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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31권, 인조 13년 8월 3일 경진 1번째기사 1635년 명 숭정(崇禎) 8년

부응교 심지원 등이 정사의 바른 도로 인도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다

부응교 심지원(沈之源), 교리 김경여(金慶餘), 부교리 박서(朴遾), 수찬 김익희(金益熙)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 등이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엄숙하고 공손하며 경건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지나치게 안락하지 않았으니, 향기로운 덕(德)이 하늘의 마음에 들 만한데, 상서로운 일은 이르지 않고 도리어 재앙만 생겨나고 있습니다. 수재와 한재가 극도로 심하고 별들은 궤도를 벗어나며, 음란한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고 우레가 궁궐을 치며, 심지어는 시냇물이 끊어지고 못물이 붉게 변하는 재앙과 능(陵)이 무너지고 땅이 흔들리는 변괴가 달마다 생겨나 사관(史官)의 기록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인애한 하늘이 우리 전하에게 경고하시는 까닭을 뚜렷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도리어 조심스럽게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하늘에 호응할 참다운 방도를 다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다시 큰 바람으로 위엄을 보이어 돌을 날리고 집을 무너뜨리며 벼를 쓰러뜨리고 곡식을 망치며, 심지어는 종묘와 사직 안에 있는 백 년이나 된 교목(喬木)도 많이 꺾였으니, 보고 듣기에 참혹하여 중외가 걱정하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마땅히 그 마음을 크게 경계하여 애통한 마음으로 후회하고 깨달아 허물을 이끌어 스스로를 책망하시기에 겨를이 없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달이 지나도록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전혀 듣지를 못했습니다. 전하의 생각으로는 성덕(聖德)에 부족한 바가 없고 정교(政敎)에 잘못이 없으며 강역(疆域)에 근심이 없으니, 우연한 천변이야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고 여겨서 그러시는 것입니까?

아, 전하의 뜻이 확립되지 않아서 모든 일이 다 좀스럽고 잗달아지는 것이며, 전하의 학문에 진보가 없어서 본원(本源)이 깨끗해지지 못하며, 기강(紀綱)은 해이해져 사람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사치스러운 풍속이 날로 심해져서 그 피해가 수재나 화재보다 심하며, 대신을 경시하여 예모가 점차 각박해지고, 직언을 듣기를 싫어하여 총명이 점차 가리워지며, 사로(仕路)가 혼탁해져서 공도(公道)가 시행되지 않고 사습(士習)이 투박해져서 지향하는 바가 바르지 않으며, 백성들은 근심과 탄식이 생겨나 국가의 근본이 무너지고, 군정(軍政)은 무너져서 변방의 방위가 텅 비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때를 당해서는 비록 경사스러운 구름, 경사스러운 별, 감로(甘露), 예천(醴泉) 등의 상서가 매일 나타나고 매달 이른다 해도 쇠란과 패망을 구제할 수가 없을 것인데, 하물며 이 비상하고 놀라운 재변이 거듭 나타나는 경우이겠습니까. 신 등은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믿고 하늘의 경고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이렇게까지 한단 말입니까?

신 등이 삼가 살펴보니, 전하께서는 그 어짐이 족히 백성을 보호하실 만하고, 그 총명이 간사함을 분변할 만하며, 위무(威武)가 족히 일을 결단하여 처리하실 만합니다. 그러나 다만 성인이 되겠다는 뜻이 확립되어 있지 않고 바른 정치를 해 보겠다는 정성이 독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식(姑息)에만 힘쓰다 혹 먼 미래를 위해 경영(經營)하는 데는 소홀히 하며, 자잘한 일에만 세밀히 살피다 혹 그 대강(大綱)을 빠뜨리며, 그럭저럭 지내다 오늘에 이르러서 더욱 심해졌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자신을 정비하는 데 참다운 노력이 있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데 참다운 마음을 쓰면, 어진 인재를 찾아서 함께 정치를 할 수 있고 폐단을 개혁하여 한 시대를 구제할 수 있어서, 당(唐)·우(虞)와 하·은· 삼대(三代)의 정치를 오늘날에도 다시 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자(程子)가 일찍이 말하기를 ‘나라를 다스려서 국가의 운명을 영원하게 할 수 있는 것과, 육체를 잘 길러서 오래 살 수 있는 것과, 배움을 통해서 성인(聖人)에 이를 수 있는 것 등 이 세 가지 일은, 분명히 사람의 힘으로 조화(造化)를 이길 수 있는 것이나, 사람들 자신이 하지 않을 따름이다.’ 하였으니, 이 말씀은 믿음직합니다. 그것을 위한 노력을 참답게 하고도 실제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큰 뜻을 분발하시어 지치(至治)를 흥기시킬 것을 기약하시고,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로 마음을 삼고 한(漢)·당(唐) 이후를 본뜨지 말며, ·····와 같은 경지로 나아가고 ·····와 다른 점을 제거하소서. 그러면 시사(時事)를 바로잡을 수 있고 천재(天災)를 해소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아, 큰 뜻을 확립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참다운 학문이 있어야 안팎이 서로 보탬이 되어 뜻을 저버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대개 제왕(帝王)의 학문이 포의(布衣)의 선비와는 다른 점이 있고, 경륜(經綸)의 일이 장구(章句)의 학문과는 서로 같지 않으나, 그 본말의 순서는 서로 다른 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저 내면으로는 내 몸에 있는 이치를 궁구하고 외면으로는 사물에 있는 이치를 궁구하여 현우 사정(賢愚邪正)을 합당하게 분별하고 시비 득실(是非得失)을 합당하게 살피는 것에 이르기까지 학문이 아님이 없습니다. 조용히 있을 때 잡념을 일으키지 않아 맑고 텅 비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며, 움직일 때 한결같은 모습을 지녀 조금의 잘못도 없으며, 몸가짐을 반드시 가지런히 하고 엄숙하게 하며, 마음가짐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며 삼가는 것도 모두 학문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기질(氣質)의 병통을 극기(克己)로써 다스리되, 지나치게 부드러운 병통은 강함으로 바로잡고 나약한 것은 굳은 의지로 바로잡으며, 사나운 병통은 온화한 것으로 구제하고 성급한 병통은 너그러움으로 구제하며, 욕심이 많으면 깨끗이 하여 청정(淸淨)한 데 이르게 하고 사심(私心)이 많으면 바로잡아서 대공(大公)에 이르게 하며, 쉬지 않고 스스로 힘써 밤낮으로 해이함이 없게 하는 것 역시 학문이 아님이 없습니다.

