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골대가 한의 칙서를 가지고 오다.
용골대(龍骨大)가 한(汗)의 글을 가지고 왔는데, 그 글에,
"관온 인성 황제(寬溫仁聖皇帝)는 조선 국왕에게 조유(詔諭)한다. 보내온 주문(奏文)을 보건대, 20일의 조칙 내용을 갖추어 진술하고 종사(宗社)와 생령(生靈)에 대한 계책을 근심하면서 조칙의 내용을 분명히 내려 안심하고 귀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청하였는데, 짐이 식언(食言)할까 의심하는 것인가. 그러나 짐은 본래 나의 정성을 남에게까지 적용하니, 지난번의 말을 틀림없이 실천할 뿐만 아니라 후일 유신(維新)하게 하는 데에도 함께 참여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지난날의 죄를 모두 용서하고 규례(規例)를 상세하게 정하여 군신(君臣)이 대대로 지킬 신의(信義)로 삼는 바이다.
그대가 만약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새롭게 하여 은덕을 잊지 않고 자신을 맡기고 귀순하여 자손의 장구한 계책을 삼으려 한다면, 앞으로 명(明)나라가 준 고명(誥命)과 책인(冊印)을 헌납하고, 그들과의 수호(修好)를 끊고, 그들의 연호(年號)를 버리고, 일체의 공문서에 우리의 정삭(正朔)을 받들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는 장자(長子) 및 재일자(再一子)를 인질로 삼고, 제대신(諸大臣)은 아들이 있으면 아들을, 아들이 없으면 동생을 인질로 삼으라. 만일 그대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짐이 인질로 삼은 아들을 세워 왕위를 계승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짐이 만약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조칙을 내리고 사신을 보내어 그대 나라의 보병(步兵)·기병(騎兵)·수군을 조발하여, 혹 수만 명으로 하거나, 혹 기한과 모일 곳을 정하면 착오가 없도록 하라. 짐이 이번에 군사를 돌려 가도(椵島)를 공격해서 취하려 하니, 그대는 배 50척을 내고 수병(水兵)·창포(槍砲)·궁전(弓箭)을 모두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대군이 돌아갈 때에도 호군(犒軍)하는 예(禮)를 응당 거행해야 할 것이다.
성절(聖節)·정조(正朝)·동지(冬至) 중궁 천추(中宮千秋)·태자 천추(太子千秋) 및 경조(慶吊) 등의 일이 있으면 모두 모름지기 예를 올리고 대신 및 내관(內官)에게 명하여 표문(表文)을 받들고 오게 하라. 바치는 표문과 전문(箋文)의 정식(程式), 짐이 조칙을 내리거나 간혹 일이 있어 사신을 보내 유시를 전달할 경우 그대와 사신이 상견례(相見禮)하는 것, 혹 그대의 배신(陪臣)이 알현(謁見)하는 것 및 영접하고 전송하며 사신을 대접하는 예 등을 명나라의 구례(舊例)와 다름이 없도록 하라.
군중(軍中)의 포로들이 압록강(鴨綠江)을 건너고 나서 만약 도망하여 되돌아 오면 체포하여 본주(本主)에게 보내도록 하고, 만약 속(贖)을 바치고 돌아오려고 할 경우 본주의 편의대로 들어 주도록 하라. 우리 군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사로잡은 사람이니, 그대가 뒤에 차마 결박하여 보낼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내외의 제신(諸臣)과 혼인을 맺어 화호(和好)를 굳게 하도록 하라. 신구(新舊)의 성벽은 수리하거나 신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대 나라에 있는 올량합(兀良哈) 사람들은 모두 쇄환(刷還)해야 마땅하다. 일본(日本)과의 무역은 그대가 옛날처럼 하도록 허락한다. 다만 그들의 사신을 인도하여 조회하러 오게 하라. 짐 또한 장차 사신을 저들에게 보낼 것이다. 그리고 동쪽의 올량합으로 저들에게 도피하여 살고 있는 자들과는 다시 무역하게 하지 말고 보는 대로 즉시 체포하여 보내라.
그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는데 짐이 다시 살아나게 하였으며, 거의 망해가는 그대의 종사(宗社)를 온전하게 하고, 이미 잃었던 그대의 처자를 완전하게 해주었다. 그대는 마땅히 국가를 다시 일으켜 준 은혜를 생각하라. 뒷날 자자손손토록 신의를 어기지 말도록 한다면 그대 나라가 영원히 안정될 것이다. 짐은 그대 나라가 되풀이해서 교활하게 속였기 때문에 이렇게 조칙으로 보이는 바이다. 숭덕(崇德) 2년 정월 28일.
세폐(歲幣)는 황금(黃金) 1백 냥(兩), 백은(白銀) 1천 냥, 수우각궁면(水牛角弓面) 2백 부(副), 표피(豹皮) 1백 장(張), 녹피(鹿皮) 1백 장(張), 다(茶) 1천 포(包), 수달피(水㺚皮) 4백 장, 청서피(靑黍皮) 3백 장, 호초(胡椒) 10두(斗), 호요도(好腰刀) 26파(把), 소목(蘇木) 2백 근(斤), 호대지(好大紙) 1천 권(卷), 순도(順刀) 10파, 호소지(好小紙) 1천 5백 권, 오조룡석(五爪龍席) 4령(領), 각종 화석(花席) 40령, 백저포(白苧布) 2백 필(匹), 각색 면주(綿紬) 2천 필, 각색 세마포(細麻布) 4백 필, 각색 세포(細布) 1만 필, 포(布) 1천 4백 필, 쌀 1만 포(包)를 정식(定式)으로 삼는다."
