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42권, 인조 19년 7월 12일 병술 1번째기사
1641년 명 숭정(崇禎) 14년
금주성의 전황
명나라 장수 조대수(祖大壽)가 그의 아우와 함께 금주성(錦州城)에 들어가 수비하였는데 청인(淸人)이 포위하였다. 조대수가 나성(羅城)을 잃자 항복했던 몽고(蒙古) 사람들을 의심하여 한인(漢人)을 시켜 감시하게 하였는데, 몽고인들이 성을 나가 투항하는 자가 매우 많았다. 중국 조정이 10만의 군대를 발동시켜 일곱 명의 총병(摠兵)이 거느리게 하여 금주성을 구원하게 하였다. 우진왕(右眞王)이 대대적으로 원병이 온다는 말을 듣고 우리 나라의 포수(砲手) 4백 명을 선봉으로 삼아 남산(南山)을 굳게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 군대를 두 대(隊)로 나누어 일대는 탑산(塔山)의 귀로를 방비하게 하고 일대는 금주로 들어오는 길을 차단하게 하였으며, 진중(陣中)에 기와집을 지어 오래 머무를 계획임을 보였다. 이때 우리 군대는 이미 여러 달을 노숙(露宿)하여 병들고 부상하지 않은 자가 없었고 죽는 자가 속출하였다. 조정에서 듣고 본도로 하여금 휼전(恤典)을 거행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42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121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전쟁(戰爭) / 군사-휼병(恤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