신 등이 삼가 살펴보건대, 전하는 몸에 청명(淸明)한 기질이 있으셔서 물욕이 본디 적으시고 학문의 길에도 뜻을 두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사(政事)에 나타나는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희노(喜怒)의 드러남이 절도에 맞지 않는 것이 많고 호오(好惡)의 편벽됨이 혹 바름을 잃어버리며, 말할 때의 모습에는 항상 노여움이 잘못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행동을 하실 즈음에도 이기기를 좋아하는 병통이 있으니, 이 어찌 본원(本源)을 함양하는 공부에 미치지 못한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간직하고 성찰함에 조금이라도 태만하심이 없게 하고, 천리(天理)가 드러나기 전에 확충하시고 인욕(人慾)이 싹트려고 할 때 막으시며, 희노는 반드시 절도에 맞게 하고 호오는 반드시 바르게 하시고, 말할 때 기상은 반드시 순하게 하시고 행동은 반드시 합당하게 하시며, 또한 반드시 어진 사대부를 자주 접하시되 부드러운 안색과 겸손한 기상으로 의리(義理)를 강론하고, 나아가 정치의 잘못과 백성의 고통을 모두 자문하소서. 그러면 성덕(盛德)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날로 닦아질 것이니, 큰 뿌리가 확립된 뒤에는 어느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스스로를 완성하고 사물을 완성함이 참으로 여기에 달렸으며, 천지(天地)의 화육(化育)을 돕는 경지에 이르는 것도 여기에 달려 있어 시사(時事)도 구제할 수 있고 천재(天災)도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국가가 유지되는 것은 기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강이 확립되는 것은 오직 인군이 대공 지정(大公至正)한 마음으로 위에서 살피어 출척(黜陟)과 형상(刑賞)을 한결같이 공의(公議)에 부치고, 곧은 인재를 등용하고 곧지 못한 자는 내쳐서 사의(私意)가 끼지 못하게 하는 것에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임금의 마음에 진실로 그 공정함을 다하지 못하여 한 터럭만큼이라도 편벽된 사심이 있게 되면, 간사하고 아첨하는 일가붙이나 폐행(嬖幸)의 무리들이 형세를 엿보아 총명을 현혹(眩惑)시키지 않는 경우가 없어, 비록 충성스럽고 정직한 의론이 있더라도 들어갈 길이 없게 되며, 사기(士氣)는 손상되고 공도(公道)는 막혀서 기강이 이 때문에 무너지게 되는 것이니,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이 삼가 살펴보건대, 전하의 총명하신 예지(睿知)는 모든 군주에 우뚝 뛰어났지만 편벽되고 사사로운 한 생각이 혹 모두 제거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궁가(宮家)에 관계되는 일은 곡진히 비호하시고 훈척(勳戚)에게 미치는 말은 일찍이 들어 주신 경우가 없으니, 이 어찌 큰 성인이 공평하게 대하고 널리 사랑하여 불편 부당하게 하는 도리이겠습니까.

아, 근원이 맑지 않으면 하류가 깨끗할 수 없는 것이고, 모양이 단정하지 않으면 그림자가 바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정(朝廷)에서 공도(公道)가 떨쳐지지 못하면 선비들 사이에서는 사욕이 멋대로 횡행하며 뇌물이 성행하고 청탁이 앞다투게 되어, 죄가 있는 자는 모면할 길을 도모하고 공이 없는 자가 참람하게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저택은 법도를 넘을 수 없는 것인데도 혹 규모가 구름에 이어질 듯이 커서 극도로 장려(壯麗)한 것이 있는가 하면, 전원(田園)도 제도를 지나칠 수 없는 것인데 혹 외람되게 받고 넓게 점령하여 풍요한 땅을 다 가진 자가 있으며,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은 백성과 함께 소유해야 하는 것인데 모두 떼어 받았다고 하면서 그 이익을 독점하며, 편비(褊裨)나 대졸(帶卒)은 본래 호위하기 위한 것인데 종으로 삼고 장원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심부름꾼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외에 매와 개를 부려 사냥하고 음악이나 여색을 밝히는 등의 행위를 거리낌없이 자행하는 모습들은 온 나라에 말이 자자하여 모두 들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오늘날의 기강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기강이 떨쳐지지 않음이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으니, 국가가 멸망하지 않는 것은 겨우 한 터럭만큼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마음가짐을 공정하게 하시고 아랫사람에게 임하심을 바르게 하시어, 사의(私意)가 싹트는 것을 일체 극복하고 제거하소서. 분수에 맞지 않는 은총을 사사로이 친한 자에게 일체 미치게 하지 말고, 삼척(三尺)의 법034) 을 귀하고 가까운 자들에게 너그러이 쓰지 말아, 대소의 신하들로 하여금 감히 공도에 한결같지 않음이 없도록 하고 내외와 원근으로 하여금 감히 정도에 한결같지 않음이 없도록 하소서. 그렇게 하면 모든 법도가 오직 한결같고 여러 업적이 모두 환하게 이루어져 시사(時事)를 구제할 수 있고 천재(天災)를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검소는 덕의 공손함이요, 사치는 덕의 도적이다.’ 하였습니다. 대저 임금이 맑은 마음으로 스스로 공손하며 검약(儉約)에 힘을 쓰면, 기욕(嗜慾)이 줄어들고 생각은 고요해지며 안으로는 깨끗하고 순수한 즐거움이 생겨나고 밖으로는 해끼치는 누가 없게 되어, 본성을 기르고 덕을 길러 자연 그 혜택이 사물에 미칠 수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임금된 사람이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옛날부터 임금 중에는 항상 시작을 잘한 자는 많아도 끝을 삼간 자는 적었습니다. 대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부귀의 봉양을 극진히 받기 때문에, 스스로 수신 제가(修身齊家)와 성의 정심(誠意正心)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치스럽고 방종한 데 흐르지 않는 경우가 드문 것이니, 두렵지 않겠습니까.

