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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40권, 인조 18년 5월 9일 기축 1번째기사 1640년 명 숭정(崇禎) 13년

청나라에 대적할 일에 관한 사간 조경의 10조 상소

사간 조경이 모친의 병으로 인해 불러도 오지 않고 10조(條)의 상소를 올려 시사(時事)를 극언하였다. 그 대략에,

"첫째는, 남한 산성의 치욕을 잊지 말고 자강(自强)하는 근본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아, 남한 산성의 치욕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봉천(奉天)이 포위되어 어상(御床)에 화살이 날아들고 한단(邯鄲)이 위급했던 것처럼 하루아침에 함락되게 되었으며 종묘 사직이 몹시 위태롭게 되어 끊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런 때를 당하여 전하께서는 밥맛이 좋았겠으며 자리가 편했겠습니까. 전하께서 몸소 누추한 데 거처하시고 추위에 떠시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습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몸소 장사들을 위무하고 한 그릇의 밥과 반찬이라도 하졸(下卒)들과 함께 먹을 생각을 하셨으니, 그때는 참으로 월나라 구천(句踐)이 회계산(會稽山)에 머물러 있던 때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성하(城下)의 맹약(盟約)은 춘추 시대(春秋時代) 조(曹)·위(衛)와 같은 작은 나라도 오히려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더구나 상께서 몸소 걸어서 오랑캐 진영으로 나아갔으니, 2백 년간 전해 내려온 임금의 존엄함이 여기에서 모두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대군(大君)과 빈궁(嬪宮)이 오랑캐에게 포로가 되었고 세자가 인질로 잡혀가 호랑이 굴에 갇혀 있으니, 이는 구천도 당하지 않았던 곤욕을 전하께서 당하신 것입니다. 전하께서 참으로 남한 산성의 치욕을 잊지 않으신다면 심양을 멸망시키기 전에는 전하의 몸이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고 속이 타지 않을 수 없으며 와신 상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전하께서 참으로 여기에 뜻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신이 정축년에 걸어서 서울에 올라가니, 그때에는 정원(政院)이 어침(御寢)에서 열 걸음도 채 못 되는 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조정의 신하들은 모두 살 명분이 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뿌리면서 비분 강개하였습니다. 그 뒤 무인년에 서울에 올라가 예궐(詣闕)하니, 예전의 형식적인 것들이 모두 다시 설치되었고 물러나와 여러 신하들을 만나니 원통함을 참느라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이 모두들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서울에 올라가 보니 지난해보다 더 심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인심은 게으르고 나약하며 함께 큰 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으니,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여러 신하들만이 그러할 뿐 아니라 전하의 마음도 역시 이미 나태해졌습니다. 예전에 오랑캐가 우리 나라에 책사(冊使)를 보낸 경우, 사신이 나오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떠받들고 사신이 떠나면 1년 동안 무사한 것만 다행으로 여겼는데, 전년에도 이와 같이 하여 지금 이미 5년이나 되었습니다. 아래로 공경(公卿) 과 재상들에 이르기까지 눈에 익어 심상한 일로 생각하여 다시는 우리가 오랑캐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 누가 남한 산성의 치욕을 알겠으며, 그 누가 개돼지가 우리 군신(君臣)을 업신여긴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느 때에 자강할 수 있겠으며 치욕을 씻을 수 있겠습니까.

무릇 군기(軍器)를 마련하고 성을 쌓고 군량을 저축하고 군사를 보충하는 것은 자강하는 데 있어서 형식적인 일에 불과할 뿐입니다. 내탕고를 풀고 내수사(內需司)를 혁파하며 좌우에 있는 시녀들을 줄여, 모든 거처와 의복을 임금답게 하지 말아 아랫사람들을 격려시키며 항상 오왕(吳王)의 뒤를 쫓아가 함께 죽을 마음을 가지는 것이 자강하는데 있어서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신이 남한 산성의 치욕을 잊지 말고 자강하는 근본으로 삼으시기를 청한 것은 바로 이상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는, 종묘 신주(宗廟神主)의 치욕을 잊지 말고 복수하는 거사를 일으키라는 것입니다.

아, 강도(江都)의 일을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세 장수가 【 장신(張紳)·김경징(金慶徵)·이민구(李敏求)이다.】 나라를 팔아먹고 상신(相臣)이 【 윤방을 가리킨다.】 적을 맞아들여 종묘 사직까지 도륙당하는 화가 미치고 신주의 몸체에 칼날의 흔적이 났으며, 장릉(長陵)의 봉분이 파헤쳐지는 화를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오랑캐들은 우리 나라 신민들이 백세토록 복수해야 할 원수로 함께 한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랑캐들은 나라를 점령하고서도 취하지 않고 임금을 잡고서도 곧바로 풀어준 것을 말하면서 덕을 베푼 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의논에서는 똑같이 그렇게 여기면서 능침을 파헤친 원수로 오랑캐를 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심이 이와 같이 나약해질 수 있단 말입니까. 원수인데도 신첩(臣妾)이 되어 섬기며 금백(金帛)으로 떠받든 자는 월 구천송 고종(宋高宗)입니다. 그러나 월나라는 간수(干隧)에서 승리012) 하였고, 송나라는 강남쪽에서 구차하게 안주하고 부형(父兄)의 원수를 잊는 데에서 면하지 못하여 역사에서 주벌을 받았습니다. 전하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 두렵게 여기시어 떨쳐 일어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릇 일은 비밀을 지키는 데서 성사되고 말이 누설되면 실패하는 법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을 도모하는 사람치고 누구인들 이것으로 경계를 삼지 않았겠습니까. 지금 비밀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이 어찌 이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가장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야 할 것은 원손이 강도에서 화를 면하였다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가장 먼저 말이 퍼져나가 끝내 원손으로 하여금 오랑캐 땅에 볼모로 가게 하였으니,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전하께서 참으로 큰일을 이루고자 하신다면 어찌하여 누설한 죄를 엄히 다스리고 국경의 출입을 엄히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저들이 하는 바를 우리 나라에서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데, 우리들이 하는 일은 사소한 일이라도 저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저들에게는 금법(禁法)이 있고 우리 나라에는 금법이 없어서입니다.

