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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43권, 인조 20년 2월 2일 임인 2번째기사 1642년 명 숭정(崇禎) 15년

국가의 기강, 국경의 수비, 인심의 이반, 상벌 시행에 관한 정언 하진의 상소문

정언 하진(河溍)이 상소하기를,

"기강은 국가에 있어서 사람에게 원기가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그 힘에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원기가 빠져버리면 사지에 맥이 풀리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심복(心腹)이 보존될 수가 없고, 기강이 무너져 버리면 백관이 태만해지고 온갖 간교한 일이 빚어져 정령(政令)이 시행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오늘날의 기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로 대신에서부터 저 아래 서료(庶僚)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 몸과 제 처자를 보존하는 것을 상책으로 삼고, 국가를 위해서는 한푼의 심력(心力)도 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평소 태평할 때는 굶주린 호랑이가 고기를 보듯 앞다투어 이록(利祿)을 추구하고, 한번 사변을 만나면 도망치는 산토끼가 그물을 벗어나듯이 서로 안전과 편함만을 도모하려 합니다. 더 심한 자는 적에게 아첨을 부리고 공공연히 뇌물을 주어 험한 곳을 피하려고까지 합니다.

전에 신경호(申景琥)는 주사(舟師)의 부장(副將)을 싫어하여 정역(鄭譯)의 힘을 빌어 체직되었고, 뒤에 이민수(李敏樹)는 의주 부윤(義州府尹)을 위태롭게 여겨 또 정역의 힘을 빌어 파직되었습니다. 온 나라 사람이 정역을 보기를 미친 개가 주인을 물어뜯는 것보다 더 밉게 보아 모두 분노와 증오심을 품고서 그의 살점을 씹어먹고 그의 가죽을 깔고 자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는데, 이 무리들은 나라의 후한 녹을 먹고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오히려 그런 일을 달갑게 여기고 원수에게 애걸하여 자기의 사사로운 계책을 이루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이는 모두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 것을 알고서 아예 두려워하거나 거리낌이 없는 것으로서, 그 죄는 복주시키더라도 시원치 않습니다. 이러한 일은 항간의 아이들이나 부녀자도 모두 환히 알고 분해 하며 욕하고 있는데, 유독 전하께서만 듣지 못하셨습니다. 전하의 기강이 이와 같으니, 비록 한번 무슨 일을 해보고 싶더라도 어찌 호령하여 상하를 유지하겠습니까. 말이 이에 이르니 저도 모르게 통곡하게 됩니다.

나라는 하루라도 지키는 일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성인도 군병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태평한 때라도 오히려 그 힘을 키우는 법인데, 위태롭고 어지러운 날에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요즈음 묘당은 군사 문제 말하기를 꺼려하여 수비가 말이 아니고 변방이 텅 비었으니, 이는 마치 천금나가는 구슬을 밤중에 길거리에다 버려두고 간수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나라의 꼴을 보는 자들이 모두 한심해 합니다. 의논하는 자들은 오히려 있는 힘을 다해 저들을 섬기면 안전하여 걱정이 없을 것이나 군사를 훈련시키면 저들의 뜻을 거스릴 수도 있다고 하니, 아, 어찌 그다지도 생각이 못 미친단 말입니까. 우리 열성(列聖)들께서는, 덕을 밝히고 소국을 돌보아 땅처럼 길러주고 하늘처럼 감싸주는 황명(皇明)의 시기를 만나 수천리 강토가 마치 어린애가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믿고 두려워할 것이 없었습니다. 안으로는 서울을 강하게 하고 밖으로는 변방을 튼튼하게 하여, 성을 쌓고 진(鎭)을 설치하며 장수를 선발하고 군병을 양성하는 일을 당장에 위급한 일이 닥친 것처럼 서둘렀으니, 이는 참으로 황급한 변란은 뜻밖에 터지는 것이어서 사전의 대비를 미리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밖의 적이 기승을 부리고 나라 안의 걱정거리가 많은 때로서, 백성에게 징수할 것은 끝이 없으나 재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지나간 일이야 그런대로 넘겼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어떻게 끌어갈 것입니까. 호랑이의 본성은 사람을 씹어먹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니, 그들이 잠시 한입에 삼켜버릴 심산을 멈추고 잡았다 놓았다 하는 술수를 보이는 것이 어찌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여 그런 것이겠습니까. 지금 대국과 서로 버티고 있어 힘을 쓸 틈이 없으나 으르렁거리며 동국을 씹어삼킬 뜻은 진정 잠시라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백성도 담장을 튼튼히 하여 도적에 대비하고 새짐승도 발톱과 어금니를 지녀 제몸을 지키는데, 더구나 당당한 천승(千乘)의 나라로서 어찌 손을 묶어두고 편안히 앉아 외국의 침략을 기다린단 말입니까. 과거 임진년에 왜구가 침입하여 한 구석 용만(龍灣)이 겨우 남았으나 부모의 나라와 매우 가깝기 때문에 마침내 패배를 돌려 공을 세우고 거의 멸망한 나라를 다시 찾았는데, 지금 승냥이와 이리가 길을 막아 천일(天日)이 바다 너머에 있다 하더라도 청나라를 협조하고 명나라를 배반하여 공물을 바치지 않는 정도만이 아니니, 하루아침에 천심이 노하여 화변(禍變)이 갑자기 생긴다면 전하께서는 공허한 나라만 앉아 지키는 상황에서 누구를 붙잡겠습니까. 말이 여기에 이르니 자신도 모르게 통곡이 터집니다.