신 등이 삼가 살펴보건대, 전하께서 처음 즉위하실 때에는 몸소 절약과 검소를 실천하시어 화려하고 사치함을 일삼지 않았으며, 완호(玩好)하는 물건이나 아름다운 의복이나 거마(車馬)로써 무릇 마음을 고혹시키고 덕을 해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물리치고 배척하셨으므로, 보고 듣는 모든 사람들이 숭앙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근년 이래로는 점차 처음과 같지 않아져서 저녁에 등불을 켜고 유연(遊宴)하는 일이나 후원에 못을 파고 누각을 짓는 일이 민간에 전파되어 모든 사람의 입에 시끄럽게 오르내리고 있으니, 신 등은 잘 모르겠거니와 이런 말들이 어찌해서 이르게 된 것입니까. 만약 이것이 전하는 자들이 잘못 전한 것이라면 참으로 성덕(聖德)에 손상될 바가 없는 것이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비슷한 자취가 있다면 어찌 성덕에 누가 되지 않겠으며 여러 아랫사람들의 바람에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런 일이 있으시면 고치시고 없으시면 더욱 힘쓰시어, 무익한 일로 안일과 즐거움에 빠지는 조짐을 열어 놓지 마소서. 또한 임금께서만 스스로를 신칙하실 것이 아니라 궁중에도 마땅히 거듭 경계하시어, 대포(大布)·대련(大練)의 검소한 미덕035) 을 전대(前代)에서만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지 않도록 하시며, 고계 광수(高髻廣袖)036) 의 사치스러운 풍속을 혹시라도 오늘날 본받음이 없도록 하소서. 그러면 위에서 좋아하는 것은 아랫사람이 더 좋아하여 마치 바람이 불면 풀이 저절로 눕는 것처럼 사치스러운 풍속은 저절로 개혁되고 인륜을 어기는 사람이 없게 되어 시사를 구제할 수 있고 천재도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대신의 직책은 모든 책임이 집중되는 곳입니다. 민심이 흔들리어 서로 부딪칠 땐 진정시키고자 하고, 맵고 달고 건조하고 습함이 고르지 못한 것은 조화롭게 하고자 하며, 이리저리 얽혀 어지럽게 맺힌 일은 풀어서 해결하고자 하고, 어둡고 더러운 것도 너그럽게 용납하고자 하니, 그 책임의 무거움이 이와 같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에게 임무를 전적으로 맡기지 않을 수 없고, 그들에게 예모를 갖추어 대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용(中庸)》에 ‘대신을 공경하면 일에 미혹됨이 없다.’ 하였으니, 이야말로 후세에서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이 삼가 살펴보니, 전하께서 대신을 진퇴시킬 즈음에 간혹 그 예를 다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이 직위에 있을 때도 이미 의지하여 맡기는 정성이 없고 지위를 떠날 때도 역시 돌아보고 애석해 하는 뜻이 없으십니다. 김류는 세 번 사직하자 윤허하셨고 김상용(金尙容)은 일곱 번 사직하자 윤허하셨으니, 이는 비록 그들의 수고로움과 초췌함을 딱하게 여겨 휴식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여러 사람들의 생각에는 의아하게 여겨져 모두 상의 뜻에 어긋나

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성인의 대도(大度)를 소인들의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만, 대신을 예우하는 도리에 있어서는 실로 미안한 점이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노성한 사람에게 맡기고 예경(禮敬)을 극진히 하여, 그들로 하여금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 그 온축한 것을 펼 수 있도록 하고 상하가 서로 믿어 정사를 토론할 때 의견을 숨김없이 표현할 수 있게 하소서. 그러면 복심(腹心)을 의탁할 곳이 있게 되고 안위(安危)를 매어 둘 곳이 생겨 국가의 체통이 중해지고 조정이 존귀하게 되며, 모든 일이 평안해지고 치도(治道)가 이루어질 것이며, 따라서 시사를 구제할 수 있게 되고 천재를 해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옛날에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조정에 진선(進善)의 깃발037)비방(誹謗)의 나무038) 를 두었으니, 그 치도(治道)을 통하게 하고 간쟁을 유인함이 참으로 위대하지 않습니까. 대개 한 사람의 총명은 한계가 있고 만기(萬機)의 사무는 한량이 없기 때문에, 비록 성스럽고 지혜로운 임금이라 하더라도 널리 중론(衆論)을 받아들이고 크게 군언(群言)을 채집하여, 차이를 살피고 가부를 살펴서 알맞은 것을 취해 쓰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진실로 아랫사람들을 경시하고 오만하게 스스로를 성인이라 하여 다른 사람의 총명을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거나 다른 사람의 지혜를 자기보다 부족하다고 여긴다면 이는 마치 귀와 눈을 가리고서 총명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하고서도 혼란과 패망에 이르지 않은 자는 드뭅니다.

신 등이 삼가 살펴보니, 전하께서 말을 듣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태만해져서 평범한 논핵조차도 윤허하시지 않으며, 조금만 뜻에 어긋나거나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갑자기 뜻을 꺾으려 하십니다. 혹은 과격하다고 의심하시고, 혹은 당파를 좋아한다고 의심하시며, 혹은 명예를 구한다고 의심하시어,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기색이 사람들을 천리 밖에서부터 막으시며, 매이고 집착하시는 병통이 말하는 사이에 지나치게 드러나십니다.

