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 판서 김상헌이 최명길이 지은 국서를 찢고 주벌을 청하다
대신이 문서(文書)를 품정(稟定)하였다. 상이 대신을 인견하고 하교하기를,
"문서를 제술(製述)한 사람도 들어오게 하라."
하였다. 상이 문서 열람을 마치고 최명길을 불러 앞으로 나오게 한 뒤 온당하지 않은 곳을 감정(勘定)하게 하였다. 이경증(李景曾)이 아뢰기를,
"군부(君父)를 모시고 외로운 성에 들어와 이토록 위급하게 되었으니, 오늘날의 일에 누가 다른 의논을 내겠습니까. 다만 이 일은 바로 국가의 막중한 조치인데 어떻게 비밀스럽게 할 수 있겠습니까. 대간 및 2품 이상을 불러 분명하게 유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람들의 마음은 성실성이 부족하여 속 마음과 말이 다르다. 나랏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니, 이 점이 염려스럽다."
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설령 다른 의논이 있더라도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
하였다. 최명길이 마침내 국서(國書)를 가지고 비국에 물러가 앉아 다시 수정을 가하였는데, 예조 판서 김상헌이 밖에서 들어와 그 글을 보고는 통곡하면서 찢어 버리고, 인하여 입대(入對)하기를 청해 아뢰기를,
"명분이 일단 정해진 뒤에는 적이 반드시 우리에게 군신(君臣)의 의리를 요구할 것이니, 성을 나가는 일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성문을 나서게 되면 또한 북쪽으로 행차하게 되는 치욕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니, 군신(羣臣)이 전하를 위하는 계책이 잘못되었습니다. 진실로 의논하는 자의 말과 같이 이성(二聖)009) 이 마침내 겹겹이 포위된 곳에서 빠져나오게만 된다면, 신 또한 어찌 감히 망령되게 소견을 진달하겠습니까. 국서를 찢어 이미 사죄(死罪)를 범하였으니, 먼저 신을 주벌하고 다시 더 깊이 생각하소서."
하였다. 상이 한참 동안이나 탄식하다가 이르기를,
"위로는 종사를 위하고 아래로는 부형과 백관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경의 말이 정대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실로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한스러운 것은 일찍 죽지 못하고 오늘날의 일을 보게 된 것뿐이다."
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성상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압니다. 그러나 한번 허락한 뒤에는 모두 저들이 조종하게 될테니, 아무리 성에서 나가려 하지 않더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군사가 성 밑에까지 이르고서 그 나라와 임금이 보존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진 무제(晋武帝)나 송 태조(宋太祖)도 제국(諸國)을 후하게 대우하였으나 마침내는 사로잡거나 멸망시켰는데, 정강(靖康)의 일010) 에 이르러서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당시의 제신(諸臣)들도 나가서 금(金)나라의 왕을 보면 생령을 보전하고 종사를 편안하게 한다는 것으로 말을 하였지만, 급기야 사막(沙漠)에 잡혀가게 되자 변경(汴京)에서 죽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전하께서 아무리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때 김상헌의 말 뜻이 간절하고 측은하였으며 말하면서 눈물이 줄을 이었으므로 입시한 제신들로서 울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세자가 상의 곁에 있으면서 목놓아 우는 소리가 문 밖에까지 들렸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조선 국왕은 삼가 대청국 관온 인성 황제에게 글을 올립니다. 【 이 밑에 폐하(陛下)라는 두 글자가 있었는데 제신이 간쟁하여 지웠다.】 삼가 명지(明旨)를 받들건대 거듭 유시해 주셨으니, 간절히 책망하신 것은 바로 지극하게 가르쳐 주신 것으로서 추상과 같이 엄한 말 속에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의 기운이 같이 들어 있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대국이 위덕(威德)을 멀리 가해 주시니 여러 번국(藩國)이 사례해야 마땅하고, 천명과 인심이 돌아갔으니 크나큰 명을 새롭게 가다듬을 때입니다. 