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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23일 계해 12번째기사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시강원 설서 유계의 적극 싸울 것을 청한 상소문

시강원 설서 유계(兪棨)가 상소하였다.

"신이 지난밤에 삼가 듣건대, 묘당의 신하들이 성상께 여쭈지도 않고 마음대로 양전(兩銓)에 분부하여 각사(各司)에 통지해서 전후에 걸쳐 화친을 배척한 사람의 명단을 기록하게 한 뒤, 장차 그들을 오랑캐 진영에 잡아 보내려고 한다 하였습니다. 신은 지극히 분하고 놀라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는데, 송(宋)나라 변경(汴京)에서도 없었던 일을 바로 오늘날에 보게 될줄이야 일찍이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신이 요즈음 외간에서 전해지는 말을 삼가 듣건대, 이 무리들이 오래도록 불측한 마음을 품고 한 시대의 명류(名流)를 반드시 제거하려고 했는데, 그 뜻을 이룰 길이 없자 겉으로 교활한 오랑캐의 말을 빌려 살육하는 빌미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온 성의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데, 다만 이 무리들의 기세에 위축된 나머지 감히 성상에게 진언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처음에는 그 사실을 듣고 믿지 않았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서는 과연 징험하였습니다.

아, 전하께서 계해년 반정(反正) 초기에 광해군(光海君)의 죄를 낱낱이 거론할 때에, 오랑캐와 서로 통한 것이 실로 그 중 하나를 차지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나라를 세우게 된 근본이라 할 것입니다. 저 화친을 배척한 인사들이 또한 어찌 자신을 위하여 계책한 것이겠습니까. 단지 천지의 떳떳한 법도를 알아 바꿀 수 없는 대의를 붙들어 세우려고 한 것일 뿐인데, 무슨 나라를 그르친 죄가 있겠습니까. 설령 조정이 그 말을 모두 적용한 결과로 전쟁을 야기시켰다 하더라도, 고금 천하 어디에 자신의 지체(肢體)를 잘라 이리와 호랑이에게 먹이로 주면서 ‘저가 앞으로 나를 아껴 깨물지 않을 것이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번 좌상 홍서봉(洪瑞鳳)오랑캐 진영에서 돌아와 감히 차마 듣지 못할 말을 분주하게 와서 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들 무리 8, 9명이 같은 소리로 서로 호응하고 행동을 같이 하며 입대해서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는 태도를 보이면서 실제로 속으로는 임금을 버리고 자신을 안전하게 보전할 계책을 품고서 반드시 저군(儲君)017) 을 협박하여 호랑이의 입에다 던져 넣으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짓도 차마 하는데 무엇인들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이러한 때를 당하여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여 칼을 품고 노려보면서 다투어 그들의 배에 칼을 꽂으려 하자, 이 무리들도 스스로 저지른 죄가 막중하여 천하에 용납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만약 속히 당초의 계획을 진척시켜 오랑캐의 세력을 끼고서 조정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몸도 보전하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갖가지로 시간을 끌면서 사기(事機)를 저지시키고 그르치게 하였는데, 적의 형세가 약화되고 전사(戰士)들이 적개심으로 충만될 때에는 혹 날짜가 불길하다거나 바람이 순조롭지 않다고 핑계대는가 하면, 장차 군사를 내보려고 하다가 실행하지 않은 경우가 혹 하루에 두세 차례나 있게 하는 등 시일을 지체시키고 날짜를 끌어 사기가 꺾이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적의 원병이 크게 이른 뒤에는 허세를 부리며 을러대고 공갈하여 성상의 마음을 동요시킴으로써 조종(祖宗)의 수백 년 종사(宗社)를 마침내 짐승 같은 오랑캐의 번국(蕃國)이 되게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겹겹의 포위는 풀리지 않고 오랑캐는 불만족스럽게 여겨 기필코 우리 임금과 세자에게 푸른 옷을 입혀 종으로 삼으려 하니, 신하된 자로서 또한 어떻게 차마 입을 열고 말하며 다시 이 적과 서로 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무리들은 도리어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한 시대의 명류(名流)를 모두 제거시킴으로써 한 사람도 감히 말하는 자가 없게 한 연후에 자기들 마음대로 나라를 팔아 자신을 온전하게 하여 혼자 왕시옹(王時雍)이나 범경(范瓊)처럼 이득을 누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감히 떳떳치 못한 해괴한 행동을 하면서도 오히려 성상께서 마음 속으로 차마 하지 못할까 염려한 나머지 궁문(宮門)을 지척에 두고도 상께 여쭈지 않고 마음대로 분부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강제로 문안(文案)을 작성케 한 뒤 성에서 나가 사죄한다고 일컬으며 잡아보내는 흔적을 숨기려고 한 것인데, 실제로는 사류(士流)를 해치려고 한 것입니다.

