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라 차인 마부대가 올린 국서와 그에 대한 답서
금나라 차인 마부대(馬夫大)가 왔으나, 상이 새로 내상(內喪)을 당했다는 이유로 불러 보지 않았다. 마부대가 올린 국서(國書)에,
"왕이 보낸 편지를 보니, 하늘을 두고 맹서한다고 말하였소. 그러나 내 생각에는 우리 두 나라가 우호를 맺은 이래 귀국(貴國)에서 백성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 우리 국경에 들어와 해를 주었지, 우리 백성이 언제 지난 약속을 어기고 귀국 땅에 들어가 해를 끼친 적이 있었소? 귀국의 백성들이 또 우리 동쪽 변방에 도피하여 사는 백성들과 사사로이 모피를 무역했지, 우리 백성 중에 일찍이 이처럼 사사로이 장사를 하는 자가 있었소? 하늘을 두고 맹서한다는 말은 내가 말한다면 괜찮지만 왕이 말해서는 안 되오.
정리(情理)로 논한다면, 왕은 ‘형(兄)인 한(汗)이 하늘의 돌보심을 받아 출병(出兵)할 때마다 적들이 흩어져 달아나고 이르는 곳마다 이기지 못한 적이 없구나.’ 하고 여겨야 할 것이오. 공(孔)·경(耿)·상(尙) 세 장수가 바다를 건너 귀부해 왔고, 또 동북 바닷가의 국가도 항복하여 병사 만여 인이 늘었으며, 몽고 삽한(揷漢)072) 의 한(汗)의 태후(太后)가 태자(太子) 공아라(空俄羅) 및 온 나라의 병사와 백성을 모두 이끌고 귀의해 왔소. 그래서 서북 천하의 반을 모아 하나로 통일하여 위력이 더해 날로 융성하니, 바야흐로 경사를 기뻐하고 축하하여 극진히 공경해야 할 것이오. 그런데 어째서 왕은 지난날 보내던 글에서는 모두 ‘봉(奉)’자를 쓰더니, 근년에는 봉자를 쓰지 않고 단지 ‘치(致)’자만을 쓰는 것이오? 이는 나를 미미하게 여겨서 왕이 나를 가볍게 여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오?
왕이 보낸 글에 또 ‘당초 형제의 의리를 맺어 하늘에 맹서하고 우호를 다짐할 때에는 원래 폐백을 주는 것으로 중히 여기지 않기로 하였는데, 이제 와서 무엇 때문에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가.’ 하였으나, 예물에 관한 일은 귀국 사신이 왔을 때 이미 여러 번 말하였고, 지난번 편지에서도 누차 말하였는데, 왜 내가 지금 갑자기 이 말을 끄집어냈다고 하는 것이오? 인삼(人蔘) 값을 처음에는 한 근에 16냥으로 쳤는데, 왕이 거짓으로 명나라에서는 쓰지 않는다고 속여 값을 9냥까지 깎았소. 또 ‘해마다 보내는 물품이 약소한 것 같으나, 우리 나라로서는 이미 남은 힘이 없다. ’ 하였는데, 지난번 철산(鐵山)의 한인(漢人)을 잡아서 물어보니 ‘평도(平島)에 주둔하는 병사들에게 왕이 요선(遼船) 50척을 주고 매년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쌀 2만 6천 포를 보조하며, 근당 삼 값은 20냥이다. ’ 하였소. 왕이 보낸 글에 또 ‘흑운룡(黑雲龍)이 참소를 한 뒤로 매번 시장에 좋은 재화(財貨)를 반출하는 것을 막고 있다. ’ 하였는데, 지난번 왕이 명나라에 보낸 배가 바다에서 우리 나라 국경에 표류하였을 때, 우리 나라 사람들이 물에 빠진 비단을 건져서 살펴보니, 물에 젖어서 썩었으나 모두 좋은 재화였소. 왕의 말이 마음과 다르고 마음이 행동과 달라서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이오. 이 점을 왕은 알아야 할 것이오. 그리고 무역에 관한 일은 모두 사신이 구두로 전할 것이오. "
하였다. 또 별지(別紙)에,