하였다. 홍서봉(洪瑞鳳) 등이 나가서 칙서를 맞았는데, 용골대가 말하기를,
"그대 나라가 명나라의 칙서를 받을 때의 의례(儀例)는 어떠하였소?"
하니, 홍서봉이 말하기를,
"칙서를 받든 자는 남쪽을 향하여 서고 배신(陪臣)은 꿇어앉아 받았소이다."
하자, 여기서 의거하여 주고받은 뒤에, 용골대는 동쪽에 앉고 홍서봉 등은 서쪽에 앉았다. 용골대가 말하기를,
"요즈음 매우 추운데 수고스럽지 않소?"
하니, 홍서봉이 말하기를,
"황상께서 온전히 살려주신 덕택으로 노고를 면하게 되었소이다."
하였다. 용골대가 말하기를,
"삼전포(三田浦)에 이미 항복을 받는 단(壇)을 쌓았는데, 황제가 서울에서 나오셨으니, 내일은 이 의식을 거행해야 할 것이오. 몸을 결박하고 관(棺)을 끌고 나오는 등의 허다한 절목(節目)은 지금 모두 없애겠소."
하니, 홍서봉이 말하기를,
"국왕께서 용포(龍袍)를 착용하고 계시는데, 당연히 이 복장으로 나가야 하겠지요?"
하자, 용골대가 말하기를,
"용포는 착용할 수 없소."
하였다. 홍서봉이 말하기를,
"남문(南門)으로 나와야 하겠지요?"
하니, 용골대가 말하기를,
"죄를 지은 사람은 정문(正門)을 통해 나올 수 없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71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야(野)
○龍骨大持汗書來。 其書曰:
寬溫仁聖皇帝, 詔諭朝鮮國王。 來奏, 具述二十日之詔旨, 憂計宗社、生靈, 有明降詔旨, 開安心歸命之請者, 疑朕食言耶? 然朕素推誠, 不特前言必踐, 倂與以後日之維新。 今盡釋前罪, 詳定規例, 以爲君臣世守之信義也。 爾若悔過自新, 不忘恩德, 委身歸命, 以爲子孫長久之計, 則將明朝所與之誥命、冊印獻納, 絶其交好, 去其年號, 一應文移, 奉我正朔。 爾以長子及再一子爲質, 諸大臣有子者以子, 無子者以弟爲質。 萬一爾有不虞, 朕立質子嗣位。 朕若征明朝, 降詔、遣使, 調爾步ㆍ騎、舟師, 或數萬、或刻期會處, 不得有悞。 朕今回兵, 攻取椵島, 爾可發船五十隻, 水兵、槍砲、弓箭, 俱宜自備。 大兵將回, 宜獻犒軍之禮。 其聖節、正朝、冬至、中宮千秋、太子千秋及有慶弔等事, 俱須獻禮, 命大臣及內官, 奉表以來。 其所進表、箋程式及朕降詔勑, 或有事, 遣使傳諭, 爾與使臣相見, 或爾陪臣謁見及迎送、饋使之禮, 毋違明朝舊例。 軍中俘係, 自過鴨綠江後, 若有逃回, 執送本主。 若欲贖還, 聽從本主之便。 蓋我兵死戰、俘獲之人, 爾後毋得以不忍縛送爲辭也。 與內外諸臣, 締結婚媾, 以固和好。 新舊城垣, 不許繕築。 爾國所有兀良哈人, 俱當刷還。 日本貿易, 聽爾如舊。 但當導其使者赴朝, 朕亦將遣使至彼也。 其東邊兀良哈避居於彼者, 不得復與貿易, 若見之, 便當執送。 爾以旣死之身, 朕復生之。 全爾垂亡之宗社, 完爾已失之妻孥, 爾當念國家之再造, 異日子子孫孫, 毋違信義, 邦家永奠矣。 朕因爾國狡詐反覆, 故玆(敎)〔詔〕 示。 崇德二年正月二十八日。 歲幣以黃金一百兩、白銀一千兩、水牛角弓面二百副、豹皮一百張、鹿皮一百張、茶千包、水㺚皮四百張、靑皮三百張、胡椒十斗、好腰刀二十六把、蘇木二百斤、好大紙一千卷、順刀十把、好小紙一千五百卷、五爪龍席四領、各樣花席四十領、白苧布二百匹、各色綿紬二千匹、各色細麻布四百匹、各色細布一萬匹、布一千四百匹、米一萬包爲定式。
瑞鳳等出迎勑書。 龍胡曰: "爾國受南朝勑書時, 儀禮如何?" 瑞鳳曰: "奉勑者南向立, 陪臣跪受矣。" 依此授受後, 龍胡坐東, 瑞鳳等坐西。 龍胡曰: "近日寒甚, 無乃勞乎?" 瑞鳳曰: "賴皇上全生之恩, 得免勞苦。" 龍胡曰: "三田浦已築受降壇。 皇帝自京出來, 明日可行此禮。 面縛、輿櫬等許多節目, 今盡除之矣。" 瑞鳳曰: "國王着龍袍, 當以此服出來乎?" 龍胡曰: "龍袍不可着也。" 瑞鳳曰: "當自南門出來乎?" 龍胡曰: "有罪之人, 不可由正門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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