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 판서 조익이 인재 등용에 대해 아뢰다
예조 판서 조익(趙翼)이 상차하기를,
"신은 듣건대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인재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비록 요·순 같은 성인도 지치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많은 현재가 반열에 있었기 때문일 뿐입니다.
옛날에는 선비를 교육시키는 법이 매우 갖추어져서 천하의 선비들로 하여금 모두 학교에 나아가 배우게 하였는데, 거기에서 가르치는 것은 육덕(六德)·육행(六行)·육례(六禮)와 궁리(窮理)·정심(正心)·수기(修己)·치인(治人)하는 도리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선비들은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배운 자들은 모두가 의리에 대해서 환히 알고 있으며, 그 의리를 실행하는 데에 돈독하였습니다. 후세에는 선왕(先王)이 인재를 교육시키던 정사를 행하지 않았지만, 옛 성현이 교육시키고 학문하던 법이 그래도 남아 있으니, 바로 사서 오경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성현의 사업에 뜻을 갖는 자들은 의당 이것을 배워 성현의 마음과 의리의 진실을 알아야 하고, 또한 반드시 자신에 돌이켜 실천의 효과를 구해야 합니다. 만일 그 문장만을 외우고 그 뜻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구하는 것이 단지 구두(口頭)일 뿐으로, 어떻게 의리에 대해서 알 수 있으며 몸소 실행하는 데에 얻는 것이 있겠습니까.
국가에서 선비를 뽑는 법에 있어서 사서 삼경으로 규정을 삼고 있어 선비로서 과거에 응시하는 자들이 모두 힘껏 외워 익히고 있으니, 이 선발에 합격한 자들은 경서의 뜻에 대해서 환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강경(講經)으로 과거에 급제한 자들을 보건대, 대부분 용렬하고 비루하여 오히려 사장(詞章)으로 급제한 자들보다 못하니,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과거 보일 때 강경하는 데 있어서 배강(背講)하는 것으로 규칙을 삼고 있는데, 외우는 자들이 한 자라도 잘못 외우거나 토와 해석이 현재의 인본(印本)과 틀리는 것이 있으면 모두 낙제시킵니다. 대체로 글이란 뜻이 중요한 것이고 글자는 중요치 않은 것으로서, 진정 그 뜻을 환히 알고 있으면 글자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이 더러 틀리는 데가 있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힘을 다하여 익히는 자들이 단지 음(音)이나 토만을 입에 익숙하게 하려고 할 뿐이어서 항상 글자 하나, 토 한 구절이 틀리는 데가 있을까 염려하고 있으니, 그들이 어떻게 의미를 알 수 있겠습니까. 선비들이 익히고 있는 것이 이러하니 세상에 인재가 없는 것이 당연하고, 국가에서 인재를 뽑는 것이 이와 같으니 선치(善治)의 시대가 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지금 경술(經術)이 흥행되고 인재가 많이 나오게 하려면 이러한 과거의 법을 변경하여야 합니다.
신은 삼가 생각하건대, 대소과(大小科)의 시험에는 모두 강경하게 하고 정시(庭試)와 알성시(謁聖試) 및 불시에 약간 명을 뽑는 경우에는 간혹 강경을 제외하며, 그 밖의 별시(別試)·증광시(增廣試) 같은 것은 모두 강경을 두고, 강하는 서책은 모두 임강(臨講)하되, 오로지 읽는 데에 서툴고 익숙한 것을 살피고 그 뜻의 소재를 물어보아 익숙하게 읽고 뜻을 환히 통한 자들을 뽑고, 토와 해석에 있어서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인본(印本)과 틀리는 것이 더러 있더라도 문리(文理)만 통하면 모두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처럼 하면 선비들이 모두가 경학(經學)으로 선비가 되고 경학을 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 뜻을 알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후대의 서책으로는 《근사록(近思錄)》만이 가장 순수하고 바른 것으로서 초학자들로 하여금 학문의 방향을 알게 하는 것이 이 책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사서 삼경 이외에 이 책을 추가해서 시험보이는 것이 좋다고 여겨집니다. 신은 전에도 우리 나라 인재들이 배강하는 법에 얽매여 경전의 뜻에 대해서 연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고, 성현의 학문이 세상에 밝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탄식하며, 늘 변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관(禮官)의 자리에 있게 되었으므로 감히 어리석은 소견을 진달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잘 알았다. 차자로 진달한 일은 대신들과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하였다. 대신이 아뢰기를,