"명나라의 신하들이 임금을 속인 일에 대해 내가 대략 왕을 위해 말하겠소. 지난해 우리 병사가 선부(宣府)·대동(大同)를 침입하여 성을 공격하고 고을을 도륙해서 들판이 텅 비었는데도, 명나라 장수가 일찍이 한 사람도 감히 나와서 싸우는 자가 없었소. 내가 일찍이 명나라를 공격하여 한인(漢人)을 사로잡아 모두 머리를 깎게 했는데, 그 한인들이 집이 그리워 도망쳐 돌아갈 때마다 명나라 관리가 도리어 사람을 시켜 그들의 목을 베고 공을 세웠다고 보고하였소. 이와 같이 죄 없는 사람의 머리를 베어 임금을 속이는데도 임금은 그것을 믿고서 좋아하니, 나는 이런 나쁜 자를 누가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소. 이는 임금은 속이는 것 중에서도 큰 것이니, 나머지를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소? 왕은 명나라의 국운(國運)이 쇠퇴하지 않고 길이 바뀌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오? 나는 명나라가 기울어 무너질 때가 이르렀다고 생각하오. 단지 보이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속이고 임금은 신하를 의심하며, 뇌물이 공공연하게 왕래하고 참소와 간사함이 성하며, 도적이 봉기하여 여기저기에서 소요가 일고 있으나 숭정제(崇禎帝)가 탕평(蕩平)하지 못하고 매번 군대가 패하고 장수를 잃고 있소. 우리 병사가 또 이 틈을 타서 서쪽으로 가고 있으니, 이는 모두 하늘이 도와서 명나라를 뒤엎고 있는 것이오. "
하였다. 우리 나라가 보낸 답서(答書)에,
"행인(行人)이 재차 와서 멀리서나마 근황이 좋으시다는 것을 살피고 나니 매우 위안이 됩니다. 보낸 글의 말뜻은 모두 옳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실정을 자세히 파악하지 못하고 계신 것이 있기에 대략 말하고자 합니다.
귀국이 백전 백승(百戰百勝)하는 군사를 철수하고 양국의 우호를 열었으니, 우리 나라의 군신이 어찌 귀국의 큰 은혜를 모르겠습니까. 하물며 귀국은 요즈음 병세(兵勢)가 더욱 떨쳐 가는 곳마다 적이 없고, 몽고의 여러 종족을 통일하여 하나로 만들어 위세가 대막(大漠) 밖에까지 떨치고 있다는 점은 우리 나라도 아는 바이니, 감히 터럭만큼이라도 귀국을 경시하는 뜻이 있겠습니까. 위에서 하늘이 실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치(致)’자와 ‘봉(奉)’자는 모두 이웃 나라끼리 서로 존경하는 데 쓰는 명칭입니다. 그런데 앞뒤로 보낸 편지를 점검해 보니, 귀국의 글에도 봉자를 쓴 때가 있었고 보면 우리 나라가 어찌 이 한 글자를 아끼겠습니까. 요즈음 이렇게 쓴 것은 무심히 하다가 그렇게 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지금 말씀하신 것을 보니 참으로 매우 두렵습니다.
인삼값의 다소는 단지 두 나라 사람들이 값어치를 따져 사고 파는 데 달려 있는 것이지 억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내가 아는 일도 아닙니다. 대개 상거래의 도리는 이익을 남기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만약 피도(皮島)와 귀국에서 그 값이 서로 비슷하다면, 상인 가운데 누가 기꺼이 가져다가 팔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말씀하신 판매하는 값이 20냥이라는 것은 결단코 이럴 리가 없습니다. 피도는 우리 나라 국경 부근에 있어서 우리 변방 백성들이 적지 않게 괴로움을 받고 있으며, 곡식을 실은 배가 그들에게 팔기를 강요당한 일에 있어서는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2만 포를 보조했다느니 50척을 주었다는 것은 본래 이런 일이 없으니, 중국 사람들의 황당한 말이야 한이 있겠습니까. 귀국에서는 어찌하여 일개 무뢰한의 종잡을 수 없는 말로 인하여 갑자기 형제의 나라를 의심하는 것입니까.