우선 요즈음의 일로 말해 보겠습니다. 유백증(兪伯曾)은 타고난 성품이 강직하여 그 말이 비록 적절하지는 못하지만, 그 마음을 살펴보면 다름 아니라 실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정성에서 나온 것인데, 전하께서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셨습니다. 나만갑(羅萬甲)은 말솜씨가 너무나 질박하여 지나친 점이 없지 않으나 ‘궁궐이 엄숙하지 못하다.’는 말의 경우 민간에서 서로 전하는 말로써 다른 사람들은 말하지 못했는데 유독 만갑만이 극언하였을 뿐입니다. 군신(君臣)은 마치 부자(父子)와 같으므로 무릇 들은 일이 있으면 그 허실(虛實)을 따질 것이 없이 모두 군부(君父) 앞에 진달하는 것이 신자(臣子)된 사람은 숨김이 없어야 한다는 의리입니다. 삼가 들으니, 지난번 경연 석상에서 미안스러운 하교까지 있었다 하니, 이 어찌 여러 신하들이 전하에게 기대하는 바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지난 잘못을 통렬히 깨우치시고 크게 언로(言路)를 열어서 여러 사람들이 들은 것을 모아서 자신의 총명으로 삼으시고 여러 사람들이 본 것을 모아 자신의 지혜로 삼으시며, 마음에 거슬리는 말이 있거든 바른 도리를 지적한 것이 아닌가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말이 있거든 부당한 것이 아닌가 살펴보소서. 그리하여 그 말이 옳으면 수용할 뿐만이 아니라 뒤이어 상을 주시며, 설령 그 말이 광망(狂妄)하여 시행하기에 적절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너그럽게 용납하고 벌을 주시지 마소서. 그러면 좋은 말은 숨겨지지 않고 여러 계책은 모두 시행되어 시사를 구제할 수 있고 천재를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의 치란(治亂)은 벼슬길의 청탁(淸濁)에 달려 있고, 벼슬길의 청탁은 공도(公道)가 시행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공도가 시행되면 중앙의 백료(百僚)로부터 외방의 주현(州縣)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적임자를 얻게 되고, 공도가 시행되지 않으면 중앙의 백료로부터 외방의 주현에 이르기까지 다 그 적임자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를 가진 임금이 공도를 널리 펴는 것으로 급선무를 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눈앞의 현실은, 양전(兩銓)039) 에서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꼭 한결같이 공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청탁으로 벼슬을 얻기도 하고, 혹은 뇌물로 벼슬을 얻기도 하는 등, 요행을 바라는 길이 크게 열려서 관작의 기강이 잡되고 혼란합니다. 심지어 나덕헌(羅德憲)·이확(李廓)처럼 탐오죄를 범해 낭패를 당한 자나 이일원(李一元)·문희성(文希聖)·이민환(李民寏)처럼 적에게 항복하여 포로가 되어 버림을 받은 자들까지도 아직 의관(衣冠)의 반열에 끼어 혹 변방의 장수나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牧民)의 책임을 맡기까지 하였으며, 시정(市井)의 무리나 천얼(賤孼)의 무리로 별로 남달리 빼어나거나 쓸 만한 재주가 없는 자들까지도 동반(東班)과 서반(西班)의 정직(正職)에 통용되어 혹은 금관자나 옥관자의 직질에 오르기까지 하였으니, 벼슬길의 혼탁함이 지금보다 더 심한 적은 없어 식자들이 한심스럽게 여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거듭 해조에 명을 내려 조금이라도 사사로움을 따르지 말고 반드시 공정하게 하도록 하시고, 출척(黜陟)의 법을 밝히고 천거의 법규를 엄격히 하여 어진 사람이 지위에 있고 능력있는 사람이 직책에 있게 하시며, 탐오한 무리는 영구히 서용하지 말고 용렬한 무리 역시 깨끗이 도태하소서. 그러면 벼슬길이 맑아져 명기(名器)가 중하게 되고 직사(職事)가 시행되어 공적이 이루어져, 시사를 구제할 수 있고 천재를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사습(士習)은 국가의 원기(元氣)입니다. 사습이 바르면 원기가 왕성하고, 사습이 투박하면 원기가 쇠퇴하는 법입니다. 예로부터 천하와 국가를 가진 자가 유현(儒賢)을 남달리 드러내고 도덕(道德)을 존숭하여 사습을 바르게 하고 원기를 왕성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도 열성조께서 문(文)을 높이고 치교(治敎)를 크게 밝혀 거듭 빛나고 계속 젖어들게 하신 교화가 선조 대왕(宣祖大王) 때에 이르러 융성하였습니다. 이때를 당해서 사람마다 절차 탁마하고 선비마다 바른 행실을 닦아서, 경전에 능통하고 옛것을 배우는 것을 능력으로 삼고 스승을 높이고 벗을 사귐을 직분으로 삼았기에, 나와서 조정에 벼슬하는 사람들은 문질(文質)이 빈빈하게 갖추어져 볼 만한 인재가 수두룩이 일어나 국가를 편안히 한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년 이래로는 교화가 점차 무너지고 의리가 어둡고 막혀서 사람들은 선(善)을 향하지 않고 선비들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아, 방탕하고 편벽된 습관이 하루하루 더욱 심해갑니다. 우선 지난번 관학(館學) 유생들의 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늘날의 시세(時勢)를 헤아리지 않고 갑자기 막중한 의견을 제시했으니 진실로 성급함을 면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은 어진 이를 높이는 데 급급해서 생각에 부족한 것이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 몇몇 다른 의논을 가진 선비들이 있었습니다만 어찌 실질적인 견해가 있어서였겠습니까. 서로 대립한 끝에 상소를 올려 반드시 상대방을 배격하고야 말겠다는 것입니다. 사습(士習)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한심한 일입니다.

설령 양신(兩臣)040) 의 행위에 의논할 만한 점이 있더라도, 그들을 높이는 자들은 지나치게 높인 잘못이 있을 뿐이지만 그들을 공격하는 자들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두 신하의 높은 도덕(道德)과 순수한 학문은 현재 종사(從祀)하고 있는 여러 현인들에 비교해 볼 때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데이겠습니까. 전하께서 옛 현인을 본받는 정성이 없으신 것은 아니나, 성전(盛典)을 가벼이 거행하실 수 없다고 하신 것은 시론(時論)이 한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염려하시어 즉시 준허하지 않으신 것으로, 그 의도한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답(批答)한 글 가운데 뚜렷이 싫어하는 빛을 보이시어 선비들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고 사문(斯文)으로 하여금 낙심하게 만들었으니, 이와 같이 하고도 한 시대의 선비들로 하여금 의지할 곳이 있게 하고 추향을 바르게 하기를 바라기란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평정한 마음으로 이치를 살피어 시비를 변별(辨別)하시고 유술(儒術)을 높이시어 교화를 돈독히 실행하시어, 사습이 저절로 바르게 되고 원기가 저절로 왕성하게 하소서. 그러면 인재가 배출되고 국가의 운명이 문명(文明)으로 나아가 시사를 구제할 수 있고 천재를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부릴 사람이 없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백성이야말로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습니다. 대개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신명하며, 가까이 해야 하고 하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백성입니다. ‘나를 잘 무마해 주면 임금이요, 나를 학대하면 원수이다.’ 하니, 그 사이가 터럭도 용납할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것이니, 가히 두렵지 않겠습니까.