흥망의 갈림길은 인심의 이합(離合)에 달려 있으니, 인심이 단단하게 맺어지면 위태로움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어지러움을 다스려지게 할 수 있으나, 인심이 무너지면 위태로운 것이 더욱 위태로워지고 어지러운 것이 더욱 어지러워지는 것이니, 이는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역대의 흥망이 서책에 분명히 실려 있으므로 전하께서 사실 이미 그 이치를 통촉하셨겠지만, 오늘날 인심을 잃은 것이 또한 많습니다. 변란을 겪은 뒤로 수재와 한재가 겹쳐 기근이 계속되면서 떠돌아다니다가 굶어죽은 자가 널려 있는데도 은덕은 내리지 않고 부역은 날이 갈수록 무거워집니다. 그리하여 가렴주구하는 자는 나라에 충성한다고 하고 사랑으로 돌보는 자는 백성과 한패거리라고 말하여 백성과 나라를 갈라 둘로 만들었습니다. 나라와 백성 관계는 털과 가죽의 관계와 같으니, 가죽이 없어지면 털이 어디에 붙어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고서도 백성에게 위를 떠받들기를 바란다면 어려운 일입니다.

사로잡혀 간 사람이 고향이 그리워서 산넘고 물건너 천신만고 끝에 도망해 돌아와 그 부모 처자를 만나는데 슬픈 마음으로 위로하는 소리가 채 멎기도 전에 잡아 보내는 일이 곧 뒤따릅니다. 그런데도 죽음을 아끼지 않고 부모가 계시는 나라라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하고 서로 뒤를 이어 돌아오는데, 압록강가에 당도하면 변방의 장수는 국법을 꺼리고 그곳에 사는 백성들은 죄를 받을까 두려워서 주야로 막고 지키면서 그들이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 이들은 강가에서 통곡하며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죽거나 목을 매어 죽거나 혹은 굶어서 죽기도 합니다. 이리하여 창성(昌城)과 삭주(朔州) 지방의 강줄기 위아래에 백골이 널려 있으니, 이를 보고 들은 사람이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으며, 그 부모와 처자들이 길거리에서 소리쳐 통곡하며 가슴이 막혀 허둥대는 모습을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는 대개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오히려 핑계를 댈 만하지만, 기미년에 요동으로 건너가고 정묘년에 잡혀가고 병자년에 전사한 자들에 있어서는, 군안(軍案)을 상고해 보면 이러한 유가 태반이나 되는데도 조정에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궐포(闕布)를 그의 부형이나 이웃·친족에게 징수하여 그들로 하여금 도저히 살아가지 못하게 하여,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므로 열 집 가운데 아홉 집은 비어 있습니다. 신은 일찍이 기성(騎省)005) 에 있을 때 그 문부(文簿)를 열람해 보니 해서(海西)가 가장 심하였으며, 여정포(餘丁布)도 매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점은 생각지 않고 이름을 지적하여 독촉해 받아들이므로 수령은 어디에 손을 댈 곳이 없어 거주민에게 분담시켜 징수합니다. 지금과 같은 때의 생민은 응당 내야 할 구실도 오히려 제대로 내지 못할 판인데, 더구나 이처럼 함부로 침해해서야 되겠습니까.