아, 우리 나라에서 오랑캐를 떠받드는 것은 참으로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황제(皇帝)의 호칭은 그 나라 사람들도 다 그렇게 부르지는 않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팔도에서 모두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오랑캐의 사신이 나오면 반드시 조칙(詔勅)이라 칭하고 용(龍)·마(馬) 【 용골대(龍骨大)와 마부달(馬夫達)이다.】 이하를 반드시 앉는 가마로 맞이하는데, 어째서 그렇게 하십니까.

전하께서 그들에게 우리를 살려준 은혜가 있다고 여기시어 오로지 심양에 마음을 두어 시종 일관 한결같이 섬기고자 하신다면 모르거니와 참으로 전하께서 조종들을 위해 치욕을 씻을 마음이 있다면, 마음을 같이 하는 한두 신하와 더불어 급급히 이 일에 종사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큰 난리가 일어난 뒤로 몇 년이나 되었는데 전혀 아무런 기미가 없단 말입니까. 전하께서 시험삼아 조정의 신하들 가운데 큰일을 감당할 만한 재주와 역량이 있는 자를 헤아려 살피신다면, 재주와 지략을 가지고 있는 자가 어찌 감히 스스로를 숨기겠으며 재주와 지략이 없는 자가 어찌 감히 헛된 말을 함부로 진달하겠습니까. 그런 다음에 복수하는 일을 한결같이 그 사람에게 맡기되, 모든 모의에 있어서 문서(文書)로 오가지 말고 다른 사람이 그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소서. 모의가 결정되면 즉시 행하고 비국 당상을 인견하겠다는 말을 하지 마소서. 그러면 도모하는 일이 끝까지 누설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 세월은 빨리 흘러가고 인심은 쉽게 나태해지는 법입니다. 이런 상태로 몇 년을 지내어 온 세상 사람들이 오랑캐가 되는 것을 달갑게 여기고 어느 쪽이 의리에 맞는 것인 줄 몰라 선택할 바를 모르게 되면, 뒷날에는 비록 뜻을 가다듬어 복수하고자 해도 끝내 떨쳐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전하께서 돌아가신 뒤에 무슨 낯으로 지하에서 조종들을 보실 수 있겠습니까. 신이 종묘 신주의 치욕을 잊지 말고 복수하는 거사를 일으키라고 청한 것은 바로 이상과 같은 것입니다.

셋째는, 명나라가 우리 나라를 구원해 준 은혜를 잊지 말아 조빙(朝聘)을 통하는 것입니다.

아, 명나라가 우리 나라를 구원해 준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왜병(倭兵) 20여 만 명이 하루아침에 바다를 건너와서 팔도를 휘몰아쳐 온 나라에 적들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우리 선조 대왕께서 의주(義州)로 파천해 계시면서 사신을 보내어 위급함을 고하자, 신종 황제(神宗皇帝)께서는 향도(嚮導)의 와언을 개의치 않고 군사를 보내어 구원해 주었습니다. 보내온 군사가 10여 만 명이나 되었고 은이 몇천만 냥이었으며, 산동(山東)에서 실어온 곡식이 몇천만 곡이나 되었습니다. 이에 드디어 나라가 다시 살아났고 백성들이 다시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40여 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안락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 그 누구의 덕이겠습니까. 이 때문에 선조 대왕께서는 평소에 한번도 연경(燕京)을 등지고 앉지 않으셨으며, 자문(咨文)과 방물(方物)에 있어서도 온갖 정성을 다하였는바, 그러한 사실은 지금까지도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의 귀에 전해 옵니다.

지금 비록 불행하여 오랑캐들에게 제약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사세의 위급함이 지난 정축년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곧장 한(汗)에게 ‘한이 우리를 살려준 은혜는 참으로 크다. 그러나 명나라가 우리 선조 대왕을 살려준 은혜 역시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명나라의 은혜를 잊는다면 우리의 후손들도 반드시 의 은혜를 잊을 것이다. 이는 에게 있어서도 이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고자 하니, 감히 숨기지 못하겠다.’고 말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저들이 혹 우리를 의롭게 여겨서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며, 비록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시 이 때문에 우리 나라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한결같이 위축되어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으면서 사방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비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여 항상 분해 하고 불평스러운 마음을 품게 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어떠하겠습니까.

