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 등을 접견하는 문제로 의견이 대립되자, 용호가 성이 나서 돌아가다
완성군(完城君) 최명길이 차자를 올리기를,
"용호의 일행은 다만 춘신사와 조제(吊祭)로 명분을 삼고 있으며 한서(汗書)에도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이른바 설만한 글이란 것은 바로 팔고산(八高山)과 몽고 왕자의 글입니다. 그들의 의례적인 글에는 답을 하고 이치에 어긋나는 말은 거절해야 군신의 의리와 이웃 나라의 도의가 둘 다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임시 방편으로 화를 늦출 대책에 대해서도 어떻게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금차는 불러들여 만나 보아도 무방하며 만나 보아서 안 될 것은 서달일 뿐입니다. 그러나 서달도 박대할 필요는 없고 엄한 말로 배척할 것은 이치에 어긋난 글일 뿐입니다. 일의 기틀이 한번 잘못되면 뒤에는 후회하더라도 소용없을 것이니, 묘당에서 의논하여 처리하소서."
하였다. 비국에서 명백하게 처치하고 따로 답서(答書)를 작성하기를 청하자, 상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조금 있다가 용호 등이 그들의 글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해 성이 나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러자 비국에서는 박난영(朴蘭英)을 보내어 머물도록 타이르게 하기를 청하고, 정원에서는 돌아오게 하지 말고 오로지 자강할 계책을 생각하기를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저들이 머물러 기다린다고 하니 부르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이에 난영을 보내어 용호를 따라 모화관에 가서 굳이 만류하였다. 용호가 말하기를,
"우리들은 별서(別書)를 받지 않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만일 열어 보기를 허락한다면 마땅히 도로 들어가겠다."
하였다. 마침내 다시 무신 및 역관을 보내어 부르기 위하여 벽제(碧蹄)까지 따라 갔으나 용호 등이 끝내 오지 않았다. 그들이 성을 나갈 때에 구경하는 관중이 길을 메웠는데, 여러 아이들이 기와 조각과 돌을 던지며 욕을 하기도 하였다. 헌부가 아뢰기를,
"구관소(句管所)는 그들이 달아날 기미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병조 낭관과 도감의 초관은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잡아다가 국문하소서."
하니, 상이 추고하라고 명하였다. 또 아뢰기를,
"차호가 지레 나간 것은 반드시 사신을 참하자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역관 중에 몰래 그들과 통한 자가 있을 것입니다. 찾아내어 효시(梟示)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2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
龍胡之行, 唯以春信、弔祭爲名, 汗書亦無別語。 其所謂慢書, 乃八高山及蒙古王子書也。 答其循例之書, 而拒其悖理之言, 君臣之義, 隣國之道, 得以兩全。 權宜緩禍之策, 亦何可全然不思乎? 金差不妨招見, 所不可見者, 西㺚耳, 西㺚不必薄待, 所當嚴斥者悖書耳。 事機一誤, 後雖悔之, 不可及已, 請令廟堂議處。
備局遂請明白處置, 別作答書, 上不許。 已而, 龍胡等怒其不受慢書, 排門跳去。 備局請遣朴蘭英, 諭令留之, 政院請勿招還, 專意自强之策, 上曰: "渠等留待云, 不可不招矣。" 蘭英追龍胡於慕華館, 固止之, 龍胡曰: "我等以不受別書故去耳。 若許開見則當還入矣。" 遂復遣武臣及譯官, 招之及於碧蹄, 龍胡等終不來。 其出城也, 觀者塞路, 群童或擲瓦以辱之。 憲府啓曰: "句管所旣不能詗知其跳去之幾。 兵郞與都監哨官, 又難免不能防守之責, 請竝拿鞫。" 上命推考。 又啓曰: "差胡之徑出, 必以得聞斬使之說。 譯官中不無潛通者, 請査出梟示。"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25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