한 자의 땅이 임금의 땅 아님이 없고 한 사람의 백성이 임금의 백성 아님이 없는데, 수어(守禦)·총융(摠戎)·충훈(忠勳) 등 각 아문이 사적으로 농장을 두어 백성의 전답을 넓게 차지하고서 신역을 피한 인부들을 불러모아 그 신역을 면제하고 그 구실을 감해 주고 있으니, 거기에서 거두어 들인 것은 조금도 나라의 재정에는 도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전답을 개간한 지가 오래되면 마땅히 본디 주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인데도 계속 허락하지 않고 있으니, 이는 바로 혼조(昏朝) 때 권세가가 백성의 재물과 전답을 수탈하고 점유하던 버릇입니다. 선을 앞장서서 행해야할 성균관에서도 또한 그런 짓을 하고 있으니, 더욱 가슴아픕니다. 요즘에는 또 하나의 명목을 새로 만들어 지리산 이십삼봉 별장(智異山二十三峯別將)이라 칭하고 승녀와 무당까지도 다 신포(身布)를 걷고 산골짜기 화전(火田)도 일체 구실을 징수하니, 이 어찌 성세(盛世)의 일입니까.

대체로 이 몇 가지 일은 인심을 잃는 것 중에서도 큰 것인데, 한 사람도 전하를 위해 이를 말하는 자가 없으니, 구중궁궐 깊숙이 계신 전하께서 무슨 수로 아시겠습니까. 마을마다 원성이 하늘에 사무치고 도로 위에 울부짖는 소리가 해에까지 비등하여 마치 세차게 흐르는 강물이 사방으로 터져 출렁거리고 줄어들지 않는 것과 같은데, 전하께서는 이러한 인심으로 이러한 위급한 때를 당하여 장차 누구와 더불어 임금 노릇을 하시겠습니까. 말이 여기에 이르니 저도 모르게 통곡하게 됩니다.

상벌은 군주의 큰 권한으로서, 제대로 시행하면 한 사람을 상주더라도 천만인이 권장되고 한 사람을 벌주더라도 천만인이 징계되는 것이지만,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다면 일체 이와 상반되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세 신하가 국사를 논한 것이 시세를 헤아리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런 점은 있긴 하나, 당당한 논조와 충직한 정성은 청사(靑史)에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노모와 처자들이 고독하고 미약하여 의지할 데가 없는데도 나라에서 물품을 대주는 일이 계속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온(鄭蘊)의 충직은 옛날에도 그 유례가 드문 것으로, 임금을 따라 국난에 앞장서서 더욱 그의 충성심이 드러났습니다. 비록 물러나 집안에 있기는 하였으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죽을 때까지 독실하였는데, 뜻을 품고 땅속으로 들어간 뒤에 나라에서 부의를 내렸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이것이 어찌 신하를 권장하는 일이 되겠습니까.