아, 삼월의 사나운 바람이 서쪽으로 갈 배를 뒤엎어 버린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하늘이 명나라를 돕고 오랑캐를 싫어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하늘의 뜻에 순응하지 않고 위협하는 한마디 말에 겁을 내어 다시 배를 수리하여 그들에게 보낸단 말입니까. 【 전에 가도를 공격하였는데, 지금 또 군사를 보내는 일이 있었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과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모두 하늘의 뜻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서 복을 받지 않은 경우는 없으며, 또한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서도 화를 입지 않은 경우는 없습니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서 천하에 죄를 얻는 것이 어찌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하늘이 망하게 하려는 오랑캐에게 저항하는 것만 하겠습니까. 신이 명나라가 구원해 준 은혜를 잊지 말아 조빙을 통하라고 청한 것은 이상과 같은 것입니다.

넷째는, 흉악하고 교활한 말을 믿지 말고 국본(國本)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아, 인질을 순환시키라는 이 오랑캐들의 말이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인평 대군(麟坪大君)을 인질로 보내어 봉림 대군(鳳林大君)과 바꾸고, 원손(元孫)을 인질로 보내어 세자와 바꾸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평 대군이 심양에 들어가자 봉림 대군을 보내지 않았으며, 원손이 강을 건너자 세자를 돌려보내라고 재촉하였으니, 세자가 심양에 들어간 뒤에 과연 원손과 봉림 대군이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늘에 계신 신령께서 도우시어 오랑캐의 마음을 달래서 세자가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면, 신은 전하께서 다시는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신이 흉악하고 교활한 말을 믿지 말고 국본을 보호하라고 청한 것은 이상과 같은 것입니다.

다섯째는, 하늘의 경고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병자년 이전의 일을 거울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아, 금년에는 하늘의 경고가 극심하다고 하겠습니다. 음홍(陰虹)이 여러 차례 해를 꿰었고 호남과 영남 및 북관(北關)에는 우박이 내렸습니다. 관서(關西)에는 지진이 있었고 임진강(臨津江)의 물이 붉게 변했습니다. 수락산(水洛山)이 무너지고 궁궐의 나무가 바람에 뽑히었습니다. 그 밖의 물괴(物怪)는 다 거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신은 무슨 재앙이 있으려고 하늘에서 조짐을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로 하늘이 전하를 사랑하고 아끼시어 전하로 하여금 두려워하여 반성하게 하고자 해서입니다. 전하께서 참으로 을해년의 재변에 【 을해년에 덕릉(德陵)과 혜릉(惠陵)이 붕괴되는 재변이 있었다.】 대해 두렵게 여겨서 허물을 뉘우치는 터전으로 삼으신다면 이 재앙을 해소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 묘목(廟木)에 벼락이 쳤고 능 위에 변괴가 있어서 참봉 홍유일(洪有一)이 치계하였는데, 예조와 상신(相臣)이 봉심하고는 무식한 말에 혹하여 사실대로 아뢰지 않았습니다. 이에 전하께서는 살피지 못하시고 홍유일을 옥리(獄吏)에게 내려서 심문하도록 하였습니다. 【 오윤겸(吳允謙)이 봉심하고 돌아와서는, 두 능의 붕괴는 수재 때문이라고 말하여 홍유일이 보고한 것과 서로 달랐으므로 상소 중에 사실대로 아뢰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때에 유사(有司)로 있던 신하도 역시 식견이 없어서 재변에 답하는 날에 악관을 벌여놓고 부묘례를 행하였습니다. 【 유사는 홍서봉(洪瑞鳳)을 가리킨다.】 이상의 두 가지 일은 모두 신하들이 전하를 그르친 것이니 죄가 실로 신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도 역시 깨닫지 못하시고 이와 같이 잘못 처리하였으니, 재변을 만나 공구 수성하는 뜻에서 먼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음해 병자년에 과연 오랑캐의 난이 있었는데 유식한 선비들이 모두 을해년의 재변에 대해 삼가지 않아서 천지에 크게 유감이 있게 한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하늘의 경고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병자년 이전의 일을 거울로 삼으라고 청한 것은 이상과 같은 것입니다.

신이 명나라의 고사를 살펴보건대, 효종 황제(孝宗皇帝)께서는 크게 흥성하는 시대에도 한번 재변을 만나면 공구 수성하면서 아랫사람들을 책려하였으며, 예악(倪岳)이 대면해서 당시의 잘못된 정사를 모두 들어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늘이 노여움을 풀어서 당시가 태평해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옥음을 한번 내려 자신에게 죄를 돌리어 아랫사람들을 격려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조정에 비록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찌 한두 가지 채용할 만한 말이 없겠습니까. 상하가 모두 두려워하는 뜻이 없이 밤낮으로 힘쓰는 바는 오로지 원수인 오랑캐를 높이 떠받드는 것으로 일을 삼는 것이니, 신은 몹시 답답합니다.

여섯째는, 근습(近習)들과 친밀하게 지내지 말고 날마다 유신(儒臣)들을 접하여서 조섭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아, 전하께서 어떻게 병이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슬과 서리는 병을 옮기는 법인데 남한 산성의 이슬과 서리가 어떠하였으며, 근심과 걱정은 병이 되는 법인데 전하의 근심과 걱정이 어떠했습니까. 온갖 병은 마음에서 말미암는 것인데, 전하의 마음이 하루라도 화평하실 수 있었습니까. 지금 비록 조금 덜해졌다는 전교를 내리셨으나 아직도 하루 시조(視朝)하시는 것조차 아끼시니, 병근(病根)이 다 없어지지 않아 저절로 침전에서 쉬고 싶은 생각이 나서가 아니겠습니까.

