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희·신경진·윤지·구봉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익희(金益熙)를 정언으로, 신경진(申景禛)을 형조 판서로, 윤지(尹墀)를 부제학으로, 정치화(鄭致和)를 부교리로, 권우(權堣)를 부수찬으로, 양만용(梁曼容)을 봉교로, 이회(李禬)를 대교로, 구봉서(具鳳瑞)를 공조 참의로 삼았다.
구봉서는 처음에 유희분(柳希奮)의 아들 유명립(柳命立)과 사귀어서 발신(發身)의 바탕으로 삼고자 하였고, 또 심연(沈演)과 함께 반궁(泮宮)에 들어가서 흉도들과 체결했었다. 반정(反正) 초엽에 심연은 마침내 정거(停擧)를 당했으나 구봉서는 다행히 모면했다. 과거에 급제한 뒤에는 장인인 오윤겸(吳允謙)을 등에 업고 청현직에 올랐다. 최명길이 화의를 주장하고 추숭하기를 청한 뒤로는 선비들이 친하게 붙좇는 자가 없었는데 구봉서만이 그의 심복이 되었다. 명길이 전조(銓曹)의 장관이 됨에 미쳐서 그를 끌어들여 전랑(銓郞)으로 삼고는 그가 말하는 것이면 모두 따랐다. 이에 무변(武弁)이나 음사(蔭仕)가 그의 손에서 나온 자가 많았다. 뒤에 우부승지에 제배되어 정언 김익희(金益熙)에게 탄핵당하자 시의(時議)가 통쾌하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2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丙戌/以金益熙爲正言, 申景禛爲刑曹判書, 尹墀爲副提學, 鄭致和爲副校理, 權堣爲副修撰, 梁曼容爲奉敎, 李檜爲待敎, 具鳳瑞爲工曹參議。 鳳瑞初交柳希奮子命立, 欲爲發身之地, 且與沈演, 俱入泮宮, 締結兇徒。 反正初, 沈演遂被停擧, 鳳瑞幸而獨免。 及登第後, 憑藉其婦翁吳允謙, 得通淸顯。 崔鳴吉主和議, 請追崇之後, 士無親附者, 而獨鳳瑞爲其腹心。 及鳴吉爲銓長, 引爲銓郞, 所言皆從, 武弁、蔭仕, 亦多出其手。 後拜右副承旨, 爲正言金益熙所劾, 時議快之。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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