신 등이 삼가 살펴보니, 요즈음 강역(疆域)의 일이 많아서 부역(賦役)이 번거롭고 무거우며, 오랑캐에게 준 물건과 가도에 주는 양식 때문에 백성들이 명령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제사(諸司)에서 흥판(興販)하면서 자잘한 것까지 걷어내며, 경비에 속하지 않는 것까지도 백성에게 받아내 살을 벗기고 뼈를 추리는 것이 한량이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목민하는 관리가 적임자가 아니라서 백성의 고통은 돌아보지 않고 교묘하게 명목을 만들어 내어 멋대로 긁어모으며, 버젓이 뇌물을 써서 상관의 기쁨을 사고 별도로 군수(軍需)를 마련하여 상을 받고자 획책하고 있습니다. 또 조정에서 지방관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도 그 바른 방도를 잃어, 각박하게 세금을 걷는 자는 마음을 다한다고 하고 자상하게 백성을 대하는 자는 명예를 추구한다고 하여 국사(國事)와 민사(民事)가 갈라져 둘이 되었습니다. 민생의 고통이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애통함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민생이 보존되지 못함을 생각하시고 함께 다스릴 어진 인재를 생각하시어, 자상하고 개결한 자를 골라 등용하시고 각박하고 탐오한 자를 제거하소서. 또 시종(侍從)하는 신하들도 번갈아 파견하여 잔폐한 고을을 회생시키고 개혁하는 책임을 맡도록 하시고, 암행 어사를 자주 보내 민간을 드나들면서 장오(贓汚)를 범하는 관리를 살펴 무거운 벌로써 다스리소서. 그러면 탐관 오리들은 징계되어 두려워하는 바가 있게 되고 백성들의 근심과 고통은 소생되고 쉬는 바가 있게 되어, 시사를 구제할 수 있고 천재를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변방의 극심한 근심은 오늘날보다 더한 때는 없고 군정(軍政)이 무너짐도 오늘날보다 더 심한 때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일이 없다면 국가의 복이지만, 혹시라도 급한 경보(警報)가 있게 되면, 장량(張良)·진평(陳平)의 지혜나 한신(韓信)·팽월(彭越)과 같은 재주가 있더라도 손을 쓸 곳이 없을 것이니, 어찌 크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군정을 닦음은 장수를 선발하는 데 달렸고, 군정의 근본은 인화에 달려 있습니다. 인심이 화목하지 않으면 여러 사람들의 뜻이 미덥지 않으므로 백만의 병사가 있더라도 우리가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하였고, 오자(吳子)는 말하기를 ‘나라가 화목하지 못하면 군대를 출동시킬 수가 없고, 군대가 화목하지 못하면 승리를 성취할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옛날에 나라의 병사를 견고하게 한 자들은 역시 인화를 근본으로 하지 않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스러운 혜택과 성스러운 교화가 아직 가로 막혀, 농촌과 민간에는 근심하고 원망하며 고통받는 소리가 많고 사민(士民)들은 충신(忠信)과 예양(禮讓)의 기풍이 없으니, 실로 이미 군정의 근본을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장수는 막걸리를 시냇물에 풀어 은혜를 베푼 자041) 도 있었고 등창을 빨아 준 은혜를 베푼 자042) 도 있어서, 사졸(士卒)들을 마치 자제(子弟)처럼 아끼고 수족처럼 보았기 때문에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고 싸우면 반드시 이겼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크게는 곤수(閫帥)에서 작게는 변장(邊將)에 이르기까지 세력으로 지위를 얻기도 하고 뇌물로 지위를 얻기도 하여, 국방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오직 사졸들을 침탈하는 것만을 양책(良策)으로 여깁니다. 이에 더러는 방역(防役)을 면제해 주고 베를 받기도 하고 군졸을 풀어 장사를 시키기도 하며, 감당하기 어려운 부역을 독촉하고 마련하기 어려운 물품을 책임지워,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보존하지 못해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면 그 이웃이나 일족에게까지 침탈을 해서 장차 백성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니,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심복시켜 죽을 힘을 다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선왕의 정사를 시행하여 어루만지고 구휼하는 도리를 다하시고, 곤수의 적임자를 골라서 맡겨 방비 계획을 극진히 하도록 하시며, 피폐한 군정을 개혁하고 법제를 엄격히 확립하여 비록 한 자의 베나 한 말의 곡식이라도 반드시 군졸들에게 거두지 않도록 하시며, 단지 군기(軍器)를 정밀하게 단련하고 기예(技藝)를 가르쳐 익히게 하소서. 그러면 여러 사람의 마음이 어우러져 군사들도 기뻐할 것이며 변방도 튼튼해지고 국세(國勢)도 강성해질 것이니, 따라서 시사를 구제할 수 있고 천재를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지금 이 재이가 생겨난 것은 어떤 일에 대한 감응인지 알 수 없으나, 대개 아래에서 정사를 잘못하면 하늘에서 그 꾸지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앞에 든 몇 조목의 폐단은 얼기설기 뒤엉켜 서로 이어지고 이리저리 굴러서 함께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도에 어긋난 징험이요 패망의 조짐이니, 보고 들으심을 우리 백성들을 통해서 하시는 하늘이 그 어찌 재이로써 경고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늘과 사람은 한 이치라 상하가 틈이 없는 것입니다. 6사(六事)로 자책하자 큰비가 내렸고,043) 한마디 말로써 화성을 물러가게 했으니,044) 하늘과 사람 사이에 옮겨가는 기미는 그림자나 메아리보다 더 빠른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지금부터 척연하게 두려워하시고 두려운 듯이 수성하셔서, 모든 동작과 행위가 반드시 천도에 합치되기를 힘써 추구하소서. 하늘의 마음은 지극히 인자하시니 전하께서도 역시 인(仁)으로 그것을 체득하시고, 하늘의 이치는 지극히 공정하시니 전하께서도 역시 공정함으로 그것을 체득하시며, 하늘의 도는 지극히 정성스러우니 전하께서도 역시 정성으로 그것을 체득하시고, 하늘의 운행은 지극히 굳세니 전하께서도 역시 굳셈으로 그것을 체득하소서. 전하의 덕이 하늘과 더불어 그 큼을 같이 하신다면, 중화 위육(中和位育)의 공이 이에 극진하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성지(聖志)를 확립하셔서 성학(聖學)으로 나아가고, 이로써 퇴폐한 기강을 떨쳐서 검소한 덕을 밝히시며, 이로써 대신을 공경하여 일상의 말을 자세히 살피고, 이로써 벼슬길을 맑게 하여 선비들의 습속을 바르게 하며, 이로써 백성의 고통을 구휼하여 군정(軍政)을 닦으며, 고르고 가지런하고 방정히 하여 치세(治世)와 도(道)를 함께 하신다면, 하늘의 위엄과 노여움이 변하여 돌봄과 사랑이 될 것이며, 백성의 근심과 탄식은 변화하여 성덕(聖德)을 구가하게 될 것이니, 국가의 억만 년 기업(基業)이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 중에 진달한 바가 지론이 아닌 것이 없으니, 마땅히 조심스럽게 생각하여 채택해 쓰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06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 [註 034]
    삼척(三尺)의 법 : 예전에는 3척의 죽간(竹簡)에 법률을 기록하였다. 《사기(史記)》 혹리열전(酷吏列傳) 사주전(社周傳).
  • [註 035]
    대포(大布)·대련(大練)의 검소한 미덕 : 대포의 미덕이란 군주가 솔선하여 검소한 옷을 입는 것을 말함. 위 문공(衛文公)이 적(狄)에게 망한 위나라를 부흥시키고자 굵은 베로 만든 옷을 입고 솔선하여 검소함을 보여 위를 부흥시켰다. 《좌전(左傳)》 민공(閔公) 2년. 또 후한 명제(明帝)는 검소함을 보여주기 위해 대련(大練)을 매었다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후한 명제(後漢明帝) 영평(永平) 3년.
  • [註 036]
    고계 광수(高髻廣袖) : 머리를 높이 꼬아 올리고 소매를 넓게 하는 사치스러운 풍속. 백거이(白居易)의 진사 책문(進士策問)에 "광수 고계의 노래가 들리면 그 풍속이 사치하고 방탕함을 알 수 있다." 하였다.
  • [註 037]
    진선(進善)의 깃발 : 좋은 일이나 계책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알리도록 지정한 깃발로 요(堯) 시대에 있었다 한다. 《사기(史記)》 문제기(文帝記).
  • [註 038]
    비방(誹謗)의 나무 : 백성들이 정치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도록 만든 나무로, 요 시대에 교량 옆에 세웠다 한다. 《회남자(淮南子)》 주위훈(主衛訓).
  • [註 039]
    양전(兩銓) : 이조와 병조.
  • [註 040]
    양신(兩臣) : 이이(李珥)와 성혼(成渾).
  • [註 041]
    막걸리를 시냇물에 풀어 은혜를 베푼 자 : 예전에 어떤 양장(良將)은 한 통의 술을 냇물에 부어 모든 군사들이 마시게 함으로써 은혜를 베풀고 군심(軍心)을 얻었다 한다.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선주전 주(先主傳注).
  • [註 042]
    등창을 빨아 준 은혜를 베푼 자 : 전국 시대 위(衛)의 오기(吳起)가 부하 병졸의 등창을 빨아 주었다 한다. 《사기(史記)》 오기열전(吳起列傳).
  • [註 043]
    6사(六事)로 자책하자 큰비가 내렸고, : 탕(湯) 임금 때 7년간 큰 가뭄이 들자, 스스로 여섯 가지 일을 들어 자책하니, 하늘에서 곧 큰비를 내렸다 한다. 《설원(說苑)》 군도(君道).
  • [註 044]
    한마디 말로써 화성을 물러가게 했으니, : 《사략(史略)》 권1에 "화성이 송나라 분야인 심성(心星)을 침범하자, 경공이 우려했다. 천관(天官)인 자위(子韋)가 ‘이 책임을 재상에게 돌립시다.’ 하니, 경공이 ‘재상은 나의 팔 다리나 마찬가지다.’ 하였으며, 자위가 ‘그러면 이 책임을 백성에세 돌립시다.’ 하니, 경공이 ‘백성이 있어야 임금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였으며, 자위가 ‘그러면 이 책임을 해[歲]에다 돌립시다.’ 하니, 경공이 ‘흉년이 들고 백성이 곤궁하면 나는 누구를 데리고 임금 노릇을 하겠는가.’ 하였다. 이에 자위가 ‘하늘이 높지만 낮은 곳의 소리도 듣습니다. 임금께서 임금다운 말씀을 세 번 하였으니 화성이 움직일 것입니다.’ 하였는데, 그 뒤에 과연 1도를 옮겨갔다."고 하였다.