임금의 구중 궁궐은 보통의 여염집과는 달라 아침저녁으로 함께 거처하는 자는 부녀자가 아니면 환관들입니다. 전하께서 조용하게 조섭한다고 하는 것은 맛난 음식이나 먹고 몸을 편히 쉬는 데 불과합니다. 밖으로는 만기(萬機)의 번거로움이 있고 안으로는 음사한 도적이 있어서 전하의 가슴속에서 번갈아 들끓고 있으니 역시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유신들을 침전 안으로 불러들여서 그들로 하여금 고금의 치란에 대해 말하게 하거나 현재의 세무(世務)에 대해 논란하게 한 다음, 전하께서 궤석(几席)에 기대어 듣느니만 하겠습니까. 그럴 경우 답답한 생각이 어찌 조금은 트이지 않겠으며, 청명한 정치를 하는 데 어찌 조금은 보탬이 있지 않겠습니까. 신이 근습들을 가까이하지 말고 날마다 유신들과 접하여서 조섭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라는 것은 이상과 같은 것입니다.

일곱째는, 좋아하고 싫어함을 사심(私心)으로 하지 말고 어짐과 사악함을 잘 구별하여 조정의 기강을 진작시키라는 것입니다.

아,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한 것은 전한(前漢)이 흥성하게 된 이유이고, 소인을 가까이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한 것은 후한이 기울어지게 된 이유입니다. 이것은 제갈량(諸葛亮)이 한 말입니다만, 현재에는 참으로 크게 어진 사람도 없고 큰 소인도 없어서 흥성하고 기울어지는 데 관계가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어찌 어진 사람과 소인의 구별이 없겠습니까. 성품이 바른말하기를 좋아하고 지성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 없지 않은데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바가 반드시 그 사람에게 있지는 않으며, 완악하고 염치가 없어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위하는 자가 없지 않은데, 전하께서 미워하시는 바가 반드시 그 사람에게 있지는 않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어진 자와 어질지 않은 자가 한 데 뒤섞여 있게 된 것입니다.

서도(胥徒)들이 조신(朝臣)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낭료들이 대관(大官)을 꺼려하지 않음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조신과 대신에게 두려워하거나 꺼려할 만한 실상이 없는 탓입니다. 기강이 문란함은 주로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더구나 작상(爵賞)을 함부로 베풀고 명기(名器)를 헛되이 주어 고관 대작이 조정에 넘칩니다. 예로부터 이와 같으면서 그 나라가 어지러워지지 않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신이 좋아하고 싫어함을 사사로운 마음으로 하지 말고 어질고 사악함을 구별하여 조정의 기강을 진작시키라고 청한 것은 이상과 같은 것입니다.

여덟째는, 형식에 구애되지 말고 착실하게 장수를 가리는 것입니다.

아, 오늘날 어찌 장수가 될 만한 인재가 없겠습니까. 선발하는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입니다. 전하께서는 비국의 대신들이 추천하는 것을 믿을 만하다고 여기십니까. 형식적이고 사사로움에 치우칠 뿐입니다.

신이 송(宋)나라 신하 구양수(歐陽修)의 차자를 보고는 참으로 오늘날 장수를 선발하는 방법에 합당하다고 생각되었으므로 그 한 조목을 뽑아 올립니다.【 구양수가 말하기를 ‘신이 보건대, 당나라 및 오대(五代)에서부터 국조(國朝)에 이르기까지 사방을 정벌하면서 싸움터에서 공을 세울 때 그 명장(名將)들은 대부분 군졸들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서비(西鄙)에서 용병(用兵)한 이후만 보더라도 무장(武將)들 가운데 조금 이름이 난 자들은 주로 군중(軍中)에서 나왔습니다. 신은 그러므로 군중에서만 장수를 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험삼아 장수 구하는 법을 대략 말씀드리겠습니다. 무릇 장수를 구하는 법은, 우선 먼저 가까이 있는 금군(禁軍)에서부터 상군(廂軍)에 이르기까지의 군사들 가운데 나이 어리고 힘이 있는 자들을 등급에 구애되지 말고 뽑아, 재주가 비슷한 자들을 1백 인씩 묶어서 1대(隊)를 만들어 가르칩니다. 그런 다음에 그 1백 명 가운데013) 재주가 뛰어나고 가장 용감한 자가 반드시 한 사람 있을 것이니, 그를 뽑아서 대장(隊長)을 삼습니다. 그러면 그 한 사람의 재주와 용맹은 실로 그 나머지 1백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을 것이니, 1백 명을 거느릴 만한 장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뽑은 대장을 열 사람을 모아서 또 가르칩니다. 그런 다음 이 열 사람 가운데 또 재주가 뛰어나고 가장 용감한 자가 반드시 한 사람 있을 것이니, 이 사람을 뽑아서 비장(裨將)으로 삼습니다. 그러면 이 한 사람의 재주와 용맹은 실로 1천 명을 복종시킬 수 있을 것이니, 1천 명을 거느릴 만한 장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뽑은 비장 열 명을 모아서 또 가르칩니다. 그러면 이 열 사람은 재주와 용맹이 1천 명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이어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열 사람 가운데 반드시 식견(識見)이 있고 변통(變通)할 줄 아는 자가 한 사람 있을 것이니, 그를 뽑아서 대장(大將)으로 삼습니다. 그러면 이 한 사람의 재주와 용맹은 1 만 명 가운데서 뽑힌 자이며 또 조금은 변통할 줄도 아니, 지모(智謀)가 있는 자를 택하여 그를 보좌하게 하면 1만 명을 거느릴 만한 장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행히 재주와 용맹은 부족하나 재식(才識)이 만인들보다 훨씬 뛰어난 자가 있을 경우, 이는 불세출의 기장(奇將)으로 보통의 방법으로는 구할 수가 없습니다. 신이 군중(軍中)에서만 장수를 얻을 수 있다 함은 이상과 같은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하여 5∼7만 명의 군사를 얻고 거기에 따라서 또 1만명을 거느릴 만한 5∼7명의 장수를 얻는다면, 그 아래 1백 명이나 1천 명을 거느리는 장수는 저절로 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별도로 군명(軍名)을 세우고 계급에 관한 제도를 만들되, 1만 명을 1군(軍)으로 만들어 숙위(宿衛)에 갖추어서 유사시에는 출정(出征)을 나가게 하고 무사할 때는 궁궐에 머물러 있으면서 천하에 위엄을 보이게 합니다. 그럴 경우 좋은 옷과 후한 녹으로 교만하고 게으른 쓸모없는 군졸을 양성하여, 차차로 승진하여 교수(校師)가 된 어리석고 나약한 자들과 비교해 볼 때 그 득실이 천양지차일 것입니다. 만약 신의 말대로 시행하여서 1군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릴 수 있다면 예전의 금병(禁兵) 1만 명을 내보내어 외방에서 취식(就食)하게 하여 그들로 대신하게 합니다. 그런 다음 새로 설치한 군대는 처음을 잘 제어하고 점차로 예전의 급료보다 더 지급하되 그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풍족하지 않게 하며 항상 훈련을 하게 하여 나태해지지 않게 합니다. 신병(新兵)이 이루어지면 구병(舊兵)은 모두 내보냅니다. 그럴 경우 경사(京師)에서는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정병을 얻을 수 있어 그 이익이 매우 클 것입니다.】