아, 그들의 계교가 교활하고도 참혹한데 어떻게 그런 줄을 알겠습니까. 오랑캐의 글에는 앞장서서 모의하여 맹약을 무너뜨린 자를 말하였는데 이 무리들은 전후에 걸쳐 화친을 배척한 자를 섞어서 거론하였으며, 오랑캐의 글에는 두세 사람을 말하였는데 이 무리들은 그 수효를 정하지 않고 꼭 그들이 미워하는 자를 모두 섬멸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지난날의 사사로운 유감을 보복하고 한편으로는 훗날의 언로(言路)를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 몇 가지만 가지고 살피더라도 그들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환히 알 수 있는데, 신은 아마도 한 시대의 명류가 모두 죽은 뒤에는 이 무리들의 마음에 못할 짓이 없게 될까 염려됩니다.

신이 감히 성상의 뜻을 알지는 못하겠습니다만 화친을 배척한 사람을 잡아 보내면 북쪽으로 끌려가는 치욕을 면할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당초 이 무리들은 말하기를 ‘만약 왕자와 대신을 보내면 화친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미 보낸 뒤에는 곧 이어 세자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또 말하기를 ‘신하라고 일컬으면 포위를 풀 수 있다.’고 하였는데, 신이라고 일컬은 뒤에는 또 성에서 나오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이것이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교활한 오랑캐의 욕심이 끝이 없어 갈수록 요구 조건이 더 심각해지기만 하니, 신은 백마역(白馬驛)의 화(禍)처럼 사류를 일망타진하는 것이 왕과 대신이 끌려간 청성(靑城)의 치욕을 완화시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삼군(三軍)을 지휘하는 원수(元帥)는 꺾을 수 있어도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선비에게는 진실로 몸이 가루가 되어도 본래의 마음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이 무리들이 아무리 왜곡되게 사죄하는 명목을 붙여 축출하는 계교를 이룬다 하더라도 화친을 배척한 인사들의 입장에서는 당초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이 없는데 어떻게 사과해야 할 죄가 있겠습니까. 그저 흉측한 무리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에 불과하여 전하의 처지에서 군신(君臣) 간의 대의를 끊는 결과가 되어 온 나라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 속으로 모두 배반하여 흩어질 것을 생각하게 할 뿐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차마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설혹 이렇게 해서 겹겹의 포위가 풀린다 하더라도 국가의 명맥(命脈)은 이미 끊어졌으니, 결코 얼마 동안이라도 연장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차라리 함께 망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하필이면 전고(前古)에 없었던 일을 하여 천하 후세에 비웃음을 남긴 뒤에야 그만두려 하십니까.