중국에서 좋은 재화를 반출하는 것을 막는 법이 요즈음 더욱 엄밀해졌는데, 그 사이에 혹 간사한 상인들이 몰래 가져다가 파는 자가 있고, 또 혹 귀국에다가 파는 자도 있습니다. 보낸 글에 이 일로 우리 나라가 좋은 재화를 인색하게 아낀다고 의심한 것 같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당초 하늘에 고하고 맹세할 때는 오로지 신의(信義)를 소중히 여기고 전혀 예폐(禮幣)의 다소는 따지지 않기로 하였는데, 지난해 소도리(所道里)가 왔을 때 귀국에서 제시한 물목(物目)에 금은(金銀)과 궁각(弓角)을 제외하고도 그밖에 토산물이 너무나 엄청나 진실로 우리 나라에서 판출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때문에 서로 오가면서 조정하는 것을 면치 못하여, 귀국의 승낙을 받아 우리 사신과 귀국의 사신을 접대하는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대어 약속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나라는 실로 이를 믿고 앞으로 계속 이렇게 할 것으로 여겼으므로, 보내온 글에 말한 것은 단지 괜히 해본 말이려니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일부러 보낸 사신에게 책망을 받고 보니, 우리가 만약 한결같이 고집한다면, 귀국이 우리 나라의 재력이 이미 고갈된 것은 모르고 도리어 우리 나라가 형제의 의리를 가볍게 여긴다고 할까 두렵기 때문에 다시 재정을 담당한 신하와 별도로 조정하여 더 증가한 수목(數目)으로 온 사신과 협상하도록 하였습니다. 비록 말씀하신 원래 수량에는 미달되오나, 우리에게는 다시금 남은 힘이 없으니, 내가 정성과 예의를 다하여 귀국의 호의를 받들고자 하는 것이 여기에서 다하였습니다.
북쪽 백성들이 사사로이 장사하는 것은 우리 나라가 본래부터 통렬히 금지하여 그것을 범한 자는 벌로 사형까지 시키고 있으므로 요즈음 이 폐단이 약간 줄었습니다. 다만 국경을 넘어가 삼을 캐는 것은 우리 백성들이 큰 이익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내가 진실로 가슴 아프게 여깁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시 거듭 엄하게 단속하여 반드시 통렬하게 끊고야 말겠으니, 잠시 용서해 주면 다행이겠습니다. 개시(開市) 무역에 관한 한 문제는 실로 난처한 점이 있는데, 그 내용은 온 사신이 자세히 알고 갈 것입니다. "
하였다. 이어 은밀히 마호(馬胡)에게 뇌물을 주어 삼을 캐다가 붙잡혀 간 우리 백성들을 돌려 보내도록 주선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7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20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무역(貿易) / 외교-야(野)
- [註 072]삽한(揷漢) : 찰합이(察哈爾).
○金差馬夫大來, 上以新有內喪, 不召見。 馬夫大呈國書, 有曰:
見王來書, 援天爲言。 予想, 我兩國自盟好以來, 秪有貴國, 任縱人民, 入害我境, 予之人民, 何嘗有違渝前言, 入害貴地者乎? 貴國之人, 又與我東邊避居逃民, 私易皮張, 予民曾有似此私偸市者乎? 援天爲言, 予言之則宜, 而王不宜言之也。 以情理論, 王宜謂: "兄汗蒙天眷助, 每每出兵, 敵人披靡, 所至之處, 無不克捷。" 孔、耿、尙三將, 航海歸附, 又東北濱海之國降順, 益兵萬餘人, 蒙古、揷漠汗、太后, 倂太子空俄羅, 及闔國兵民, 招服歸來。 西北半璧之天下, 斂而爲一, 威力增加而日盛, 方宜喜慶作賀, 致恭致敬。 何王往日來書, 俱有奉字, 近年來, 不寫奉字, 只書致字? 豈予微弱, 顯見王之輕我耶? 來書又言: "當初結爲兄弟, 誓天搆好, 元不以贈幣爲重, 今何遽有此言?" 然禮物之事, 貴使來時, 已頻頻言之, 去書亦屢屢及之, 何謂予遽出此言也? 人蔘初時, 每斤十六兩, 王誑謂大明不用, 而減價至於九兩。 又言: "歲致品儀, 雖若菲薄, 在弊邦已無餘力。" 頃捉鐵山 漢人詢問, 言: "平島駐兵, 王與遼船五十隻, 每年春秋二次, 助米二萬六千包, 每斤蔘售價二十兩。" 來書又言: "自黑雲龍行讒之後, 每市禁出好貨。" 前, 王遣往大明船隻, 自海上打落弊境時, 我人撈取沈水段匹, 雖浥瀾, 視之皆好貨也。 王之言異心、心異行, 而予之斯言, 所以出也, 王須知之。 市易事, 盡在使臣口頭。
其別紙曰:
大明臣下欺誑君上之事, 予略以爲王言之。 昨年我兵入宣、大, 攻城屠邑, 野掠一空, 大明軍官, 曾無一人敢出戰者。 予嘗進攻大明, 獲有漢人, 俱令剃頭。 其漢人每有思家逃回者, 大明上司, 反令人迎斬報功。 似此無罪之人, 殺首級, 以欺君上, 君上信而喜之, 予不知此孽, 何人承受耶? 斯欺罔之最大者, 餘何得悉言? 王以爲, 大明國運未衰, 永久不替乎? 予謂大明傾頹之時至矣。 秪見臣欺君、君疑臣, 賄賂公行, 讒奸昌熾, 盜賊蜂起, 處處擾亂, 崇禎蕩平之不能, 每每敗軍損將。 予兵又從此西向, 斯皆上天合湊, 而傾覆之也云。
我國答書曰:
行人再至, 遠審動靜吉慶, 甚慰。 來書言意, 皆是也。 第其中, 似猶有未悉本情者, 請粗言之。 貴國斂百戰百勝之兵, 而開兩國之好, 弊邦君臣, 豈不知貴國之大惠? 況貴國, 近來兵勢益張, 所向無敵, 蒙古諸種, 混而爲一, 威行大漠之外, 此弊邦所知, 敢有一毫輕視貴國之意哉? 上天實臨我矣。 致與奉兩字, 均爲隣國相敬之稱。 點檢前後書牘, 貴國書亦有下奉字之時, 則弊邦何惜此一字乎? 近間所稱, 不過無心所致, 今承來示, 良切瞿然。 蔘價多少, 只在兩國之人, 計直買賣, 非可抑勒, 亦非不穀所知也。 大槪市道, 求剩利也。 若皮島與貴國, 其價相似, 則商人孰肯轉販乎? 然如來示所謂 ‘售價二十兩’ 者, 決無是理矣。 皮島在於我境, 邊民被惱不少。 至如米斛船隻, 被他强要索買者, 不可謂全無。 然如二萬包之助, 五十隻之與, 則本無此事, 漢人謊說, 豈有極乎? 貴國奈何因一光棍之幻舌, 而遽疑於兄弟之國耶? 皇朝禁出好貨, 近益嚴密。 其間或有奸商, 潛挾暗換者, 亦間間售價於貴國。 來書有若以此, 疑弊邦吝惜好貨者然, 豈不冤哉? 當初告天立誓, 專以信義爲重, 都不問禮幣之多少, 頃年所道里之來, 貴國所示物目, 除金銀、弓角外, 其他土産, 亦甚浩大, 誠非弊邦所能辦, 故不免往復裁定, 蒙貴國領受, 賤价與貴儐, 面約而還。 弊邦固恃以爲恒式, 而來書有所云云, 意謂特爲謾語。 今又專差見責, 我若一向堅執, 亦恐貴國不知我財力已竭, 反謂我輕兄弟之義, 故更與度支之臣, 另加裁量, 以其所增數目, 說與來差。 雖未準厥數, 在我更無餘力, 不穀所以致誠、盡禮, 以承貴國之好意者, 於斯至矣。 北民私商, 弊邦素所痛禁, 犯者罪輒至死, 近來此弊稍息。 唯是越境採蔘, 乃我民大利所在, 不穀誠痛之。 然自今更加申飭, 必痛斷乃已, 幸姑容恕。 市易一款, 實涉難便, 來差細知而去云。
仍密賂馬胡, 使之周旋, 還送我民之採蔘被擄者。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7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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