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봉이 오랑캐 장수에게 재배하다
상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상이 울며 이르기를,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내가 비록 재덕(才德)은 변변찮으나 본래의 뜻은 잘 해보려고 하였는데, 오늘의 일이 끝내 이 지경에 이르렀다. 내 한몸 죽는 것이야 애석할 것이 없지만, 부형 백관과 성에 가득한 군민(軍民)이 나 때문에 모두 죽게 되었으니, 고금 천하에 어찌 이처럼 망극한 일이 또 있겠는가."
하니, 김류·이성구 등이 울면서 아뢰기를,
"전하께서 임어(臨御)한 14년 동안 전혀 실덕(失德)한 일이 없으셨으니 결코 망국(亡國)의 군주는 아니십니다. 어제 만약 강도로 향하셨더라면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인데, 옥체가 불편하시어 나가셨다가 돌아오시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내가 어찌 병 때문에 돌아왔겠는가. 다시 생각해 보니, 적병이 이미 육박했는데 요격이라도 받게 되면 예측 못할 모욕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기에 돌아온 것이다."
하였다. 김류 등이 아뢰기를,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훈구(勳舊) 십여 명을 데리고 미복 차림으로 동문을 나가 곧장 충원(忠原)으로 향하거나 영남이나 호남으로 가시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게 무슨 말인가. 나를 따라 성에 들어온 자는 모두 종족(宗族)이요 백관인데, 어찌 차마 그들을 사지(死地)에 버려두고 나 혼자만 탈출하여 달아난단 말인가. 설사 요행히 살아난다 한들 어떻게 천지에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하였다. 김류와 홍서봉이 아뢰기를,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강화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적은 이미 승세를 얻었고 우리의 원병이 올 것도 기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형세로 보면 반드시 정묘년보다 몇 배나 더 굴복하고 들어가야만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것인데, 앞으로 어떤 계책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이 한참 뒤에 이르기를,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 다른 일을 계획하겠는가. 이것은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사태가 매우 급박하게 되었으니, 오직 운명에 맡겨야 할 것이다."
하였다. 모두 아뢰기를,
"이런 지경까지 와서 어느 겨를에 명분을 다투겠습니까. 신들이 가서 만나볼 때에도 재배례(再拜禮)를 행하여 중국을 대접하는 예로 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울며 이르기를,
"삼백 년 동안 온갖 정성을 다해 중국을 섬겼고 받은 은혜도 매우 많은데, 하루 아침에 원수인 오랑캐의 신첩(臣妾)이 되려 하니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 윤기(倫紀)가 사라진 때를 당하여, 다행히 당시 절개를 지키던 제현(諸賢)과 함께 반정(反正)의 거사를 일으켜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임금의 일을 행한 지 벌써 14년인데, 끝내 견양(犬羊)과 금수와 같은 결과가 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경들에게야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내가 변변찮고 형편없어 오늘과 같은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이다. 경들이여 경들이여, 어찌할 것인가, 어찌할 것인가."
하자, 신하들이 모두 울며 아뢰기를,
"이것은 모두 신들이 형편없어 빚어진 결과입니다. 전하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울면서 이르기를,
"연소한 자가 사려가 얕고 논의가 너무 과격하여 끝내 이같은 화란을 부른 것이다. 당시에 만약 저들의 사자를 박절하게 배척하지 않았더라면 설사 화란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 형세가 이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니, 모두 아뢰기를,
"연소하고 생각이 얕은 자가 일을 그르쳐서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울면서 이르기를,
"그 논의가 실로 정론(正論)이었기에 나 역시 거절하지 못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실로 시운(時運)에 관계된 것인데 어찌 남을 탓할 수 있겠는가."
하고, 인하여 서봉에게 이르기를,
"영상은 지금 병사(兵事)를 주관하고 있으니, 경이 이경직(李景稷)과 함께 나가서 그들을 만나보도록 하라."
