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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37권, 인조 16년 8월 4일 갑오 2번째기사 1638년 명 숭정(崇禎) 11년

심양으로 가려는 빈객 박로를 인견하다

빈객 박로(朴𥶇)가 도로 심양으로 가려고 하는데, 상이 인견하고 묻기를,

"경이 돌아온 것은 부득이해서 나온 것인가?"

하니, 박로가 답하기를,

"신이 배종하는 반열에 있는데, 어찌 하루라도 떠나려고 하였겠습니까. 피차간의 형세가 같지 않으므로 저 곳의 사정을 조정에 알리려고 나온 것입니다. 이는 신의 의견도 아니고 또한 세자께서 마음대로 보낸 것도 아닙니다. 저들이 아직도 우리 나라를 믿지 않아 차관(差官)을 보내어 힐문하려고 하기 때문에 신이 부득이 나왔을 뿐입니다."

하였다. 상이 묻기를,

"저 나라의 사정을 들을 수 있겠는가?"

하니, 박로가 답하기를,

"저 나라는 지극히 형세가 커졌습니다. 막북(漠北)의 여러 오랑캐들이 모두 그 나라에 귀속하였고 귀속하지 않은 곳은 다만 황하(黃河) 이북인데, 차하라[車河羅]의 태자가 【 차하라는 즉 서달(西㺚) 부락의 이름이다.】 한(汗)의 사위가 되었고 어피(魚皮)달자(㺚子)도 전쟁하지 않고 귀속하였으니, 대저 그들의 위엄이 막북에 미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묻기를,

"명나라도 또한 강화하고 기미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니, 박로가 답하기를,

"명조(明朝)에서 화친하려는 사신이 과연 나왔는데, 이는 바로 산해관(山海關) 군문(軍門)이 보낸 사람입니다. 소위 상사(上使)는 두 눈이 다 멀었으니, 모집에 응한 사람인 듯합니다. 청나라의 민심은 전쟁을 싫어하고 또 중국과 통화(通貨)하려고 하여 날마다 화친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서, 청나라에서 을 탄 사람 20명이 또한 중국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저들의 여러 왕들이 패를 나누어 다투는 일이 많으니, 한(汗)이 죽으면 국가가 반드시 혼란될 것입니다. 호구(虎口)는 바로 한의 측실(側室) 아들인데 명위(名位)를 정하지 않았고, 또 14세의 아들이 있는데 측실 소생이기 때문에 사자(嗣子)로 삼지 못하니, 후일 반드시 서로 다투어 즉위(卽位)하려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묻기를,

"한(汗)의 사람됨이 어떠하던가?"

하니, 박로가 답하기를,

"온화하고 어질어서 포악한 행동이 없고 또 형제간에도 화목합니다."

하였다. 상이 묻기를,

"여러 장수 중에 용사(用事)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니, 박로가 답하기를,

"범문정(范文程)·보태평고(普太平古)·기청고(祈淸高) 등이 용사하는데, 동쪽에 관한 일은 용골대(龍骨大)마부달(馬夫達) 두 장수에게 전적으로 위임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묻기를,

"장춘(張春)의 사람됨이 어떠하던가?"

하니, 박로가 답하기를,

"나이는 70이 넘었는데도 생기가 넘치는 활발한 기상이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정월 초하룻날 하례 할 때에 세자가 마침 그의 처소를 지나가다가 들어가 보니, 장춘이 말하기를 ‘내가 동쪽을 향하여 앉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담론(談論)이 낭랑하여 들을 만하고 오랑캐들도 또한 지극히 공경하며 한(漢)나라의 소무(蘇武)에게 비교한다고 합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박로가 과장된 말로 한(汗)의 위엄이 막북(漠北)에 미쳤으며 온화하고 인(仁)에 가깝다고 하였으니, 옛적 송(宋)나라 사신이 금(金)나라에서 돌아와 금나라 사람을 칭찬하기를, 산에 오르는 호랑이와 같고 물을 건너는 수달과 같다고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옛날이나 지금 모두가 똑 같은 길을 밟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만하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3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31면
  • 【분류】
    외교-야(野) / 역사-사학(史學)

    ○賓客朴𥶇將還赴瀋陽, 上引見之, 問曰: "卿之來, 其出於不得已乎?" 𥶇曰: "臣忝在陪從之列, 豈欲一日離違? 彼此形勢不同, 欲以彼中事情, 陳達於廟堂而出來。 此非臣之意見, 亦非世子之所擅送也。 彼人尙不信我國, 要遣差官而詰問, 故臣不得已出來耳。" 上曰: "彼國情形, 可得聞乎?" 𥶇曰: "彼國侈大極矣。 漠北諸, 盡屬於其國, 所未附者, 只黃河以北, 而車河羅太子, 【車河羅, 卽西㺚部落之號也。】 爲汗之壻, 魚皮㺚子, 亦不血刃而歸附, 大抵威行漠北矣。" 上曰: "天朝亦有講和羈縻之計云, 然否?" 𥶇曰: "天朝和使果出來, 而乃山海關軍門所送之人。 所謂上使, 兩目俱盲, 似是應募人也。 淸國民情, 厭苦兵事, 且欲通貨于中原, 日望和事之成, 淸人二十騎, 亦入去于中原云。 彼諸王輩, 皆分黨, 多有乖爭之事, 汗死則國必亂矣。 虎口卽汗之側生子, 不定名位, 又有十四歲子, 而以側生故, 不得爲嗣, 他日必有爭立之擧。" 上曰: "汗之爲人何如?" 𥶇曰: "和易近仁, 無悍暴之擧, 且能敦睦於兄弟矣。" 上曰: "諸將中用事者誰乎?" 𥶇曰: "范文程普太平古祈淸高等用事, 而東事則專委於兩將矣。" 上曰: "張春之爲人何如?" 𥶇曰: "年過七十, 而精彩動人。 正朝賀禮時, 世子適過其所寓而入見之, 則張春言: ‘我不東向坐久矣。’ 其談論琅琅可聽, 虜中亦極尊敬, 比之於蘇武云矣。"

    【史臣曰: "朴𥶇張皇辭說, 謂之威行漠北、和易近仁。 昔使還自, 盛稱金國之人, 登山如虎, 涉水如獺。 今古一轍, 良可痛也。"】


    • 【태백산사고본】 37책 3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31면
    • 【분류】
      외교-야(野)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