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왜가 말한 7조목에 대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여 의논하다
상이 차왜(差倭)가 말한 7조목의 일을 가지고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영의정 이홍주(李弘胄)에게 이르기를,
"경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하니, 아뢰기를,
"이번에 와서 청한 것이 과연 이상한 듯합니다만, 숙배하는 예에 있어서 단상에서 행하고자 하는 것은 대단히 따르기 어려운 청은 아닙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자는 도주(島主)의 차왜인데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니, 예조 판서 한여직(韓汝溭)이 아뢰기를,
"저들은 우리 나라 사신을 예조의 차관으로 생각한다 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예조의 차관이 바로 국사(國使)이다."
하였다. 인하여 임광(任絖)에게 묻기를,
"우리 나라 사신이 일본에 들어가면 어느 곳에서 절하는가?"
하니, 아뢰기를,
"우리 나라 사신은 관백이 앉아 있는 상단에서 절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숙배하는 예는 직책을 받은 사람에게서 나올 것이니, 직책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억지로 시킬 필요가 없다. 이 뜻으로 언급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하니, 홍주가 아뢰기를,
"차왜의 뜻은 숙배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모래밭에서 거행하는 것을 곤란하게 여길 뿐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전의 규정을 바꿀 수 없다."
하였다. 구굉(具宏)이 아뢰기를,
"도주가 조흥(調興)에게 모함을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이것으로 발명할 터전을 삼으려는 것입니다."
하고, 여이징(呂爾徵)은 아뢰기를,
"도주가 조흥에게 모함을 받아 이런 청이 이번에 있게 되었으니, 비록 준허(准許)할 수는 없더라도 한두 가지는 들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7조목 모두 우롱하는 뜻이다. 이미 우리를 침략하려 하고 있으니, 비록 도주의 청을 준허하더라도 어찌 전쟁을 늦출 수 있겠는가. 우리가 취할 방법을 다하여 저들의 동정을 기다릴 뿐이다."
하였다. 구굉이 아뢰기를,
"우리가 취할 방도를 다하지 못하니 답답합니다."
하고, 병판 이시백이 아뢰기를,
"옛날 뽕나무를 다투다 흔단을 낸 일이 있으니,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구가 우리 나라를 침범하더라도 청나라 사람들이 와서 구원해 주리라는 것을 기필할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가 왜구의 소유가 되면 강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니, 청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다. 후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반드시 힘을 다해 구원할 것이다. 임진년 난리 때 명나라에서 와 구원해 주었던 것이 어찌 단지 우리 나라만을 위해서였겠는가. 그 형세가 그런 것이다. 지난해 신사(信使)가 돌아가자마자 순검사를 파견해 주사(舟師)를 신칙하였으니, 비록 실제적으로 거행한 일은 없었지만, 저들이 혹시 그들의 정형을 탐색하고 방비를 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런 등등의 일로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다."
하였다. 홍주가 아뢰기를,
"‘봉진가’ 석 자는, 도주가 관백이 혹 그것을 보고 조선에 신복(臣服)한다고 여길까 염려하여 삭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고, 시백이 아뢰기를,
"비록 삭제하더라도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이미 값을 주었는데 감히 삭제하기를 청하니, 매우 터무니 없다."
하였다. 부제학 이경석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가 호란(胡亂)을 치루자마자 또 섬 오랑캐의 의심할 만한 단서가 있으니, 반드시 감사는 어느 곳을 지키고 병사는 어느 곳을 지키도록 미리 구획을 요리한 뒤에야 방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강도의 소재지는 비록 고쳐 정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빨리 수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홍주는 아뢰기를,
"그곳의 지도를 보고 김신국의 말을 들으니, 고쳐 정하는 것이 어려워 예전대로 두느니만 못합니다. 유수 신계영(辛啓榮)은 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김신국은 본디 재주와 국량이 있으니, 강도의 일을 한결같이 그에게 맡기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그렇다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36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4면
- 【분류】외교-왜(倭) / 정론-정론(政論) / 왕실-의식(儀式)
○戊子/上以差倭七條事, 引見大臣、備局堂上。 謂領議政李弘冑曰: "於卿意如何?" 對曰: "今此來請, 果似異常, 而至於肅拜之禮, 欲行於壇上者, 非大段難從之請也。" 上曰: "此則島主差倭, 何敢如是?" 禮曹判書韓汝溭曰: "彼以我國使臣, 爲禮曹差官云矣。" 上曰: "禮曹差官, 便是國使也。" 因問於任絖曰: "我國使臣入日本, 拜於何處?" 對曰: "我國使臣拜於關白所坐上壇矣。" 上曰: "肅拜之禮, 出於受職人, 非受職者, 則不必强使爲之。 以此言及似可。" 弘冑曰: "差倭之意, 非不欲肅拜, 只以行於沙中爲難耳。" 上曰: "前規不可撓改也。" 具宏曰: "島主爲調興所構陷, 故必欲以此爲發明之地也。" 呂爾徵曰: "島主爲調興所構陷, 今有此請, 雖不可準許, 亦不可不副其一二也。" 上曰: "七條皆愚弄之意也。 旣欲侵我, 則雖許島主之請, 豈可弭兵乎? 當盡在我之道, 以待彼之動靜而已。" 宏曰: "在我之道未盡, 是可悶也。" 兵判李時白曰: "古有爭桑而生釁者, 不可不愼也。 倭寇雖侵犯我國, 淸人之來救, 未可必也。" 上曰: "不然。 我國爲倭所有, 則只隔一帶水, 淸國危矣。 後患不可不慮, 必盡力救之。 壬辰之亂, 天朝之來救, 豈徒爲我國乎? 其勢然也。 上年信使纔還, 遣巡檢使申飭舟師, 雖無着實之事, 彼或以爲, 探其情形而爲之防備, 故以此等事試我也。" 弘冑曰: "封進價三字, 則島主蓋慮關白或見之, 而以爲臣服朝鮮, 故欲去之耳。" 時白曰: "雖去之何妨?" 上曰: "我旣給價, 而乃敢請去, 甚無據也。" 副提學李景奭曰: "我國纔經胡亂, 又有島夷可疑之端, 必須監司守某地, 兵使守某地, 預爲料理區劃, 然後庶可備禦。 且江都邑居, 雖未易改卜, 而不可不從速收拾也。" 弘冑曰: "見其地圖, 且聞金藎國之言, 改卜難便, 不如仍舊。 留守辛啓榮乃未經事之人也。 金藎國素有才局, 江都之事, 一以委之似當。" 上曰: "然。"
- 【태백산사고본】 36책 36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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