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광산 사당이 준공되자, 왜차가 와서 편액과 시문을 청하다
일본국의 일광산(日光山) 사당(社堂)이 준공되자, 왜차(倭差)가 와서 편액(扁額)과 시문(詩文)을 청하므로 조정이 허락하였다. 전에 도주(島主) 평의성(平義成)이 평행성(平幸成)011) 을 보내 말하기를,
"일광산에 가강(家康)의 묘당(廟堂)이 있으므로 그 묘당 뒤쪽에다 사당(社堂)을 건립하였는데, 기둥과 들보와 사방의 벽을 모두 대리석으로 꾸며 호화롭기가 그지없습니다. 국왕의 어필(御筆)과 시문을 얻어 천추만대에 전해줄 보물로 삼고자 합니다."
하고, 또 종(鍾)과 서명(序銘)을 구하였는데, 접위관(接慰官) 이태운(李泰運)이 이 사실을 계문하였다. 상이 묘당에 의논하여 선조(先朝)의 왕자 의창군(義昌君) 이광(李珖)012) 에게 일광정계(日光淨界)라는 큰 네 글자의 편액을 쓰게 하고 또 종을 주조하여 보내게 하였는데, 이명한(李明漢)이 서(序)를 짓고 이식(李植)이 명(銘)을 짓고 오준(吳竣)이 글씨를 썼다. 또 시문을 제술할 사람을 뽑았는데, 김류(金瑬)·최명길(崔鳴吉)·이식·홍서봉(洪瑞鳳)·이명한·이성구(李聖求)·이경전(李慶全)·신익성(申翊聖)·심기원(沈器遠)·김시국(金蓍國) 등이 참여하였다. 상이 대제학 이명한으로 하여금 먼저 칠언율(七言律) 한 수를 짓고 뽑힌 신하들에게 그에 화답하게 하였으며, 또 명한에게 오언 배율(五言排律)을 더 지어 이웃 나라로서 영광으로 생각하는 소지로 삼게 하였다. 김류는 그의 아버지 김여물(金汝岉)이 임진 왜란에 죽었기 때문에 사양하고 짓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130면
- 【분류】외교-왜(倭)
○日本國 日光山社堂成, 倭差來請扁額及詩文, 朝廷許之。 初, 島主平義成送差平幸成言曰: "日光山有家康廟堂, 堂後創立社堂, 棟樑、四壁, 皆以石玲瓏飾之, 華侈無比。 願得國王御筆及詩文, 以爲萬代流傳之寶。" 且求撞鐘及序銘, 接慰官李泰運以此啓聞, 上議于廟堂, 命先朝王子義昌君 珖, 寫扁額日光凈界四大字, 且令鑄鐘以送之, 李明漢作序, 李植作銘, 吳竣書之。 又抄詩文製述人, 金瑬、崔鳴吉、李植、洪瑞鳳、李明漢、李聖求、李慶全、申翊聖、沈器遠、金蓍國等預焉。 上令大提學李明漢, 先製七言律一首, 被抄諸臣和之, 令明漢加製五言排律, 以爲隣國榮耀之地。 瑬以父汝岉死於倭亂, 辭不製。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130면
- 【분류】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