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과 당상을 인견하여 왜구·남한 산성의 수축 등에 대해 논의하다
상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왜구는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싸움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성질이 본래 교활하고 사특하다. 우리 나라가 추악한 오랑캐에게 굴욕당한 사실을 알고 반드시 능멸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차왜(差倭)가 이른바 ‘그대로 왜관에 머물러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검칙하고자 한다.’는 말은, 우리의 사정을 탐지하려는 데 불과하다. 그렇지 않다면 서로 조응하려는 계책일 것이다. 바람이 순조로운 절기가 닥쳐오니, 매우 우려할 만하다."
하니, 병조 판서 이시백(李時白)이 아뢰기를,
"저들이 만약 먼저 말을 한다면 우리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사(信使)를 보내 우리의 실상을 말하고 저들의 실정을 아울러 탐색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과 같이 한다면 저들이 믿겠는가, 가련히 여기겠는가. 나는 먼저 말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니, 영의정 이홍주(李弘胄)가 아뢰기를,
"홍서봉의 소를 보니, 그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차왜가 이른바 ‘북쪽 오랑캐[北狄]’니, ‘중국 물화[唐貨]’니 한 말을 보건대, 이미 우리 나라 사정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였다. 부제학 이경석이 아뢰기를,
"대마 도주는 본래 우리 나라를 침해하려고 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사정을 사실대로 말해 준다면 또한 우리가 저들을 성실하게 대접한다는 것을 알아 둘 사이를 주선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요청한 바를 굳게 고집하여 허락해주지 않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절대로 전의 규정을 다 바꿀 수 없다. 요즈음 변괴가 매우 많이 나타나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치는 조짐이 있다. 닥쳐올 환난에 대한 방비를 조금도 늦출 수 없다. 전라도의 주사(舟師)는 통영(統營)에 첨방(添防)하고, 충청도의 주사는 전라우도에 첨방하라. 독운사(督運使)를 차송해 속히 서쪽 지방의 군량을 운송하라. 변장의 급료는 변을 기다리는 동안 헤아려 지급해 군사들을 놓아보내고 베를 거두는 길을 막으라.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토병을 수합하여 정돈하고서 기다리게 하라."
하였다. 홍주가 아뢰기를,
"순검사 임광을 속히 내려보내면 요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뢴 대로 하라. 별록(別錄) 7조를 청나라에 보내 왜정(倭情)을 고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자, 홍주가 아뢰기를,
"청나라사람들이 전부터 왜와 물화를 유통하려는 뜻이 있었으니, 이점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우윤 여이징(呂爾徵)이 아뢰기를,
"저들이 만약 이로 인해 삼남(三南)에 둔병(屯兵)하려는 계책을 하게 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였다. 경석이 아뢰기를,
"조령(鳥嶺)은 남쪽 관문(關門)의 요충지이고, 어류 산성(御留山城)은 절험(絶險)하기 비할 데 없는 곳입니다. 가까운 읍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이곳을 보전해 지켜려 한다고 합니다. 만약 요리해 수축한다면 급할 때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소견이 없지 않다. 묘당으로 하여금 참작해 처리하도록 하라."
하고, 임광에게 이르기를,
"경이 내려갈 것인데 듣자니, 연해 각읍의 전선(戰船)과 병선(兵船)을 바람이 순할 때에도 해안에 그대로 매두고 있다고 한다. 이는 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 모름지기 마음을 다해 검칙하라."
하였다. 시백이 아뢰기를,
"흩어졌던 군사 1천 명이 금명간 들어온다고 하니, 오래지 않아 남한 산성을 수축하는 역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디서부터 역사를 시작하고, 누가 감독하는가?"
하자, 대답하기를,
"망월대(望月臺)에서 시작하고, 종사관 홍전(洪瑑)이 이 역사를 전적으로 주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군기시의 궁전(弓箭)과 내궁방(內弓房)에 저장된 것을 모두 남한 산성으로 실어들이라."
하였다. 시백이 아뢰기를,
"광주(廣州)가 난을 겪은 뒤로 살아남은 백성들이 흩어져 떠도니, 부윤이 된 자가 먼저 민심을 수습한 뒤에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새로 부임한 부윤은 잘 다스린다는 소문이 있으니, 어떨지 모르겠다."