소방은 10년 동안 형제의 나라로 있으면서 오히려 거꾸로 운세(運勢)가 일어나는 초기에 죄를 얻었으니, 마음에 돌이켜 생각해 볼 때 후회해도 소용없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원하는 것은 단지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어 구습(舊習)을 말끔히 씻고 온 나라가 명을 받들어 여러 번국과 대등하게 되는 것뿐입니다. 진실로 위태로운 심정을 굽어 살피시어 스스로 새로워지도록 허락한다면, 문서(文書)와 예절(禮節)은 당연히 행해야 할 의식(儀式)이 저절로 있으니, 강구하여 시행하는 것이 오늘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에서 나오라고 하신 명이 실로 인자하게 감싸주는 뜻에서 나온 것이긴 합니다만, 생각해 보건대 겹겹의 포위가 풀리지 않았고 황제께서 한창 노여워하고 계시는 때이니 이곳에 있으나 성을 나가거나 간에 죽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용정(龍旌)을 우러러 보며 반드시 죽고자 하여 자결하려 하니 그 심정이 또한 서글픕니다. 옛날 사람이 성 위에서 천자에게 절했던 것은 대체로 예절도 폐할 수 없지만 군사의 위엄 또한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방의 진정한 소원이 이미 위에서 진달한 것과 같고 보면, 이는 변명도 궁하게 된 것이고 경계할 줄 알게 된 것이며 마음을 기울여 귀순하는 것입니다. 황제께서 바야흐로 만물을 살리는 천지의 마음을 갖고 계신다면, 소방이 어찌 온전히 살려주고 관대하게 길러주는 대상에 포함되지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황제의 덕이 하늘과 같아 반드시 불쌍하게 여겨 용서하실 것이기에, 감히 실정을 토로하며 공손히 은혜로운 분부를 기다립니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9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6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전쟁(戰爭) / 외교-야(野) / 역사-고사(故事)
○戊午/大臣稟定文書。 上引見大臣, 下敎曰: "製書人亦令入來。" 上覽書訖, 招崔鳴吉進前, 勘定未穩處。 李景曾啓曰: "奉君父入孤城, 危急至此, 今日之事, 孰有異論哉? 但此乃國家莫重擧措, 何可諱秘而爲之乎? 請招臺諫及二品以上, 明諭如何?" 上曰: "人心少誠實, 心與口異。 使國事至此者, 亦由是也, 以此爲慮。" 金瑬曰: "設有異論, 不足爲輕重矣。" 上曰: "然矣。" 鳴吉遂以國書, 退坐備局, 更加點竄。 禮曹判書金尙憲自外入來, 見其書, 痛哭而裂破之, 仍請入對曰: "名分旣定之後, 賊必責我以君臣之義, 不免出城之擧。 一出城門, 則亦難免北轅之辱, 群臣爲殿下謀誤矣。 誠如議者之言, 終脫二聖於重圍, 則臣亦何敢妄陳所見哉? 裂破國書, 旣犯死罪, 請先誅臣, 更加深思。" 上歔欷良久曰: "上而爲宗社, 下而爲父兄、百官, 不得已爲此擧。 非不知卿言之正大, 而實出於無奈何也。 所恨者, 不能早死, 以見今日耳。" 對曰: "臣雖至愚, 亦知聖意所在, 而一許之後, 操縱在彼, 雖欲不出城, 不可得也。 自古未有兵臨城下, 存其國君者。 晋 武、宋祖, 厚待諸國, 而卒皆俘滅, 至於靖康之事, 不忍言矣。 當時諸臣亦以 ‘出見則保生靈、安宗社’ 爲言, 而及至沙漠, 悔其不死於汴京。 到此地頭, 殿下雖悔, 曷追?" 是時尙憲辭意懇惻, 涕隨言零。 入侍諸臣, 無不泣下。 世子在上傍, 號泣之聲, 聞於戶外。 其書曰:
朝鮮國王, 謹上書于大淸國 寬溫仁聖皇帝。 【此下有陛下二字, 爲諸臣所爭, 而抹去。】 伏奉明旨, 勤賜申諭, 其所以責之切者, 乃所以敎之至, 秋霜澟洌之中, 帶得春生之意。 伏惟大國威德遠加, 諸藩合辭, 天、人所歸, 景命方新, 而小邦以十年兄弟之國, 顧反獲戾於興運之初, 反求諸心, 有噬臍靡及之悔。 今之所願, 只在改心易慮, 一洗舊習, 擧國承命, 得比諸藩而已。 誠蒙曲察危悃, 許以自新, 則文書禮節, 自有應行儀式, 講而行之, 其在今日。 至於出城之命, 實出仁覆之意, 然念重圍未解, 帝怒方盛, 在此亦死, 出城亦死。 是以瞻望龍旌, 分死自決, 情亦戚矣。 古人有城上拜天子者, 蓋以禮有不可廢, 而兵威亦可怕也。 然小邦情願, 旣如上所陳, 則是辭窮也, 是知警也, 是傾心歸命也。 皇帝方以天地生物爲心, 則小邦豈不當獲預於全活、優養之中? 伏惟帝德如天, 必垂矜恕, 敢吐實情, 恭候恩旨。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9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6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전쟁(戰爭) / 외교-야(野)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