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42권, 인조 19년 9월 21일 갑오 1번째기사
1641년 명 숭정(崇禎) 14년
명·청의 전투 상황과 아군의 피해 상황
대명(大明)의 군사가 청인과 싸워 전세가 불리하자 기병(騎兵)은 도주하여 송산보(松山堡)로 들어가고 보병은 배를 타고 도주하였는데, 영원(寧遠)과 행탑(杏塔) 등지에 죽은 자가 즐비하였다. 이 당시 조대수(祖大壽)가 금주에서 포위된 지 여러 달이 지남에 중국이 크게 군사를 조발하여 보내 구원하였는데, 군문(軍門) 홍승주(洪承疇)가 나이가 어리고 오만하여 여러 사람의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 패배하였다. 대수가 청국의 진영에 사람을 보내, 포위된 지 9개월이 되었으니 빨리 교전하여 승부를 가리자고 말하였으나 한(汗)이 들어주지 않았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전사한 자가 20여 인, 죽은 말이 열에 팔구이며, 소비한 군량이 3천 3백여 석, 화약은 9백 70여 근, 연환(鉛丸)은 5만 3천 2백여 개였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42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123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