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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36권, 인조 16년 6월 13일 갑진 2번째기사 1638년 명 숭정(崇禎) 11년

예조가 포로로 잡혀 갔던 부인들의 처리에 대해 계하다

예조가 아뢰기를,

"지난번 묘당의 뜻은 비록 포용하여 아울러 기르자는 데서 나왔으나 절의의 큰 한계가 이로 말미암아 한번 무너지게 되면 장차 나라를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대간이 아뢴 바 변통하여 중도를 얻자는 것이 실로 합당하니 지금 똑같이 하게 하는 법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합하기를 원하는 자는 소원대로 하게 하고 재취를 원하는 자는 그대로 들어주면 묘당과 대간의 의논이 모두 시행되어 어긋나지 않고 조종(祖宗)이 수백 년간 배양한 교화도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법제(法制)를 세울 때 반드시 양사의 서경을 받는다는 것은 법전에 실려 있으나 오랫동안 폐하고 시행하지 않았으니 실로 미안한 일입니다. 지금부터는 다시 밝혀 거행하여 선왕의 성헌(成憲)을 따르소서."

하니, 답하기를,

"다시 대신에게 의논하여 결정하라."

하였다. 영돈녕부사 이성구(李聖求)가 상차하여 아뢰기를,

"저 부인들이 의지할 곳을 잃는 것은 참으로 불쌍하지만 남편의 후사가 끊기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더구나 부인은 이미 버림을 받았는데 남편도 또 재취하지 못한다면 피차가 모두 홀로 된 것을 원망하는 신세가 될 것이니 양쪽 다 막는 것보다는 한쪽이라도 허락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또 역적의 딸도 이혼하게 하는 예가 있는데 지금 이 오욕을 입은 부인은 역적 집안의 자손보다 더 심하지 않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사대부 중에 정리가 몹시 절박한 자는 사유를 갖추어 상언하여 품지(稟旨)해서 이혼하게 하면 중도를 얻을 수 있을 듯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에 진달한 내용은 대신들과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하였다. 좌의정 최명길이 헌의하기를,

"선묘(宣廟)께서 환도(還都)한 후 사대부의 처로서 포로로 잡혀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자들은 모두 개취(改娶)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유성룡(柳成龍)·이원익(李元翼)·이덕형(李德馨)·이항복(李恒福)·성혼(成渾) 등과 같은 명경 석유(名卿碩儒)들의 식견의 바름은 반드시 지금 사람들과 비할 바가 아닐텐데 이의가 있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필시 이유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신이 전일 헌의할 때는 성조(聖祖)와 현신(賢臣)들이 이미 했던 자취를 따라 홀아비와 홀어미들로 하여금 각기 제가 살 곳을 얻게 하고자 한 것에 불과했는데, 지금 삼사와 예관들의 논의가 이와 같으니, 신이 어찌 감히 스스로 옳다고 여겨 반드시 시행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다만 해조의 계사를 보건대, 처음에는 절의의 큰 한계를 중요시하여 그 말이 옳은 듯했으나 끝에 가서 반드시 똑같이 하게 하는 법을 만들 필요가 없고 다시 합하든 재취를 하든 모두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하자고 했으니, 한 나라의 법을 나누어 둘로 만들었으므로 절의를 부식(扶植)하는 뜻도 장차 반만 이루어지고 반은 유실될 것입니다. 왕자(王者)의 정사가 이처럼 구차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하고, 우의정 신경진이 헌의하기를,

"온 나라의 백성들 중 태반이 연루되었으니 결코 담을 넘거나 개구멍으로 들어와 훔쳐간 것처럼 한 잘못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더구나 그 사이에 어찌 몸을 깨끗이 지켜 절의를 보전한 자가 없겠습니까. 조정의 포용하는 도리에 있어 일체 이혼하게 하여 홀로 되는 원통함이 있게 해서는 안 되니, 그들의 뜻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또 새로운 법을 시행할 때에는 반드시 양사의 서경을 받는 것은 법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그들의 뜻에 맡긴다면 서경할 필요가 없음이 분명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선조(先朝) 때의 사례에 따라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국이 아뢰기를,

"이성구가 차자에 진달한 것은 반드시 의견이 있어서일 것입니다만,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하는 것이니 한두 거족(巨族)을 위해 저것은 취하고 이것은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신들의 어리석은 소견은 이미 수의(收議) 때 자세히 아뢰었으니 상께서 결정하시기에 달렸습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36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23면
  • 【분류】
    호구-이동(移動) / 윤리(倫理) / 풍속-풍속(風俗) / 사법-법제(法制)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禮曹啓曰: "頃者廟堂之意, 雖出於包容竝育, 而節義大閑, 由此一壞, 則將無以爲國。 臺諫所謂變通得中者, 誠爲合宜, 今不必爲一切之法。 復合者從其所願, 再娶者聽其所爲, 則廟堂、臺諫之論, 竝行不悖, 而祖宗數百年培養之化, 庶幾不墜矣。 至於法制之立, 必署經於兩司者, 著在令甲, 而久廢不擧, 實涉未安。 自今後請申明擧行, 以遵先王成憲。" 答曰: "更議大臣定奪。" 領敦寧府事李聖求上箚以爲:

彼婦之失所, 固爲可矜; 其夫之絶嗣, 獨非可念乎? 況婦旣見棄, 夫又不娶, 則彼此俱爲怨曠向隅之人耳。 與其兩塞, 無寧一通? 且逆賊之女, 或有離異之例。 今此汚辱之婦, 不有甚於亂家之子者乎? 臣愚竊以爲, 士夫家顯有情理切迫者, 許令具由上言, 稟旨離異, 則似乎得中矣。

答曰: "箚陳之事, 當與諸大臣議處焉。" 左議政崔鳴吉獻議曰: "宣廟還都後, 士夫妻被擄生還者, 竝不許改娶。 其時名卿碩儒如柳成龍李元翼李德馨李恒福成渾等, 其識見之正, 必非今人比, 而未聞有異議, 此必有所以然。 臣之前日獻議, 不過欲遵守聖祖、賢臣已行之迹, 俾曠夫、怨女, 各得其所者耳。 今者三司、禮官所論如此, 臣何敢自以爲是, 求其必行也? 但見該曹啓辭, 初則以節義大閑爲重, 其言似矣, 而其結語曰: ‘不必爲一切之法, 復合、再娶, 一從其願。’ 云則一國之法, 岐而爲二, 其扶植節義之意, 又將得其半, 而遺其半。 王者之政, 恐不若是苟簡。" 右議政申景禛獻議曰: "擧國生靈, 太半係累, 斷非踰鑽之比。 況於其間, 亦豈無潔身全節者哉? 在朝家含容之道, 亦不可一切離異, 俾有向隅之冤也, 莫若任他之爲愈。 且新法之行, 必署經於兩司者, 所以垂憲於後來。 旣曰任他, 則署經之不必行明矣。" 答曰: "依先朝定奪施行。" 備局啓曰: "李聖求箚內所陳, 必有意見, 而法者所以齊衆, 恐不可爲一二巨家, 有所彼此取舍。 臣等愚見, 已悉於收議, 惟在上裁。"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36책 36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23면
  • 【분류】
    호구-이동(移動) / 윤리(倫理) / 풍속-풍속(風俗) / 사법-법제(法制)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