신에게 또 한 가지 어리석은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백성과 사족(士族) 및 공사천(公私賤) 가운데 호란(胡亂)에 죽은 자가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 따라서 그들의 고아나 형제들 중에 원통한 생각에 창을 베고 자는 자가 또한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 이들을 모두 불러모아 1군을 만들되, 그들 가운데 재상이나 장령(將領)들의 자제로서 장수(將帥)가 될 만한 자를 뽑아 통솔하게 하여 위급할 때 쓸 수 있게 한다면, 죽음을 돌보지 않는 의열(義烈)을 어찌 보통 사람에게 비교하겠습니까. 선조 때의 복수 의병(復讐義兵)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홉째는, 성신(誠信)을 가지고 교린하여 국세를 웅장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일본은 우리 나라와 이미 국교를 맺고 있으니 처음으로 우호를 도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오직 성심과 신의로 대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만약 한 차례 사신을 보내어 우리 나라가 오랑캐에게 곤욕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분명하게 알린다면, 일본은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우리 나라를 돕겠다고 승락할 것입니다. 의논하는 자들은 말하기를 ‘일본은 믿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합니다. 그렇다면 이 오랑캐들은 믿을 만하단 말입니까. 오랑캐를 섬기는 것이나 일본과 교린하는 것이나 모두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일이 모두 어쩔 수 없는 데서 나온 일이라면, 이미 화친을 맺고 있는 형세를 이용하여 오랑캐에게 원수를 갚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신의 계책은 오직 위세에 보탬이 되게 하자는 것일 뿐, 왜병을 청하여서 우리 나라와 함께 쳐들어 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랑캐들 역시 항상 왜사(倭使)가 왔는가의 여부를 물으며, 또 ‘우리도 역시 사신을 일본에 보내려고 한다.’ 하는데, 이는 일본을 꺼려서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사정을 몰래 일본에 알려서 그들로 하여금 오랑캐에게 한 장의 글을 보내어 우리 나라를 침입한 것에 대해 따지게 한다면, 오랑캐들은 필시 처음에는 우리 나라가 그렇게 시킨 것에 대해 화를 낼 것이나, 우리 나라와 일본이 깊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끝내 가볍게 우리 나라에 쳐들어 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른바 그들의 관건을 제압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열째는, 백성들을 어루만져서 나라의 근본을 견고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아, 오늘날 백성들을 어루만지기가 역시 어렵지 않겠습니까. 오랑캐에게 줄 세폐(歲幣)를 백성들에게 책임지우지 않으면 어쩌겠으며 오랑캐 사신을 접대하는 비용을 백성들에게 책임지우지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그러니 백성들에게 정상적인 세금 외에 살갗을 벗기고 골수를 뽑아내면서 지나치게 거두어 들이는 것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참으로 물건을 아끼는 데 마음을 둔다면, 한 고을의 수령으로서도 오히려 재용(財用)을 절약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오랑캐의 사신이 오가는지조차 모르게 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나라에서이겠습니까. 오늘날의 계책으로는 먼저 상께서 절검(節儉)을 행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궁녀들을 내보내고 상방(尙方)의 직조(織造)를 없애며, 사복시의 곡식 먹는 말을 줄이고 긴요하지 않은 관원을 줄이며, 장오법을 엄하게 하고 수령을 임용함에는 반드시 추천이 있는 사람을 쓰며, 불법을 저지를 경우에는 중률(重律)로 처단하소서. 그렇게 했는데도 백성들이 은택을 입어 힘을 펴지 못하면 신은 망령되게 말한 죄를 받겠습니다."