김자점(金自點)은 원수(元帥)가 되어 손안에 병권을 쥐고서 군부(君父)로 하여금 궁지에 몰려 도성을 떠나게 하고 나라의 형세를 위태롭게 만들었으므로 그 죄는 하늘에까지 사무쳐 만번 죽어도 속죄하기 어려울 판인데, 전하께서는 그 목숨을 용서하여 귀양보내는 벌만 약간 보이셨을 뿐이며, 그 뒤에 몇 년이 채 안 되어 도리어 크게 등용하시어 사마(司馬)006) 의 장관 자리를 주셨습니다. 대체로 사마의 장관은 책임이 극히 무거운 자리로서 명망이 걸맞지 않으면 앉을 수 없고, 공론이 찬동하지 않으면 앉을 수 없고, 공로가 드러나지 않으면 앉을 수 없고, 장사(將士)가 따르지 않으면 앉을 수 없는 것인데, 자점이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그 자리에 앉는단 말입니까. 명망으로 말하면 묘당이 천거하지 않은 바이고, 공론으로 말하면 온 나라가 다 분개하여 미워하는 바이며, 적을 놓아주고 임금을 버렸으니 공로가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인심을 많이 잃었으니 장사의 마음을 얻었다고 말할 수 없는데 전하께서는 무엇을 취하여 서슴없이 발탁해 쓰셨습니까. 비유하자면 이미 시험해 본 범상한 의원과 같아서 나중에 아무리 화타(華佗)편작(扁鵲) 같은 신묘한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그를 업신여기고 업신여기면 그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 이러한데도 장수들을 호령하고 인물을 진퇴시킬 수 있겠습니까.

자점처럼 중대한 죄를 진 자를 높여 총애하고 중책을 맡겼으니, 죽은 자가 지각이 있다면 장신(張紳)김경징(金慶徵)의 혼령이 반드시 지하에서 통곡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신하를 징계하는 일이 되겠습니까. 인심이 이로 말미암아 분개하고 사졸은 이로 말미암아 원망하여 배반하는데, 전하께서는 미약한 한 몸으로 외로이 위에 서서 그 누구와 함께 나라를 꾸려가겠습니까. 아, 네 가지 폐단 가운데 하나만 있더라도 충분히 나라가 위태롭고 멸망할 것인데, 더구나 모두를 갖추고 있는 경우이겠습니까.

신이 삼가 보건대 전하의 나라는 새알을 포개놓은 것보다 위태롭고, 불타는 집의 제비 둥지보다 다급하여 재난이 조석간에 닥칠 상황으로서 마치 만 길 높이의 썩은 나무가 회오리 바람 속에 서 있는 것과 같은데도 전하께서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계실 뿐입니다. 전하께서는 총명하고 슬기로운 자질과 성스럽고 밝으신 바탕으로 고금의 흥성과 패망을 환히 꿰뚫어 보시는데 어찌 이를 일찍이 보지 못하셨겠습니까. 그런데도 어찌 깊은 궁궐에서 침묵을 지키고 이런 때에 한 가지도 계책을 세우는 일이 없으십니까.

옛날의 성왕들은 정치가 안정되고 공적이 드러난 때에도 오히려 신하들을 맞아 접견하고 계책을 살펴 받아들여 감히 잠시라도 스스로 편안히 있지 않았는데, 더구나 걱정되고 위태로운 때이겠습니까. 전하께서는 경연에 드물게 납신 지가 이제 몇 년째입니다. 구중궁궐이 하늘같이 높고 내전이 멀어 천리나 되므로, 비록 존귀한 대신과 친근한 관원이라도 오히려 나아가 뵙는 일이 드문데, 소원한 신하로서야 다시 어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위급한 형세가 임금 앞에 아뢰어지지 않고 충직한 말이 아래에서 다 올려지지 않아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나 모두 가슴아프게 여기는 네 가지 폐단007) 같은 것도 전하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 경연을 설치한 것은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조강을 하고 주강을 하고 석강을 하고 야대(夜對)를 하는 것은 대체로 임금의 덕을 보도하고 조정의 정사를 강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연방(延訪)할 때에 잘잘못을 상고해 볼 수 있고, 임금의 물음에 따라 대답하는 사이에 충성과 간사함을 가려낼 수 있고, 토론하고 담화하는 것으로 지혜를 넓힐 수 있고, 드나들며 움직이는 것으로 지기(志氣)를 통창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려가 이미 안정되고 덕업(德業)이 차츰 진보하면 태만한 마음이 끼어들 틈이 없고 경외하고 삼가하는 뜻이 사라지는 때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옥당의 여러 관원들이 정원수만 채우고 대낮의 맑은 창가에 마주 앉아 한가로이 졸면서 모두 오랫동안 천안을 뵙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고 있는데, 전하께서 항상 가까이하는 자는 환관과 궁첩이며, 항상 귀에 들으시는 것은 잡스럽고 비루한 말들이니, 조정 정사의 잘잘못을 무엇을 통해 알고 민생의 고통을 무엇을 통해 아시겠습니까. 그리하여 성덕(聖德)이 날로 낮아지고 성지(聖志)가 날로 태만해지며, 정신과 심려가 또 따라서 막히신 것입니다. 고질적인 폐단이 더욱 불어나고 나라의 형세가 더욱 위태로워지는 것이 이상할 게 없으며, 옥후(玉候)가 미령하신 지 여러 해가 지나도 완쾌되지 않으시는 것이 신의 생각에는 쌓인 피로가 병이 되거나 깊은 시름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삼가 원컨대 전하께서는 깊은 궁궐을 편안하게 여기시거나 옥후가 미령한 것을 걱정하지 마시고 유신들을 맞아 접견하기를 한결같이 고사대로 하시어, 편전(便殿)이나 혹은 침각(寢閣)에서 옛날의 역사를 강론하고 사무를 널리 묻고 심지를 가다듬고 다스리는 도를 힘써 강구하소서. 이와 같이 하시면 크게는 이완된 조정 정사와 작게는 민간의 고통이 모두 임금 앞에 개진되어, 기강을 정돈할 수 있고 수비를 공고히 할 수 있으며, 인심은 저절로 단결되고 상벌은 저절로 밝아질 것이니, 위태로움을 돌려 편안하게 하는 전기가 오로지 여기에 달려 있다 하겠습니다."

