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관 홍희남이 대마 도주와 담화하다
역관(譯官) 홍희남(洪喜男)이 대마도로 가서 도주가 득남(得男)한 것을 축하하였다. 도주가 묻기를,
"귀국에서 난을 겪은 이후로 오랑캐와 국교를 맺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니, 홍희남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문한(文翰)을 숭상하고 예의를 따르며 병혁(兵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오랑캐들이 우리 나라가 생각지 않는 틈을 타서 철기(鐵騎)를 몰고 국도(國都)에까지 들어왔으므로 황급히 도성을 떠난 것이다. 그간의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전해 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니,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하였다. 도주가 말하기를,
"피차간에 사신이 자주 왕래하는가? 한 해에 보내는 물품은 얼마나 되는가?"
하니, 답하기를,
"교빙(交騁)하는 것일 뿐이다. 보내는 물건도 쌀이나 포목에 불과하며, 저들이 혹 요구해 오면 토산물을 가끔 보내줄 뿐이다."
하였다. 또 묻기를,
"부산에서 심양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하니, 답하기를,
"5천 리 남짓하다."
하였다. 또 묻기를,
"귀국의 세자와 왕자들이 심양에 인질로 나가 있다는데, 모두 별고 없는가? 오랑캐들이 우리들을 보러 오고자 한다는데, 그러한가?"
하니, 답하기를,
"동궁과 왕자가 심양에 가 있는 것은 진짜 인질로 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저들이 비록 화친을 맺었으나 항상 우리를 의심하고 있으므로 한번 성의를 보여 저들의 의심을 풀어주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오랑캐들이 남쪽으로 온다는 말은, 나는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
하였다. 또 묻기를,
"중원(中原)의 길이 끊어진 뒤로 신사(信使)를 통하지 못했는가? 중원은 천자의 나라이고 저 오랑캐들은 조무래기들이다. 어찌하여 서로 버티면서 오래도록 결정이 나지 않는가?"
하니, 답하기를,
"한번 요동의 길이 끊어진 다음부터는 해로(海路)를 경유하여 사신을 통하였다. 지금은 섬 안의 명나라 진(鎭)이 불행히도 모두 함락되어 사신을 보낼 길이 없다. 그러나 피차간에 때때로 소선(小船)이 왕래한다."
하였다. 도주가 말하기를,
"관백(關白)인 정상(政尙)은 준엄하고 집정(執政)들은 모두 뛰어나다. 처음 귀국이 침입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들 팔을 걷어붙였으며 시기를 틈타서 출병하자는 의논이 있었다. 내가 도모하여 일이 중지되었다. 그런데 관백은 항상 나를 의심하고 있으므로 현재 이곳에 근신(近臣)을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섬 안의 형세를 은밀히 살피고 겸하여 귀국의 사정도 정탐하게 하고 있다. 만약 귀국의 일을 일일이 관백에게 전보(轉報)한다면 반드시 일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오랑캐들이 남쪽으로 온다는 말을 그대가 비록 숨기고 있으나 내가 이미 분명하게 알고 있다. 혹 이런 일이 있더라도 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는 법이다. 부산성(釜山城)은 애초에 귀국에서 쌓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일본이 쌓은 것이다. 이제 관왜(館倭)로 하여금 성 안으로 옮겨 살게 하고 기계(器械)를 많이 갖추게 한다면 비록 의외의 변란이 있더라도 귀국과 더불어 기미를 살펴 주선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상책이 아니겠는가. 바란건대, 그대는 돌아가서 조정에 보고하여 이 말을 저버리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89면
- 【분류】외교-왜(倭) / 외교-야(野)
○譯官洪喜男如對馬島, 賀島主生男。 島主問曰: "貴國經亂之後, 與胡相通何也?" 喜男曰: "我國文翰是尙, 禮義是遵, 不喜用兵革。 故虜人乘我不意, 鐵騎長驅, 傳于國都, 蒼黃去邠。 多少說話, 想必傳聞, 不欲縷陳。" 島主曰: "彼此使价, 數相往來耶? 一歲所遺復幾許耶?" 答曰: "互聘而已。 所遺亦不過米、布, 彼或討索, 則隨地之産, 往往依副耳。" 又問: "自釜山至瀋陽, 道里幾許?" 答曰: "五千里有餘矣。" 又問曰: "貴國世子、王子, 出質于瀋, 皆能無恙乎? 虜人將欲來見我人云, 然耶?" 答曰: "東宮、王子之在瀋者, 非眞爲質。 彼雖行成, 常自疑我, 故一以示誠款, 解彼之疑耳。 且彼人南來之說, 吾所未曾聞者也。" 又問曰: "中原路絶, 則信使不通乎? 中原, 天子之國; 彼虜, 小醜也。 奈何相持而久不決乎?" 答曰: "一自遼路之阻絶, 由海路通使。 今則島中漢鎭, 不幸失守, 他無可由之道, 而彼此小船, 時或往來矣。" 島主曰: "關白政尙嚴峻, 執政皆俊傑。 初聞貴國被兵, 莫不扼腕, 有乘時出兵之議。 吾圖之, 事遂寢。 然而關白常以吾爲疑, 故卽今方遣近臣於此, 使之暗察島中形勢, 兼探貴國事情。 若以貴國之事, 一一轉報關白, 則必致生事矣。 且彼人南來之說, 公雖諱之, 而吾已明知矣。 脫有是事, 有備無患。 夫釜山城初非貴國之築, 卽日本之所經營也。 今使館倭移接于城中, 多儲器械, 則雖有意外之變, 與貴國相機周旋, 豈非上策乎? 願公歸報朝廷, 無負是言云。"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8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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