하였다. 소를 입계하였으나 회답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8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외교-야(野)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과학-천기(天氣) / 인사-임면(任免)

  • [註 012]
    간수(干隧)에서 승리 : 간수는 옛 오읍(吳邑)을 말함. 이곳에서 월 구천(越句踐)이 산졸(散卒) 3천 명으로 부차(夫差)를 사로잡았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 [註 013]
    1백 명 가운데 : ‘1백 명 가운데’에서부터 아래의 ‘가르칩니다’까지는 누락된 부분이 있어 내용 연결이 안 되므로 《구양영숙집(歐陽永叔集)》을 참고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己丑/司諫趙絅以母病, 召不至, 上十條疏, 極言時事。

其一曰: 無忘南漢之辱, 以爲自强之本。 嗚呼! 南漢之辱, 其可忘乎? 奉天之圍, 矢及御床; 邯鄲之急, 朝夕且陷, 宗社之不絶, 僅如一髮。 當此之時, 殿下食能甘味乎, 坐能安席乎? 玉體之沾濕寒凍, 其暇念乎? 躬自流涕, 巡拊將士, 雖盃漿壺餐, 思與下卒共之, 此眞句踐栖於會稽之時也。 城下之盟, 春秋之世, 如之微, 猶且恥之。 況親擧玉趾, 步就虜營, 則二百年相傳南面之尊, 於此隳矣。 大君、嬪宮, 生死於俘虜之中; 貳君出質, 垂餌於虎口, 此則句踐之所無, 而殿下之獨遭也。 殿下苟不忘南漢之辱, 未髓瀋陽之前, 身不得不苦, 思不得不焦, 薪膽不得不設於坐臥。 臣未知殿下, 眞有意於是歟? 臣於丁丑, 徒步入京, 則其時政院, 設於御寢十步之內, 廷臣無可生之心, 莫不揮泣慷慨。 其後戊寅入京, 進而詣闕下, 則昔時虛文, 幾盡復設, 退而對諸臣, 則無絲毫忍痛含怨迫不得已之心。 今年入京, 則有加於往年, 我國人心之頹惰委靡, 不足與有爲, 於此可見, 良可痛哉。 不獨諸臣爲然, 聖心亦自已怠也。 往年虜以冊使加我, 使來則竭生靈之膏血以奉之, 使去則苟幸一年之無事。 前年又如是, 今已五年矣。 下及公卿輔相, 熟於眼目, 狃於尋常, 將不復知我與醜虜之異也。 庸詎知南漢乎, 庸詎知犬羊之易我君臣乎? 然則自强何時而可得, 雪恥何時而可辦? 夫造軍器、築城壘、峙糧芻、充束伍, 自强之文具也。 散內帑、罷內需, 減損左右便嬖, 凡居處服御, 不以人君自處, 以勵群下, 常懷與王, 接踵而死之心者, 自强之本也。 臣之請無忘南漢之辱, 以爲自强之本者此也。 其二曰: 無忘廟主之辱, 以爲復讐之擧。 嗚呼! 江都之事, 尙忍言哉? 三帥 【張紳、金慶徵、李敏求。】 賣國, 相臣 【指尹昉也。】 迎賊, 屠戮之禍, 延于廟社, 刀刃之痕, 遍及主身。 長陵一抔, 又遭破毁, 其爲我國臣民百世之怨, 誓不與此虜共戴天者, 其不在此乎? 虜以得國不取, 執君輒釋之言, 常矜德色, 而一種議論, 亦以爲然, 不欲以陵寢之讐待虜, 人心陷溺, 一至此哉? 仇讐而臣妾事之, 金帛奉之者, 句踐, 高宗是也。 干隧之捷, 而未免偸安, 江左忘其父兄, 見誅於春秋。 殿下可不惕然於是, 而振作之哉? 夫事以密成, 語以泄敗。 古今作事, 疇不欲以是爲戒? 今之所謂秘密者, 豈非以是耶? 然而最可秘密者, 莫如元孫之免江都, 而最先傳說, 終使三尺童子, 出質虜中, 此何爲哉? 殿下欲眞有爲, 何不嚴漏泄之誅, 而嚴封壃之出入哉? 彼之所爲, 我全昧昧, 我之毫髮, 彼皆察得者, 無他, 彼有法而我無法也。 噫! 我之奉虜, 可謂至矣。 皇帝之稱, 渠國人民亦不徧擧, 而我國八路無不稱之。 虜使之來, 稱以詔勑, 【龍骨大、馬夫達。】 以下, 必以坐轎迎之者, 抑獨何哉? 殿下如以活我之恩, 專心於瀋陽, 而欲終始一節事之則已, 誠有爲祖宗雪恥之心, 則不可不汲汲與同心同德者一二臣以從事焉。 大亂之後凡幾年, 而何寥寥耶? 殿下試於朝臣之中, 審度才力之能堪大事者, 則抱才略者, 何敢自諱, 而不能者, 何敢虛辭冒達乎? 