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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32권, 인조 14년 4월 18일 임진 1번째기사 1636년 명 숭정(崇禎) 9년

승지 정광성·목서흠 등을 불러 소회를 아뢰게 하다

상이 승지 정광성(鄭廣成)·목서흠(睦叙欽) 등을 불러 각각 소회를 진달하게 하였다. 광성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평소에는 육조 낭관은 모두 문관이었고 음관(蔭官)은 몇 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서 공조와 호조는 거의가 다 음관이니, 이것 또한 한 폐단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참으로 한심스럽다. 이후로는 문관과 무관을 가려서 차임하도록 하라."

하였다. 광성이 아뢰기를,

"조정의 논의가 반드시 한가지로 나온 다음에야 나라의 체통이 비로소 높아지는 것입니다. 지난 선조조 계사년에 환도한 뒤에 유성룡(柳成龍)이 국정을 맡았을 때에는, 한때의 논의가 모두 그에게서 나왔으며, 유성룡이 패한 뒤에 유영경(柳永慶)이 국정을 맡았을 때에도 유성룡 때와 같았습니다. 어찌 논의의 분열이 오늘날과 같았던 때가 있었겠습니까."

하고, 목서흠이 아뢰기를,

"붕당이 처음 갈라진 날부터 국가가 이미 불행해졌지만 지금와서는 더욱 심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 생각에는 사대부들이 화합하면 저절로 당파가 없어질 것으로 여겨진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3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사-관리(管理)

○壬辰/上召承旨鄭廣成睦叙欽等, 各陳所懷。 廣成對曰: "平時則六曹郞官, 皆是文官而蔭官絶無僅有。 今則不然, 工、戶曹率皆蔭官, 是亦一弊。" 上曰: "誠可寒心。 今後以文武擇差。" 廣成曰: "朝論必出一然後, 國體方尊。 往在宣廟癸巳還都之後, 柳成龍當國, 一時論議, 皆出于一。 成龍敗後, 柳永慶當國, 而亦如此矣。 豈有論議分裂, 如今日者乎?" 睦叙欽曰: "朋黨始分之日, 國家已不幸, 到今愈甚矣。" 上曰: "予意以爲, 士夫和合, 則自無色目矣。"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3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