○庚辰/副應敎沈之源、校理金慶餘、副校理朴遾、修撰金益熙等上箚曰:

臣等伏覩, 殿下自卽祚以來, 嚴恭寅畏, 罔敢荒寧, 馨香之德, 可享天心, 而禎祥不至, 妖孽反興。 水旱極備, 星宿失躔, 淫虹貫陽, 迅雷擊殿, 至於川斷、池赤之災, 陵頹地震之變, 式月斯生, 史不絶書。 仁愛之天, 所以譴告我殿下者, 昭昭可見, 而殿下猶不惕然戒懼, 以盡應天之實, 故天又以大風威之, 走石拔屋, 偃禾損穀, 至於宗廟社稷之內, 百年喬木, 亦多摧折, 見聞愁慘, 中外憂懼。 宜殿下之大警厥心, 哀痛悔悟, 引咎自責之不暇, 而側聽逾月, 寥寂無聞。 豈殿下以爲, 聖德無闕, 政敎無失, 疆域無虞, 天變之適然者, 不足深畏而然耶? 嗚呼! 聖志不立, 而萬事叢脞; 聖學不進, 而本源未澄; 紀綱解弛, 而人不畏法; 侈風日盛, 而害甚水火; 輕視大臣, 而禮貌漸薄; 厭聞直言, 而聰明壅蔽; 仕路混濁, 而公道不行; 士習偸薄, 而趨向不正; 民生愁歎, 而邦本蹶矣; 軍政廢壞, 而邊圉虛矣。 當此之時, 雖慶雲、景星、甘露、醴泉之瑞, 日興而月奏, 亦無救於亂亡。 況此非常之災、可愕之變, 疊見而層出者乎? 臣等不知殿下, 何恃於此, 而不畏上天之譴告, 至於此極耶? 臣等伏見殿下, 仁足以保民, 明足以辨奸, 武足以斷制, 而惟是作聖之志不立, 求治之誠未篤, 故姑息是務, 而或忽於經遠; 細事是察, 而或遺其大綱, 悠悠泛泛, 以至今日而甚焉, 豈不惜哉? 苟能修己有實功, 安民有實心, 則可以求賢而共治, 可以革弊而救時, 、三代之治, 庶復見於千載之下矣。 程子嘗曰: "爲國而至於祈天永命, 養形而至於長年, 學問而至於聖人, 此三事, 分明人力可以勝造化, 自是人不爲耳。" 信乎斯言! 未聞有實用其功, 不見實效者也。 伏願殿下, 奮發大志, 期興至治, 以爲心, 而勿爲以下模樣, 就其如者, 而去其不如者, 則時事庶可救, 而天災庶可弭矣。 嗚呼! 大志雖立, 而必有學問之實然後, 表裏相資, 而無負乎志矣。 蓋帝王之學, 雖與韋布有異, 經綸之業, 固與章句不同, 而然其本末之序, 竊以爲無二道也。 夫內而窮在身之理, 外而窮在物之理, 以至賢愚、邪正之當辨, 是非、得失之當審者, 莫非學也。 靜時不起雜念, 而湛然虛寂; 動時專一不二, 而無少過差, 持身必整齊嚴肅, 秉心必恐懼戒愼者, 莫非學也。 氣質之病, 克己以治, 柔者矯以强, 懦者矯以立, 厲者濟以和, 急者濟以寬, 多欲則澄之, 以至於淸淨; 多私則正之, 以至於大公, 乾乾自勖, 日夕不懈者, 亦莫非學也。 臣等伏見殿下, 淸明在躬, 物欲固寡, 其於學問之道, 非不留意, 而以其見於政事者言之, 喜怒之發, 多不中節; 好惡之僻, 或失其正, 至於辭氣之間, 常多忿懥之失; 施措之際, 亦有好勝之病, 此豈非涵養本源之功, 有所未至而然也? 伏願殿下, 操存省察, 無或少怠, 擴天理之未發, 遏人欲於將萌, 喜怒必節, 好惡必正, 辭氣必順, 施措必當, 而亦須頻接賢士大夫, 和顔降氣, 講論義理, 以至政疵民瘼, 莫不咨訪, 則聖德之修, 日造罔覺, 大本旣立, 何事不濟? 成己成物, 亶在於是, 參贊化育, 亦在於是, 時事庶可救, 而天災庶可弭矣。 夫國家之所以維持者, 紀綱也, 而紀綱之所以立者, 惟在人君。 以大公至正之心, 照臨於上, 黜陟刑賞, 一付公議, 擧直措枉, 罔干私意而已。 人主之心, 苟不能盡其公正, 有一毫偏係之私, 則奸邪諂侫, 姻婭、嬖幸之徒, 莫不窺覘形勢, 眩惑聰明, 雖有忠正之論, 無自而入, 士氣沮喪, 公道閉塞, 紀綱由是而壞焉, 可不懼哉? 臣等伏見, 殿下聰明睿知, 卓冠百王, 而偏私一念, 或未盡袪, 故事關宮家, 曲加庇護; 言及勳戚, 曾不聽從, 此豈大聖人兼臨博愛, 無黨無偏之道乎? 嗚呼! 源之不淸, 流不能潔; 表之不端, 影不能直, 故朝廷之上, 公道不振; 搢紳之間, 私欲橫流, 關節盛行, 請託爭先, 有罪者圖免, 無功者濫賞。 至於第宅, 不可踰法, 而或有結構連雲, 極其宏麗者; 田園不可過制, 而或有冒受廣占, 盡其膏腴者; 山林川澤, 與民共者, 而皆稱折受, 獨專其利; 褊裨帶率, 本爲扈衛, 而推奴、護庄, 惟其使令。 其他鷹犬、聲色, 恣行無忌之狀, 國言藉藉, 有難盡擧。 未知殿下, 以今日之紀綱, 爲何如耶? 紀綱之不振, 至於如此, 則國家之不亡者, 僅一髮耳, 豈不寒心? 伏願殿下, 秉心以公, 臨下以正, 私意所萌, 一切克去, 非分之寵, 罔及於私昵; 三尺之法, 不饒於貴近, 使大小臣工, 罔敢不一於公; 內外遠近, 罔敢不一於正, 則百度惟貞, 庶績咸熙, 時事庶可救, 而天災庶可弭矣。

