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리 윤집이 최명길의 죄를 논한 상소
부교리 윤집(尹集)이 상소하기를,
"화의가 나라를 망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옛날부터 그러하였으나 오늘날처럼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명나라는 우리 나라에 있어서 부모의 나라이고 노적은 우리 나라에 있어서 부모의 원수입니다. 신자된 자로서 부모의 원수와 형제의 의를 맺고 부모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임진년의 일은 조그마한 것까지도 모두 황제의 힘이니 우리 나라가 살아서 숨쉬는 한 은혜를 잊기 어렵습니다. 지난번 오랑캐의 형세가 크게 확장하여 경사(京師)를 핍박하고 황릉(皇陵)을 더럽혔는데, 비록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전하께서는 이때에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차라리 나라가 망할지언정 의리상 구차스럽게 생명을 보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력이 미약하여 모두 출병시켜 정벌에 나가지 못하였지만, 또한 어찌 차마 이런 시기에 다시 화의를 제창할 수야 있겠습니까.
지난날 성명께서 크게 분발하시어 의리에 의거하여 화의를 물리치고 중외에 포고하고 명나라에 알리시니, 온 동토(東土) 수천 리가 모두 크게 기뻐하여 서로 고하기를 ‘우리가 오랑캐가 됨을 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장려하는 칙서가 내려지자마자 부정한 의논이 나왔는데 차마 ‘청국 한(淸國汗)’이란 3자를 그 입에서 거론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승지와 시신(侍臣)을 내보내라고 한 말이 있으니, 아, 너무도 심합니다. 국정을 도모하는 것은 귓속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군신간에는 밀어(密語)하는 의리가 없는 것입니다. 의로운 일이라면 천만 명이 참석하여 듣더라도 무엇이 해로울 것이 있으며 만일 의롭지 못한 것이라면 아무리 은밀한 곳에서 하더라도 부끄러운 것이니 비밀로 한다 하더라도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아, 옛날 화의를 주장한 자는 진회(秦檜)보다 더한 사람이 없는데 당시에 그가 한 언어와 사적(事迹)이 사관(史官)의 필주(筆誅)를 피할 수 없었으니, 비록 크게 간악한 진회로서도 감히 사관을 물리치지 못한 것은 명확합니다. 대체로 진회로서도 감히 하지 못한 짓을 최명길이 차마 하였으니 전하의 죄인이 될 뿐 아니라 진회의 죄인이기도 합니다.
홍처후의 계사와 오달제의 상소는 실로 공론에서 나온 것인데, 도리어 준엄한 견책을 당하여 사정(私情)을 따라 모함하였다고 지척하고, 젖비린내 나는 어린 사람으로 지목하였으며, 심지어는 신상(申恦)을 의망(擬望)하였다는 이유로 특별히 전관(銓官)을 파직시키기까지 하여 만인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였으니, 천둥 같은 위엄에 억눌려 꺾이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삼사의 직책을 가진 자가 벌벌 떨면서 모두 입을 다물었고 심지어 이민구 같은 이는 관직이 높은 간장(諫長)으로서 스스로 성상의 총애만 믿고 공의는 생각지 아니하여 글을 얽어 인피하고 갑자기 지난번 올린 계사를 중지하여 위로는 성상의 뜻에 영합하고 아래로는 명길에게 아첨하고 있으니, 기타 신진 후배 중 이시우(李時雨) 같은 사람들이 간사하게 아첨하는 것은 괴이하게 여길 것이 못 됩니다. 신은 모르겠습니다만, 성명께서는 얻기 전에는 얻으려고 걱정하고 얻은 후에는 잃을까 걱정하는 그들의 작태를 살피고 계십니까?
