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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3월 9일 무신 5번째기사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통신사 임광, 부사 김세렴 등이 일본에서 돌아와 사정을 아뢰다

통신사 임광(任絖), 부사 김세렴(金世濂), 종사관 황호(黃㦿)가 일본에서 돌아오니, 상이 불러서 만나 보고 일본의 사정을 물어보았다. 임광이 대답하기를,

"그 나라는 명령이 엄하여 이웃 나라 사신에게 그들의 사정을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이 본 바로는 관백은 군병의 일을 힘쓰지 아니하여 포(砲)를 쏘는 일은 완전히 폐지하였으므로 사람들이 포성을 들으면 놀라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일본 전선(戰船)에도 방패막이가 있던가?"

하니, 임광이 아뢰기를,

"사면에 있었고 그 사이에 장막을 설치하여 무기를 갖추어 두고 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접대하는 예는 어떠하던가?"

하니, 임광이 아뢰기를,

"그릇은 정결하고 진수(珍羞)가 가득하였으며 대단히 사치로운데다 예모도 후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들의 사치가 중국과 비교하여 어떻던가?"

하니, 임광이 아뢰기를,

"가택의 도배는 모두 니금(泥金)을 사용하였으며, 장관의 마구간이 혹 수백칸이 되는데, 모두 오색으로 단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보다 심하다 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사치가 그러한데 그곳의 백성은 곤궁하지 않던가?"

하니, 임광이 아뢰기를,

"사치가 이미 극에 달하고 부세도 역시 무거우니 농민의 곤췌함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관백의 사람됨은 어떠하였으며, 그들의 정치는 또한 어떻던가?"

하자, 임광이 아뢰기를,

"그의 속마음은 알 수 없으나 외모로 볼 때 용렬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흉년을 만났을 때는 힘껏 너그러운 정치를 행하였고 또한 재화를 좋아하지 않아 평수길(平秀吉)보다 훌륭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가광(家光)이 대대로 승습할 것이라고 하던가?"

하니, 임광이 아뢰기를,

"가광은 아들이 없어서 족자(族子)에게 전위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7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외교-왜(倭)

○通信使任絖、副使金世濂、從事官黃㦿, 還自日本。 上召見之, 問日本事情, 對曰: "其國令嚴, 使隣國使臣, 不得知其事情矣。 然臣之所見, 則關白不務兵革, 專廢放砲, 人聞砲聲, 便驚駭顚倒矣。" 上曰: "日本戰船, 亦有干盾耶?" 曰: "四面有之, 而設帳於其間, 以備戰具矣。" 上曰: "接待之禮何如?" 曰: "盤盂潔精, 珍羞交錯, 奢侈極矣, 禮貌厚矣。" 上曰: "其奢侈與中國何如?" 曰: "家舍塗墍, 皆用泥金。 將官馬廐, 或至數百間, 而皆飾以五彩。 以此推之, 甚於中國矣。" 上曰: "奢侈如此, 其民不困乎?" 曰: "奢侈旣極, 賦稅亦重。 農民之困悴, 可想矣。" 上曰: "關白爲人何如, 其爲政, 亦何如?" 曰: "其中則未可知, 而外貌不是庸孱人。 其遇凶年, 務行寬政, 亦不好貨, 猶勝於平秀吉云矣。" 上曰: "家光世世承襲云耶?" 曰: "家光無子, 以族子傳位云矣。"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7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