古人有言曰: "儉者德之恭, 奢者德之賊。" 夫人君淸心恭己, 務自儉約, 則嗜欲薄, 而思慮靜, 內有淸純之樂, 外無戕賊之累, 可以養性、養德, 而自然澤及於物, 此豈非人主之所當勉者乎? 然而自古人君, 善始者常多, 而愼終者常少, 蓋以處崇高之位, 極富貴之奉, 自非有修齊誠正之功, 鮮不流於奢縱, 可不懼哉? 臣等伏見殿下, 卽位之初, 躬行節儉, 不事華靡, 翫好之物, 服御之美, 凡所以蠱心、害德者, 悉皆屛去而揮斥, 凡在瞻聆, 莫不欽仰。 近年以來, 漸不如初, 燈夕遊宴之擧, 後苑池臺之營, 傳播閭巷, 喧騰萬口, 臣等未知此言, 奚爲而至哉? 如其傳者之妄也, 固無損於聖德矣, 若有一分近似之跡, 則豈不爲聖德之累, 而缺群下之望哉? 伏願殿下, 有則改之, 無則加勉, 勿以無益之作, 開其逸豫之漸, 不惟自飭聖躬, 亦宜申戒宮中, 使大布、大練, 不爲專美於前代; 高髻、廣袖, 無或慕效於今日, 則上好下甚, 風行草偃, 侈風自革, 罔蹈非彝, 時事庶可救, 而天災庶可弭矣。 夫大臣之職, 百責所萃, 震撼擊撞, 欲其鎭定; 辛甘燥濕, 欲其調劑; 盤錯棼結, 欲其解紓; 黯闇汚濁, 欲其茹納。 責任之重如是, 故其任之也, 不可不專; 其待之也, 不可不禮。 《中庸》曰: "敬大臣則不眩。" 此豈非後世之所當法者耶? 臣等伏見殿下, 於進退大臣之際, 或未能盡其禮焉。 在職之時, 旣無倚任之誠; 去位之日, 亦無顧惜之意。 金瑬三辭而遞, 金尙容七辭而遞, 此雖出於悶其勞悴, 欲使將息, 而群情疑訝, 咸以爲忤旨之致。 聖人大度, 雖非小人之腹所可料度, 其於禮遇之道, 實有所未安者矣。 伏願殿下, 圖任老成, 致其禮敬, 使之竭力盡心, 展布所蘊, 以至上下交孚, 都兪吁咈, 則腹心有所託, 安危有所繫, 體統重而朝廷尊, 庶事康而治道成, 時事庶可救, 而天災庶可弭矣。 古之治天下者, 朝有進善之旌、誹謗之木, 其所以通治道, 而來諫諍者, 顧不大歟? 蓋一人之聰明有限, 萬機之事務無窮, 故雖聖智之君, 莫不廣延衆論, 博採群言, 參同異、察可否, 擇其中而用之。 苟或輕視群下, 傲然自聖, 謂人之聰, 莫己若也; 謂人之明, 莫己若也, 則是猶塗塞耳目, 而求其聰明也。 如是而不至於亂亡者鮮矣。 臣等伏覩殿下, 聽言之道, 久而益怠, 尋常論劾, 亦不兪允, 少有違忤, 遽加摧折。 或疑其過激, 或疑其好黨, 或疑其沽名, 訑訑之色, 拒人於千里之外, 係着之病, 太露於言辭之間。 姑以近日之事言之, 則兪伯曾, 賦性戇直, 語雖失中, 顧其心則無他, 實出於愛君、憂國之誠, 而殿下不能容焉。 羅萬甲, 措語太樸, 不無過當處, 而至於宮闈不嚴之說, 乃閭巷間所相傳者, 他人不言, 而特萬甲極言之耳。 君臣, 猶父子也。 凡有所聞, 無論虛實, 畢陳於君父之前者, 乃臣子無隱之義也。 伏聞頃日筵中, 至下未安之敎, 此豈群下之所望於殿下者哉? 伏願殿下, 痛悟昨非, 大開言路, 合衆聽以爲聰, 合衆視以爲明, 有言逆于心, 必求諸道; 有言遜于志, 必求諸非道, 唯其言之是也, 則不但容而受之, 又從而賞之。 設令其言狂妄, 不適於用, 亦必優容, 不以罪罰加之, 則嘉言罔伏, 群策畢擧, 時事庶可救, 而天災庶可弭矣。 國家治亂, 係於仕路之淸濁, 而仕路之淸濁, 係於公道之行與不行耳。 公道行則內而百僚, 外而州縣, 皆得其人; 公道不行則內而百僚, 外而州縣, 皆不得其人, 有國之君, 可不以恢張公道, 爲先務乎? 目今兩銓之用人, 未必一出於公。 或以請託而得之, 或以奔競而得之, 倖門大開, 官方淆亂。 至於羅德憲李廓之貪贓見敗者, 李一元文希聖李民寏之降俘見棄者, 尙齒衣冠之列, 或授以閫帥、字牧之任, 市井之徒, 賤孽之類, 別無卓異可用之才者, 亦通東西班正職, 或陞金玉之秩。 仕路混濁, 未有甚於此時, 識者之寒心久矣。 伏願殿下, 申命該曹, 罔或循私, 必以公正, 明黜陟之法, 嚴薦擧之規, 使賢者在位, 能者在職, 而貪贓之輩, 永不收敍, 闒茸之徒, 亦令澄汰, 則仕路淸而名器重, 職事擧而績用成, 時事庶可救, 而天災庶可弭矣。 夫士習者, 國家之元氣也。 士習正則元氣壯, 士習偸則元氣衰。 自古有天下國家者, 莫不表異儒賢, 尊崇道德。 于以正士習, 而壯元氣者, 非偶爾也。 其在我朝, 列聖右文, 治敎休明, 重熙累洽之化, 至於宣祖大王而盛矣。 當此之時, 人皆濯磨, 士皆砥礪, 以通經、學古爲能, 以隆師、親友爲職, 故出而仕於朝, 皆彬彬可觀, 蔚然有以寧之美。 近年以來, 敎化陵夷, 義理晦塞, 人不向善, 士不志學, 放僻偏詖之習, 日甚一日。 姑就頃者館學儒生之事言之, 不度今日之時勢, 而遽發莫重之論者, 固未免率爾, 而乃其心, 不過急於尊賢, 而欠於商量耳。 惟彼若干士子之議論不同者, 亦豈有實見得哉, 角立投疏, 必欲排擊而後已。 士習至此, 良可寒心。