신이 명길의 차자를 취하여 보니, 사설을 장황하게 하여 성상의 귀를 현혹하고 있기에 다 훑어 보기도 전에 눈언저리가 찢어지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이른바, 국가의 대계(大計)는 국가의 안위(安危)에 관계되는 것이니 연소한 무리가 감히 참여하여 알 것이 아니라는 것과, 정치가 대각(臺閣)에 돌아가고 부의(浮議)에 제재당한다는 등의 말은 은연 중 대각을 협박하고 공의를 저지하려는 흉계가 있는 것이니, 아, 간교하고 참혹스럽습니다. 옛날에 좋지 못한 일을 하는 자는 남이 알까봐 숨기려고 하였는데, 지금 명길이 화의를 주장함에 있어서는 팔뚝을 걷어올리고 나서서 조금도 기휘(忌諱)함이 없이 방자하며, 마침내 주희(朱熹)·호안국(胡安國) 두 현인과 우리 나라의 몇몇 명현을 들어서 구실을 삼았습니다. 또 지난번 화의를 물리친 것을 성상의 과오로 지적하였고, 심지어는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말라는 말까지 하였으며, 계속하여 말하기를, 생민이 도탄(塗炭)에 빠지고 종묘 사직이 혈식(血食)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 말을 변화시켜 성심(聖心)을 동요케 하였습니다. 대체로 밖으로 도적의 강성한 세력을 업고서 안으로 자기 임금을 겁주었으니 차마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대론이 제기되었더라도 한편으로 서찰을 보내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고 하였다고 하는데, 전하를 위해 이런 계획을 세운 자가 누구입니까? 신은 듣건대, 이것도 명길이 경연에서 드린 말이라고 합니다. 조정을 무시하고 대각을 무시함이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까. 이 말 역시 전하의 나라를 망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인데 전하께서는 그 죄를 바로잡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 말을 들어주어 합계(合啓)가 한참 펼쳐지고 있는데 국서(國書)는 이미 강을 건넜습니다. 아, 국가가 대간을 설치한 것이 또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장차 임금으로 하여금 위에서 독단하여 의리를 돌아보지 않고 대론(臺論)을 생각지 않으며 부정한 의논만을 따르고 아첨하는 신하만을 의지하여 결국 나라를 잃게 한 후에 말 것이니, 이것은 명길이 계도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하다 보니 머리털이 곤두섭니다.
이행건(李行健)의 피혐하는 말에 이르기를 ‘대론이 조정되기 전에 지레 들여 보내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하였으니, 만일 시비를 몰랐다면 이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사람이니 크게 책망할 것이 못되거니와, 혹 시비를 알고도 일부러 이런 모호한 말을 하였다면 안으로는 자기 마음을 속이고 밖으로는 하늘을 속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태화(鄭太和)는 공의(公議)가 한참 펼쳐질 당시에 부정한 의논을 억지로 끌어다 대어 곡진히 아첨하다가 청의(淸議)에 버림을 당했는데 전하께서 특별히 집의를 제수하셨으니, 이는 전하께서 신하들에게 아첨하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아, 국사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인데 전하의 이목(耳目)이 되고 전하의 유악(帷幄)에 있는 자 중 임금의 뜻을 거슬려가며 직간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는 참으로 신하들이 임금을 잊고 나라를 저버린 죄를 지은 것인데 과연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아, 조종조의 부여한 책임과 신민의 커다란 소망이 모두 전하의 한 몸에 모여 있는데, 뜻을 영합하는 부정한 말에 현혹되시어 직간하는 자가 있으면 온 힘을 기울여 진노하여 물리치시고, 성의(聖意)를 살피어 아첨하여 기쁘게 하는 자는 미치지 못할 듯이 높여 권장하고 총애하여 발탁하시니, 신은 천하 후세에 전하를 어떤 임금이라고 이르며 나라를 어떤 지경에 놓아 두실지 모르겠습니다. 아, 당당하던 수백 년의 종묘 사직을 결국 명길의 말 한 마디에 망하게 하시렵니까? 신은 대정(大庭)에서 통곡을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신은 타고난 성품이 어리석고 망녕되어 때에 따라 맞추어 나가지 못하니, 차마 오늘날의 삼사와 더불어 행동을 같이하여 구차스럽게 마음에 들도록 결코 못하겠습니다. 바라건대 사판에서 깎아내어 공사(公私)간에 편케 하소서."
