여 우리 나라의 성의를 전달하고, 혹은 불공에 쓰는 물품을 가져가 가강을 위해 명복을 빌어줌과 동시에 자비(慈悲)의 뜻을 담은 교서(敎書)로 관백(關白)을 효유하는 것이 곧 형세를 따라 잘 유도해가는 계책입니다. 옛날에는 종정(鍾鼎)에 반드시 명(銘)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종을 주조할 때 문사(文士) 중에 불경을 잘 아는 자로 하여금 서명(叙銘)을 짓게 하되 불경의 말을 많이 사용하여 가강의 공덕을 추켜세워 기술하게 함으로써 이웃 나라를 감동시키는 것도 충분히 하나의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관례로 보내는 신사의 시기가 몇 년 남지 않았으므로 지금 특별히 보낼 것은 없으나 저들이 굳이 요청하였으니, 사실 그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승려가 그곳에 가서 형세를 살펴보고 일을 잘 주선한다면 혹시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은 쉽지 않더라도 그쪽의 정황을 탐색할 수는 있을 것이니, 일이 발생하기 전에 그 대비책을 생각해 두는 것이 갑자기 일에 봉착하여 수족을 놀리지 못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신은 그전부터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때마침 정태화(鄭太和)가 신을 찾아왔기에 서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 일을 언급했었습니다. 집에서의 사담(私談)이 남의 입을 거쳐 상께 진달되었으니, 미안한 마음이 더욱 간절합니다."

하였는데, 비국이 회계하기를,

"승려를 들여 보내는 일은 이미 계품하였으며, 가강을 위해 명복을 빌어 주고 종을 주조할 때 서명(叙銘)을 지어 넣는 등의 일은 저들의 뜻을 감동시키는 데 사실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니, 해조로 하여금 품지하여 거행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133면
  • 【분류】
    외교-왜(倭) / 사상-불교(佛敎)

    ○庚戌/完城府院君 崔鳴吉箚曰:

    臣於近日南事, 竊不勝過慮。 嘗以爲, 國家形勢旣異前日, 則敵情亦隨而變。 前頭信使之行, 如或以過尊之禮, 遽加迫脅, 則事非素講, 倉卒酬應之際, 難處之端, 未必不由此而始。 積我誠信, 深得其歡心, 冀或消禍於冥冥者, 乃臣之意也。 家康息兵之功, 兩國是賴, 自是彼中所常言, 而尊信佛法, 乃其國俗。 因其寺鍾之請, 差遣解事之僧, 導達我國, 誠意或齎, 持供佛之具, 爲家康薦福, 仍以慈悲之敎, 諷諭關白, 此乃因勢而利導之術也。 古者鍾鼎必有銘, 今此鑄鍾時, 誠使文士之通曉佛經者, 作爲敍銘, 多用佛語, 褒述家康功德, 以感動隣邦者, 亦足爲一助也。 例遣信使之期, 只隔數年, 今不必又復別遣, 而彼旣强請, 固不得不從。 倘於僧人之往, 觀勢周旋, 或得遷延時月, 亦可探察情形, 先事而思其與, 卒然撞着, 手脚無所措者, 或有間矣。 臣曾有此意, 適因鄭太和來見, 語次及之矣。 屋下私談, 被人轉達, 尤切未安。" 備局回啓曰: "僧人之入送, 旣已啓稟, 爲家康薦福及鑄鍾時敍銘等事, 其於感動彼意, 果不爲無助, 宜令該曹, 稟旨擧行。"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133면
    • 【분류】
      외교-왜(倭)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