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조경, 장령 이시직 등이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의 덕을 권면하는 글월을 올리다
집의 조경(趙絅), 장령 이시직(李時稷)·이경(李坰), 지평 송희진(宋希進)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옛날의 임금이 재이(災異)를 만났을 때 소복을 착용하고 검정색 수레를 사용하며 음악을 중지하고 정전(正殿)을 피해 교외로 나가는 것은 실로 어느 시기까지 한다는 제한이 있지만, 공구 수성(恐懼修省)하는 마음이야 어찌 시간의 제한이 있겠습니까. 공구 수성하는 마음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으면 어느 겨를에 이목(耳目)과 심지(心志)에 즐거운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 등이 삼가 듣건대 전하께서 관등(觀燈)날 저녁에 후원에다 오색 비단으로 만든 등불 수백 개를 줄지어 걸어 놓고 즐기셨다고 하니, 모르겠습니다만 이 말이 사실입니까? 궁궐 내의 일은 은밀하여 사대부가 보아 알 수는 없으나, 외간(外間)에 이미 그 소문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자하여 거의 헛소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물건을 완호(玩好)하면 뜻을 상실한다.[玩物喪志] ’는 것은 소공(召公)의 교훈입니다. 천지(天地)의 기운이 화평하여 아름다운 징조가 모두 이르는 시대에도 음란하고 교묘한 일을 만들어 군주의 마음을 흔들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지금처럼 하늘의 노여움을 당하고 있는 때이겠습니까. 예전의 임금은 재이를 당했을 때 혹은 궁녀를 내보내어 수성(修省)의 방법을 삼기도 하였는데, 지금 전하께서는 재앙이 내린 때에 숙의(淑儀)를 선발하셨으니, 이는 한(漢)·당(唐) 때의 중등 정도의 임금과도 다른 것입니다. 아무리 후사가 없어 서두르는 임금이라도 필시 가례(嘉禮)와 경척(警惕)을 동시에 시행하기를 꺼릴 것인데, 하물며 전하는 이러한 일이 없는데이겠습니까.
노(魯)나라 임금이 새로 남문(南門)을 만들었는데, 공자가 그것을 《춘추(春秋)》에 기록하였고, 전(傳)을 지은 자는 ‘어려운 때에 사치스러운 일을 했다.’ 하였습니다. 남문은 국문(國門)이고, 어려운 때는 천재(天災)와는 차이가 있는데도 오히려 기롱하였습니다. 지금 대군(大君)의 집을 짓는 역사로 장인(匠人)들의 연장 놀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마치 천재와 더불어 서로 경쟁하는 듯합니다. 만약 국사(國史)에 이것을 써서 후인들이 기롱한다면, 어찌 새로 남문을 만든 것에 대한 기롱에 그치고 말겠습니까.
예전에 송(宋)나라 신하인 구양수(歐陽修)가 수재(水災)로 인해 인종(仁宗)에게 상소하기를 ‘하늘과 사람 사이는 그림자나 메아리처럼 조금도 어긋나지 않아서, 재변을 부를 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 재변이 저절로 이른 적은 없으며 또한 이미 재변이 나타났는데 징험이 없는 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재변이 큰 것일 경우는 그에 대한 근심 또한 깊기 때문에 자잘한 대응책으로는 이 큰 재변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재이 역시 반드시 그것을 부를만한 인사(人事)의 잘못이 있을 것이고 또 그 재변도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내쫓았던 두세 명의 신하들을 방환(放還)하고 민세(民稅)를 조금 감해 준 것을 가지고 이 큰 재이를 막을 수 있다고 여기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성심(聖心)에, ‘천재가 오는 것은 모두 하늘의 정해진 운수에 의한 것이므로 인력으로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여기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성상의 밝으심으로 어찌 몸을 바르라 하고 일을 바르게 하는 도리는 생각지 않고 도리어 오락과 사치만 일삼으십니까.
아, 재이가 내리기 전에 전하께서는 덕을 경건히 닦음에 힘써서 황천(皇天)에 마주 대하시지는 못하고 오직 고식(姑息)과 구차함으로 나라를 다스렸기에, 재상들이 한 명의 어진 선비도 진출시키지 못했는데도 전하께서는 문책하지 않고, 선조(選曹)047) 에서 인재를 선별하지 못해도 전하께서는 살피지 않으며, 대간(臺諫)이 관리들의 잘못을 규핵하지 못해도 전하께서는 알지 못하며, 훈구(勳舊)들이 전택(田宅)을 넓히기를 힘써도 전하께서는 막지 않으며, 무부(武夫)들이 오로지 백성을 침학하는 것만을 일삼아도 전하께서는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이에 기강이 이 때문에 떨치지 못하고 조정이 이 때문에 떨치지 못하고 조정이 이 때문에 높임을 받지 못합니다. 오직 천 갈래 만 갈래 길은 사욕(私慾)으로 가득차서 어염(魚鹽)의 이익은 모두 사실(私室)로 돌아가고, 호강(豪强)과 세력 있는 자들의 해독이 나날이 내외를 병들게 하여 백성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백성과 국가가 양편으로 나뉘었다는 말까지 있어서, 백성에게 세금을 혹독하게 받는 자는 능력 있는 관리라 하고, 백성을 지극히 아끼는 자는 명예를 추구한다고 하여, 사방 팔로로 하여금 다시는 터럭만큼이라도 국가를 사랑하고 추대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보심은 우리 백성들의 눈을 통해서 보는 것이고, 하늘의 들으심은 우리 백성들의 귀를 통해서 들으시는 것이니, 아마도 오늘의 인사(人事)가 과연 재앙을 부르지 않았나 합니다.
