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학 정온이 원수를 보내는 문제로 상소를 올리다
부제학 정온(鄭蘊)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이 저번에 원수를 속히 보내라는 뜻을 진달하여 이미 채택하여 시행하겠다는 비답을 받들었습니다. 지금 들으니, 원수의 출발을 3월 20일 뒤로 정했다고 합니다. 어찌하여 늦추십니까. 사기가 이미 절박해져 한시도 늦출 수 없게 되었는데 어느 겨를에 날짜를 가리겠으며, 원수의 행장은 장검 한 자루일 뿐인데 무슨 행장을 꾸린단 말입니까. 하늘이 우리 나라를 도와 저들이 혹 용인해주어 다시 사신이 왕복한다면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고 태풍과 소낙비처럼 갑자기 쳐들어와 천연적인 참호인 압록강이 저들의 소유가 된다면 손빈(孫臏)과 오기(吳起)같은 장수와 곰과 같이 힘세고 날랜 군사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막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즉시 나가도록 명하여 쏜살같이 달려가서 군사를 다스리고 병기를 정돈해 강탄을 파수하고 성지를 수리하여 사수할 계책을 하고 물러날 계획을 하지 말도록 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성상께서 성과를 이루도록 위임하는 뜻이며 수신(帥臣)이 몸을 바쳐 국은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여깁니다.
신이 생각건대, 온 나라의 정병과 무사가 모두 여러 대장의 수하에 모여 있는데, 일이 없으면 농장을 감독하는 역사를 하고 일이 있으면 호위(扈衛)로서 편안함을 취하는 곳으로 삼고 있습니다. 정묘 호란에 강도로 피란갔던 일에 대해서는 식자들은 지금까지도 가슴아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한 나라의 날쌘 군사를 모아 섬속에서 늙히면서 한 명의 병사나 한 마리의 말을 싸움터에 내보내지 않고 수백 보 밖에서 적의 기병을 엿보면서, 내란(內亂)이 있을까 걱정스럽다는 말로 성상의 귀를 현혹시켜 그것으로 자기네의 목숨을 보전하는 바탕으로 삼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나라와 휴척을 함께 할 훈신들은 부귀가 이미 극도에 이르러서, 살려는 마음만 있고 죽음으로써 지킬 계획은 없는 것이 으레 이와 같으니, 급한 때에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지난번과 달라서 저들이 군사를 움직이고 나면 비록 애절한 말로 화친을 구하더라도 반드시 들어주지 않을 것이며 후한 폐백을 주면서 늦취 달라고 해도 반드시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망하는 것이 똑같다면 어찌 성을 등지고 한번 싸워서 승부를 가르는 것만 하겠습니까. 여러 대장의 군관 및 포수·살수 등 제군의 수가 아주 많으니 정예군을 반으로 나누어 원수에게 붙여 준다면 여러 지방에서 징병하지 않아도 군사의 위엄이 떨쳐질 것입니다.
다섯 달만에 장사 지내는 예(禮)는 제후의 제도이기는 하지만 정도(正道)와 권도를 쓰는 것은 때에 따라 달라야 하는 것으로, 고집스레 지키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초상치르고 장사지내는 것은 앞당겨 행하는 예는 있어도 뒤로 물려 행하는 예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에도 난으로 인하여 장례를 하면서 예를 다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은 대체로 형세가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혹시라도 오랑캐가 침략해 들어오는 환란이 장사지내기 전에 발발한다면 어쩌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앞당겨 길일을 정하여 빨리 대사를 치루고, 미처 하지 못한 일은 형세를 보아 추후에 하는 것도 불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이는 권도이면서 중도를 얻는 방법이라 여겨집니다. 그런 다음 오로지 무비(武備)에만 정신을 쏟아 송경(松京)에 진주하여 장사들을 독책하고 군율을 엄히 밝혀 송 태조(宋太祖)가 ‘오직 한 자루의 검(劍)이 있을 뿐이다.’라고 한 것처럼 뜻을 더욱 가다듬고 만세의 소리를 우렁차게 외친다면, 간교한 오랑캐의 혼을 빼앗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의 내용이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묘당으로 하여금 채택해서 쓰게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26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副提學鄭蘊上箚曰:
臣頃陳元帥速遣之意, 已承採施之批矣。 今聞元帥之行, 卜在三月二十日之後, 一何緩緩耶? 事機已迫, 急於燃眉, 何暇卜日乎? 元帥行裝, 一丈劍矣, 何暇治裝乎? 天祚我國, 彼或容忍, 更有使价之往復則幸矣, 不然, 風飄雨驟, 倐然而至, 天塹長江, 爲彼所有, 則雖有孫、吳之將, 態羆之卒, 已無及矣。 臣愚以爲, 卽命推轂, 星火馳進, 治其軍旅, 整其器械, 把截江灘, 繕治城池, 以爲死守之策, 毋爲退步之計者, 此今日聖上委任責效之意, 而帥臣捐軀報恩之地也。 臣竊惟, 一國精兵武士, 咸萃於諸大將之手, 而無事則爲農墅監董之役, 有事則爲扈衛偸安之所。 丁卯江都之事, 識者至今痛心。 安有集一國之精銳, 老於島中, 而不肯出一兵、馳隻馬, 窺賊騎數百步之外, 而顧乃以內變可虞之說, 熒惑上聽, 而爲自己保全之地乎? 勳臣之休戚與同者, 富貴已極, 有生之心, 無死之計者, 例如此, 可以爲緩急之恃乎? 今時則與彼時異, 彼旣動兵, 則雖哀辭以乞和, 必不聽也; 厚弊以求緩, 必不從也。 等其亡也, 曷若背城一戰, 以決勝負哉? 諸大將軍官及砲、殺諸軍, 其數甚多, 分其精銳之半, 付之元帥, 則不待徵兵諸路, 而軍威已振矣。 五月之葬, 雖是諸侯之制, 而經權異時, 不可膠守。 《傳》云: "喪事卽遠, 有進無退。" 古亦有因亂而葬, 故多闕者, 蓋其時勢使然也。 脫有侵突之患, 發於未葬之前, 則爲之奈何? 臣之愚意以爲, 進卜吉日, 亟成大事, 未及之役, 觀勢追完, 未爲不可。 此乃權而得中之道也。 夫然後, 專意武備, 進駐松京, 督責將士, 嚴明軍律, 益勵宋 太祖 "惟有一劍" 之意, 澶淵萬歲之聲, 可以奪狡虜之魄矣。
答曰: "箚辭似涉過慮。 然當令廟堂採用焉。"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26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