하니, 대답하기를,
"만약 저 적이 반드시 친왕자를 보고자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먼저 전날의 과실을 사과함이 마땅하다. 또 대군(大君)이 강도에 가 있는데, 앞으로 뒤따라 보내겠다는 뜻으로 잘 말하라.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동궁을 청한다 한들 어찌 감히 거절을 하겠는가. 다만 나의 생각으로는 강화를 성사시키는 것도 기필할 수 없을 듯하다."
하니, 김류가 아뢰기를,
"저들이 이미 고군(孤軍)으로 깊이 들어왔으니, 바라는 것은 단지 이 점뿐일텐데 어찌 허락하지 않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때 세자가 상의 곁에 있다가 오열을 참지 못하여 문밖으로 나가 사관의 곁에 앉았다. 이에 드디어 홍서봉과 김신국(金藎國)을 노영에 보냈는데, 서봉이 노장(虜將)을 만나 재배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42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58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上引見大臣、備局堂上, 泣曰: "國事至此, 何以爲之? 予雖才德薄劣, 本意則不欲爲不善, 而今日之事, 竟至於此, 一身之死, 固不足惜, 父兄百官、滿城軍民, 以予之故, 將盡淪陷。 古今天下, 安有如此罔極之事乎?" 金瑬、李聖求等泣曰: "殿下臨御十四年, 曾無失德, 決非亡國之主。 昨日若向江都, 則可以得達, 而玉體不寧, 旣出還入, 誠極悶迫。" 上曰: "予豈以病還入乎? 更思之則賊兵已逼, 若被邀擊, 則難免不測之辱, 故還入矣。" 瑬等曰: "事已急矣。 宜率勳舊十餘人, 微服而出東門, 直向忠原, 或往嶺南、湖南似可矣。" 上曰: "是何言也? 從予入城者, 皆宗族、百官也。 何忍置之死地, 而脫身獨走乎? 設使幸而得生, 何以擧顔於天地耶?" 瑬、瑞鳳曰: "事已急矣, 不可不請和。 伊賊已得勝勢, 而援兵之來, 亦不可必。 在我之勢, 比丁卯, 必加數層壓屈然後, 可以見許, 未知計將安出。" 上良久曰: "事已至此, 寧計他事? 此雖非所當言之言, 而事幾甚急, 當唯命是從矣。" 僉曰: "到此地頭, 何暇爭名分乎? 臣等往見之時, 亦宜行再拜禮, 待之以待中國之禮。" 上泣曰: "三百年血誠事大, 受恩深重, 而一朝將爲臣妾於讐虜, 豈不痛哉? 當倫紀斁滅之時, 幸與當時立節之諸賢, 爲此撥亂之事業, 居人君之位, 行人君之事者, 今十四年矣。 豈料終歸於犬羊禽獸哉? 然諸卿有何所失? 緣予薄劣無狀, 致有今日。 諸卿、諸卿, 奈何、奈何?" 諸臣皆泣曰: "此皆臣等無狀之致也。 殿下有何所失乎?" 上泣曰: "年少之人, 思慮短淺, 論議太激, 終致此禍。 當時若不斥絶彼使, 則設有此禍, 而其勢必不至此矣。" 僉曰: "年少淺慮之人, 誤事至此。" 上泣曰: "此論實是正論, 予亦不能拒絶, 以至於此。 實關時運, 何可咎人?" 因謂瑞鳳曰: "領相方主兵, 卿可與李景稷, 偕出見之。" 對曰: "若伊賊必欲見親王子, 何以答之?" 上曰: "當先謝前日之失。 又諭以大君, 往在江都, 從當追送之意。 事已至此, 雖請東宮, 亦何敢辭? 但予意則和事之成, 亦不可必也。" 瑬曰: "彼旣孤軍深入, 所望只在於此, 豈有不許之理?" 時, 世子在上側, 不勝嗚咽, 出門外, 坐於史官之傍矣。 於是, 遂遣洪瑞鳳、金藎國往虜營, 瑞鳳見虜將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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