전하께서 꼭 전후에 걸쳐 화친을 배척한 사람을 모두 잡아 보내려 하실 경우, 대소 신료 중에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놔두시겠습니까? 신이 지난해에 경연에 입시하여 영의정 김류가 화친을 배척하는 말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는데, 신사(信使)는 보낼 수 없으며 청나라에 글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김류 또한 화친을 배척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전하께서는 유독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지금 만약 김류 등은 묘당에 편히 있게 하고 단지 평일에 시행되지도 않은 헛말을 한 사류(士流)만 택하여 간사한 사람들의 마음을 쾌하게 할 경우, 신은 신하를 대우하는 전하의 의리 역시 두텁고 얇은 차이가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구하고 어리석은 계책으로는, 진실로 이 무리들을 베어 임금을 무시하고 나라를 그르친 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북쪽으로 끌려가는 치욕을 끝내 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에서 나가기도 전에 먼저 무너져 흩어질 염려가 있을 듯싶습니다. 신이 근일에 이 무리들의 정상을 익숙히 보고 통분스러운 마음이 골수에 사무쳐 한마디 하려고 생각한 지가 오래였습니다. 그러나 단지 이 무리들이 바야흐로 국사를 맡고 있어 말해도 무익할 뿐 분란만 초래할까 참으로 염려되었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은인자중하며 감히 발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이 이미 끝장이 나 희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에 한번 죽을 계획을 결심하고 어리석은 심정을 모두 진달하니, 전하께서 혹시라도 신이 무고하는 말을 한다고 여겨지시거든 먼저 신의 머리를 베어 간교한 사람들의 마음을 쾌하게 하소서. 신은 차라리 송(宋)나라의 진동(陳東)처럼 죽을지언정 차마 이 무리들과 함께 천지 사이에 서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신이 드릴 말씀이 한 가지 있는데, 신이 죽게 된 때를 당하여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예로부터 창업하거나 중흥한 제왕치고 죽음 가운데에서 살기를 구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백 번 죽을 고비에서 벗어나 한 번 살 수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간신들이 자신을 안전하게 하는 계책을 곧이 듣고서 늘 죽을 사(死) 자를 한 쪽에 비켜둔 채 감히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단지 애처로운 사연과 괴로운 말로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는 것으로 일시적으로 요행히 모면하는 훌륭한 계책을 삼으면서 힘없이 구차스럽게 행동하여 오늘날처럼 극도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신은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 만전(萬全)을 기하는 계책은 실로 만위(萬危)의 방법 속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이 마음을 굳게 정하여 흥망과 성패에 동요됨이 없도록 하지 않으십니까.

만약 계책과 힘이 다하여 장차 망할 운명에 이르면 온 성 안의 무리를 네 문으로 나누어 내보내 한편으로는 싸우고 한편으로는 길을 떠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는 미복(微服) 차림으로 그들과 뒤섞여 형양(滎陽)에서 한 고조(漢高祖)가 했던 일이나 계성(薊城)에서 광무제(光武帝)가 했던 것처럼 말을 달려 탈출하셔야 합니다. 하늘이 만약 순조롭게 도와주어 국가의 운명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흥복(興復)시킬 기약을 그래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설혹 불행하게 된다 하더라도 온 족속이 북쪽으로 끌려 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말이 여기에 이르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데, 그야말로 통곡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6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군사-전쟁(戰爭) / 외교-야(野)

○侍講院說書兪棨上疏曰:

