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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33권, 인조 14년 11월 24일 갑자 1번째기사 1636년 명 숭정(崇禎) 9년

병조 판서 이성구와 대사헌 이경석이 각각 ‘청’ 이란 호칭문제에 대한 차자

병조 판서 이성구(李聖求)가 차자를 올리기를,

"신은 듣자오니, 국서의 외면에 ‘청국(淸國)’이란 두 글자를 쓰기로 정하였다는데 신이 비국에 재직하고 있으니 소회를 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묘년 이후 ‘금국(金國)’이라고 호칭한 지 대개 10년이 되었습니다. 지금 ‘청’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곧 그들이 건국하면서 참람하게 부른 명칭인데, 우리가 그들을 황제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 국호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는 좇고 하나는 좇지 않는 것이니 사리에 미안할 뿐만이 아닙니다. 사납고 간사하기가 그지없는 이 오랑캐는, 남들이 한 가지 일이라도 자기들의 뜻에 따르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보다 더 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곧 그들의 본래 모습입니다.

지금 만약 황급하게 그 고친 호칭을 사용하여 문서에 쓴다면 저들은 우리 나라가 통렬하게 배척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위협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황제의 호칭을 삭제한 까닭을 힐책할 것이고 따르기 어려운 말을 할 것이니 그때는 의리에 의거하여 거절하기도 수고로울 것입니다. 지금 이 문서는 종전에 사용하던 용어만 관례에 따라 써 보내되, 만약 저들이 ‘청국’이라고 쓰지 않은 이유를 힐책하면 ‘지난날 귀국 사신이 문서를 전하지 않고 갔으니, 이웃 나라의 고친 호칭을 어떻게 전하는 말만 믿고서 호칭할 수 있겠는가.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는 것이니, 당신의 참람한 칭호는 호칭할 수 없으나 고친 국호는 호칭하는 데 무엇이 어렵겠는가. 앞으로는 마땅히 청국 한(淸國汗)이라고 쓸 것인가에 대해 서로 강론하여 결정한 후에 춘신(春信)의 행차 때부터 사용하겠다.’고 답하면 오히려 약간의 여유가 생길 것이고 참호를 호칭하지 않은 뜻도 말하지 않은 속에 자연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고, 대사헌 이경석(李景奭)도 차자를 올리기를,

"‘청’이라고 호칭하는 문제는 관계되는 바가 작지 않습니다. 의리와 이해를 가지고 반복하여 생각건대 ‘금(金)’은 한(汗)을 일컬을 때의 호칭이고 ‘청’은 참람하게 제(帝)라고 한 후의 호칭입니다. 지금 우리가 갑자기 옛 칭호를 버리고 새로운 호칭을 사용하면 저들은 필시 우리에게 한층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요구해 올 것이니,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되면 강적이라 따지기 어렵다고 하여 더불어 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르기 어려워진 뒤에 따지는 것보다는 일을 도모하는 시초에 살피는 것이 낫습니다.

말하는 자는 필시, 오랑캐의 본의는 화호하는 데 있으니 반드시 그런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이라고 칭하는 것은 더욱 해롭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묘년에 하늘에 맹세한 약속을 지켜 옛날의 칭호를 호칭하는 것은 이치에 근거가 있고 언어에 순함이 되고 신의에 잃음이 없으니, 저들이 처음에 힐책을 가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유 작작하게 답변할 수 있습니다. 저들이 짐승 같다 하더라도 우리가 말이나 이치가 사리에 닿고 옳으면 예전부터 굽혀 따를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뜻이 진실로 화호(和好)하는 데 있다면 이 일은 반드시 힘을 다하여 다투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비국이 회계하기를,

"두 의논이 모두 소견이 없지 않으니, 신들이 어찌 감히 당초의 소견을 고수하여 온 조정의 통일된 공의(公議)에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이해를 밝게 보지 못하였으니 의당 공의를 따라 고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묘당의 의견이 이와 같다면 병판의 차사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55면
  • 【분류】
    외교-야(野)

○甲子/兵曹判書李聖求上箚曰:

臣聞國書外面, 定書淸國二字。 臣忝在備局, 不敢不陳所懷。 丁卯以後, 稱以金國, 蓋已十年。 今之稱, 乃其僭號建國之名。 自我不許其帝, 而用其國號, 一從一否, 非但事理未安, 此桀黠有餘, 見人一事從己, 必生一層支節, 乃其本態也。 今若汲汲然用其改號, 行諸文書, 彼見我國不加痛斥, 謂其可以威脅, 遽詰其削去帝號之故, 而輒施以難從之說, 則據義斥絶, 亦已勞矣。 今此文書, 只以從前行用之語, 循例書送, 彼若詰其不書淸國之由, 則答以: "前日文書, 貴國使臣不傳而去, 隣國所改之號, 何可只憑傳說, 而稱之乎? 天無二日, 爾所僭號, 雖不可稱, 所改國號, 稱之何難? 今後則當以淸國汗書塡", 相與講定然後, 自春信之行用之, 則猶有一分餘地, 而僭號之不稱, 自在不言中矣。

大司憲李景奭上箚, 亦以爲:

一節, 所關非細。 以義理、利害, 反覆思惟, 則是稱汗時號, 是僭號後號。 今我遽舍其舊稱, 而稱其新號, 則彼之所以責望我者, 必以加一層之事, 到此地頭, 謂之强敵難較, 而不與之爭乎? 與其爭之於難從之後, 孰若審之於謀事之始乎? 說者必曰: "伊虜本意, 在於和好, 必不至如此。" 審如是則稱尤無害矣。 我守丁卯時誓天之約, 稱以舊稱之號, 於理有據, 於言爲順, 於信義無失, 彼雖初加詰責, 我之所可答者, 綽有餘裕。 彼雖犬羊, 我若言順理直, 則自前多有屈從之時。 況其意, 眞在於和好, 則此一事, 必不爲力爭者乎?

備局回啓曰: "兩說俱不無所見, 臣等何敢膠守初見, 以抗擧朝一辭之公議乎? 臣等旣不能灼見利害, 宜從公議改之。" 答曰: "廟堂之意如此, 則依兵判箚辭施行。"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55면
  • 【분류】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