設令兩臣所造, 或有可議, 尊之者猶失於厚矣, 攻之者無乃太甚乎? 況兩臣道德之高, 學問之醇, 其視從祀諸賢, 少無可愧者乎? 殿下非無象賢之誠, 而謂盛典之不可輕擧, 慮時論之或未歸一, 不卽準許, 意有所在, 而第於批辭之中, 顯示厭惡之色, 使多士失望, 斯文落莫。 如是而欲望一世之士, 有依歸之地, 得趨向之正, 不亦難乎? 伏願殿下, 平心察理, 辨別是非, 尊尙儒術, 敦行敎化, 使士習自正, 而元氣自壯, 則人才輩出, 邦運文明, 時事庶可救, 而天災庶可弭矣。 《書》曰: "后, 非民罔使。" 又曰: "民惟邦本, 本固邦寧。" 蓋至愚而神, 可近而不可下者, 民也。 撫我則后, 虐我則讐, 其間不能容髮, 可不懼哉? 臣等伏見近日, 疆域多事, 賦役煩重, 虜幣島糧, 民不堪命, 而諸司興販, 科斂錙銖, 不領於經費者, 亦出於民, 剝膚推髓, 罔有紀極。 加以字牧非人, 不恤民隱, 巧作名目, 恣意箕斂。 公行賄賂, 以爲取悅之地; 別備軍需, 以爲希賞之計。 朝家責任, 亦失其方, 刻薄者謂之盡心, 慈祥者謂之要譽, 國事、民事, 岐而爲二。 民生之困悴, 未必不由於此, 可勝痛哉? 伏願殿下, 念民生之不保, 思共理之惟良, 擇慈祥愷悌者而用之, 黜刻薄貪婪者而去之。 侍從之臣, 亦令交差, 俾任蘇殘革弊之責, 而頻遣暗行, 出入民間, 按驗贓汚, 繩以重律, 則貪官汚吏, 有所懲懼, 黎元愁痛, 會見蘇息, 時事庶可救, 而天災庶可弭矣。 邊虞之孔棘, 莫甚於今日, 軍政之廢壞, 亦莫甚於今日。 幸而無事, 則國家之福也, 脫有警急, 則雖之智, 之才, 亦無下手處, 豈非大可寒心者哉? 軍政之修, 在於選將, 而軍政之本, 在於人和。 人心不和, 則衆志不信, 縱有百萬之兵, 亦不爲我用矣。 孟子曰: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吳子曰: "不和於國, 不可以出軍; 不和於軍, 不可以決勝。" 然則古之固國兵者, 亦莫不以和爲其本也。 今者聖澤尙壅, 聖化尙阻, 村巷多愁苦、怨痛之聲, 士民無忠信、禮讓之風, 固已失軍政之本矣。 古之爲將者, 有投醪之惠, 有吮疽之恩, 愛士卒如子弟, 視士卒如手足, 故攻則必取, 戰則必勝。 今則不然, 大而閫帥, 小而邊將, 或以勢力而得之, 或以貨賂而得之, 不知備禦之爲何事, 唯以侵漁爲良策。 或除防而徵布, 或放軍而貿販, 督之以難堪之役, 責之以難辦之需, 使不能自保, 散而之四方, 侵及隣族, 將至於民無孑遺, 尙何望能服其心, 而得其死力也哉? 伏願殿下, 行先王之政, 而盡撫恤之道; 擇閫帥之任, 而盡規畫之方, 革去弊政, 嚴立法制, 雖尺布、斗粟之微, 必使不得收捧於軍卒, 只令精鍊器械, 敎習技藝, 則衆心和而軍情悅, 邊圉固而國勢强, 時事庶可救, 而天災庶可弭矣。 嗚呼! 今此災異之作, 未知爲某事之應, 而大抵皆政失於下, 謫見於上耳。 玆前數者之弊, 纏繞相仍, 轉輾齊發, 皆是失道之徵, 敗亡之兆, 則視聽自我之天其不以災異, 而警告之乎? 然而天、人一理, 上下無間。 六責而致大雨, 一言而退熒惑, 轉移之機, 捷於影響。 伏願殿下, 繼自今, 惕然恐懼, 瞿然修省, 凡有動作施爲, 必求務合於天。 天之心至仁, 殿下亦以仁體之; 天之理至公, 殿下亦以公體之; 天之道至誠, 殿下亦以誠體之; 天之運至健, 殿下亦以健體之。 殿下之德, 旣與天同其大, 則中和、位育之功, 於是乎盡矣。 以之立聖志, 而進聖學; 以之振頹綱, 而昭儉德; 以之敬大臣, 而察邇言; 以淸仕路, 而正士習; 以恤民隱, 而修軍政, 均齊方正, 與治同道, 則天之威怒者, 變而爲眷愛; 民之愁歎者, 化而爲謳歌, 國家億萬斯年之業, 其在玆矣。

答曰: "箚中所陳, 無非至論, 當惕念而採用焉。"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06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