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집과 오달제가 문초 당하다 오달제가 죽은 일
윤집과 오달제는 청나라 병사의 후진(後陣)에 있어서 이달 15일이야 심양에 도착하였다. 19일에 용골대가 재신과 강관을 아문에 불러들여 두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황제의 말로 묻기를,
"그대들이 화친을 단절하자는 의논을 앞장서 외쳐 두 나라의 틈이 생기게 하였으니, 그 죄가 매우 중하다. 죽여야 하겠지만 특별히 인명이 지중하여 살려주고자 하니 너희들이 처자를 거느리고 이곳에 들어와서 살겠는가?"
하니, 윤집이 대답하기를,
"난리 이후에 처자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으니, 천천히 들어보고 처신하겠다."
하였고, 달제는 대답하기를,
"내가 참고 여기까지 온 것은 만에 하나라도 살아서 돌아가면 우리 임금과 노모를 다시 보려는 것이었다. 다시 고국에 돌아갈 수 없다면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 속히 나를 죽여라."
하니, 용골대가 말하기를,
"저것이 황제가 살려주는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항거하여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니, 이제는 다시 용서할 수 없다."
하였다. 재신 박황(朴潢)과 궁관(宮官) 이명웅(李命雄)이 말하기를,
"나이 젊은 사람이라 다만 임금과 어버이를 사모하는 마음만 간절하여 함부로 생각하였던 것을 말한 것이니 아무쪼록 그를 용서해 주시오."
하면서, 간절히 부탁해 마지 않았다. 박황이 이어 뒤돌아보고 달제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유독 서서(徐庶)의 일039) 일을 듣지 못하였는가. 그대의 노친에게 그대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듣게 하는 것이 비록 이역에 있다 하더라도 죽었다고 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하니, 달제가 대답하지 않고 다만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호인(胡人)이 즉시 묶어다가 서문 밖에서 죽였다. 시체를 수렴하려고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달제가 끌려가는 도중에 시(詩)를 지어 그의 노모와 형에게 부쳤는데, 그 절구 1 수에 이르기를,
외로운 신하 의리 바르니 부끄럽지 않고
성주의 깊으신 은혜 죽음 또한 가벼워라
이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 있다면
홀로 계신 어머님 두고 가는 거라오
하였는데, 이 글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84면
- 【분류】인물(人物) / 외교-야(野)
- [註 039]서서(徐庶)의 일 : 모친을 위하여 절개를 굽혔던 일. 조조(曹操)가 형주(荊州)에서 패배하고 서서의 모친을 인질로 잡아 서서를 부르니, 서서가 패업을 맹세했던 유비를 하직하고 노모를 찾아 조조에게로 간 일을 말함 《삼국지(三國志)》 권35(卷三十五).
○尹集、吳達濟, 在淸兵後陣, 至是月十五日, 始到瀋陽。 十九日, 龍骨大招宰臣、講官于衙門, 坐兩人于前, 以皇帝之言, 問之曰: "爾等倡議絶和, 使二國成釁, 其罪極重, 可以殺之, 特以人命至重, 欲令全活。 爾輩可率妻子, 入居于此。" 集曰: "喪亂之後, 不知妻子存沒, 徐當聞見而處之。" 達濟曰: "我之濡忍至此者, 萬一生還, 復見吾君與老母耳。 若不得復歸故國, 生不如死, 須速殺我。" 龍胡曰: "渠不念皇帝全活之恩, 抗言如此, 今不可復貸矣。" 宰臣朴潢、宮官李命雄曰: "年少之人, 只切戀君親之心, 妄陳所懷, 請貸其命。" 懇乞不已。 潢仍顧謂達濟曰: "君獨不聞徐庶事乎? 使君老親, 聞君之生存, 雖在異域, 不猶愈於殞命乎?" 達濟不應, 只出涕而已。 胡人卽縛出西門外殺之。 請收屍, 不許。 達濟被係在途中, 作詩寄其老母及兄。 其一絶曰: "孤臣義正心無怍, 聖主恩深死亦輕。 最是此生無限慟, 北堂虛負倚門情。" 聞者莫不流涕。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84면
- 【분류】인물(人物)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