然後復讐之事, 一以委其人, 凡有謀議, 不以文書往復, 不以他人間之, 謀定卽行, 更不煩備局堂上引見之語, 而所爲之事, 終不泄也。 噫! 歲月易得, 人心易怠, 如此奄過數年, 擧世之人甘心左袵, 不知之可擇, 則後雖欲銳意復讎, 終難振起也。 殿下千秋萬世之後, 何面目見祖宗於地下乎? 臣之請無忘廟主之辱, 以爲復讎之擧者此也。 其三曰: 無忘大明再造之恩, 以通朝聘。 嗚呼! 皇再造之恩, 其可忘乎? 兵二十餘萬, 一朝渡海, 八路颷回, 無非賊藪。 惟我宣祖大王, 越在龍灣, 奔命告急, 神宗皇帝不顧嚮道之訛言, 出師以救。 軍兵之多, 至於十萬, 費餉銀幾千萬兩, 輸山東粟幾千萬斛, 遂使邦家再造, 生民復業, 安樂無事四十餘年者, 其誰德也? 是故, 宣廟於平日, 無或一者背燕京而坐, 至於咨文、方物, 皆極誠敬, 至今不泯於婦孺之耳。 今雖不幸, 制命於豺狼之牙, 事勢之急, 稍異於丁丑, 則殿下何不直陳於汗曰: "汗之活我之恩固大矣, 明朝活我宣祖之恩, 亦不可忘。 我忘明朝, 則我之子孫亦必忘汗, 于汗亦非利也。 我欲修聘於明朝, 不敢諱焉。" 云爾則彼或義我而動心, 雖或不從, 亦不至以是加兵於我。 其視一向畏約, 奄奄若泉下之人, 而使四方忠義之士, 不敢言而常懷憤懣不平之心者, 何如哉? 嗚呼! 三月惡風, 覆盡赴西舟楫何哉? 天心之助天朝、厭醜虜, 於此可卜。 殿下何不順天心, 而怯於恐喝之一言, 復理舟楫, 以與之哉? 【前旣攻椵島, 今有赴西之擧。】 國之興喪, 人之死生, 無非在天, 未有順天而不福者, 亦未有違天而不禍者也。 與其違天而得罪於天下, 曷若順天而抗天亡之虜哉? 臣之請無忘大明再造之恩, 以修朝聘者此也。 其四曰: 無信兇狡之言, 以保國本。 嗚呼! 此虜循環之言, 豈不痛哉? 始言以麟坪交質鳳林, 以元孫交質我世子云, 而及麟坪, 則不出鳳林, 元孫渡江, 則趣還世子。 不知世子入之後, 果還元孫、鳳林乎? 噫! 已無及矣。 若賴天之靈, 誘虜之衷, 許世子再東, 則臣願殿下, 無使復蹈前轍也。 臣之請無信兇狡之言, 以保國本者, 此也。 其五曰: 無忽上天之警, 以鑑丙子以前。 嗚呼! 今年天警, 可謂極矣。 陰虹貫日無數, 湖嶺、北關雨雹, 關西地震, 臨津水赤, 水洛山崩, 風拔宮樹, 其他物怪, 難以殫擧。 臣不知有何禍殃, 兆見於冥冥中耶? 然此實上天之仁愛殿下, 而欲殿下懼而反己也。 殿下誠能惕然於乙亥之災異, 【乙亥有穆陵、惠陵崩頹之變。】 以廓悔過之地, 則庶乎弭此災矣。 其時廟木雷震, 陵上有變, 參奉洪有一馳報, 禮曹、相臣奉審, 蔽於無識之言, 失實入奏, 【吳允謙奉審還言, 兩陵之崩, 明是水患, 與有一所報不同, 故疏中以失實爲言。】 殿下不察, 下有一于理, 而施拷訊, 其時有司之臣, 亦沒見識, 乃於報災之日, 張樂行祔廟禮。 【有司指洪瑞鳳。】 此二事, 皆臣下之誤殿下也。 罪實在臣下, 殿下亦不覺悟, 鑄錯如此, 其於遇災恐懼, 豈不遠哉? 明年丙子, 果有翟難, 有識之士, 咸以乙亥之不謹天災, 有憾於天地之大。 臣之請無忽上天之警, 以鑑丙子以前者此也。 臣謹按皇故事, 孝宗皇帝當隆泰之運, 一遇災異, 恐懼省躬, 責勵群下, 倪岳之對殫擧當時疵政, 亦無少隱。 其何上天之不回怒, 而當時之不太平也? 殿下何不一出玉聲, 罪己而勵下也? 如今朝廷雖乏人, 豈無一二可採之言? 上下俱無警懼之意, 日夜所孶孶者, 唯以尊奉讐虜爲事, 臣竊悶焉。 其六曰: 無昵近習, 日接儒臣, 以助調攝。 嗚呼! 殿下安得無疾病? 霜露媒疾, 而山城之霜露如何? 憂愁成病, 而殿下之憂愁如何? 百疾莫不由於心, 則殿下之心, 其能一日和平乎? 今時雖下差減之敎, 而尙靳一日視朝, 豈非病根未祛, 而自然眷戀於深宮耶? 人君九重異於常閭, 朝夕所與處者, 非婦女則宦寺也。 殿下所以靜攝者, 不過便口體而止耳。 外而萬幾之煩, 內而陰邪之寇, 交爭於殿下左腹, 其亦危哉! 曷若日引儒臣於臥內, 或使之開陳古今治亂, 或使之論難當今世務, 殿下憑几而聽之, 則意念之鬱鬱, 豈不少開, 而淸明之地, 豈無少益乎? 臣之請無昵近習, 日接儒臣, 以助調攝者此也。 其七曰: 無私好惡, 辨別賢邪, 以振朝綱。 嗚呼! 