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에게 강화를 청하게 하고 상은 남한 산성에 도착, 강도로 가기로 결정하다
저물 무렵에 대가(大駕)가 출발하려 할 때 태복인(太僕人)이 다 흩어졌는데, 내승(內乘) 이성남(李星男)이 어마(御馬)를 끌고 왔다. 대가가 숭례문(崇禮門)에 도착했을 때 적이 이미 양철평(良鐵坪)까지 왔다는 소식을 접했으므로, 상이 남대문 루(樓)에 올라가 신경진(申景禛)에게 문 밖에 진을 치도록 명하였다. 최명길(崔鳴吉)이 노진(虜陣)으로 가서 변동하는 사태를 살피겠다고 청하니, 드디어 명길을 보내어 오랑캐에게 강화를 청하면서 그들의 진격을 늦추게 하도록 하였다.
상이 돌아와 수구문(水溝門)을 통해 남한 산성(南漢山城)으로 향했다. 이때 변란이 창졸 간에 일어났으므로 시신(侍臣) 중에는 간혹 도보로 따르는 자도 있었으며, 성 안 백성은 부자·형제·부부가 서로 흩어져 그들의 통곡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초경이 지나서 대가가 남한 산성에 도착하였다. 김류가 상에게 강도(江都)로 옮겨 피할 것을 권하였는데, 홍서봉(洪瑞鳳)과 이성구(李聖求)도 그 말에 찬동하였으며, 이홍주(李弘胄)는 형세로 보아 반드시 낭패하게 될 것이니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모두 이런 의논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병방 승지 이경증(李景曾)이 집의 채유후(蔡𥙿後)에게 이 일을 은밀히 말하였다. 유후가 드디어 청대(請對)하여 불가하다고 쟁집(爭執)하므로, 경증이 김류를 불러 물어볼 것을 청하였다. 김류가 아뢰기를,
"고립된 성에 계시면 외부의 구원도 없게 되고 마초와 양식도 부족할 것입니다. 강도는 우리에게 편리하고 저들에게는 침범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또 저 적은 뜻이 상국(上國)에 있으니, 반드시 우리를 상대로 지구전(持久戰)을 벌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강도로 가시는 것이 편리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어 김류의 귀에 대고 하문하기를,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하자, 아뢰기를,
"과천(果川)과 금천(衿川)을 경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강도는 이 곳에서 무척 먼데 어떻게 도착할 수 있겠는가?"
하니, 김류가 아뢰기를,
"경기(輕騎)로 금천과 과천의 들을 가로질러 가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삼사가 모두 간쟁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어가를 옮길 계획을 정하니, 하룻밤 사이에 성 안이 온통 들끓었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57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日晩, 大駕將發, 而太僕人盡散, 內乘李星男, 牽御馬而來。 駕到崇禮門, 聞賊兵已到良鐵坪, 上御南大門樓, 令申景禛結陣于門外。 崔鳴吉請赴虜陣, 以觀變, 遂遣鳴吉, 請成於虜, 以緩其師。 上還從水溝門, 出向南漢山城。 是時, 變出倉卒, 侍臣或有步從者, 城中人父子、兄弟、夫婦相失, 哭聲震天。 初更後, 大駕到南漢山城。 金瑬勸上移避江都, 洪瑞鳳、李聖求亦贊之。 李弘冑以爲: "勢必狼狽, 不可僥倖。" 他人皆不知有此議, 兵房承旨李景曾密言于執義蔡𥙿後, 𥙿後遂請對, 執不可, 景曾請招問金瑬。 瑬曰: "孤城駐蹕, 外無所援, 芻糧亦乏。 江都則在我便好, 在彼難犯, 而且伊賊, 意在上國, 必不與我久相持矣。 臣故曰: ‘幸江都便。’" 上仍與瑬附耳語問曰: "路由何地?" 曰: "當由果川、衿川。" 上曰: "江都去此甚遠, 何以得達乎?" 瑬曰: "若以輕騎踔過衿、果之野, 則足以得達矣。" 三司皆爭之, 不能得, 遂定移駕之計, 一夜之間, 城中鼎沸。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57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