"국조(國朝)에서 배강하는 법을 설치한 것이 그 유래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서를 환히 알고 행실을 수련한 선비들도 대부분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법을 설치한 본의가 어찌 구두만을 외우고 문장의 뜻을 모르게 하려는 것이겠습니까. 지금 조익이 그 폐단을 바로잡으려 하여 임강(臨講)하는 법을 시행하기를 청했는데, 그가 선비를 조성하는 방도에 있어 그 요점을 깊이 알고 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임강하는 데 있어서는 정해진 법이 없고 또 정해진 형식도 없습니다. 더구나 말세에는 사사로움이 우세하고 말이 많은데, 유사들이 멋대로 생(栍)을 높이거나 낮추어서 자기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따라서 뽑는다면, 그 폐단을 바로잡으려던 것이 다만 훗날의 끝없는 폐단을 열어놓게 될 뿐입니다. 그리고 사서 삼경을 시험보이는 것도 과다하다고 염려되는데, 《근사록》을 추가해서 시험보이는 것은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배강하는 규례를 그대로 두고 문장의 뜻을 환히 통한 자들을 뽑는다면 오늘날의 폐단을 구제할 수 있고 선왕(先王)의 법에 위배되지 않을 듯싶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543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庚戌/禮曹判書趙翼上箚曰:
臣聞爲治之道, 得人爲要。 雖堯、舜之聖, 其所以致至治, 則惟在衆賢之布列而已。 古者敎士之法甚備, 使天下之士, 皆就學於學校, 而其所爲敎, 則曰六德、六行、六藝, 曰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也。 故當時之士, 無不學, 而其學焉者, 無不明於義理, 篤於行義。 後世, 先王敎人之政, 雖不行, 而古之聖賢爲敎、爲學之法, 猶有存焉, 卽四書、五經是也。 其有志於聖賢之事業者, 當由是而求之, 以見夫聖賢之心、義理之實, 又必反之於身, 以求實踐之效。 若徒誦其言, 而不思其義, 則是其所求者, 只是口讀而已, 其何能有得於義理, 有得於躬行哉? 國家取士之法, 以四書、三經爲程式, 士之應擧者, 無不竭力誦習, 宜其中是選者, 通知經義, 而然見世之以講經登第者, 率多庸陋, 反不如以詞章得之者, 何者? 科擧講經, 以背講爲規, 其誦者, 有一字之差, 與吐釋或有違於當時印本, 則皆落之。 夫《書》, 意義爲精, 文字爲粗, 苟通其意義, 則文字所記, 雖或有差誤, 不爲害也。 今則不然, 其所竭力而習之者, 只求音、吐之熟於口而已, 常恐一字、一吐之有差, 其何能及於意味乎? 士之所習如此, 宜世之無人才也; 國之取才如是, 宜世之難善治也。 今欲使經術興行, 而人才多出, 惟在變此科擧之法。 臣竊以爲, 大小科試, 無不爲講經, 惟庭試、謁聖, 不時少取者, 容或除講經, 而其餘別試、增廣之類, 皆有講經, 所講之書, 皆臨講, 惟觀其讀之之生熟, 問其意義之所在, 取其讀之熟, 而意義通者, 吐、釋雖或有違於時用印本, 苟通於文理, 則皆不斥也。 如是則爲士者, 必皆以經學爲士, 而其爲經者, 必求其意義矣。 且後世之書, 惟《近思錄》最爲純正, 使初學, 知爲學向方者, 莫切於此書。 臣竊以爲, 四書、三經之外, 又宜加試此書也。 臣嘗竊歎, 我國人才, 爲背講之法所錮, 不得究心於經傳之旨, 而聖賢之學, 不明於世, 常欲有所變通。 今適忝竊禮官, 敢陳愚見。
答曰: "省箚具悉。 箚陳之事, 當與大臣議處焉。" 大臣以爲: "國朝之設背講, 其來蓋久。 經明行修之士, 亦多由是而出, 則設法本意, 夫豈欲誦口讀, 而遺文義哉? 今者趙翼, 欲矯其弊, 請行臨講之法, 其爲造士之方, 可謂深得其要。 但臨講旣無定式, 又無定形。 況末世, 私勝而言多, 爲有司者, 若或高下其栍, 以其好惡而取之, 則所以欲矯其弊者, 適足以啓日後無窮之弊也。 且四書、三經, 亦慮其過多, 則《近思錄》似難加試。 臣意以爲, 仍存背講之規, 而取其能通意義者, 則猶可以救今日之弊, 而恐不背於先王之法也。"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543면
- 【분류】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