신 등은 모르겠습니다만, 재이가 내린 뒤로 위로는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는 서관(庶官) 백집사(百執事)에 이르기까지, 조금이라도 지난날의 소행을 후회하고 있습니까? 전하께서 공구 수성을 못하시면 아랫사람을 책망하시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전하께서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지극한 정성과 측은함에서 나온다면, 대신들 중 그 누가 감히 그 뜻을 받들려고 하지 않겠으며, 모든 집사(執事)들도 누가 감히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자기 직분을 다하지 못할까 생각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열복하면 하늘의 뜻 역시 돌이킬 수 있으니, 《역전(易傳)》에 이른바 ‘그 상(象)은 있더라도 그 감응은 없다.’고 한 말을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하니, 답하기를,
"차자에서 진술한 일들은 모두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한 말이 아닌 것이 없다. 내 감히 두려운 마음으로 스스로 경계하지 않겠는가. "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09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註 047]선조(選曹) : 인재를 선발하는 이조와 병조.
古之人君, 遇災異也, 降服乘縵, 徹樂出次, 此固有時月之制, 而恐懼修省之心, 夫豈有時月之限乎? 恐懼修省之心, 旣主於內, 則何暇有媮耳目、娛心志之事乎? 臣等竊聞, 殿下於觀燈之夕, 羅絡綵燈數百於後苑, 而以爲娛, 不知此語, 誠然乎哉? 宮禁事(禁), 士大夫雖不得見而知之, 外間已不勝其藉藉, 殆不可誣者。 玩物喪志, 召公之訓也。 其在天地氣和, 休徵畢至之時, 亦不可設淫巧, 以蕩君心, 況此逢天癉怒之日乎? 古之人君, 遇災異也, 或出宮女, 以爲修省之道, 而今殿下, 乃選淑儀於降災之日, 亦異於漢、唐之中主矣。 雖恤胤汲汲之君, 嘉禮、警惕, 必嫌兼行, 況殿下無是事乎? 魯侯新作南門, 聖人書之《春秋》, 作傳者以爲: "時屈擧贏。" 南門, 國之門也。 時屈, 與天災有間, 而猶且譏之。 今營造大君家舍之役, 匠斲不輟, 有若與天災相抗者然。 如使國史書之, 而後人譏之, 奚止新作南門之譏乎? 昔宋臣(歐陽脩)〔歐陽修〕 , 因水災上疏于仁宗曰: "天人之際, 影響不差, 未有不召而自至之災, 亦未有已出而無應之變。 其變旣大, 則其憂亦深, 非小小有可以塞此大異也。" 今此災異, 亦必有人事之召之者, 而其變亦不可謂不大矣。 殿下其將欲以放還二三逐臣, 蠲除一分民稅, 謂可以塞此大異乎? 抑聖心以爲, 大災之來, 皆天數, 非人力可以消弭乎? 自非然者, 聖明何不思勑躬、正事之道, 而反爲娛樂侈大之擧哉? 嗚呼! 災異未降之前, 殿下不能懋敬厥德, 對越皇天, 惟以姑息、苟且爲國, 故宰臣不能進一賢士, 而殿下不問; 選曹不能甄別人物, 而殿下不察; 臺諫不能糾劾官邪, 而殿下不知; 勳舊務廣田宅, 而殿下不禁; 武夫專事貪虐, 而殿下不聞, 紀綱由是不振, 朝廷由是不尊。 惟其千塗萬轍, 私慾充塞, 魚鹽之利, 盡歸於私室, 豪勢之毒, 日痛於內外, 黎民嗷嗷, 跼地蹐天。 且有百姓、國家, 分爲二邊之說, 稅民深者爲能吏, 愛民至者爲干譽, 使四方八路, 無復有一毫愛戴國家之心。 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則竊恐今日之人事, 果召災異也。 臣等不知災異旣降之後, 上自公卿, 下而庶官百執事, 亦能少悔昔者之爲乎? 殿下不能恐懼修省, 則難以責下矣, 殿下警惕之心, 出於至誠惻怛, 則大臣孰敢不奉承, 百執事孰敢不駿奔走職思其憂乎? 人心自爾悅服, 則天意亦可回矣。 《易傳》所謂雖有其象, 而無其應者, 詎不信歟?
答曰: "箚陳之事, 無非愛君憂國之言, 敢不惕念而自警哉?"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09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