하였는데, 답을 내리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3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128면
  • 【분류】
    농업-전제(田制) / 왕실-경연(經筵)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인사-임면(任免) / 구휼(救恤)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외교-야(野) / 호구-이동(移動) / 재정-잡세(雜稅)

  • [註 005]
    기성(騎省) : 병조.
  • [註 006]
    사마(司馬) : 병조의 별칭.
  • [註 007]
    네 가지 폐단 : 하진(河溍)이 본 상소에서 언급한,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국경의 수비가 허술하고, 인심이 흩어지고, 상벌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이다.

○正言河溍上疏曰:

紀綱之於國家, 猶人之有元氣, 所恃而存者也。 元氣旣敗, 則四體委頓, 轉運不應, 而心腹無所保; 紀綱旣壞, 則百隷解惰, 奸巧百出, 而政令無所施。 殿下以今日立紀綱爲何如耶? 上自大臣, 下至庶僚, 皆以全軀保妻子爲上, 無肯爲國家費一分心力, 平居無事, 則競趨利祿, 如餓虎之視肉; 一遇事變, 則爭占安便, 如奔兎之脫網。 甚者至於諂媚敵人, 公行賄賂, 求免險地。 前之申景琥以舟師副將爲憚, 則因鄭譯而得遞; 後之李敏樹義州府尹爲危, 則又因鄭譯而獲罷。 國人之視鄭譯, 不啻如國猘之反噬, 咸懷憤嫉, 恨不得食其肉, 寢其皮, 而此輦乃以食厚祿, 居重任之人, 顧爲之甘心, 乞憐於仇敵之手, 遂其私計, 而略不愧恥, 此皆知國綱之蕩然, 而曾無所畏忌也, 其罪可勝誅哉? 里巷孺婦莫不洞知而憤罵, 獨殿下未之聞也。 殿下之紀綱如此, 則雖欲一有所爲, 其何以發號行令, 維持上下哉? 言之至此, 不覺痛哭。 國不可一日無衛, 故聖人不能去兵。 亨豫之時, 猶且張皇, 危亂之日, 當復如何? 而近日廟堂, 諱言兵事, 備禦板蕩, 邊圉空虛, 是猶千金之璧, 暮夜棄之街衢, 而無人看守, 觀者莫不寒心。 議者乃謂, 竭力事彼, 可保無虞, 而訓師鍊兵, 或逆彼意, 嗚呼! 何其不思之甚也? 惟我列聖, 際會皇明, 明德恤小, 地育天涵, 數千里封域, 如赤子之在慈母懷中, 恃以無恐, 而內壯京師, 外固藩屛, 築城設鎭, 選將養兵, 汲汲如目前之有急, 誠以倉卒之變, 出於念慮之外, 而陰雨之備, 不可不豫也。 矧今外敵方張, 內憂方殷, 徵求無已, 財力有限。 旣往猶可彌縫, 此後何以繼之? 虎狼之性, 不噬則不已, 其所以暫戢竝呑之謀, 示以操縱之術者, 豈眞愛我而然哉? 方讎大邦, 力有不暇, 而狺然東噬之志, 固未嘗須臾忘也。 