하였다. 상소가 들어가자 대내에 머물려 두었다. 이에 대사간 이민구는 배척을 당했다는 이유로 인피하고, 양사의 많은 관원도 서로 뒤를 이어 인피하였으며, 옥당은, 삼사는 한몸이니 감히 처치할 수 없다 하여 상소하여 사직하였다. 상이 하교하기를,
"윤집(尹集)이 삼사를 꾸짖어 욕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닌 듯싶고 옥당이 처치하지 못하겠다는 것도 소견이 있는 듯하니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나처럼 걸핏하면 허물을 얻는 자는 진퇴시키기가 어려운 형편이니, 윤집으로 하여금 양사를 처리하게 하든지 해조로 하여금 회계하게 하라. 그리고 판윤 최명길은 당일의 말이 중신을 침범하여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몹시 부당하다. 중한 율에 따라 추고하여 시비를 함부로 논하여 국가에 해를 끼친 죄를 징계하라."
하였다. 대개 지난날 경연 석상에서 명길이 조경(趙絅)의 일로 인하여 김상헌(金尙憲)의 단점을 말하였는데, 윤집은 상헌의 일가 사람이다. 상은 그가 상헌에게 편당하여 명길을 공박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으므로 이런 하교가 있은 것이다. 정원이, 양사가 윤집의 상소로 인하여 인피하였는데 윤집으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니, 이에 이조가 옥당 신하들로 하여금 처치하게 할 것을 주청하였는데, 상이 따랐다. 교리 조빈(趙贇), 수찬 이도(李禂)·이만(李曼) 등이 마침내 차자를 올리기를,
"사람들의 말이 실정 밖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의 처신을 구차스럽게 할 수 없습니다. 신들이 얼굴을 치켜들고 무릅쓰고 나온 것도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대간이 된 자는 반드시 남의 비방을 당하고도 그대로 재직하는 이치가 없으니, 함께 체차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미 말이 실정 밖에서 나왔다고 하고는 또 모두 체차하기를 청하니 고금에 어찌 이런 공론이 있는가. 그대들은 시비를 가리는 것으로 중함을 삼지 않고 다만 꾀를 부려 피하고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것으로 일을 삼으니, 참으로 몹시 한심스럽다. 위로는 임금의 손을 묶어놓고 아래로는 의견을 달리하는 자의 혀를 붙들어 맨 뒤에야 마음이 상쾌하겠는가. 모두 계사에 따라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52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戊申/副校理尹集上疏曰:
和議之亡人國家, 匪今斯今, 振古如斯, 而未有如今日之甚者也。 天朝之於我國, 乃父母也; 奴賊之於我國, 卽父母之仇讐也。 爲人臣子者, 其可與父母之仇讐, 約爲兄弟, 而置父母於相忘之域乎? 而況壬辰之事, 秋毫皆帝力也。 其在我國, 食息難忘, 而頃者虜勢張甚, 逼近京師, 震汚皇陵。 雖不得明知, 殿下於斯時也, 當作何如懷耶? 寧以國斃, 義不可苟全, 而顧兵弱力微, 未能悉賦從征, 亦何忍更以和議, 倡於此時乎? 往日聖明, 赫然奮發, 據義斥絶, 布告中外, 轉奏天朝, 環東土數千里, 擧欣欣然相告曰: "吾其免被髮左衽矣。" 不圖玆者, 奬勑纔降, 邪議旋發, 忍以淸國汗三字, 擧之於其口, 又有承旨、侍臣屛去之說, 噫嘻亦太甚矣。 