하자, 대답하기를,
"신은 전혀 그 사람을 모릅니다. 대체로 이 직임에 제수된 자들은 너무 강경해도 안 되고 너무 유순해도 안 됩니다. 신의 소견으로는 홍전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현저한 공로도 없고 이제 막 죄망(罪網)에서 벗어났는데, 곧바로 중임에 제수하는 것이 불가하지 않겠는가?"
하니, 아뢰기를,
"홍전은 용력(勇力)이 있는데다 활을 잘 쏘니 실로 발탁해 임용하기에 합당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경이 나라의 중대한 임무를 받고 있으므로 내가 경의 뜻에 따라 사체가 온편치 못함을 헤아리지 않고 산성에다 서우신(徐佑申)을 유배하였다. 이경의(李景義)가 비록 잘 다스린다는 명성이 있지만, 경과 함께 일을 함에 있어서 홍전만 못하다면 경의는 도로 전의 직임에 제수하고, 홍전을 특별히 부윤에 제수하여 경의 뜻대로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36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기(軍器) / 인사-임면(任免)
○上引見大臣、備局堂上。 上曰: "倭寇非但輕生好戰, 性本狡黠。 知我國屈辱於醜虜, 必有凌侮之心。 差倭所謂仍留館中, 檢飭諸事云者, 不過探聽我國事情。 不然則欲相應之計也。 節迫風和, 極可憂慮。" 兵曹判書李時白曰: "彼若先發, 則我無可答之辭。 不如送信使, 告我實狀而兼探彼情也。" 上曰: "如卿言, 則彼信之耶? 憐之耶? 以我所料, 無先告之理矣。" 領議政李弘冑曰: "見洪瑞鳳疏, 其言有理。 以差倭所謂北狄、唐貨等語觀之, 則已知我國事情無疑矣。" 副提學李景奭曰: "島主本非欲害我國者也。 以我事情, 從實告之, 則亦知我之待渠以誠實, 而或有周旋兩間之事。 且其所請, 不必堅執不許也。" 上曰: "決不可盡變前規。 近日變怪甚多, 有自南以北之兆。 陰雨之備, 不容少緩。 全羅道舟師, 則添防於統營, 忠淸道則添防於全羅右道, 差送督運使, 速運西糧, 邊將所食之料, 限待變間計給, 以杜放軍收布之路, 使之收合土兵, 整頓以待。" 弘冑曰: "巡檢使任絖, 從速下去, 可以料理。" 上曰: "依啓。 別錄七條, 送于淸國, 告以倭情如何?" 弘冑曰: "淸人自前有欲與倭通貨之意, 此不可不慮也。" 右尹呂爾徵曰: "彼若因此有屯兵三南之計, 則奈何?" 上曰: "寧有是理?" 景奭曰: "鳥嶺乃南關要衝, 而御留山城絶險無比, 近邑人心, 皆欲保守云。 若料理修築, 則可以得力於緩急矣。" 上曰: "其言不無所見。 令廟堂酌處。" 謂任絖曰: "卿將下去矣。 聞沿海各邑戰、兵船, 雖在風和之時, 掛置海岸云。 是與無船何異? 須盡心檢飭。" 時白曰: "潰軍一千人, 今明入來。 不久當起南漢築城之役。" 上曰: "起役始於何處, 而何人監董耶?" 對曰: "始於望月臺, 從事官洪瑑專管斯役矣。" 上曰: "軍器寺弓箭及內弓房所藏, 幷輸入于山城。" 時白曰: "廣州經亂後, 遺民流散, 爲府尹者, 先務收拾民心, 然後庶可保全。" 上曰: "新府尹有治聲, 未知如何。" 對曰: "臣全不知其人, 而蓋授此任者, 太剛太柔俱不可。 以臣所見, 無如洪瑑者也。" 上曰: "旣無顯著功勞, 而纔脫罪網, 旋授重任, 無乃不可乎?" 對曰: "瑑有勇力, 且善射, 實合擢用。" 上曰: "卿受國重任, 故予從卿意, 不計事體之未妥, 而配徐佑申于山城矣。 李景義雖有善治之名, 與卿同事, 果不如洪瑑, 則景義還授前任, 瑑特拜府尹, 用副卿意。"
- 【태백산사고본】 36책 36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기(軍器)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