愚氓且固垣墻以備盜, 鳥獸且有(瓜牙)〔爪牙〕 以衛身, 況於堂堂千乘之國, 而其可束手安坐, 以待外侮乎? 往在壬辰, 海寇豕突, 而一隅龍灣, 父母孔邇, 故卒乃轉敗爲功, 有國無之, 今者豺狼塞路, 天日隔海, 而助虐犯順, 不但包茅之不貢, 則一朝天意不測, 禍變忽生, 殿下坐守空國, 尙誰扳乎? 言之至此, 不覺痛哭。 興亡之機, 在於人心離合, 人心固結, 則危可使安, 亂可使治; 人心橫潰, 則危者益危, 亂者愈亂, 此必然之理也。 歷代興亡, 昭在方策, 殿下固已洞觀其機, 而今日之失人心, 亦已多矣。 喪亂之後, 加以水旱, 飢饉連仍, 流殍相望, 而仁恩不加, 賦役愈重。 [催]〔摧〕 剝聚斂者, 謂之忠於國; 慈祥撫恤者, 謂之黨於民, 判民國而二之。 國之於民, 猶毛之於皮, 皮之旣盡, 毛將安傅? 如此而望民之愛戴於上, 難矣。 被俘之人, 思念鄕土, 逾越山谷, 百計逃還, 尋其父母妻子, 悲慰之聲未絶, 刷送之擧旋迫, 而猶不惜死, 以父母之國爲必可還, 相繼來歸, 至于鴨綠江邊, 則邊帥畏禁, 居氓懼罪, 晝夜拒守, 使不得渡。 此輩痛哭江岸, 進退無所, 或投江而死, 或結項而死, 或飢餓而死。 綠江上下, 白骨相枕, 凡在瞻聆, 莫不隕涕, 爲其父母妻子者, 其行號巷哭, 皇皇抑塞之狀, 尙忍言哉? 然此則蓋有所拘, 猶可諉也。 至於己未渡, 丁卯被虜, 丙子戰亡者, 考諸軍案, 此類太半, 而朝廷不惟不加之憐恤, 反徵闕布於其父兄、隣族, 使之不復聊生, 流移轉徙, 十室九空。 臣曾忝騎省, 閱其文簿, 海西尤甚, 餘丁之布, 亦甚無謂。 不此之思, 點名督納, 守令無處着手, 分徵居民。 此時生靈, 其所應賦, 尙且不給, 況此橫侵乎? 尺土莫非王土, 一民莫非王民, 守禦、摠戎、忠勳各衙門, 私置農所, 廣占民田, 召集逃役之人丁, 復其役, 減其賦, 而其所收入, 一毫無補於國。 且墾田旣久, 則所當還諸本主, 而因以不許此, 乃昏朝權勢攘奪橫占之遺習也。 以成均館首善之地, 亦且爲之, 尤可痛也。 近者又創一名, 稱以智異山二十三峯別將, 僧尼、巫覡, 盡爲收布, 山谷火田, 一切刷徵, 此豈盛世之事哉? 凡此數者, 皆失人心之大者, 而無一人爲殿下言之, 殿下深居九重, 安得而知之? 閭巷之間, 怨讟徹天; 道路之上, 號呼沸日, 如水之橫流四決, 渙渙無所底止, 殿下以此人心, 當此危急, 將誰與爲君哉? 言之至此, 不覺痛哭。 賞罰, 人君之大柄也。 施得其宜, 則賞一人而千萬人勸, 罰一人而千萬人懲, 施不得其宜, 則一切反是, 不可不愼也。 噫! 三臣論事, 謂之不量時勢則有之, 而堂堂之論, 忠直之誠, 靑史無愧。 今其老母、妻子, 伶仃淪替, 無所依歸, 而餽遺不繼。 鄭蘊忠直, 在古猶罕, 從君急難, 益著忠憤。 雖退而在家, 耿耿寸心, 至死愈篤, 而齎志入地之後, 恩賻無聞, 此何以爲人臣之勸哉? 金自點身爲元帥, 手握重兵, 使君父窘於去國, 國勢阽於顚危, 罪通于天, 萬死難贖。 殿下貸其首領, 薄示竄罰, 曾未數年, 反加寵用, 畀以司馬之長。 夫司馬之長, 責任極重, 名望不稱, 則不可以居; 公議不與, 則不可以居; 勳勞未著, 則不可以居; 將士不附, 則不可以居。 