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인조실록 28권, 인조 11년 10월 15일 갑술 2번째기사 1633년 명 숭정(崇禎) 6년

서얼의 관직 진출과 서북민의 등용에 대해 논하다

이조가 아뢰기를,

"을축년에 이원익(李元翼)이 정승으로 있을 때 홍문관에서 올린 차자로 인하여 서얼(庶孽)에게 벼슬길을 열어 주는 사목(事目)을 의논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양첩(良妾)한테서 난 사람은 손자 대에 가서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천첩(賤妾)한테서 난 사람은 증손자 대에 가서야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요직(要職)은 허락하되 청직(淸職)은 허락하지 않기로 정한 뒤에, 이를 품의하여 성지(聖旨)의 재가를 받고 양사가 서경(署經)하여 예조에다 간직해 두었으므로 이미 한 세대의 성법(成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9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시행하지 않아 강론하여 정한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말았으니 몹시 미안한 일입니다. 삼가 보건대, 서얼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으레 제수하는 관직은 봉상시나 교서관의 3∼4 자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있더라도 능력을 발휘할 데가 없으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사목 내에서 이른바 ‘요직은 허락한다.’는 것은 바로 호조·형조·공조의 3낭관과 각사(各司) 등의 관직입니다. 지금부터는 수교(受敎)대로 각자의 재능에 따라 의망(擬望)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또 아뢰기를,

"하늘이 인재를 내는 데 있어서 문벌에 관계가 없는데 또 지방에 따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조종조에서는 서북 사람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재능과 품행이 있으면 대각(臺閣)을 두루 역임케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1백여 년 전에 문형(文衡)을 맡은 어떤 재상이 서쪽 지방에 사신으로 갔다가 본도의 선비들과 사이가 나빴는데, 사리에 맞지 않은 말을 지어내어 처음으로 양계(兩界) 사람들이 청현(淸顯)의 벼슬을 못하게 막았기 때문에 먼 지방 사람들이 다시금 명성을 떨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러서 성대(聖代)가 중흥하여 만화(萬化)가 다시 새로워져 한 시대의 인재가 모두 발탁되었는데도, 유독 서북인들만은 아직도 잘못된 구례(舊例)를 따라 마치 외방 사람처럼 무관하게 보고 있으니, 이는 천지와 같이 넓고 큰 성덕(聖德)에도 오히려 유감된 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들이 이조에 있으면서 이에 대해 여러 번 상의한 나머지 재능에 따라 선발하여 청망(淸望)의 추천에다 넣어 보려고 했습니다마는, 1백여 년간 폐지됐던 일을 감히 하루 아침에 개방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상께서는 재량하여 처리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계사가 매우 온당하니 이대로 거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534면
  • 【분류】
    가족-가족(家族) / 인사-선발(選拔)

○吏曹啓曰: "乙丑年間李元翼爲相時, 因玉堂箚, 議定庶孽許通事目。 良出則至孫乃許科; 賤出則至曾孫許科後, 許要、不許淸, 稟裁聖旨, 兩司署經, 藏之禮曹, 已爲一代之成法, 而今過九年, 一未擧行, 使講定之制, 歸於虛地, 事甚未安。 竊見庶孽登科後, 例授之職, 不過奉常、校書三四窠, 而雖有才能之人, 無以展布, 殊極可惜。 事目內所謂許要者, 卽戶、刑、工三曹郞官及各司等官也。 自今請依受敎, 隨才擬望。" 上從之。 又啓曰: "天之生才, 無分於門閥, 又何間於地方? 竊聞祖宗朝, 西北之人, 苟有才行, 歷敭臺閣, 而百餘年前, 有一主文宰臣, 奉使西方, 與本道士子相失, 倡爲謬論, 始塞兩界人之淸路, 故遐方之人, 遂不復振, 以至今日。 聖代中興, 萬化更新, 一時人才, 擧蒙奬擢, 獨於西北之人, 尙循謬例, 視同區外人, 猶有憾於天地之大。 臣等待罪選曹, 反覆相議, 思欲隨才掄拔, 備擬淸望, 而百年中廢之事, 一朝開例, 亦所不敢, 惟上裁處。" 答曰: "啓辭甚當, 依此擧行。"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534면
  • 【분류】
    가족-가족(家族) / 인사-선발(選拔)