臣於去夜, 伏聞廟堂諸臣, 不稟於聖明, 擅自分付兩銓, 知會各司, 案錄前後斥和之人, 將欲執送虜營云。 臣不勝憤惋、驚駭之至。 曾謂汴宋所無之事, 而乃見於今日哉? 臣竊聞近日外間傳言: "此輩久畜不測之心, 必欲除去一時名人, 而無以濟其意, 外假狡之言, 以爲殺戮之餌。 滿城之人, 無不知之, 而特爲此輩氣勢所箝制, 莫敢進言於聖上。" 臣始聞而不信, 今而後果驗矣。 嗚呼! 殿下於癸亥反正之初, 歷數光海之罪, 與相通, 實居其一。 此乃今日立國之本也。 惟彼斥和之輩, 亦豈爲自身計哉? 只知天地之常經, 欲扶不易之大義而已, 有何誤國之罪乎? 設令朝廷盡用其言, 以啓兵釁, 古今天下, 安有自斷肢體, 以餌豺虎曰, 彼將愛我, 而不噬也哉? 頃日左相洪瑞鳳之還自營也, 敢以不忍聞之說, 奔走來傳, 而此輩八九人, 同聲相應, 聯袂入對, 外示涕泣之態, 而內實懷棄君、全身之計, 必欲脅迫儲君, 投諸虎口。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當此之時, 輿情憤惋, 挾劍睥睨, 爭欲剚刃于其腹。 此輩亦自知負罪深重, 爲天下所不容, 其心以爲: "若不速就初計, 挾勢以脅朝廷, 則身且不保" 云爾, 故百般依違, 沮誤事機, 賊勢寡弱, 戰士思憤之時, 則或稱日不吉, 或託風不順, 若將出兵而不果者, 或一日而再三, 留時引日, 以摧士氣。 及乎賊援大至之後, 恫疑虛喝, 震搖聖心, 至令祖宗數百年宗社, 竟爲犬羊之藩國, 而重圍未解, 虜心無厭, 必欲靑衣我兩聖, 則爲人臣子者, 亦安忍開口掛齒, 更與此賊相接哉, 而此輩反欲因此機會, 盡除一時名流, 使無一人敢言者然後, 賣國全身, 惟意所欲, 獨享王時雍范瓊之利。 故乃敢爲此非常駭怪底擧措, 尙慮聖心之有所不忍, 宮門咫尺, 不稟聖旨, 擅自分付, 勒成文案, 稱之以出城謝罪, 欲諱執送之跡, 而實欲戕賊士流, 噫嘻其計, 巧且慘矣。 何以明其然也? 書則以首謀敗盟爲言, 而此輩則混擧前後斥和者; 虜書則以二三人爲言, 而此輩則不定厥數, 必欲盡殲其所憎惡者, 一以報前日之私憾, 一以杜後日之言路。 執此數者而觀之, 則其心所在, 灼然可見。 臣恐一時名流盡死之後, 此輩之心, 無所不至也。 臣不敢知, 聖意以爲, 執送斥和之人, 則可免北轅之辱哉? 當初此輩之言曰: "若送王子、大臣, 則和事可成", 而旣送之後, 旋有儲君之請, 厥後又曰: "稱臣則可以解圍", 而稱臣之後, 又有出城之請, 玆非已著之明驗耶? 狡無厭之欲, 一節每加一節, 臣知白馬之禍, 無益於靑城之辱也。 孔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士固有糜身碎骨不變初心者。 此輩雖曲成謝罪之名, 以遂驅逐之計, 爲斥和之流者, 初無自愧之事, 安有可謝之罪? 不過爲兇鋒之血肉, 而斷殿下君臣之大義, 使擧國民心, 皆思叛散而已, 殿下其忍爲之耶? 設或因此而得解重圍, 國家命脈已絶, 決不得延過時月。 與其等亡也, 何必爲前古所無之事, 貽笑於天下後世而後已哉? 殿下必欲盡送前後斥和之人, 則大小臣僚, 何所取舍? 臣於前歲入侍筵席, 屢聞領相金瑬斥和之言, 以爲: "信使不可送, 淸國不當書。" 以此觀之, 則亦斥和之一也, 殿下獨不記之耶? 今若使等, 高拱廟堂之上, 而只擇平日空言不見施之士流, 以快奸人之心, 則臣恐殿下待臣下之義, 亦有厚薄之差殊也。 區區愚計, 誠以爲不斬此輩, 以正無君、誤國之罪, 則非但北轅之辱, 終不可免, 抑恐未出城之前, 先有潰散之患也。 臣於近日, 熟見此輩之情狀, 痛切骨髓, 思欲一言久矣, 徒以此輩方任國事, 誠恐言之無益, 只致紛擾, 故遲回隱忍, 不敢發口矣。 今則事已去矣, 無可望矣。 玆決一死之計, 畢陳愚悃, 殿下倘以臣言爲誣, 請先斬臣頭, 以快奸人之心。 臣寧爲陳東之死, 不忍與此輩, 共立天壤間也。 抑臣有一說焉, 臣請索言於臨死之日, 可乎? 自古帝王創業中興者, 莫不於死中求生, 故能出百死而得一生。 今殿下信聽奸臣自全之計, 常置死字於一邊, 不敢擧論。 直以哀辭苦語, 稽首屈膝, 爲一時倖免之良圖, 委靡偸苟, 以至今日而極, 臣竊以爲, 今日萬全之策, 實萬危之道也。 殿下何不堅定此心, 不爲興亡、成敗所動? 若理窮力屈, 禍敗將及, 則擧城中之衆, 分出四門, 且戰且行。 殿下以微服, 混雜馳出, 如 滎陽, 光武薊城乎? 天若助順, 國命未絶, 則興復之期, 猶有可待。 設或不幸, 不猶愈於擧族北轅乎? 言之至此, 心膽交裂, 不勝痛哭之至。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69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군사-전쟁(戰爭)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