謀國非附耳之言, 君臣無密語之義。 如其義也, 雖千萬人參聽, 亦何傷乎; 如非義也, 屋漏可愧, 雖秘何益? 噫! 古之主和議者, 莫如秦檜, 而當時言語事迹, 不能逃於史筆之誅, 則雖以秦檜之大奸, 不敢斥史官, 亦明矣。 夫以秦檜之所不敢爲者, 而鳴吉忍爲之, 非獨殿下之罪人, 乃秦檜之罪人也。 洪處厚之啓, 吳達濟之疏, 實出於公論, 而旋被嚴譴, 斥之以循私構陷, 目之以黃口小兒, 至以申恦擬望之故, 特罷銓官, 欲以箝制萬口, 雷霆之下, 莫不摧折。 職在三司者, 惴惴焉率皆含默, 至如李敏求, 以秩高諫長, 自恃天寵, 不恤公議, 措辭引避, 遽停前啓, 上逢聖意, 下媚鳴吉, 其他新進後輩如李時雨等之依阿淟涊, 無足怪也。 臣未知聖明, 能察其患得患失之態乎? 臣取見鳴吉箚子, 則張皇辭說, 熒惑天聽, 一覽未旣, 眼眥欲裂。 其曰: "國家大計, 關係安危者, 則非年少輩所敢與知, 政歸臺閣, 浮議所制" 等語, 隱然有脅持臺閣, 沮遏公議之計, 吁亦巧且慘矣。 古之爲不善者, 厭然欲掩, 今此鳴吉之主和也, 攘臂擔當, 肆然無忌, 遂擧朱、胡兩賢及我國多少名賢, 以爲口實。 且以頃日之斥絶, 指爲聖上之過, 至以勿憚改爲言, 繼之曰: "生民塗炭, 宗社不血食", 言辭變幻, 震搖聖心。 夫外挾强寇之勢, 以內刼其主, 是可忍耶? 且臺論雖發, 一邊送書, 未爲不可云者, 誰爲殿下, 畫此計者? 臣竊聞, 此亦鳴吉筵中之言云, 何其不有朝廷, 不有臺閣, 至於此極也? 是言亦足以亡殿下之國, 而殿下非惟不正其罪, 乃反用其言, 合啓方張, 而國書已渡江。 嗚呼! 國家設臺諫, 亦奚用哉? 將使人君, 獨斷於上, 不顧義理, 不恤臺論, 惟邪議焉是從, 侫臣焉是倚, 終至於喪邦而後已, 是鳴吉啓之也。 言之至此, 毛髮盡竪。 李行健之避辭曰: "臺論未停之前, 徑先入送, 未知如何?" 云。 如其不知是非, 則是土偶人也, 不足多責, 如或知其是非, 而故爲此糢糊之言, 則不幾於內欺心, 而外欺天乎? 鄭太和當公議方張之日, 傅會邪論, 曲爲諂媚, 見棄於淸議, 而殿下特授執義, 是殿下導群臣以諂媚之習也。 噫! 國事一至於此, 有不忍言者, 而爲殿下之耳目, 居殿下之帷幄者, 無一人犯顔直諫, 是固群臣忘君負國之罪, 而果孰使之然哉? 嗚呼! 祖宗付畀之責, 臣民顒若之望, 俱萃於殿下之一身, 而惑於逢迎之邪說, 如有直言敢諫者, 則震怒擯斥, 不遺餘力; 窺伺聖意, 阿諛媚悅者, 則崇奬之、寵擢之, 如恐不及, 臣不敢知, 天下後世, 謂殿下何如主, 而亦將置國於何地也? 嗚呼! 曾謂堂堂數百年宗社, 竟亡於鳴吉之一言乎? 臣欲痛哭於大庭, 而不可得也。 臣賦性愚妄, 不能隨時俯仰, 其不忍與今日之三司, 混迹苟容也決矣。 乞賜鐫削, 以便公私。
疏入留中。 於是, 大司諫李敏求, 以被斥引避, 兩司多官, 亦相繼引避。 玉堂以三司一體, 不敢處置, 上疏辭職。 上下敎曰: "尹集之叱辱三司, 意非偶然, 儒臣之不敢處置, 亦似有見。 未知何以處之則可也? 如我動輒得咎者, 勢難進退之, 令尹集處置兩司, 或令該曹回啓。 且判尹崔鳴吉, 當日語侵重臣, 以致如此, 殊極不當, 從重推考, 以懲妄論是非, 貽害國家之罪。" 蓋前日筵中, 鳴吉因趙絅事, 頗言金尙憲之短, 而集乃尙憲一家人。 上疑其黨尙憲, 攻鳴吉, 故有是敎。 政院以爲, 兩司因尹集之疏引避, 而令尹集處置不可。 於是, 吏曹請令玉堂諸臣處置, 上從之。 校理趙贇、修撰李禂、李曼等遂上箚曰:
人言雖出於情外, 自處不可以苟且。 臣等之抗顔冒出, 亦出於不獲已。 身爲臺諫者, 必無被詆仍存之理, 請竝遞差。
答曰: "旣曰言出情外, 又竝請遞差, 古今安有如此公論哉? 爾等不以是是非非爲重, 徒以謀避傅會爲事, 誠極寒心矣。 君上束手於上, 異己者結舌於下然後, 可以快於心乎? 竝依啓辭施行。"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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