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부가 전 판서 조익의 귀양을 계하다
헌부가 아뢰기를,
"전 판서 조익(趙翼)은 어가(御駕)가 허둥지둥 당황할 때를 당하여 고삐를 잡고 따르는 의리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바다로 도망쳤습니다. 위급한 시기에 전하를 버리고 대책이 없게 되자, 분의 대장(奮義大將)이라 자호(自號)하고는 배를 빼앗아 타고 다니며 식량을 거두어 먹고 살았으며 그 이름을 빌려 사사로움을 구제하였습니다. 종사(宗社)와 빈궁(嬪宮)이 그 당시 강도(江都)에 있었는데 조익은 무관심하였고 섬에서 출몰한 지 30여 일만에 겨우 발자취가 성에 이르렀으며 일이 위급하게 되자 먼저 달아났으니, 임금을 잊고 국가를 저버린 죄는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멀리 귀양을 보내소서."
하니, 【 대사헌 김영조(金榮祖), 장령 유석(柳碩), 지평 이해창(李海昌).】 답하기를,
"조익은 그 실정이 용서할 만할 뿐만 아니라 논죄하기도 너무 늦었으니, 다시는 번독스럽게 하지 말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조익은 본래 경술(經術)로써 자임(自任)하여 지극한 효도로 어버이를 섬겨서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할 바가 있는데, 성품이 느긋하고 식견이 둔탁하여 일을 처리할 때에 비웃음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나 병자 호란에 호종하지 못한 것은 80세의 어버이가 집에 있었기 때문인데, 유석(柳碩)이 시기를 틈타 모함한 것이 이에 이르렀으니, 다른 당파를 공격하는 해가 매우 극심하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3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28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역사-사학(史學)
○憲府啓曰: "前判書趙翼, 當翠華蒼黃之日, 不思執羈靮以從之義, 遵海而逃。 棄殿下於危急之時, 計乃無聊, 自號爲奮義大將, 攘舡而乘, 聚糧而食, 假其名而濟其私。 宗社、嬪宮方在江都, 而翼越視之, 出沒島嶼餘三十日, 跡纔及城, 事急先走, 忘君負國之罪, 不可不懲。 請遠竄。" 【大司憲金榮祖、掌令柳碩、持平李海昌。】 答曰: "趙翼非但情有可恕, 論罪太晩, 更勿煩瀆。"
【史臣曰: "趙翼素以經術自任, 事親至孝, 有人所不及者, 而稟質弛緩, 見識鈍滯, 處事之際, 未免譏笑。 然丙子之亂, 不得扈駕者, 以其八十之親在堂故也。 柳碩之乘時擠陷, 乃至於此, 伐異之害, 吁其甚矣!"】
- 【태백산사고본】 37책 3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28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