自點果是何人, 而敢居之哉? 以言乎名望, 則廟堂之所不擧擬; 以言乎公論, 則一國之所共憤疾, 縱賊遺君, 則不可謂之有勳勞也; 積失人心, 則不可謂之得士心也, 殿下何所取而擢用之不疑也? 譬如已試之庸醫, 後雖有妙術, 人不信也。 不信則慢易之, 慢易則不從其言, 如此而可以號令諸將, 進退人物乎? 以自點之罪之重, 而尊寵而重任之, 則死者有知, 張紳金慶徵之遺魂, 必且號咷於泉壤之下矣。 何以爲人臣之懲哉? 人心由此而憤惋, 士卒由此而怨叛, 殿下以眇然一身, 孤立於上, 誰與爲國? 嗚呼! 四者之弊, 有一於此, 足以危亡, 況於俱備者乎? 臣竊見, 殿下之國危於累卵, 急於焚宇, 禍敗之至, 迫在朝夕, 如萬丈朽木, 立於衝颷之中, 而殿下未之覺耳。 以殿下聰睿之資, 聖哲之質, 洞覽古今之興廢, 豈不早見乎此, 而何其拱默深宮, 無一猷爲於其間乎? 古昔聖王, 當治定績熙之日, 尙猶延接臣僚, 察納謨猷, 不敢晷刻自安, 況於憂危之際乎? 殿下之罕御經筵, 今幾年矣。 九重如天, 堂陛千里, 雖以貴大之臣、親密之僚, 猶罕進見, 踈外之臣, 復何望乎? 所以危亡之形, 不陳於前; 忠讜之言, 不盡於下, 而至於愚智之所共憫痛, 如四弊者, 亦不得聞於殿下之耳也。 噫! 經筵之設, 豈偶然哉? 其以朝講焉, 晝講焉, 夕講焉, 夜對焉, 蓋爲輔導君德也, 講究朝政也。 延訪之際, 可以考見得失; 承對之間, 可以辨別忠佞; 討論談話, 可以開廣聰明; 出入起居, 可以宣暢志氣。 思慮旣定, 德業漸進, 怠慢之心, 無自以或入; 敬謹之志, 無時而或息矣。 今也玉堂群僚, 徒備員數, 白日晴窓, 相對閑睡, 皆以久隔天顔爲恨, 而殿下之所常親者, 宦官、宮妾; 所常聞者, 冗雜鄙瑣, 朝政之得失, 何自以知; 生民之疾苦, 何自以知? 聖德日卑, 聖志日怠, 而精神心慮, 又從而滯鬱。 無惑乎痼弊之益滋, 國勢之益危, 而玉候靡寧, 經年未快者, 臣恐不獨爲積勞所感, 沈憂所發也。 伏願殿下, 毋以深宮爲安, 毋以愆候爲念, 晉接儒臣, 一遵故事, 或於便殿, 或於寢閤, 講討古昔, 博問事務, 策勵心志, 勉强治道。 如此則大而朝政之廢弛, 小而民間之疾苦, 靡不畢陳於前, 而紀綱可以整頓, 守備可以鞏固, 人心自結, 賞罰自明, 轉危爲安之機, 亶在於是矣。

不報。


  • 【태백산사고본】 43책 43권 3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128면
  • 【분류】
    농업-전제(田制) / 왕실-경연(經筵)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인사-임면(任免) / 구휼(救恤)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외교-야(野) / 호구-이동(移動) / 재정-잡세(雜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