親賢臣, 遠小人, 此先漢所以興隆; 親小人, 遠賢臣, 此後漢所以傾頹, 此, 諸葛亮之言也。 當今之世, 實無大賢人、大小人, 雖若不關於興隆、傾頹, 而然其中豈無賢邪之別乎? 性喜直言, 至誠憂國者, 不無其人, 而殿下之所好, 未必在於其人; 頑鈍無恥, 唯利私家者, 不無其人, 而殿下之所惡, 未必在於其人。 由是薰蕕雜進, 氷炭同器, 胥徒不畏朝士之尊, 郞僚不憚大官之嚴者, 無他, 朝士大官無可畏、可憚之實也。 紀綱之紊, 職此之由, 況爵賞無節, 名器空虛, 豐貂金玉, 爛然朝班, 自古未有如此, 而其國不亂者也。 臣請無私好惡, 辨別賢邪, 以振朝綱者此也。 其八曰: 無拘虛文, 着實選將。 嗚呼! 今之世無可將之才乎? 選失其方耳。 殿下以備局大臣之薦, 謂足恃乎? 徒虛文, 徒偏私耳。 臣竊觀, 歐陽修箚子妄以爲, 實合當今選將之方, 錄其一條。 【修曰: "臣伏見, 唐及五代至于國朝, 征伐四方, 立功行陣, 其間名將多出軍卒。 只如西鄙用兵以來, 武將稍可稱名者, 往往出於軍中。 臣故謂, 只於軍中, 自可求將。 試略言求將之法。 凡求將之法, 先取近下禁軍, 至廂軍中, 年少有力者, 不拘等級, 因其技同者, 每百人團爲一隊, 而敎之。 較其技精, 而最勇者十人之中, 可有一人矣。 得之以爲裨將, 此一人之技勇, 實能服其千人矣, 以爲千人之將必也。 合十裨將而又敎之。 夫技勇出千人之上, 而難爲勝矣, 則當擇其有識見, 知變通者十人之中, 必有一人矣。 得之以爲大將, 此一人之技勇, 乃萬人之選, 而又粗變通, 因擇智謀之佐以輔之, 以爲萬人之將可也。 幸而有技勇不足, 而才識出乎萬人之外者, 則不世之奇將, 非常格之所求也。 臣所謂只於軍中, 自可求將者此也。 誠能如此, 得五七萬兵, 隨而又得萬人之將五七人, 下至千人百人之將, 皆自足。 然後別立軍名, 而爲陞級之制, 每萬人爲一軍, 以備宿衛, 有事則行師出征, 無事則坐威天下。 比夫以豐衣、厚養驕惰無用之卒, 而遞遷次校至於校帥, 皆是凡愚暗懦之人, 得失相萬矣。 若臣之說果可施行, 俟成一軍, 則代舊禁兵萬人散出之, 使就食於外, 新置之兵, 便制其始, 稍增舊給, 不使大優, 常習其役, 不令驕惰。 比及新兵成立, 舊兵出盡, 則京師減冗費, 得精兵, 此之爲利, 又遠矣。】 臣又有愚見。 我國人民士族、公ㆍ私賤, 死於翟難者何限, 其孤子、兄弟之銜怨枕戈者何限? 召集內外, 作爲一軍, 其中擇宰相、將領子弟, 堪爲將帥者以領之, 以待緩急之用, 則其忘身義烈, 豈與凡人比哉? 宣廟朝復讐義兵是也。 其九曰: 誠信交隣, 以壯國勢。 日本與我旣已通好, 非始謀結援也。 唯不誠信耳。 若遣一介之使, 明陳我困於虜之狀, 則彼之然諾爲我國, 必不待辭之畢也。 議者曰: "日本非親信之國。" 此虜獨可親信乎? 事之交之, 俱出於不得已也。 與其均出於不得已, 無寧藉旣和之勢, 以報敵怨之虜乎? 況臣之計, 唯欲助聲勢而已, 非卽曰請兵, 同我前驅也。 彼虜亦常問來否, 且曰吾亦欲送使至彼, 蓋憚彼也。 誠將如此情實, 密諭日本, 使之飛一書於虜中, 以責侵我隣好, 則彼雖始怒我使之, 而知我與深結, 終不能輕易加兵於我矣。 此眞所謂落其機牙者也。 其十曰: 撫百姓, 以固邦本。 嗚呼! 今日之撫民, 不亦難乎? 虜之歲幣, 不責於民而何; 虜使供億, 不責於民而何? 民之正供, 常賦之外, 剝膚推髓, 頭會箕斂者, 其可極哉。 雖然, 苟存心於愛物, 則雖一州縣之倅, 尙能節財用, 使民不知差之往來者有之, 況國家乎? 爲今之計, 莫若自上先行節儉。 放出宮女, 罷尙方織造, 減太僕穀食之馬, 捐不急之官, 嚴贓汚之法, 守令必用有薦之人, 有不法繩以重律, 然後民不被其澤, 裕其力, 臣請伏妄言之誅。

疏入不報。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8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외교-야(野)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과학-천기(天氣)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