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무열사의 화상을 보수하다
장신(張紳)이 치계하기를,
"평양의 무열사(武烈祠)는 바로 임진년에 동정(東征)한 중국 장수 5명을 제사지내는 곳입니다. 정묘년 변란에 사당은 아무 탈이 없었으나 다섯 장수의 화상(畫像) 중에 상서(尙書) 석성(石星)의 화상만 그대로 남아 있을 뿐, 이여백(李汝栢)의 화상은 허리 윗부분만 남아 있고 그밖의 세 장수의 화상은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조만간에 조사가 나올 것이고 지금도 중국 장수들이 왕래하는 자가 많은데 그들이 보고 매몰스럽게 여길 듯싶습니다. 해조로 하여금 참작하여 처치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예조가 아뢰기를,
"석 상서는 본 화상 그대로 두고 이여백의 화상은 다시 그리든지 아니면 수보(修補)하는 것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리고 세 장수는 어쩔 수 없이 위판(位版)을 설치해야 하니, 관작과 성명은 임진년에 접반관(接伴官)이었던 현재의 노재신(老宰臣)과 본지방의 노인들에게 물어서 쓰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544면
- 【분류】사상-유학(儒學) / 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
○丙子/張紳馳啓曰: "平壤 武烈祠, 卽壬辰東征時, 天將五員享祀之所也。 丁卯之變, 祠宇則無恙, 而五將畫像中, 獨石尙書畫像依舊, 李如栢畫像只存腰上, 其餘三將畫像, 不知落在何處。 早晩詔使出來, 卽今唐將亦多有往來者, 恐致所見埋沒。 請令該曹, 參酌處置。" 禮曹啓曰: "石尙書則以本像薦享, 李如栢則或改畫、修補無妨, 其他三將, 則不得已造設位板。 官爵姓名, 則訪問於壬辰接伴時, 老宰臣及本地老人處, 以書之似當。"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5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54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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